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1989년 11월9일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있던 장벽이 무너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1989년 11월9일은 역사에서 길이 기록될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 뒤에 동서독은 통일을 했습니다. 그 현장에서 핸 인 핸드, 즉 ‘손에 손 잡고’라는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가 불려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북한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마는 가장 큰 것은 북한이 핵개발을 했고 북한 내부에서의 변화가 아직 충분하지 않으며 북한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할 수 있는 세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분들 속에서 그런 조직이 형성되어야 북한도 무너질 것이고 한반도도 독일처럼 통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20년 전의 11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금방 한국에도 좋은 뉴스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북한 동포 여러분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東歐(동구)가 무너졌느냐 하는 것을 되돌아본다면 북한이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대답이 나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1989년의 동구 민주화 혁명에서 뇌관 역할을 한 것은 헝가리였습니다. 헝가리는 한국과 제일 먼저 수교한 공산 국가이기도 합니다. 헝가리는 잘 아시겠지만 1956년에 민중 봉기가 일어나서 공산당 정권을 타도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침공해서 좌절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카다르라는 사람이 공산당의 지도자로 등장했습니다. 이 사람은 개방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등소평 등장 이전에 이미 헝가리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도입하는 시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련은 헝가리의 민중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했기 때문에 이런 헝가리의 자유화 조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했습니다.
1988년 5월에 서기장 카다르를 헝가리 공산당 내의 개혁파가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헝가리 공산당 내의 개혁파가 복수 정당제와 자유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화를 추진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소련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1989년 3월에 모스크바로 네메트 총리가 찾아가 고르바초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소련군이 8만 명이나 주둔하고 있습니다. 소련은 1956년에도 개입한 적이 있습니다. 자유선거가 언제 치러질지 모르지마는 그 선거에서 공산당이 패배해서 정권을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소련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고르바초프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헝가리가 복수 정당제를 채택하는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귀하들이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 둘 것이 있습니다. 내가 만약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고 이 자리에 계속 있다면 헝가리의 민주화 조치를 진압하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즉 복수정당제 그리고 자유선거를 통한 민주화를 계속 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해도 소련군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고르바초프가 했습니다. 그래서 공산당의 개혁파들은 이 자유화 조치를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돌발 사태가 하나 발생 했습니다.
헝가리 안에는 헝가리계의 사람들이 주변 여러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에도 헝가리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탄압을 피해 헝가리로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헝가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이들을 루마니아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독 사람들은 헝가리 정부의 이 조치를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독 사람들이 이제는 헝가리로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헝가리에 계속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동독과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시 헝가리는 동독 사람들이 자국 내에 불법으로 체류하면 잡아서 동독으로 넘겨주는 약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지금 북한이 중국과 약속을 해 가지고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을 잡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꼭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헝가리는 이때 중요한 하나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즉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사이에 나 있는 철조망을 개방해서 헝가리에 있던 동독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쪽으로 가도록 문을 열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동독 안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동독 사람들은 제3국을 통해서 자유세계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공산정권 퇴진 시위가 동독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0월 9일에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때 동독의 비밀경찰은 8000명의 병력과 민병대를 준비해가지고 탄압할 준비를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진압명령은 공산당으로부터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동독 주재 소련대사가 당시 공산당 간부인 크렌츠에게 전화를 걸어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라이프치히로 내려가서 군 지휘관들에게 군대 투입을 지시하려고 하는데 소련은 여기에 반대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탄압을 하려고 해도 소련이 지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즉 고르바초프가 자신을 위해서 군대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라이프치히의 시위를 무력으로 막지 않았습니다.
이 시위를 계기로 동독 안에서 민주화 운동이 급격히 번지기 시작해 공산당 서기장도 물러나게 됐습니다. 이후 동독 공산당의 새로운 서기장이 취임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독 사람들의 해외여행 허가를 쉽게 내주는 방안을 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1월 9일 동독 공산당 정치 후원인 사보스키라는 사람이 다른 일로 국내외 기자들에게 뉴스브리핑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때 동독 공산당의 누군가가 여행자유화 법안의 내용을 메모를 해가지고 텔레비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사보스키라는 사람한데 전해 주었습니다. 이 사보스키라는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메모가 들어 온대로 새로운 여행자유화 규칙이 만들어 졌다고 생중계를 통해서 공개를 했습니다.
기자가 언제부터 실시되는가 하고 물으니까 사보스키라는 사람은 11월10일 즉 내일부터 발효가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잘못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11월10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중계를 들은 동독 국민들은 당장 오늘밤부터 서독 서베를린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베를린 장벽 쪽으로 몰려 왔습니다. 수십만 명이 몰려 오니까 초소 경비병이 총을 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초소 경비병이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습니다. 오보에 의해서, 잘못된 보고에 의해서, 잘못된 뉴스에 의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웃기는 일은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이렇게 오보로 빚어진 사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내린 자유화 조치를 그 상황에 맞추어서 수정해 버렸습니다. 당장 여행 자유화를 실시한다고 발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사적인 사건이 아주 이상한 착각으로 인해서 벌어졌습니다.
올해가 20주년이 되니까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웠는가 해서 여러 곳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공산권을 무너뜨린 제 일등 공신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인들은 서울 올림픽 덕분에 동구 공산권이 무너졌다고 자랑을 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대처 당시 총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천주교 신도들은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반공 정책을 썼기 때문에 공산권이 무너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럼 누구일까요? 일등 공신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동구 소련 공산주의 붕괴의 일등 공신은 바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였습니다.
그는 지난주에 뉴욕타임스에 글을 실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내가 바로 동구의 민주화 혁명을 보장하였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폴란드, 동독, 헝가리 같은 공산진영 위성국가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도 과거처럼 소련군을 투입하여 탄압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 나라 지도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서기장이 새로 등장해 가지고 또 거짓말을 하는 모양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그 정책을 계속 유지했고, 이 때문에 1989년에 유렵의 변화가 평화롭게 피를 흘리지 않고 이뤄졌다고 이 칼럼에서 주장을 했습니다. 고르바초프 前서기장은 이 뉴욕타임스에 실은 글에서 이렇게 아주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것은 고르바초프나 당시 독일 수상이던 콜이 원해서가 아니라 독일 국민들이 통일을 원하였으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수백만의 동서독 사람들이 통일을 원한다면서 들고 일어났을 때 우리는 책임있게 행동해야 하였다, 유럽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도전에 잘 대처하여 냉전을 끝냈다라고 썼습니다.
이런 고르바초프의 이야기는 통일로 나가야 하는 남한과 북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힌트를 하나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한반도의 통일을 중국이 방해하고 싶어도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우리는 하나가 되겠다고 결심할 때에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 된 한국이 통일 독일처럼 주변 국가를 위험하게 할 일도 없습니다. 또 민족의 문제는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의 원칙은 국제적으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원칙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통일에 따르는 부담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는가? 북한사람들은 공산당 정권을 거부할 용기가 있는가? 여기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특히 남한 사람들이 할 일이 많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에 중국이 아닌 남한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음을 사로잡는 노력을 우리 남한 사람들이 지금부터 해야 되는데 과연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와서 성공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북한 동포 여러분들에게 통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북한 동포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어떤 준비 행동을 지금부터라도 하나둘 하고 있는가? 작은 것이지만 그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 남한에 있는 우리들은 북한 노동당 정권을 약화시키고 북한 동포 여러분들을 직접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작은 것부터 노력하는 것이 작은 돌을 던져서 통일로 가는 큰 다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20년이면 2030년이 다 되는데 그때까지는 반드시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 자유롭고 번영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의 교훈
- 조갑제(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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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10, 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