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만과 편견'(Pride&Prejudice, 2005)의 달시와 엘리자베스
진리는 불변이지만, 진리에 대한 知覺(지각)은 可變的(가변적)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으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한 달시가 보낸 편지를 보면서 그의 인격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그녀는 달시에 대한 위컴의 偏頗的(편파적)인 시각을 너무 쉽게 받아 들여 달시의 인격에 대해 크게 오판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펌벌리 莊園(장원)에서 엘리자베스의 변화는 더 크게 진전된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훌륭한 달시의 인격에 주목하게 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시각의 결함을 自覺(자각)하게 된다. 그녀의 더비셔의 펌벌리 방문은 그녀의 시각의 방향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이제 그녀는 보다 넓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내면과 가족을 바라보게 된다.
펌벌리에서 달시는 “거만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만약 엘리자베스와 가디너 부부가 허트포드셔 사람들에게 달시의 이야기를 한다면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달시는 이제 종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펌벌리 장원은 달시의 사회적, 도덕적 인격에 대한 자연스런 이미지가 된다. 아름다운 나무들, 잘 배치된 풍경, 핸섬한 건물, 그리고 잘 배열된 방 등 펌벌리는 적절하게 관리되는 모범적인 장원이다. 장원의 外境(외경)은 美的(미적)인 쾌감을 주면서도 假飾(가식)이나 사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펌벌리는 뒤쪽으로는 숲이 우거진 동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인공적인 모습이 전혀 없는 자연으로 만들어진 수량이 풍부한 시내가 흐르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석조건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기뻤다.
그녀는 자연이 이보다 더 뛰어나게 미를 창조한 곳도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서투른 趣向(취향)에 의해 損傷(손상)되지 않고 이보다 더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도 본 적이 없었다〉
달시의 뛰어난 美的(미적) 취향은 도덕적 인격의 뛰어남을 나타낸다. 그래서 엘리자베스가 “펌벌리의 마님이 되는 것은 대단한 것일 거야”라고 스스로 감탄할 때 우리는 단지 펌벌리가 상징하는 재산과 지위를 실감하게 될 뿐 아니라 엘리자베스에게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의 중요성과 책임을 각성시키는 전통적 윤리적 배경으로의 펌벌리를 생각하게 된다.
펌벌리 공원의 저택에까지 이르는 엘리자베스의 旅路(여로)는 그녀가 달시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에서 달시의 내면까지 찾아가는 과정의 상징적 요약이 된다. 엘리자베스는 달시를 처음 만나서 그의 외적인 모습으로부터 그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고 그 편견에 반대가 되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인식하면서 마침내 달시의 인격의 핵심에 도달하게 된다.
독자는 엘리자베스의 여로를 따라가면서 사람마다 삶을 조망하는 창문이 다르며 인간의 視點(시점)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게 되고 그래서 진리는 불변일지라도 진리에 대한 인간의 지각에는 可變性(가변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즉 인간의 지각은 상대성을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펌벌리의 공원과 저택과 풍경은 엘리자베스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서 어느 시각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것처럼 삶에서 선하고 진실 된 것은 개인적인 시각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진실은 무경험과 잘못된 교육과 未熟(미숙), 欺瞞(기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적인 盲目(맹목)에 의해서 굴절되고 왜곡되지만 여전히 진실은 존재하며 맑은 눈에는 선명하게 보인다.
# 14
전통과 개선의 결혼(융합)이 사회발전의 메커니즘이다
‘傲慢과 偏見’의 특별한 매력은, 엘리자베스같은 비판적인 시각의 소유자가 回顧(회고)와 성찰을 통해서 개인적인 시각의 한계를 인식하고 진실에 開眼(개안)하게 되는 과정이 精巧(정교)한 예술적 기법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수정되어 감에 따라서 달시의 오만도 겸손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달시는 ‘정당한 오만’(proper pride)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초기의 행동에서 ‘너무나 孤高(고고)하고 너무나 自慢(자만)스럽게’ 보이던 것들이 回顧的(회고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고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
고위 귀족으로서의 달시의 ‘정당한 오만’은 진부한 권위의 행사가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 전해 내려온 전통적 규범이 붕괴되어 가는 시대에 책임 있는 大地主(대지주)로서 지녀야 될 자세인 것이다. 달시는 삶에서 자신의 역할을 규범의 수호자로 간주한다.
펌벌리는 사회의 찬탄할만한 모델이지만 사회의 중심은 아니고 주변에 머무는 이상향이다. 엘리자베스는 이곳으로 들어간다. 달시가 그의 이상향을 떠나서 보다 완벽하지 못한 일반의 세계 속-메리턴의 모임이나 롱번의 응접실 같은-으로 이동하게 되면 그의 결함이 드러나게 된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른 의무에 대한 달시의 높은 관심은 존경받을 만하지만 그는 너무 경직되어 있으며 그에게는 감정의 자발성과 여유가 필요하다. 그는 방종한 자유와 의무의 태만으로 인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顚覆(전복)을 막기 위해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되겠지만 그의 고매하지만 지나치도록 근엄한 자세는 인간적인 弛緩(이완)이 필요하다.
엘리자베스가 흙탕이 된 페티코트 차림으로 네더필드 응접실로 나타나서 常軌(상궤)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듯이 달시도 무도회장에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다. 그는 책임과 전통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엘리자베스에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다가 그녀로부터 “나는 무도회에서 책 이야기는 할 수 없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보존의 성향과 개선의 능력이라는 두 가지 요구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달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에서 이 두 가지 조건이 결합된다. 달시는 보존의 성향이고 엘리자베스는 개선의 능력이며 이 둘은 통합되어 하나의 합성물을 형성하게 된다.
‘건널 수 없는 심연’을 건너감으로써 엘리자베스와 달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안정된 사회적 도덕적 중심을 제공하게 된다. 언제나 신중한 콜린즈 내외는 캐서린 부인에게 최고의 존경을 바치면서 살아갈 것이고 롱번의 응접실과 루카스卿(경)의 집안에서는 정열의 파도가 칠 것이고 위컴 부부는 계속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시각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히는 메리턴 사람들의 결점도 그대로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결함들은 표면적인 것이고 사회를 지탱하는 바탕은 엘리자베스와 달시의 결혼처럼 전통과 개선이라는 발전의 메커니즘에 의해 공고하게 유지 될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