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⑥

개인의 도덕적 의무는 사회적인 것이어야 한다
영화 '오만과 편견'(Pride&Prejudice, 2005) 속의 베네트家 사람들
# 11
여자가 남자사냥에 성공해야 되는 이유


“많은 재산을 가진 독신 남자는 아내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것은 널리 공인된 진리이다”라는 것은 말을 바꾸면 독신 여성은 재산이 있는 남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傲慢과 偏見’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通過儀禮(통과의례) 중의 하나인 결혼의 이야기이자, 여자가 수줍고 붙잡기 어려운 먹이인 남자를 추격하고 사냥을 하는 남자사냥(man hunt)이야기이다. 사냥의 절박함은 경제적 생존의 절박함과 같은 말이다.

베네트家의 딸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자 사냥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결혼의 동기는 문명사회의 여러 조건에 의해 복잡한 樣相(양상)으로 전개된다.

남자 사냥꾼들은 훌륭한 교양과 세련된 정서를 갖추어야 한다. 여성은 ‘숙녀’(lady), 남성은 ‘신사’(gentleman)가 되어야 하고 그들은 반드시 사랑에 빠져야 한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볼 때 문명인의 外見(외견)을 갖추고 있어야 될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생각에도 自尊(자존)적 권위와 품위를 갖춘 남자이고 여자가 되어야 한다.

훌륭한 신랑감이 사회적 및 경제적 경쟁이 혹심한 특정지역에 나타나면 ‘널리 공인된 진리’에 대한 즉각적인 檢證(검증) 작업이 시작된다:

〈한 남자가 이웃에 나타나면 그의 감정이나 관점이 아무리 적게 알려져도 이 사실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확고부동한 것이 되어서 사람들은 그를 딸들의 정당한 재산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래서 재산은 젊은 남자 자신에 대한 隱喩(은유)가 된다. 네더필드에 새로이 입주하는 ‘빙글리’라는 재산을 두고 롱번의 처녀들은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결혼은 통제되지 않는 정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리디아와 위컴의 경망스러운 도피행각도 무분별한 정열의 奔出(분출) 때문만은 아니다. 위컴은 리디아를 미끼로 부채를 갚고 정착금까지 뜯어내고, 리디아도 위컴이라는 남자 자체보다는 위컴의 군복에 더 매료된다.


결혼은 ‘감정’ 뿐 아니라 또한 ‘재산’도 의미한다

군복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암시한다. 결혼은 사회와의 복합적인 계약(engagement)을 의미한다. 즉 결혼은 ‘감정’ 뿐 아니라 또한 ‘재산’도 의미한다. 결혼을 함으로써 개인은 자신의 배우자 뿐 아니라 사회와 결혼하는 것이며 재산은 결혼에 필요한 품목을 제공한다.

엘리자베스와 달시의 약혼을 두고 베네트 부인은 “연 수입이 1만 파운드이고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임금님 같다”라며 환희의 탄성을 지른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모든 소설처럼 ‘傲慢과 偏見’은 돈과 결혼에 관한 것이다.

오스틴의 인물들은 키스는 말할 것도 없고 신체적 접촉 자체가 없다. 결혼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 인물들의 재산과 수입은 교양이나 肉體的(육체적)매력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스틴은 생의 말년에 가서 친척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재산이 생존의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은 통합의 기능도 가진다

결혼은 분열을 통합으로 이끄는 기능도 가진다. '傲慢과 偏見'의 진행은 潛在的(잠재적) 사회분열 상태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결혼과 함께 사회적 기반이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전통적 사회의 통합적 연속성에 장애가 되는 것은 경제적 동기 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의 계급적 분리와 가정에서의 가족 구성원 사이의 정신적 離反(이반) 현상이다. 이러한 분열 현상은 소설 初盤(초반)부터 베네트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유머러스하게(humorous)하게 나타난다.

콜린즈가 롱번 방문을 알리는 편지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베네트 부인은 “그가 우리 애들에 대해서 하는 말에는 일리가 있어요. 만약 그가 우리 애들에게 보상할 뜻이 있다면 나는 전혀 반대하지 않겠어요… 그의 편지에는 근엄함과 自重(자중)이 있으며 이것은 좋은 징조에요. 나는 그를 어서 만나고 싶어요”라며 콜린즈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녀는 콜린즈를 만나보기도 전에 그를 엘리자베스의 신랑감으로 생각한다. 엘리자베스는 캐서린 부인에게 비굴할 정도로 충성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콜린즈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는 奇人(기인)임에 틀림없어요. 그의 문체는 과장이 너무 심해요. 그가 한정상속인이 되어서 사과한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그가 한정상속을 포기할 리는 없잖아요. 그가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讀書狂(독서광)인 메어리는 “구성면에서 볼 때 그의 편지는 흠이 없는 것 같아요… 올리브 가지(olive branch: 화해를 의미함)라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잘 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라며 편지의 문체에만 관심을 가진다.

캐서린과 리디아는 콜린즈가 군복 입은 장교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베네트 씨는 콜린즈에 대해 냉소적이다. 모든 사람을 善意(선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제인은 콜린즈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다소 냉소적인 아이러니로 세상을 보는 베네트 씨, 딸들을 시집보내는 것이 至上(지상)의 과제인 베네트 부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좋게 보는 제인, 衒學的(현학적)인 메어리, 군인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캐서린과 리디아, 가족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관찰하는 엘리자베스 등 베네트家의 생각은 사람 수만큼이나 개인차를 보여준다.


# 12
개인의 도덕적 의무는 사회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세계에서 의미는 개인적 욕망의 표현이 될 위험에 빠지고 개인적 시각과 일치되지 않는 모든 것은 불신을 받게 된다.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만 대화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베네트 부인과 콜린즈는 신부감으로서의 엘리자베스를 두고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 그러나 한정상속처럼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마음은 닫히고 대화는 헛돌게 된다.

응접실이나 무도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心的(심적)인 거리는 사회적 거리의 거울이다. 달시와 엘리자베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深淵(심연)’(gulf impassable)이 있는 것처럼 귀족계급(달시와 캐서린 부인)과 신사계급(베네트家 사람들), 그리고 生業(생업: trade)에 종사하는 일반 사람들(가디너와 필립스家 사람들)간에는 交叉(교차)할 수 없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열된 세계에서 사람과 계층을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가? ‘傲慢과 偏見‘의 基底(기저)에 있는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주로 남녀 주인공의 교육에 있다. 남녀 두 주인공의 결합은 상호간에 이익이 될 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분리된 사회적 지위와 인생관을 결합시키는 일을 한다.

엘리자베스와 달시가 서로 양보하면서 결합으로 가는 과정에 소설의 매력이 있다. 엘리자베스의 개인적인 관점이 未洽(미흡)한 것으로 간주된다면 ‘사회적 지위는 당연한 것’이라는 달시의 오만한 생각도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개인주의는 사회적 제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달시가 ‘개인주의적 활력이 없는 전통은 공허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긍할 때 소설은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계속적인 접속이 허용되는 場(장)은 엘리자베스의 마음 속(mind)에 흐르는 생각이기 때문에 달시보다는 엘리자베스의 교육과 변화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관점(outlook)에서 脫皮(탈피)하여 사회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觀照(관조)하게 되는 엘리자베스의 정신적 발달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제인 오스틴에게는 개인의 도덕적 의무는 사회적인 것이어야 하며 개인이 가지는 주관적인 도덕성은 誤導(오도)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傲慢과 偏見’은 사회적 규범에 자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에는 비판적인 눈길을 던지지만 삶의 조건에 적합하다면 傳承(전승)된 사회적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 엘리자베스의 미덕이 특별히 강조되는 동안 그녀의 관점의 불완전성은 노출되지 않고 감추어진다. 그녀의 도덕성은 칭찬할 만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우정이며 친구와 자매와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서로에 대한 친절과 배려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미덕은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 친절과 배려의 상호작용이 있으면 모든 것을 容忍(용인)하지만 상대가 애정과 신뢰로서 相應(상응)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실망하게 되는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는 미덕이다.

엘리자베스는 위컴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불완전성을 들어낸다. 그녀는 첫눈에 위컴을 ‘가장 신사다운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최고의 美(미)와 멋진 용모와 훌륭한 풍채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말은 사람을 매우 기쁘게 해 준다.”

그러나 이것들은 외적인 資質(자질)에 불과하며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인격이나 이해심과 정신 같은 내적인 자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위컴의 야비함이 명백히 드러나는 데도 달시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는 달시에 대한 위컴의 謀陷(모함)을 그대로 수용한다.

달시에게 배신당하고 박대를 당했다는 위컴의 거짓말을 엘리자베스는 달시의 청혼을 거절하는 주된 이유로 삼는다. 엘리자베스에게 위컴은 가슴으로 느끼는 愛情(애정)의 보호자이고 생명력을 상실한 사회적 규범보다는 우정이나 감정의 자연스러운 發露(발로)에 가치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면에서 위컴은 엘리자베스에게 ‘우정과 애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달시와는 정반대가 되는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달시에 대한 위컴의 부정적인 견해는 위컴 개인의 견해에 불과하니까 위컴과 달시를 공평하게 간주하라는 제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그의 표정에는 진실이 들어 있었어”라며 위컴을 더욱 더 옹호한다. 위컴이 네더필드 무도회에 “달시를 피할 이유는 없습니다”라며 참석을 약속해 놓고 이유도 없이 불참했을 때 엘리자베스의 ‘불쾌감’은 달시에게로 향한다:

〈“…저는 당신에 대해 너무나 다른 말을 들어서 마음이 지극히 혼란스럽습니다.”
“저에 관한 그런 評判(평판: report)은 변할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베네트 양, 현 시점에서 저의 인격에 관한 스케치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한 그림은 사실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달시는 불쾌한 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지금 제가 당신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달시는 메리턴 사람들이나 위컴의 평판에 근거를 두고 자신을 판단하지 말 것을 엘리자베스에게 제의하고 있다. 메리튼 사람이든 위컴이든 어느 쪽의 말을 듣고 그림을 그리더라도 엘리자베스의 시각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인격을 판단할 때처럼 달시의 인격을 그의 外見(외견)에만 바탕을 두고 즉각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판단을 留保(유보)해 달라는 달시의 暗示的(암시적)인 요청을 받아드릴 뜻이 없는 엘리자베스는 지금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다. 엘리자베스의 결정은 달시를 화나게 하고 그들은 헌스포드에서 모일 때까지 만나지 않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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