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④

올리버는 인간성에 내재하는 善의 화신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2005)의 한 장면
# 7
올리버는 인간성에 내재하는 善의 화신


교구관리 빔벌은 구빈원의 세계를 化身(화신)하는 諷刺的(풍자적) 인물이다. 그의 주된 임무는 올리버를 초죽음이 되도록 구타하는 것이다. 빔블은 인종말살 정책의 실행도구인 구빈원과 전적으로 同一視(동일시)된다.

올리버는 현실 세계의 가공스런 악과 대비되는 善(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긍정적인 가치--인류애, 동정, 연민, 충성, 사랑, 상냥함--의 化身(화신)이다.

노아 클레이폴의 비아냥거림에 맞서서 죽은 어머니를 맹렬히 옹호한다는 것, ‘아기 농장’에서 같이 지낸 불쌍한 Little Dick(꼬마 딕)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것, 교수형을 받는 페이긴을 동정해서 우는 것- 올리버의 이런 선한 행동은 아무리 잔인한 환경도 인간의 본성에 內在(내재)하는 사랑과 상냥함의 샘물을 완전히 枯渴(고갈)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빔블로 대표되는 정부는 사실상 暴君(폭군)이다. 구빈원에서 죽은 수용자의 장례에서 ‘장례예배가 4분 안에 끝나도록 성경을 읽는’ 목사로 대표되는 교회도 빈민에게 무심하다. ‘반쯤 눈이 멀고 반쯤 유치한’ 치안판사로 대표되는 法(법)도 정의를 심판하는 데 무능하다.

이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들이 통치하는 인민들을 ‘보지’(see) 못한다. 그들은 ‘過剩人口(과잉인구)’나 생활보호자(paupers) 같은 추상적인 것들만 보기 때문이다. 흰 조끼를 입은 신사는 올리버가 언젠가는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예언을 끈질기게 반복해서 말한다. 디킨스는 사회는 예언을 스스로 만들고 그 예언을 그대로 실행하는 예언의 제조자라고 말하고 있다.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범죄로 몰아붙이거나 적어도 反사회적인 경향을 가지도록 조건을 창조하고 유지한다는 것이다.

올리버는 사회로 나올 때, 자신은 세상에서 孑孑單身(혈혈단신)이며 이렇게 외로운 그에게 세상은 견딜 수 없도록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세상은 버림받은 자들을 동정하기는커녕 그들이 광야에서 그대로 죽도록 놔두지도 않는다. 세상은 버림받고 무력한 사람들을 공격하고 파괴하려 든다.

이들이 필요 없는 존재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法(법)의 올가미가 이들의 목을 조른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버림받은 자들(the outcasts)은 순간순간 지극히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다. 이들의 주된 문제는 성공이나 출세가 아니고 적대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남느냐이다.

자연의 세계도 인간의 세계도 그들에게 생존의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다. 범법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굶어죽게 되어있다. 구빈원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굶어 죽는다. 올리버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사회가 제공하는 지위나 安樂(안락)이 아닌, 단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과 음식이다.

그러나 ‘존경받는 사회’는 무력한 고아 올리버를 파괴하려고만 한다. 올리버를 소매치기로 오인하고 그를 죽이려고 광분하는 군중들은 “존경받는 사회”의 잔혹성을 강렬하게 표출하는 이미지이다:

<“도둑놈 잡아라! 도둑놈 잡아라!”(Stop thief! Stop thief!)
무언가를 사냥하려는 열정은 인간의 가슴 속에 깊이 심어져 있다. 기진맥진하여 숨을 헐떡이는 그 비참한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과 고통스런 눈빛과 커다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얼굴의 그 불쌍한 아이는, 숨을 가파르게 헐떡이며 추적자들 보다 앞서 뛰어가려고 渾身(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군중들은 그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그가 힘이 빠지는 모습을 보자, 환호의 함성을 지른다… “도둑놈 잡아라!” 아이가 마침내 멈췄다. 一擊(일격)을 받는다. 아이가 鋪道(포도) 위에 쓰러진다. 군중들은 아이 주위에 둘러선다. 새로이 오는 사람마다 아이를 보려고 서로 밀치고 싸운다. 비켜서라. 아이에게 숨을 쉬도록 해라. 무슨 소리! 이놈은 숨 쉴 자격이 없어! …올리버는 진흙에 범벅이 되어 누워 있었다. 그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얼굴들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악마가 살고 있는 지옥의 미로를 상징하는 런던

올리버에게는 출구가 없다. 그는 출구를 알 수 없는 지옥의 迷路(미로)에서 헤매고 있다. 도시의 미로는 올리버를 구속하는 감옥이다. 올리버가 모험을 하는 런던은 1830년대의 런던의 실제 모습이지만, 올리버의 런던은 언제나 캄캄한 밤이고 사악한 迷路(미로)의 도시이다. 이런 분위기는 올리버가 닷져에 이끌려 처음으로 밤의 런던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거의 완벽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엔젤路(로)에서 세인트존 路로 건너가 세들러웰즈 씨어터 극장에서 끝나는 길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엑스머스가와 코피스로를 통해서 구빈원 옆에 있는 법원으로 갔다. 거기에서 한 때는 학키인더호울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古風(고풍)의 지역을 가로질러 리틀새프론-힐(Little Saffron-hill)로 갔다. 그리고는 그레이트 새프론-힐 안으로 들어갔다.

이 문장은 단지 지도상의 정확한 위치를 기술하는 것보다는 無力(무력)한 올리버가 위험한 迷路(미로)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끌려가는 인상을 준다. 런던은 더 이상 1830년대의 비위생적이고 실제의 도시가 아닌, 악마가 살고 있는 지옥의 미로를 상징하게 된다.

그 미로는 한 번 떨어지면 빛과 자유의 세계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바닥이 없는 암흑의 深淵(심연)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미로는 도덕적 심연이다. 그것은 도둑들이 올리버를 도둑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올리버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미로의 세계이다.


# 8
페이긴은 인간성에 내재하는 惡의 화신


이 미로의 중심에는 페이긴이 있고 그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런던이다. 범블이 구빈원과 빈민법의 화신이 듯이 페이긴은 런던으로 상징되는 악(惡)의 화신이다. 페이긴이 나타나는 장소는 언제나 춥고 습기가 차고 정처가 없는 한밤중의 런던이며 불결한 巢窟(소굴)이다.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이런 암흑과 악몽이 도사리고 있다. 그는 결코 밝은 대낮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가 감옥에서 교수형을 기다릴 때도 동트기 전의 어두운 시간대이다. 그는 마치 캄캄하고 습기찬 거리로부터 생성되어 나오는 존재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그 소름끼치도록 추악한 영감은 그가 항상 다니는 끈적끈적한 진흙과 암흑 속에서 태어난 징그러운 뱀처럼 보였다’.

페이긴은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인물이며 종종 악마로 불리워지거나 ‘쭈그린 자세로 부지깽이로 불을 지피고 있는… 숨겨 놓은 보물을 몰래 훔쳐보며 즐거워하는…’ 처럼 악마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빛과 선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암흑의 세계를 대표한다. 암흑은 악을 상징한다. 그는 설명이 不可解(불가해)한 惡漢(악한)이라는 점에서 다른 도둑들하고는 다르다. 사악한 成人(성인) 올리버를 생각할 수 없듯이 선한 페이긴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리버가 인간성의 선한 면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그는 인간에 내재하는 악의 화신이다. 페이긴은 사실상 악마(the Devil)이며 런던은 악마의 도시이다. 그는 올리버의 형상으로 나타난 善(선)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페이긴이 올리버를 사이크스에게 넘겨서 그의 범죄행위를 돕도록 함으로써 올리버를 영원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거나(“일단 이놈을 우리와 같은 패라고 느끼게 만들어라. 이놈의 마음을 도둑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라. 그러면 이놈은 우리의 것이야! 일생동안 우리의 것이야!”), 올리버의 출생비밀을 숨겨서 그의 미로탈출을 불가능하게 하려고 劃策(획책)하는 것은 선한 올리버를 유혹하고 부패시키는 것이 악마 같은 페이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런던이라는 악의 지옥을 상징하는 인물인 페이긴의 魔手(마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리버가 악의 심연에 떨어져서 악의 포로가 되면 명예와 재산을 되찾아서 명예로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구원과 재생의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


버림받은 자들이 처한 극한 상황의 이미지들

미로와 함께 密閉(밀폐)와 絞首臺(교수대)도 올리버를 위시한 버림받은 자들이 처한 ‘출구 없는’ 극한 상황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된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는 출구가 없는 어둡고 불결한 감옥이나 토굴 같은 방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올리버는 여러 경우에 ‘석탄 저장 지하실’, ‘어둡고 외진 독방’, ‘컴컴한 지하실 같은 감방’에 갇힌다. 그는 심지어 브라운로우 씨와 매이라이 부인의 저택에 있을 때도 ‘혼자만 있는 조그마한 방’에 있게 된다. 그는 굴뚝소제부의 도제가 될 뻔하고 장의사에 있을 때는 棺(관)들 사이에 잔다:

<그 가게(장의사)는 밀폐되어 무더웠다. 공기는 관에서 나오는 냄새로 오염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매트리스가 있는 카운터 밑의 구석진 곳은 무덤 같았다.>

페이긴 일당의 소굴도 밀폐된 공간이다. 사회는 버림받은 자들을 끊임없이 몰아붙이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만이 이들의 居處(거처)가 되는 것이다. 페이긴은 밖으로 나올 때에 ‘먹이를 찾는’ 뱀처럼 어둡고 밀폐된 소굴(den)에서 나온다.

올리버가 페이긴의 소굴이 있는 지역으로 처음 들어갈 때에 ‘덩치가 크고 악하게 생긴 사람들’이 구멍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 이 들은 주로 밤에만 움직이며 런던의 어둡고 습기 찬 미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낸시를 살해하고 시골로 피신했던 사이크스도 런던의 어둡고 밀폐된 소굴로 돌아온다. 사회에서 추방된 자들에게는 밀폐된 공간 외에는 갈 곳이 없다. 그들에게는 삶의 의지를 마음껏 전개할 수 있는 광활한 대지는 없다.

밀폐된 공간은 죽음을 의미하는 질식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버림받은 자들은 사회와의 연결이 차단되어 밀폐된 공간에서 窒息(질식)으로 인해 죽어간다. 교수대는 질식사에 대한 최고의 이미지가 된다. 교수대의 밧줄보다 더 선명한 질식의 이미지는 없을 것이다.

교수대는 빈민들에게 적대적인 사회의 폭력성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존경받는 사회’로부터 추방된 인물들은 어린 올리버든 교활한 페이긴이든 포악한 사이크스든 모두 교수대의 공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가 이들 잉여인간들에게 끊임없이 교수형에 대한 공포를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흰 조끼를 입은 신사로부터 교수형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두 번이나 들을 뿐 아니라 페이긴으로부터도 배신자는 교수형으로 죽게 된다는 협박을 당한다. 페이긴 자신도 교수형으로 죽게 되고 사이크스는 군중으로부터 쫓기다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신이 던진 구명밧줄에 목이 걸려 죽는다.

컴컴하고 습기 찬 방, 감옥, 지하실, 교수대. 이것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출구가 없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있는 버림받은 자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미지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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