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고전을 읽어야 한다.
문학적 고전은 정신의 양식을 예술적 감동을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敎養(교양)을 쌓는 데에 최고의 교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는 교양교육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가치판단에 있어서 합리성을 추구하며 偏向(편향)과 독선과 狂信(광신)을 경계한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이상에 중독되어 괴물(grotesque)로 변형되지도 않지만 현실에 몰입되어 정글의 짐승으로 전락하지도 않는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존재론적 혼돈’(ontological chaos)은 이해하지만 인간사회에 있어서 법과 질서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최소한도 “남에게 폐가 되는 언행”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는 문학적 고전에 대한 교양교육이 未洽(미흡)하다.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고전교육은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햄릿(Hamlet)’ 같은 인류 최고의 고전도 극소수의 전문학자를 제외하고는 내용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작가나 주인공이름이나 알고 있을 정도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도 고전교육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논술고사 광풍에 온 나라가 허둥거리고 있다. 고전에 대한 지식이 극히 미약한 상태에서 어떻게 상상력이 풍부하고 날카롭고도 창의적인 글이 나올 수 있겠는가?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교양에 필수적인 고전교육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고자 영화나 신문.잡지 등을 통해서 일반대중에게 다소 親熟(친숙)해진 영문학고전 15편을 선정하고 英·美 비평가들의 비평을 참고로 하여 고등학생과 대학생 및 일반인들의 교양을 위한 “국민교양을 위한 영문학산책”을 내놓게 되었다. 고전을 읽을 때는
1. 먼저 작품을 읽고
2. 해당 작품에 대한 비평가들의 비평을 읽은 후에
3. 작품을 吟味(음미)하면서 다시 읽는 것이
고전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일상의 삶에 바쁜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작품의 줄거리에 맞추어서 해설을 하거나 별도로 줄거리를 제시하고 작품을 분석하였다. 영문독해력이 있는 독자들은 원문을 바로 읽으면 고전의 眞味(진미)를 더욱더 심도 높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동물농장(Animal Farm)
정치적 이상주의의 허상
George Orwell(조지 오웰. 본명은 Eric Arthur Blair)의 '동물농장'은 전체주의 국가의 絶對權力者(절대권력자)와 절대 권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寓話(우화:allegory)이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민중은 언제나 지도자와 지도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적인 제도로부터 압제를 당하게 마련이라는 것이 오웰의 持論(지론)이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의 권력자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자신의 絶對權力(절대권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할 때 민중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폭정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해방을 약속하며 권력을 장악하는 '혁명지도자'나 '이상주의자'도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오웰은 “기존의 폭군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폭군은 항상 있다. 새 폭군은 전임자만큼은 나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폭군임에는 틀림없다” 라며 정치적 이상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그는 “도덕주의자(moralist)들이 급진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명가들은 도덕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의 모습(the shape of society)을 변경시키면 모든 일이 바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를 變革(변혁)함으로써 모든 惡(악)을 제거하고 사회를 완벽하게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인간의 현실적 生存條件(생존조건)에 바탕을 두지 않는 觀念的(관념적) 사회혁명의 無望(무망)함을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비현실적인 사상을 거부하라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상은 그 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이상적일지라도 거부하여야한다는 것이 오웰의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저항 독립운동가로서 聖人(성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Gandhi(간디)도 오웰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오웰은 간디의 聖者(성자)의 이상을 (성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인간이 되고픈 유혹을 결코 느껴보지 못한다면서)비인간적이라며 비판하였다.
간디의 無抵抗主義(무저항주의)도 영국같은 민주주의 정권하에서나 가능한 방법이며 나치스 독일이나 소련같은 전체주의국가에서는 전혀 효력이 없을뿐더러 항의시위에 참여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할 것이다. 그러나 오웰은 증오와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정치투쟁의 理想(이상)을 실천한 간디의 숭고한 인격은 높이 평가하였다.
사기당하는 민중
간디처럼 증오와 권력의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간디 같은 인물은 인류역사상 예외적인 인물이다. 어떠한 인간도 증오와 권력욕을 超越(초월)할 수는 없다.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거나 경쟁자가 되는 삶의 투기장에서는 증오와 권력의지는 생존본능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조직을 이루어서 투쟁할 때에 생존의 가능성이 보다 더 확실하게 보장된다. 조직에는 어떤 형태로든 지도자가 있어야 조직이 유지된다. 대중은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지도자는 대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이들 지도자는 언제나 대중을 지배하거나 조작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오웰은 “역사는 일련의 詐欺(사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詐欺劇(사기극)속에서 민중은 유토피아(Utopia)의 약속에 따라 蜂起(봉기)하도록 誘引(유인)되지만 일이 끝나면 새로운 주인에 의해 또 다시 노예가 된다.”라며 정치지도자와 민중의 지배-종속적인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계급적 동물이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당대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처럼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인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서점점원, 농장 일군, 식당종업원, 교사, 가정교사, 방송요원, 군인, 영화평론가, 장기입원한자, 특파원, 작가 등으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관념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浮浪者(부랑자)의 생활을 하면서 貧民(빈민)들의 고통을 체험적으로 관찰하였다. 그가 발견한 것은 빈민들의 세계에도 精巧(정교)하고 엄격한 계급이 제도화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호텔종사원의 경우 위로는 호텔 총지배인으로부터 최하층의 화장실당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업원이 계급화 되어 있었다. 요리파트에는 요리장, 요리사 인사관리자, 요리사의 계급이 있고 접대부분에는 급사장(headwaiter), 웨이터, 견습웨이터의 계급이 있었으며 객실정리담당과 화장실담당도 계급화 되어 있었다. 심지어 런던의 거지들 상호간에도 평등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계급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오웰은 체험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었다. 계급은 인간의 생존조건이며 계급이 없으면 인간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고 사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환상이며 이러한 환상에 사로잡히는 민중은 혁명가나 정치인들의 권력획득이나 유지의 도구로 악용 당하기 마련이다.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
오웰은 또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좌익의 편에서 우익 파시스트와 싸웠다. 그는 국제노동당 分遣隊(분견대)원으로서 스페인 동북부 Aragon(아라곤)전선에서 싸우다가 목에 관통상을 당하는 重傷(중상)을 입었다.
관념적이기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인간으로 살아온 오웰에게는 부상으로 인해 實戰(실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커다란 타격이 되었다. 그는 스페인 공산당의 대숙청을 피해 프랑스군 전선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는 공산주의자나 파시스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무수한 시체를 보고 “역사는 친구와 친족이 無意味(무의미)한 內戰(내전)에서 파멸되고 투옥되고 잔혹하게 살해되는 정치적 분노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특정 이념으로 무장한 인간이 그 이념을 전체주의적으로 강행할 때 무참한 殺戮(살육)을 당연시하는 可恐(가공)할 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사회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로 타락할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게 되었다.
위선적인 유럽의 지식인과 좌익작가들
뿐만 아니라 오웰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정권이나 독재자를 용인하거나 이들에 대해서 비판을 유보하는 西歐(서구)의 지식인이나 좌익작가들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자유와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나라에서 성장하여 독재의 慘狀(참상)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국의 대다수 지식인과 좌익작가들은 肅淸(숙청)과 비밀경찰의 공포를 인식하거나 體感(체감)하지 못하고 단지 소련이 파시스트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소련의 實狀(실상)을 바로 보기를 거부하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