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연말이 가까워졌습니다. 11월에 들어섰습니다. 해가 6시쯤 되면 서산에 지고 어둠이 빨리 몰려옵니다. 시간이 사람의 등을 밀어 연말까지 몰아붙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특히 11월이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아주 맑아집니다. 11월은 낙엽이 다 떨어지고 나무가 자신의 원래 모습,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나는 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이 가장 정직해지는 달이 11월인 것입니다.
사실 11월은 특색이 없는 달인 것 같지만 11월에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시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소설가, 시인 그리고 시조를 쓰시는 분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 중에서 유명한 분이 세 분 계십니다. 소설가로서는 金東里(김동리) 선생, 시인으로서는 徐廷柱(서정주) 선생, 그리고 시조 시인으로서는 金相沃(김상옥) 선생이 있습니다. 이 세 분은 지금은 다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의 토속적인 아름다움과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혼을 표현한 분들입니다.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저는 이 세 분 모두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치가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을 좋아합니다. 이 분이 쓴 시가 교과서에 나오기도 하는 등 우리 시대에 매우 친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아마 김상옥 시조를 아는 분들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상옥 선생의 시조는 이념적인 색채가 없고 한국인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남한이든 북한이든 읽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이 분이 쓴 시중에 '다보탑'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불꽃이 이리 튀고
돌조각이 저리 튀고,
밤을 낮을 삼아
정 소리가 요란터니,
불국사 백운교 위에
탑이 솟아오르다.
꽃쟁반 팔모 난간
층층이 고운 모양,
임의 손 간 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머리엔 푸른 하늘을
받쳐 이고 있도다.>
여기서 돌옷이란 말이 아주 멋있습니다. 다보탑은 경주 불국사에 있는 탑입니다. 다보탑 옆에는 석가탑이 있습니다. 다보탑은 아기자기하고 석가탑은 아주 소박합니다. 한국인의 미적 감정을 이 두 탑이 아주 절묘하게, 또 상반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다보탑은 여러 장식이 있어서 화려하게 보입니다. 그것을 김상옥 씨는 돌옷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돌을 옷처럼 만들어서 입혔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이 저는 이 시의 아주 핵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상옥씨는 아주 재주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도자기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분의 따님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아버님은 眞善美(진선미) 가운데 美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眞善이 저절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사람을 나쁘다 좋다 이렇게 평가하지 않으시고 재주가 있느냐 없느냐로 하셨어요”
그분의 가장 큰 욕은 '이 재주 없는 녀석'이란 말이었습니다. 흔히 진선미라는 말을 우리가 즐겨 씁니다. 진은 진실이라는 뜻이고, 선은 착하다는 뜻이고, 미는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통 진실되다는 말을 제일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아름다움을 평가하고, 아름답게 노력하면 자연히 진실되고 착할 수가 있다 해서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은 진실하고 착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아름다움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름다움은 미술, 조각, 문학 그리고 음악 등으로 표현됩니다. 즉 문학과 예술입니다. 문학과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은 진실하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해서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술,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을 진실하고 착하게 만드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김상옥 시인의 시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김상옥 시인이 쓴 시 중에서는 ‘백자부’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청자이고, 이조 조선시대는 백자입니다. 이 백자부는 백자 노래란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風磬)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때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不老草)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純朴)하도다.<백자부(白磁賦)>
이 백자부는 아마 우리나라 시조 중에서 최고 수준에 오른 시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이 구절이 어떻습니까?
‘불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북한동포 여러분들은 조선시대 백자를 보실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박물관에 가면 백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 백자는 흙을 불에 달궈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음같이 하얀 살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티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하얀 살결에 닿으면 그대로 흠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의 마음은 아주 투명한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우리는 흔히 순수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백자부라는 시가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렸는데, 여기서 두 번째 연의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風磬) 소리 들리던 날/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때/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하는 부분이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에 담아 오도다’하는 말이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마시도록 권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도덕을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면 문학이 이런 식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꽃 아래에서 빚은 술을 여기. 즉 백자에 담아 마신다는 그런 멋있는 풍경도 도덕으로 보면 술을 권하는 것이다 해서 이것을 지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학과 이데올로기가 부딪히면 문학이 피해를 봅니다.
북한 문학이 그렇습니다. 북한의 문학이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주체사상, 김일성, 김정일을 위해서 봉사하다가 보니까 아름다운 언어가 없어졌습니다. 살벌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문학이 살아 있습니다. 문학을 하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김상옥 선생님의 다른 시를 몇 개 더 소개하겠습니다. 눈이라는 시입니다.
“온 세상 뜰 안인 양 포근히도 고요한 날!
저 하늘 푸른 속에 깊숙이 숨었다가
흰 날개 고이 펼치고 꿈을 추며 나리네.
헐벗은 가지에도 흐뭇이 꽃이 벌고
보리 어린 이랑 햇솜처럼 덮어주고
오는 철 새로운 봄을 불러오려 하느냐.
깃드는 추녀 끝에 낙수소리 들리거든
참고 견딘 추움 헌 옷처럼 벗어 두고
우리네 헐린 살림을 다시 가꿔보리라”
가난한 시절의 농촌 이야깁니다. 아기 무덤이라는 시조도 있습니다. 1930년대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갓난아기가 100명 태어나면 돌이 지나기 전에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린다면 우리 집에서는 12명이 태어났는데 6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이처럼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아기무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 아기무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김상옥 선생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아기 고운 아기 자는 무덤은 푸른 잔디 금잔디 곱게 깔리고 다복솔도 동무 짠 동그란 무덤, 아기 혼자 외롭기로 무덤 위에는 할미꽃 한 송이 피어 있지요.
우리 아기 고운 아기 쉬는 무덤은 오리나무 숲속으로 길이 열리고 시냇물도 흘러가는 금잔디 무덤. 밤이면 아기 혼자 울고 있는지, 이슬방울 풀잎에 젖어 있지요.
우리 아기 고운 아기 노는 무덤은 호랑나비 흰나비 앉았다 가고 종달새도 노래하는 양달쪽 무덤, 이 봄 한철 다 지나고 겨울이 오면 소복눈이 내려와서 덮어 주지요“
아마 북한 동포 여러분들 중에서는 대기근이 휩쓴 고난의 행군 시절에 아기를 잃은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한테 위로를 해주는 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어린이들은 아주 억세게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에 농촌에서 산과 들판에서 뛰어놀면서 자란다는 것은 인격 형성에 매우 좋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시골에서 자라야 큰 인물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자라야 마음이 순수해지고 산과 들에서 아주 큰 가슴을 키우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또 건강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어린이들이 어떻게 자라났느냐 하는 것을 김상옥 시인은 착한 어린이라는 시로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기어드는 초막집 토방에 자고 도토리 밥 시래기 국도 먹으며 자랐고, 개똥밭에 개똥같이 뒹굴고 놀고, 자갈밭에 차돌 같이 여물어 가는 우리는 우리 고장 착한 어린이. 박 조각 사금팔이 장난감하고, 맨발에 웃통 벗고 소꿉질하고 말똥 밭에 말똥같이 뒹굴고 놀고, 불똥 나무 불똥같이 여물이 드는 우리는 우리 고장 착한 어린이”
여기에 사금팔이로 장난감을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옛날에 농촌에서는 장난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금팔이, 그릇이 깨여진 조각을 가지고 여러가지 장난을 쳤다는 뜻입니다. 봉선화라는 시는 아주 유명합니다. 아마 김상옥 시인의 시조의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이것은 누님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비 오자 장독 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가 웃으실가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 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몰 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햐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노나>
시집간 누님이 자신의 손가락에 물을 들여 가지고 지금 매니큐어를 하듯이 그렇게 해주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시집을 가면 시집 간 누님이 1년이 되어도 친가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사이에는 교통이 발달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시집을 가도 바로 5분 거리 안에 살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농촌 사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때 누님을 그리는 시가 이 봉선화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옥저라는 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옥저는 옥으로 만든 피리라는 뜻입니다. 신라의 3대 악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것도 김상옥 시인의 대표작 중의 하나입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입술을 축이시며,
뚫린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직일 때,
그 소리 은하(銀河)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천 년을 머금은 채,
따스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하리요!>
김상옥 시인 그리고 김동리 소설가, 서정주 시인과 같은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이 세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세 분은 모두 신라의 정신을 아주 그리워했습니다. 신라의 자주성이라든지 예술혼이라든지, 신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 이것을 탐구해서 문학적으로 표현한 분들입니다.
이 세 분 중에 김동리 소설가는 고향이 경주였습니다. 김상옥 선생은 경남이었는데 이 분은 말년에 경주에 가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상옥 시인은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김상옥 시인을 기리는 분들은 김 선생은 돌아가시는 것도 자기 의지대로 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시를 읽어드린 것은 언어를 순화하고 말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북 간에 이념 경쟁을 하다보니까 말이 매우 거칠어졌습니다. 말이 거칠면 마음이 거칠게 되고, 마음이 거칠면 생활이 거칠게 되고 사회가 거칠게 되고 국가가 거칠게 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주 삭막해집니다. 그래서 오늘 김상옥 시조시인의 시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金相沃(김상옥) 시인 이야기
- 조갑제(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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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03, 11: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