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현대의 기계적 시스템과 제랄드의 顚落(전락)
북극의 눈 외에도 물도 해체와 죽음의 이미지로서 제랄드와 관련된다. 4章(장)의 ‘다이버’는 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제랄드를 보여줌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제랄드는 ‘브레들비’와 ‘워터파티’에서도 다이버로서 다시 나타난다.
제랄드가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것은 자신의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호수에 잠긴다는 것을 상징한다. 호수의 물은 ‘다스릴 수 없는’ 감정을 나타낸다. ‘다이버’, ‘스케치북’, ‘워터파티’에서 제랄드는 계속 물과 연관되는 데, 이는 제랄드가 물과 동일시되는 혼돈과 파멸의 요소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터파티’에서 익사한 여동생을 찾기 위해 다이빙한 후에 그는 자신뿐 아니라 전체 문명의 운명을 암시하는 말을 한다: “저 물 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全 우주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은 지옥같이 차가워서 머리가 잘려 나간 것처럼 꼼짝 할 수 없습니다.”
30章 ‘눈 속에서 죽다’에서 내면의 혼돈을 상징하는 물과 제랄드의 관계는 결말이 난다. 그는 눈 덮인 알프스의 얼어붙은 물(눈) 속에서 해체된다. 자신의 정신과 의지를 지배하는 기본 원칙의 패배로 인하여 머리가 잘린 것처럼 무력하게 된 제랄드는 결국 雪氷(설빙)의 공허한 盆地(분지)안으로 다이빙하여 해체되는 것이다. 그는 북방적 氷雪(빙설)에서 파멸의 儀式(의식)을 수행하며 죽어 가는 현대의 神이다.
제랄드의 의지는 지배하려는 의지이다. 물질적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려는 제랄드의 행동은 일종의 부패한 형태의 이상주의로 분석된다. 북방의 백인종 문명은 자연에다 인간의 의지를 강요한 결과이다.
로렌스는 제랄드를 통해 산업주의를 錯亂(착란) 상태에 있는 인간의 공격적 정신의 산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폭력은 제랄드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제랄드의 손에서 기술은 자연을 징벌하는 거대한 도구가 된다.
제랄드의 징벌 도구는 기계이다. 기계는 그가 영원한 적대자로 간주하는 우주에 자신의 의지를 심는 데에 이용된다. 그의 투쟁목표는 환경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그는 의지의 화신이고 그 의지는 스스로의 에너지를 가지고 제랄드를 몰아붙인다.
그는 자연을 압도하기 위하여 최신의 기구를 이용한다: ‘자연의 물질과 제랄드의 의지’라는 두 적수가 있었다. 이 둘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의지의 發現(발현)이며 힘의 화신인 위대하고 완벽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든다. 그 것은 순수하게 반복적인 활동이며 영원히 그리고 무한히 반복하는 기계와 같은 시스템이다.
제랄드 회사의 광부들은 이러한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계의 信徒(신도)들이며 제랄드는 그들이 충심으로 떠받드는 고위 성직자이다. 광부들은 인간의 감정과 이성을 초월하여 神처럼 초인간적인 시스템에 소속됨으로써 그들의 의식이 高揚(고양)됨을 느낀다.
제랄드와 광부들은 ‘위대한 사회적 생산기계’에 헌신하게 되고 그들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자유였다. 이것이 해체와 혼돈의 첫 단계이다. 생명이 있는 有機的(유기적) 원칙을 생명이 없는 기계적 원칙으로 대체하여 인간은 해체와 혼란의 奈落(나락)으로 전락한다.
제랄드와 광부의 자유는 런던 카페의 퇴폐적인 인물들의 자유처럼 ‘인간과 인간사이의 궁극적인 연대(bond)’가 없는 그런 자유이다.
철도 건널목에서 제랄드가 공포에 질린 아라비아 말을 기계적인 석탄열차에 굴종시키는 장면도 제랄드의 공격적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여기에 제랄드의 의지가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산물이 있다.
말의 유기적인 생명체는 찬탈(簒奪)당하고 있다. 제랄드는 말이 스스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말을 폭력적으로 위협한다. 그는 말을 기차에 복종시켜서 유기적인 생명체를 기계와 닮게 만든다.
동시에 말은 제랄드 자신의 자동성(automatism)의 延長(연장)이 된다. 자신의 의지를 통제하기보다는 의지의 통제를 받는 사람인 제랄드는 이런 의미에서 그가 굴종시키는 그 동물 못지않게 기계적이다. 기계는 산업계의 거물인 제랄드와 等價物(등가물)이다.
말을 압도하는 제랄드는 性的(성적)인 암시로 충만하다: ‘번쩍이는 박차는… 사정없이 내리누르고’는 汽車(기차) 자체의 성적인 이미지와 합쳐서 加虐的(가학적) 폭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적인 성적 폭력은 이를 지켜보는 거드런으로 하여금 거의 의식을 잃게 만든다:
〈“거드런은 세상이 빙빙 돌고 無(무)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 것도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린다: “그녀가 의식이 돌아 왔을 때는 그녀의 영혼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평온하고 냉정한 상태에 있었다.”
# 14
加虐被虐性的(가학피학성적)인 거드런의 잔인한 정열
제랄드의 무도한 행위(brutality)는 加虐被虐性的(가학피학성적, sadomasochistic)인 거드런에게 강력한 반응을 일으키고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잠복해 있는 파괴적 욕망을 자극시키며 그녀의 마음을 압도적인 관능으로 채우지만 그녀의 냉정한 자제력 때문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계의 화신인 제랄드나 예술가인 거드런은 유기적 생명을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파괴와 해체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는 서로가 닮았다.
‘토끼’는 해체와 파괴라는 소설의 주제와 함께 제랄드와 거드런의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다. 크라이치家의 거대한 백색의 토끼 비스마르크가 등장하는 이 장면은 제랄드와 거드런이 피의 儀式(의식)을 통해 서약하는 파괴의 條約(조약)이다.
맹목적이고 생각이 없으며 야만적인 토끼는 제랄드와 거드런의 영혼을 상징한다. 여기에서는 토끼와 제랄드와 거드런은 모두 하나이다. 제랄드가 토끼를 加擊(가격)하고 제랄드와 거드런의 팔에 토끼가 할퀴어서 내는 상처는 버킨의 피의 형제서약을 상기시킨다.
남자와 남자 사이의 영원한 충성의 서약이 여기에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악한 폭력의 서약으로 타락한다. 제랄드와 거드런 사이에 형성되는 상호이해는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 양상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상대의 깊은 내면이 자신에게 啓示(계시)되어 오는 것을 의식하게 하게 된다.
토끼와 씨름하고 있는 거드런을 보면서 제랄드는 ‘거드런의 잔인하고 음울한 정열’을 인식하게 된다. 제랄드가 토끼를 구타할 때 토끼가 지르는 ‘섬뜩하도록 무서운 비명소리’는 ‘거드런의 의식의 장막을 찢어버리고’ 그녀로 하여금 ‘계시를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제랄드도 계시를 받는다. 그는 ‘그의 머리에서 길고도 얇은 붉은 상처가 나면서 의식의 표면을 찢어버리고 영원한 무의식의 세계가 열리고, 생각할 수도 없고 不敬(불경)스러우며 초월적인 존재인 붉은 精氣(정기)가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제랄드와 거드런은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하였던 내면의 세계로 ‘입문’(initiate)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거드런의 이미지는 제랄드와 함께 북극적인 속성과 연결된다. 그들의 삶은 해체의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제랄드와 거드런의 삶의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거드런은 북극의 얼음처럼 차갑고 무심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과 떨어져 자신의 마음을 조정하면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산다.
반면 제랄드는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관철시키려고 한다. 이런 사람의 정신은 항상 지배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거드런의 정신은 자신의 생각과 창조물로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제랄드는 자신의 의지를 投射(투사)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제랄드가 타인과의 관계에 거드런보다 더 크게 의존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그는 거드런과의 투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의존적인 제랄드는 자존적인 거드런에게 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드런은 유기적 생명력을 부정하려 한다. 화가인 그녀는 그녀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변형시키고 세상을 그녀의 뜻에 맞도록 재구성하려고 한다. 그녀는 환상 속에서 사람들을 ‘책 속의 인물이나 그림 속의 주인공처럼 또는 무대 위의 꼭두각시처럼’ 재창조하여 ‘봉인해서 날인해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녀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거드런은 작은 것들을 좋아한다: “그녀는 새나 작은 동무들처럼 손안에 잡을 수 있는 작은 사물들을 항상 만든다. 그녀는 오페라 안경의 반대쪽을 통해서 보기를 좋아하고 세상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
현실이 개입하여 그녀의 굴절된 시각을 방해하면 그녀의 상상력은 殺意(살의)를 느낀다. 탄광촌 여인들이 화사한 차림의 그녀와 어슈라를 조롱할 때에 “그녀는 그 여인들을 모두 다 죽여서 눈앞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거드런은 탄광도시에 대해서 거부와 매력이라는 상반적인 감정을 가진다:
〈“그녀는 왜 탄광도시에 복종하기를 원했던가? 그녀는 아직도 굴종하기를 원하는가? 이 추악하고 무의미한 사람들의 지긋지긋한 고문에 굴종해야 하는가? 이 더러운 시골에? 그녀는 흙먼지 쓰레기 속에서 애를 쓰고 있는 쇠똥구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쇠똥구리는 썩은 물질과 관련이 있으며 그래서 유기체를 죽음으로 서서히 축소시키는 ‘부패와 냉혹한 해체’와 연관되는 동물이다. 쇠똥구리는 물질적 생명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低落(저락)의 징표이다.
여러 형태로 변화하는 탄소처럼 거드런은 일시적으로 쇠똥구리가 된다. 산업적 부패의 磨耗(마모) 작업에 들어감으로써 그녀는 기술적 쓰레기를 파먹고 있는 쇠똥구리가 되는 것이다.
악마적인 증오가 지배하는 지옥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승리한다
거드런이 한 무리의 황소들을 놀리는 장면도 그녀의 방어적이고 자존적인 면을 보여준다. 어슈라는 황소들에게 겁을 내지만 거드런은 그들 앞에서 춤을 추며 자신의 대담한 독립성을 과시한다.
그녀는 황소들의 힘에 흥분되지만 그들을 교란시키며 자신이 추는 댄스환타지의 관객으로 만든다. 거드런은 그녀가 위험에 처한 줄로 생각하고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제랄드가 나타나자 황소들을 멀리 쫓아버린다.
황소들은 제랄드의 男性(남성)에 대한 換喩(환유)이다. 산업의 왕 제랄드가 황소로부터 여자를 보호하려는 와중에 남성적인 힘을 과시하자 거드런은 폭력을 행사한다:
〈“당신은 제가 당신과 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요?”
그 여자가 물었다. 그의 눈이 위험하리만큼 좁혀졌다. 거만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그녀는 검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서는 팔을 돌려 손등으로 그의 얼굴을 가볍게 때렸다…
그리고 그녀는 제랄드에게 강한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망을 마음속으로 느꼈다. 그것은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녀는 폭력을 휘두르고 싶었다.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그는 얼굴을 맞고 주춤하였다… 잠시동안 그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허파가 피로 가득 찬 것 같았고 그의 심장은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솟구침으로 거의 터질 것처럼 부풀러 올랐다.
그것은 마치 어떤 어두운 감정의 저수지가 터져서 그를 삼키는 것 같았다.
“당신이 먼저 일격을 가했어요.”
그는 마침내 말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도 제가 가할 거예요.”
그녀는 무심결에 말했다.〉
제랄드와 거드런은 모두 암흑의 악마적인 감정에 압도당한다. 그 감정은 그들이 서로에게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처리에는 차이가 난다. 거드런은 비록 폭력에 도취되어 있지만 행동은 효과적으로 한다.
그녀는 제랄드에게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가 될 정도의 폭력만을 행사한다. 그녀는 그들을 압도하는 증오 속에서도 계산을 할 만큼 냉정하다. 반면에 제랄드는 증오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대결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감정의 홍수에 빠져서 자제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거드런은 의식적으로 악마적이 된다. 이것은 악마적인 증오가 지배하는 지옥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승리하며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은 거드런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계속)
로렌스의 ‘연애하는 여인들’(Women in Love) ⑦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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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08, 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