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악행(惡行)을 저지르는 자들의 사랑에는 구원이 없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빈민들이 악의 세계로 전락하면 그들 자신만의 독립적인 사회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둑들의 사회는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 사회는 상호배반의 원칙에 입각해서 세워진 사회이고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당하고 있는 곳이다.
그들의 소굴에서 조그마한 불빛이라도 새어 나가면 ‘上部(상부)에 있는 사회’가 突入(돌입)하여 그들의 사회를 파괴해 버린다. 도둑들은 생존을 위해서 공동의 안전보다는 개인의 안전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둑사회에서는 영원한 충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페이긴은 ‘모든 사람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의 철학을 堅持(견지)함으로써 도둑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산다.
도둑들의 불안정한 상호관계를 잘 나타내는 이미지 중의 하나는 스파이 행동이다. 페이긴은 올리버 뿐 아니라 다른 조직원들도 감시한다. 낸시는 페이긴과 만크스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다. 클레이폴은 페이긴의 지시에 따라 낸시를 미행한다. 페이긴은 사이크스를 신뢰하지 못하고 사이크스는 페이긴을 의심한다.
그래서 도둑들은 끊임없는 공포 속에 있다. 그들은 외부 사람들이 그들을 주시하거나 그들의 정체를 알아볼 것이라는 두려움 뿐 아니라 그들 상호간에도 비밀 스파이가 있고 배신자가 있을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아 가야한다.
도둑들이 선한 세계와 연결하여 사회적 고립에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자신들의 지하세계에서도 상호간에 진실된 인간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사이크스와 낸시의 사랑의 결과가 이를 입증해 준다. 그들의 관계가 파멸적 종말로 끝난다는 것은 법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두움의 사회에서 사랑을 지속시키려는 노력은 허망한 몸짓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도둑의 사회에서는 모든 자발적인 관계와 참여는 악을 동반하게 된다. 도둑들의 관계는 그들 자신 외에는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악할 수밖에 없다. 낸시와 사이크스의 사랑은 사회로부터 용인된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죄가 되며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의 사랑에는 구원이 없다. 구원이나 탈출은 선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낸시와 사이크스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죽음이거나, 아니면 이별하여 정직한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낸시는 사이크스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에 그에게 호소한다:
<…그 신사분들과 아가씨(브라운로우 씨와 로즈 일행)는 오늘 밤 내가 혼자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외국의 어떤 나라에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어요. 내가 다시 그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당신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게 해 주세요.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 외에 우리가 함께 살아온 것을 잊고 다시는 서로 보지 않게 해주세요.>
낸시의 죽음은 善의 의지(good will)는 악에서 나온다는 神의 진리를 계시해 준다. 악은 선에 대한 각성제 역할을 한다. 살인은 선의 의지를 일깨워서 정의의 심판으로 악을 제거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낸시의 죽음은 사이크스와 파긴의 죽음을 가져온다.
낸시의 희생으로 어두움의 세계는 淨化(정화)되고 질서가 회복된다. 腫氣(종기)를 도려낼 때에 깨끗한 생살도 떨어져 나오듯이 악으로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죄가 없는 선한 사람이 희생을 당한다. 그래서 선을 지향하는 낸시도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이다. 낸시는 肉身(육신)은 죽지만 그녀의 영혼은 악마의 지옥에서 탈출하여 하늘로 향하게 된다.
# 10
善이 악의 세력을 潰滅(궤멸)시킨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神(God)은 처음에는 악이 繁昌(번창)하도록 허용하지만 끝에 가서는 악이 패배하고 파멸에 이르도록 한다. 위세가 당당하던 교구관리 빔블은 굴욕적인 공처가가 되고 위신이 형편없이 추락되었다가 종국에는 구빈원에 수용된다. 페이긴은 교수형을 선고받고, 사이크스는 자신이 던진 줄에 목이 걸려 질식사하고, 낸시는 병이 들어 쇠약한 상태에서 살해당한다. 神은 악을 외면하지 않으며 선과 악의 쟁투에서 선의 편에 속하는 것이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善(선)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생존한다는 원칙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는 선한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악이 결코 압도할 수 없는 초월적 가치로서 선의 존재를 믿는다.
그는 선은 인간성의 자연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선한 神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미천한 사람에게도 神性(신성)이 존재한다. 어떠한 것도 인간의 선한 심성을 파괴할 수는 없다. ‘아무리 타락한 인간도 언젠가는 악을 정복할 수 있는 神聖(신성, the Holiness)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디킨스의 생각이다.
낸시는 디킨스의 이러한 믿음을 반영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올리버 만큼 중요하다. 낸시는 오래 전 올리버보다 훨씬 더 어린 아이였을 때 페이긴에 의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악의 심연으로’ 떨어졌었다.
낸시는 올리버에게서 악으로 오염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를 동정하게 된다. 올리버와 만남으로써 그녀는 과거를 참회하고 타락한 自我(자아)를 정화시키며 선을 위해서 殉敎(순교)하게 된다.
그녀가 죽어가면서 하늘을 향해 높이 든 하얀 손수건은 汚點(오점)하나 없는 선의 상징이다. 죄악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온 낸시가 새롭고 깨끗한 인간으로 재생한다는 것은 인간은 아무리 타락하여도 참회와 구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善의 화신 올리버의 신비한 마력
낸시와 달리 올리버는 악에 물들지 않는다. 그가 도둑의 소굴에 떨어져도 악은 그를 정복하지 못한다. 사이크스가 메이라이 부인의 저택을 침입할 때 올리버를 이용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진흙 속에 묻혀있는 진주 같은 존재이다.
악의 진흙이 그를 더럽힐 수 없다. 그는 악으로 망가질 수 없는 선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의 生父(생부)인 에드워드는 유언에서 올리버가 떳떳하지 못한 사생아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선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만약 태어나는 애가 딸아이라면 무조건 그 돈을 아무 조건 없이 상속받게 하고, 남자아이라면 그가 미성년 기간에 不正直(부정직)하고 비열하고 비겁하고 혹은 나쁜 행동으로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조건으로 재산을 상속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러한 조건을 달게 된 것은 올리버의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신뢰와 그 아이는 그의 어머니의 온화한 마음과 고귀한 인격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표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확신은 그의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더 강화되었습니다.>
올리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生得的(생득적)인 善良(선량)함’(natural goodness)과 그가 가진 ‘선하고 강인한 정신’으로 인해 인간성에 내재하는 선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올리버가 구빈원에서 고아로 태어나서 ‘아기농장’에서 비참하게 자라고 장의사에 팔려간 후 도둑의 무리에 들어가도 진흙 속의 진주처럼 그의 도덕성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는 것은 그가 선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올리버는 선을 宣揚(선양)하고 악을 퇴치하는 神(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올리버와 접촉하게 되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하게 되고 악인은 선한 사람으로 재생하거나 파멸한다.
브라운로우 씨는 소매치기로 오인되어 군중에게 쫓기다가 쓰러진 올리버를 보는 순간 그에게 분노하는 대신 그를 동정하고 그의 친절한 보호자가 된다. 메이라이 부인과 로즈 아가씨는 자신들의 집을 침입한 올리버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낸시는 올리버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선한 사람으로 재생하게 된다.
또한 선한 사람들은 올리버를 만남으로써 그들의 마음 한 구석을 어둡게 하던 개인의 문제도 풀리게 되어 행복을 찾게 된다. 브라운로우 씨는 백방으로 찾고 있던 죽은 친구의 아들 올리버를 찾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고 가정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로즈는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를 풀고 해리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페이긴은 올리버로 인해 파멸한다. 페이긴과 사이크스 일당은 그들을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고 경멸하는 사회에 대항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지하세계를 건설하였지만 선의 화신 올리버를 만나는 순간부터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교수형을 선고받은 페이긴은 ‘살아 있는 마지막 밤’에 교도소에서 ‘그 애(올리버)가 이 모든 일의 원인이었어’라고 한탄한다.
교구관리로서 올리버를 무자비하게 학대하던 빔블도 패망하여 구빈원의 수용자가 된다. 파긴과 빔블의 패망은 올리버의 승리를 의미하며 올리버의 승리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의 승리를 의미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어린 고아 올리버가 국가기관의 薄待(박대)와 교회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는 다는 것, 악의 소굴에 떨어졌지만 도덕적 純粹(순수)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 브라운로우 씨나 메이라이 부인 같은 선한 사람들이 올리버를 구출한다는 것, 선의 원칙이 악의 세력을 潰滅(궤멸)시킨다는 것, 이런 사실들은 디킨스의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다.
그는 빈민들의 고통과 참상을 외면하고 빈민들을 냉대하는 당대의 사회지도층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지만 인간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졌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악의 深淵(심연)에서도 선을 지향하는 神性(신성)이 있어서 결코 악에 압도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디킨스가 인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근거이다.
지상세계에서는 구빈원 같은 국가기관에 학대를 당하고 지하세계에서는 페이긴과 같은 악마의 마수에 걸리지만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행복을 성취하는 올리버는 디킨스의 낙관적 인간관에 대한 상징이 되는 인물이다.
불행한 고아 올리버를 무한히 동정하고 자선을 아낌없이 베푸는 브라운로우 씨나 메이라이 부인, 로즈 아가씨처럼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간사회를 밝게 보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병들고 다친 자들을 치유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실행하는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디킨스의 생각이다.
그래서 디킨스의 소설에는 삶에서 지치고 다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재생시키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그리고 많은 정신과의사들이 환자치료를 위해 디킨스의 소설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디킨스 소설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끝)
(다음 편부터는 골딩의 '파리大王'(Lord of the Flies) 해설편이 연재됩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⑤
- 朴承用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8-09-16, 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