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프 콘래드의 암흑의 오지(Heart of Darkness)①

어느 이상주의자의 顚落(전락)과 공포
조세프 콘래드(Joseph Conrad)
2. 콘래드의 ‘暗黑(암흑)의 奧地(오지)’[미국영화 ‘묵시록’의 원작소설]


# 1. 예술가의 임무는 느끼게 하고 보여주는 것


‘暗黑의 奧地’(Heart of Darkness)의 작가 Joseph Conrad(조세프 콘래드)의 본명은 조세프 테오도르 콘라드 코르젠이오스키(Josef Teodor Konrad Korzeniowski)이다. 콘래드는 1857년 帝政(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크라이나(Ukraine)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나라인 폴란드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부친은 기자이고 시인이자 번역가였으며 폴란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콘래드는 5세 때에 가족이 추방을 당했고 12세 때에 부모가 죽었다. 그가 17세에 바다로 가서 프랑스와 영국의 상선 선원이 된 것은 암울한 현실로부터의 탈출이고 반항이며 도피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국에 歸化(귀화)하여 영어로 소설을 써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티. 에스. 엘리엇(T.S. Elliot)은 콘래드를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가장 위대한 (문학적)군주”라고 극찬하였다. 콘래드는 예술가의 임무는 “느끼게 하고 보게 만드는 것”(to make you feel… to make you see.)이라며 그의 위대한 소설을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존재의 深淵(심연)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어느 이상주의자의 顚落(전락)과 공포

‘暗黑의 奧地’의 이야기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매우 난해하여 독자로 하여금 팽팽한 知的緊張感(지적긴장감)을 즐기게 해준다.
서술자(narator)인 Marlow(말로우)는 퇴역선장으로 지내다가 벨지움의 象牙(상아)무역회사의 선장으로 취직이 되어 낡은 蒸氣船(증기선)을 몰고 아프리카의 콩고(Congo)江 상류로 올라간다. 도중에 그는 콩고강 상류 奧地(오지)에 있는 상아수집소의 支社長(지사장)인 Kurtz(컬츠)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회사의 콩고 총책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컬츠의 비범한 능력과 업적에 대해 敬歎(경탄)하고 있었다.

말로우는 그 후에 원래는 이상주의적 문명인이었던 컬츠가 현대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의 原住民(원주민)을 제압하고 開明(개명)시키기보다는 원주민의 野蠻性(야만성)에 同化(동화)되어 야만족으로부터 神的(신적)인 존재로 崇仰(숭앙)받으며 食人(식인)과 性的放縱(성적방종)에 이르기까지 온갖 惡行(악행)을 저지르는 악마적 인간으로 전락한 사실을 발견한다. 마침내 그는 컬츠를 만나고 귀환 중에 컬츠의 죽음을 지켜본다. 컬츠는 죽을 때에 “The horror! The horror!: 너무 무서워! 너무 무서워!”라며 자신의 타락과 魔性(마성)에 대해 戰慄(전율)한다.

말로우는 유럽으로 돌아와서 컬츠의 약혼자에게 컬츠의 악마적인 모습을 숨기고 컬츠가 숭고한 삶을 살았다고 거짓말한다. 컬츠가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약혼자를 실망시키지 않고 살아갈 의미와 가치를 주기 위해서 거짓말 한 것이다.


암흑의 다양한 의미

암흑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암흑은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아프리카의 奧地(오지)를 가리킨다. 암흑은 우주의 無意味(무의미)한 空虛(공허)를 의미한다. 암흑은 모든 의미를 파괴해 버리는 허무주의를 表象(표상)한다. 암흑은 理性(이성)을 압도하는 몰도덕적 본능을 상징하기도 한다. 암흑은 또한 이상주의자들의 理想(이상)과 善意(선의)를 좌절시키는 惡(악)의 形象化(형상화)이다.

콩고江(강) 奧地(오지)로의 航行(항행)을 통해 말로우는 빛과 암흑의 상징적 의미를 眺望(조망)하게 된다. 그 의미는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주는 암흑으로 시작해서 암흑으로 끝날 것이다.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역사는 모호하고 몰도덕적이며 無목적적이라는 점에서 암흑이다. 인간도 근본적으로 암흑의 존재이다. 우연하고도 돌발적인 이유로 인간은 가끔씩 문명의 형태로 암흑에 빛을 가져오고 암혹을 얼마간 쫓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암흑의 威勢(위세)를 저지하는 인간의 문명적 행동은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암흑의 作用力(작용력)은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사회와 인간 속에 遍在(편재)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빛은 힘이나 强度(강도)나 耐久力(내구력)에 있어서 암흑의 敵手(적수)가 되지 못하고 어떤 면에서는 암흑에 종속된다. 말로우가 荒地(황지)에서, 컬츠에게서, 그리고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암흑은 우주의 근본이며 현실이다.

말로우는 콩고강 항해에 대해서 '그들은 암흑의 오지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갔다'라고 말한다. 아프리카의 황지(wildness)를 “암흑의 오지”(heart of darkness)와 동일시하는 것은 전통적인 근거가 있다. 황지는 문명의 빛이 닿지 못하는 땅이다. 아프리카는 현대문명과는 차단된 황무지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암흑의 대륙(the Dark Continent)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말로우는 荒地(황지)에 암흑 이상의 더 큰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적극적이고도 악의적인 어떤 힘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침투할 수 없으며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範疇(범주)를 허물어 버리는 힘이다. 그것은 深夜(심야)의 어두움이 모든 형태를 흡수하듯이 문명의 모든 형상을 삼켜버린다.

암흑의 힘에 비교하면 모든 인간의 지적인 조립품이나 “인간 이성과 의도의 모든 영역은 虛構(허구)에 불과”하다. ‘暗黑의 奧地’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基底(기저)가 되는 인간 본성의 이성적 및 도덕적 능력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며 암흑의 힘에 압도당하는 문명의 허약함을 表出(표출)한다.

암흑이 문명을 압도하는 힘은 인간이 문명의 통제를 벗어나서 황지에 투입될 때 더 강해진다. 우리 인간은 “법률과 우리를 감시하는 이웃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라는 말로우의 말처럼 본능이라는 암흑을 통제하고 문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제약이 필요하다. 문명의 방패로 보호받지 못하고 문명 이전의 야만의 세계에 노출된다는 것은 영혼을 발가벗겨서 원초의 본능적 衝動(충동)에 맡기는 것과 같다.

암흑의 땅으로 내려가는 것은 모든 문화적 교양과 유리되어 본능과 대치하는 것이다. 이를 때 인간은 “타고난 힘”으로써 야만의 유혹과 도전을 극복해야한다. 타고난 힘이란 자제력을 포함하는데 우리 인간은 이것이 결여되어 있고 컬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 2 “빛의 使者(사자)”에서 “地獄(지옥)의 王”으로

컬츠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평범한 상인은 아니었다. 그는 象牙(상아)무역회사의 고위 직원으로서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지만 그에게는 野蠻(야만)의 땅에 문명의 빛을 가져오는 “빛의 使者(사자)”로서의 고매한 사명감도 있었다. 그는 사람을 압도하는 帝王(제왕)과 같은 카리스마가 있고 신문에 투고하기 위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그리고 야만의 땅을 開明(개명)시키기 위한 “거대한 계획”을 가진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적어도 이상을 가지고 아프리카에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奧地(오지)의 고독 속에서 惡魔(악마)로 변해 간다. 컬츠는 콩고강 오지에서 “잠복해 있던 야만적인 본능에 압도되어 무자비한 짐승”으로 顚落(전락)한 후 죽는다.

컬츠의 황폐한 모습을 말로우는 “…그의 영혼은 미쳐있었습니다. 야만의 오지에서 홀로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영혼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미쳐버렸던 것입니다. 나는-나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그 영혼을 들여다보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자제력도, 어떠한 신앙도, 어떠한 두려움도 모르는, 그런데도 자신과 맹목적으로 투쟁하는 不可解(불가해)한 영혼의 신비를 보았습니다” 라고 묘사하고 있다.

문명의 가치에 위협적이고 무관심한 암흑만을 응시하다가 영혼이 미쳐버린 컬츠는 善(선)과 惡(악)을 초월하는 악의적인 조물주가 되었다. 빛의 使者(사자)로 자부하던 컬츠 자신이 빛을 흡수해버리는 암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야만족에게 왕처럼 군림하고 야만족은 그를 神(신)처럼 崇仰(숭앙)하였다. 컬츠는 배신자의 머리를 잘라서 나무 막대기에 꽂아서 사방에 전시할 만큼 잔인한 지옥의 왕이 된 것이다. 말로우의 시야에 들어오는 컬츠의 內陸支社(내륙지사, the Inner Station)는 지옥의 광경이다:


지옥의 可恐(가공)할 풍경

여러분은 멀리 그 폐허처럼 보이는 건물주변에 설치해 놓은 장식품에 제가 깜짝 놀랐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갑자기 더 가까이에서 그 장식품들을 보고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를 뒤로 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세워 놓은 막대기들을 망원경으로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둥근 浮彫(부조)들은 장식적인 것이 아니고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생각을 위한 糧食(양식)이었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독수리가 있다면 독수리의 양식도 되었을 것입니다 …나무막대기 위에 꽂혀 있는 그 사람의 머리들이 얼굴을 건물 쪽으로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둥근 부조(사람머리)들은 훨씬 더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머리 하나만 제가 있는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심하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고개를 뒤로 제킨 것은 단지 놀란 동작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나무 부조장식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처음 보았던 그 머리로 돌아 왔습니다. 그것은 검고 말라있었고 아래로 쳐지고 눈꺼풀은 닫혀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둥 꼭대기에서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말라서 오그라든 입술 때문에 하얀 이를 내놓고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 영원한 잠 속에서 끝없이 익살스러운 꿈을 꾸면서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의 의미

‘빛의 사자’인 컬츠를 이렇게 魔王(마왕)으로 변형시킨 아프리카의 蠻地(만지)는 인간의 본능에 내재하는 비문명적이고 몰도덕적인 ‘짐승 같은 본능’의 表象(표상)이다. ‘짐승 같은 본능’은 情慾(정욕)과 탐욕과 衝動(충동)과 공격성과 熱情(열정)의 總和(총화)로서 비이성적인 종족보존본능이며 生(생)의 동력인 이드(id)와 동일시된다.

아프리카의 만지(wilderness)는 문명세계에서 침입해온 컬츠를 掩襲(엄습)하여 “그가 자신에 대해서 지금까지 몰랐던 것, 절대적 고립 속에 투입되기까지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였던 것(본능)을 그의 귀에다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속삭임은 도저히 거역하지 못할 만큼 환상적이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컬츠의 내면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그 속삭임은 컬츠 안에서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문명의 껍질 안에 잠복해 있던 암흑의 본능이 蠻地의 자극을 받아 통제불능이 될 때 인간은 짐승으로 추락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컬츠의 추락은 컬츠의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주는 인간에게 완전히 중립이다. 우주가 의도적으로 인간에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에 반응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야만은 컬츠에게 중립일 뿐이고 어떠한 악의적인 힘도 아니다. 컬츠 자신이 가치중립적인 야만에 자극을 받아 ‘짐승 같은 본능’에 압도당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蠻地에만 암흑이 있는 것이 아니고 컬츠의 영혼 내면에 암흑의 오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심지어 聖者(성자)의-無意識(무의식)에는 암흑의 오지가 있다. 문명은 인간의 몸을 감고 있는 옷과 같다. 그 옷은 본능의 狂風(광풍)에 쉽게 찢어지고 날려가 버린다.

문명은 또한 鎔巖(용암)을 덮고 있는 얕은 地表(지표)와 같아서 문명의 빛이 다다르지 못하는 암흑의 오지에서는 쉽게 갈라지면서 내부의 본능을 噴出(분출)시켜 이성을 압도해 버린다. 인류문명의 精髓(정수)라는 독일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이유도 게르만민족주의로 포장된 공격본능이라는 암흑의 오지에 추락하여 理性(이성)의 빛과 통제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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