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개봉했던 제인 에어(Jane Eyre)의 포스터
현실 속의 신데렐라가 되어야 한다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존재로 보는 제인의 이러한 생각은 1840년대의 영국에서는 狂氣(광기)에 가까울 만큼 過激(과격)한 사상이다. 이러한 광기는 힘 없는 젊은 여성인 제인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더구나 제인이 사랑하게 되는 로체스터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를 당연시하는 家父長的(가부장적) 사회의 典刑(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사랑의 전개 과정에서 두 사람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제인은 이러한 충돌에서 사랑을 상실하거나 자신의 삶이 파멸적인 상처를 입지 않도록 그녀의 시대에 앞서는 생각을 신중하게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그녀가 로체스터라는 왕자가 살고 있는 쏜필드城(성)에서 행복한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정열이라는 內的(내적)인 위험과 사회적 차별이라는 外的(외적) 장애를 현명하게 통제하고 극복해야 한다. 제인은 사랑만으로 행복을 달성하는 동화 속의 신데렐라가 아니며 인간적인 한계와 사회적인 저항의 가시밭(thorn-field)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되는 현실 속의 신데렐라이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제인은 2마일 가량 떨어져 있는 Hay(해이)로 페어팩스부인을 대신해서 편지를 붙이러 가는 길에 長期(장기)여행에서 돌아오는 로체스터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 순간 제인은 마음의 평화를 잃는다. 그의 ‘검고 강하고 엄숙한’ 얼굴은 그녀의 ‘추억의 화랑에 걸리는 새로운 그림’이 되어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준다.
그 날 밤 로체스터는 패어펙스 부인으로부터 제인을 소개받을 때 제인을 무심하게 대한다. 대지주이며 세계를 누비고 다닌 그로서는 가정교사는 하인과 다름없이 미미한 존재인 것이다. 그는 “제인 선생이 여기에 있든 없든 나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나?”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위압적인 로체스터에 毅然(의연)하게 대응하는 제인
제인은 로체스터의 威壓的(위압적)인 태도에 내심으로는 당황하였지만 차분하게 그의 질문에 답하였다. 로체스터는 “나의 명령조의 말투를 이해하시오. 나는 남에게 시키고 명령하는데 익숙한 사람이오”라며 제인에게 피아노를 치게 하고 제인이 그린 그림들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여성의 중요한 교양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 장면은 로체스터의 권위적이고 남성우위적인 여성관의 일면을 보여 준다.
제인에 대한 로체스터의 ‘거만하고 위압적’인 태도는 제인과의 접촉과 대화 속에서 다소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제인은 자기의 고용주인 로체스터의 지시에 성실하게 복종하면서도, 또 그가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진실된 신사라는 것을 感知(감지)하면서도, 그가 偏向(편향)된 시각에서 일방적인 주장이나 의견을 말할 때는 조용하게 反論(반론)을 제기하여 로체스터에게 충격을 주면서 그녀를 재평가하도록 만든다. 다음 대화가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난 당신의 아버지가 될 만큼 나이가 들었고… 당신은 한 집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조용히 살아온 반면에 나는 많은 나라의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나누었고 지구의 반 이상을 다녔기 때문에 주인처럼 행세하고 변덕을 부려도 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주인님, 좋으신 대로 하십시오.”
“그건 대답이 될 수 없어요. 오히려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어. 왜냐하면 매우 回避的(회피적)인 대답이니까. 분명히 대답하시오.”
“주인님, 저는 단지 주인님께서 저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또 세상을 저보다 많이 보았다고 해서 저에게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인님이 저보다 우월할 수 있는지 여부는 주인님께서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였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어서 로체스터는 자신의 방탕했던 생활을 합리화하려다가 제인으로부터 또 한번의 반격(another stick of the penknife)을 당한다.
<“…나는 내가 처한 환경을 지배할 수 있어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소. 당연히 환경에 굴복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환경에 압도 당했었소. 운명이 나를 희롱할 때에 난 냉정을 유지하지 못했어요. 나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나는 타락했었소… 그러나 제인양 후회하지 마시오. 후회는 생활의 독이오.”
“참회는 생활의 치료제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소. 개혁이 생활의 치료제요. 나는 변할 수 있소. 나는 그럴만한 힘이 있소… 그러나 나처럼 좌절되고 저주받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그런 걸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뿐만 아니라 나는 행복을 완전히 거부당한 사람이오. 나는 삶으로부터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소. 나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쟁취하겠소.”
“그러면 더욱더 타락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감미롭고 싱싱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왜 개혁 따위를 생각해야 합니까? 난 벌들이 무어(moor: 히쓰가 무성한 황야)에서 모으는 야생의 꿀만큼 달고 싱싱한 쾌락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벌에 쏘일 것입니다. 그리고 맛이 쓸 것입니다.”>
# 6
정열의 狂氣(광기)를 이성으로 통제하는 제인
위의 대화에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토로하는 로체스터에게서 지배적 남성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이에 겸손하지만 毅然(의연)하게 대응하는 제인에게서 자신의 독립적인 자아를 추구하려는 여성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제인의 矛盾(모순)은 남성과의 대등한 관계를 지향하면서도 강하고 위세가 당당한 대상에게 服屬(복속)하기를 원하고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강한 자를 존경하고 따름으로써 그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俗性(속성)이 있다.
로체스터는 제인에 대한 위압적이고 냉랭한 자세를 버리고 그녀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는 프랑스의 오페라 舞姬(무희) Celine Varens(셀린 바렝)에게 많은 돈과 정열을 바치고서도 배신당했다는 것, 그리고 제인이 가르치고 있는 아델러는 바렝의 딸이며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등 개인적인 비밀까지 격정적으로 吐露(토로)할 만큼 제인에게 솔직해진다.
이로 인해 로체스터에 대한 제인의 태도는 ‘고통스러운 억제’에서 해방이 되고 제인은 그의 ‘친밀하고 솔직한’ 태도에 그가 ‘주인이 아니고 마치 친척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새로운 상항의 전개에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 ‘친척에 대한 갈망’을 그만 둔다.
그녀의 “초승달처럼 쪼그라들었던 운명이 확대되고 존재의 공허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제인은 그의 결점인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에게 무뚝뚝하고 거만하고 거칠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오만함을 잊지는 않았지만 ‘그의 무뚝뚝함과 거칠음, 예전의 도덕적 결함은 모두 운명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현재는 다소 흐트러지고 망가져 있지만 천성적으로는 훌륭한 자질과 보다 높은 원칙과 보다 순수한 취향의 인간’이라고 믿게 되었다. 사랑의 정열이 제인의 이성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로체스터는 남성우위 사회의 오만한 남성의 전형
그러나 로체스터는 제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솔직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로체스터는 아내가 있다는 것을 제인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는 정신이상자인 아내 Bertha Mason(버서 메이슨)을 쏜필드의 3층 골방에 감금해 놓고 하녀 Grace Poole (그레이스 풀)에게 그녀를 관리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는 애정도 없으면서 돈과 섹스와 사회적 지위를 위해, 다시 말해서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버서와 결혼한 후 성질이 거세고 정열적이던 아내가 정신이상이 되자 감금해 버리고 자신은 性的(성적) 모험의 길로 나섰던 것이다. 로체스터가 제인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의 존재를 비밀로 하는 것은 사랑에서 원칙과 진실과 평등한 관계를 갈망하는 제인에 대한 배신이다.
로체스터의 이러한 위선적인 의식구조는 남자의 性的(성적) 放縱(방종)에는 관대하면서도 여성에게는 貞淑(정숙)을 엄하게 요구하던 19세기의 남성우위적인 사회적, 심리적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로체스터는 지배층의 위압적이고 위선적이며 오만한 남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한편 로체스터의 아내 버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극단적으로 반항하는 여성의 전형이다. 이러한 여성은 로체스터로 대표되는 당대의 남성들에게는 狂女(광녀)나 괴물(monster)로 간주되어 감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버스의 狂氣(광기)는 억압받는 여성의 내면의식에 잠재해 있는 분노를 상징한다고 보겠다. 이 분노는 광기의 불길이 되어 로체스터의 방을 태운다.
狂女(광녀) 버서는 제인의 분신
버서는 제인의 分身(분신, double)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분노하는 고아 제인의 모습이고 게이츠헤드 이후로 계속해서 억압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제인의 내면에 잠복되어 있는 ‘사나운 自我(자아)’이다.
제인은 게이츠헤드에서 존 리드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사나운 자아의 분노를 폭발하여 붉은 방에 감금되었었다. 로우드에서는 헬런 번즈와 미스 템플의 敎化(교화)로 브로클허스터의 폭압에 대한 분노를 자제할 수 있었다.
쏜필드에서는 패어펙스 부인의 친절한 배려와 로체스터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제인의 잠재된 분노는 잠자고 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제인의 남녀평등주의라는 ‘미친 사상’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용인받지 못하고 좌절되는 사상은 분노의 불길을 지피게 된다. 반항의 放火(방화)를 하는 버서는 제인의 대리인이며 제인의 분신이다. 그러나 제인은 버서처럼 극단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녀가 잠자고 있는 로체스터를 급습하는 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理性(이성)이 사나운 자아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인은 분노의 통제 뿐 아니라 정열의 분출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녀는 로체스터를 화재로부터 구출하는 과정에서 그와 더욱더 가까워지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며 ‘환희의 파도’를 타지만 그녀는 ‘분별력이 사랑의 無我境(무아경)에 저항하고 판단력이 열정을 경계’하도록 한다. 그녀는 열정의 순간에도 이성의 분별력을 잃지는 않는다. 열정을 이성으로 통제하는 한 열정으로 인해 버서처럼 감금되거나 狂女(광녀)가 되지는 않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