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武器(무기)여 잘 있거라’③

전쟁의 愚昧(우매)와 혼돈- 헤밍웨이의 절망
# 5
덫에 걸린 프레데릭과 캐서린의 운명


여기에 헤밍웨이의 인물들이 처한 ‘삶의 受動性(수동성)’의 비밀이 있다. 인간은 부여받은 생존조건을 수용할 뿐이지 그 것을 인간의 의지대로 변형시킬 수는 없다. 캐서린이 임신한 지 3개월이 되어 곧 아기를 낳게될 거라고 말한다:

<“당신이 화내는 것은 아니죠?”
“응.”
“그리고 당신은 덫에 걸렸다고는 느끼지 않지요?”
“약간은. 그러나 당신 때문에 그런 건 아니오.”
“나 때문에 그렇다는 것 아니에요. 당신은 바보임에 틀림없어. 덫에 조금이라도 걸렸냐는 거예요.”
“사람은 항상 생물학적 덫(biological trap)에 걸려 있다고 느끼지요.”

‘생물학적’이라는 말은, 헤밍웨이의 세계에서는 인간사의 모든 일에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恣意(자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의지대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다만 인내함으로써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프레데릭도 캐서린처럼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가 내리는 날 그들이 카페에 있을 때 프레데릭은 Andrew Marvel(앤드류 마벌: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의 詩句(시구)를 암송하면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의식한다.

Time's winged chariot hurrying near.
그러나 나는 내 등 뒤에서 항상 듣는다
시간의 날개 달린 전차가 가까이 달려오고 있음을>

캐서린은 출산할 날을 담담하게 기다린다. 생물학적 존재인 프레데릭과 캐서린은 운명적으로 덫에 걸려 있다. 그들은 전쟁의 덫에 걸려 있고 사랑의 덫에 걸려 있으며 그들은 비록 의식은 하고 있지는 않지만 죽음의 덫에도 걸려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로 가도 탈출구가 없다. 그것이 인간이 처한 생존조건이다.


전쟁의 愚昧(우매)와 혼돈-헤밍웨이의 절망

프레데릭이 전선으로 복귀한 이틀 후에 고리지아에서 북쪽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Caporetto(카포레토)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이 패하여 후퇴하게 된다. 그것은 악몽 같은 退却(퇴각) 작전이었다. 카포레토 敗走(패주)에 대한 헤밍웨이의 이 유명한 敍述(서술)은 전쟁의 愚昧(우매)와 混沌(혼돈)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된다.

앰브런스 한 대가 진흙에 박혀 꼼짝 못하게 되어 병사들이 나무를 잘라서 공회전하는 바퀴 밑에 까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하사관 두 명이 후퇴대열에서 탈락하는 것이 두려워 차를 포기하고 도보로 가겠다며 프레데릭의 작업명령을 무시하고 부대를 이탈한다. 전투 중 무단이탈은 총살형이어서 프레데릭은 그 중 한 명에게 총을 쏜다. 총에 맞은 그 병사는 쓰러진다. 그는 부상만 입었을 뿐이었지만 프레데릭의 묵인 하에 운전병 Boello(보엘로)에 의해 사살된다.

보엘로는 ‘하사관 쏘아 죽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몇 시간 뒤에 보엘로도 탈영해 버린다. 이 우울한 코미디의 클라이맥스는 프레데릭 자신의 탈영사건이다. 헌병들이 장교부대 이탈죄로 그를 즉결처분하려고 할 때 그는 Tagliamento(타그리아멘토)江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한다.

전쟁행위는 인간생활에 내포되어 있는 잔인하고 무의미한 모든 것과 同一視(동일시)된다. 탈영죄로 사살된 하사관이나 이를 재미삼아 죽이고 탈영하는 보엘로나 자신이 하사관에게 적용되었던 그 군법을 위반하여 목숨의 위협을 받고 강물에 뛰어드는 프레데릭이나 모두 혼돈과 愚昧(우매)의 表象(표상)인 전쟁이라는 메커니즘의 꼭두각시들이다. 그런데 그 전쟁은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이 일으킨다. 여기에 헤밍웨이의 인간에 대한 절망이 있다.


# 6
경험의 뒷받침이 없는 추상적인 명분의 우울한 코미디


카포레토 후퇴작전은 또 하나의 우울한 코미디를 보여준다. 즉 추상적 이론과 실제적 상황사이의 乖離(괴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當爲(당위)와 規範(규범)만으로 현실을 恣意的(자의적)으로 裁斷(재단)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비극적 코미디이다.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현실과 遊離(유리)된 정의와 원칙의 강요는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된다. 프레데릭은 탈출하기 직전 헌병들이 이탈리아軍 중령을 처형하기 직전에 심문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 심문자(헌병)들은 사격은 하지만 사격은 받지 않는 이탈리아 군인들의 그 모든 능률성과 침착함과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속 여단은?'
그(중령)는 대답하였다.
'연대는?'
그는 대답하였다.
'연대에서 왜 이탈하였나?'
그는 대답하였다.
“장교는 부대와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나?”
그는 안다고 말하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다른 헌병장교가 말하였다.
“너 같은 놈 때문이다. 야만인들이 조국의 신성한 국토를 짓밟게 만든 것은 바로 너 같은 놈들이다.”
“선처를 바랍니다” 라고 중령이 말하였다.
“우리가 승리의 열매를 놓친 것은 네 놈들의 반역 때문이다.”
“당신들은 전투에서 후퇴해 본 적이 있소?” 중령이 물었다>

헌병은 총살집행을 위한 총은 쏘지만 전투에 참여하여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지는 않는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총에 맞을 일도 없고 후퇴의 경험도 없다. 그들은 죄의 유혹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죄에 굴복한 자를 斷罪(단죄)하는 성직자와도 같다.

헌병들이 사용하는 ‘신성한 국토’와 ‘승리의 열매’같은 애국적인 어구는 조개껍질처럼 공허한 것이어서 “후퇴해 본적이 있는가?”라는 중령의 말에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헌병들의 용감한 말은 실제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중령의 질문은 핵심을 찌르기 때문이다.

행동과 경험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추상적인 이론이나 명분은, 객관적인 사실에 부딪히면 오판을 가져오기 쉬우며 인류사는 너무나 많은 오판의 사례를 보여준다. 중령은 이러한 오판의 희생자이다. 전쟁의 무의미와 혼돈을 경험하는 프레데릭이 전쟁의 구호들이 토해내는 형식과 명분의 공허함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신성하다, 영광스럽다, 희생과 같은 말(word)과 공허한 표현을 들으면 항상 困惑(곤혹)스럽게 되었다. 우리는 그러한 말들을 들었다. 때로는 비속에서 거의 들을 수 없는 거리에서 들었기 때문에 고함지르는 말들만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읽었다, 다른 포스터 위에 겹쳐서 발라 놓은 포스터의 포고문에서 그런 말들을 읽었다. 오랫동안 읽었다.

그리고 나는 신성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다. 영광스럽다는 것에는 영광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희생이라는 것은 쓸데가 없으면 고기를 파묻어 버리는 시카고 도축장과 같았다. 듣기에 견딜 수 없는 많은 말들이 있었고 地名(지명)만은 최후까지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캐서린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타그리아멘토江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한 프레데릭은 부대로 귀환하지 않고 캐서린이 있는 밀라노로 향한다. 그는 전쟁과 “개인적으로 평화조약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쟁에 대해 완전히 잊기를 원한다. 밀라노의 군병원에는 캐서린이 없었다. 그녀는 湖畔(호반)의 휴양도시인 Stresa(스트레사)에 있었다. 프레데릭은 캐서린의 순진하고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 속에서 탈주자로서의 불안과 공포와 공허를 잊으려고 한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someone I love)을 최고의 가치라고 말할 만큼 캐서린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프레데릭은 캐서린의 열렬한 사랑 속에서도 전쟁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는 못한다. 戰況(전황)에 대한 바텐더의 질문에 대한 프레데릭의 대답에서 이러한 불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쟁에 대해서 말하지 마라”라고 나는 말하였다. 전쟁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전쟁이라고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전쟁이 없었다. 그때 나는 나에게는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전쟁이 정말로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빼먹고 지금 이 시간에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하고 궁금해 하는 소년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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