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위대한 개츠비’의 신화적 특성
개츠비에게서 보이는 신화적인 특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은 개츠비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悲劇的 牧歌(비극적 목가, tragic pastoral)로도 불려진다. 소설의 사건들이 여름 한 철에 일어나고 그리스 牧歌처럼 친구의 죽음에 대한 悲歌(비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殺害(살해)되는 神
‘위대한 개츠비’는 또한 인류의 보편적 경험에 대한 深遠(심원)한 진리를 표현하는 신화문학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화적 표현기법을 援用(원용)하고 있다. 개츠비는 종종 신화적인 존재로 언급되고 소설의 끝에 가서는 예수처럼 살해되는 神(a slain god)으로 비추어진다. 살해되는 神은 계절의 계속적인 진행을 위해 희생되는 젊은 神이며 봄의 신이고 아침의 신이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敬畏感(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서두에 어두운 밤바다 건너 선창의 푸른 불빛을 신비롭게 바라볼 때처럼 개츠비는 주로 밤에 가장 인상 깊게 보인다. 그러나 소설의 끝에서는 역설적인 反轉(반전)이 나타난다. 개츠비의 生은 ‘서늘하고 아름다운 낮’에 끝난다. 그는 낮의 현실과 죽음에 눈뜨게 된다.
이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개츠비는 대리석 풀장의 공기메트리스에 누워 물 위를 떠다니고 있다:
〈“파도의 그림자 같은 잔물결을 일으키면서… 개츠비를 실은 매트리스는 풀장 아래쪽으로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떠내려갔다. 수면에 주름(잔물결)도 일으키지 못할 만큼 미약한 바람만으로도, 뜻밖의 짐(죽은 개츠비의 屍身)을 실은 그 메트리스의 정처 없는 진로를 혼란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무더기의 나뭇잎에 닿자 메트리스는 얇고 붉은 원을 따라 회전했다.”〉
풀장의 靜寂(정적)과 넓고 파란 하늘아래에 핏자국이 원을 그리면서 물 위에 홀로 떠다니는 개츠비의 屍身(시신)은 犧牲(희생)의 儀式(의식)을 암시한다.
태양신과 아폴로 및 오딘
개츠비의 신화적 정체성에 대한 端緖(단서)는 그의 동업자 울프쉼의 회사 이름인 스와스티카 지주회사(Swastika Holding Company)에서도 발견된다. 스와스티카는 아리안(Aryan)族(족)의 자연종교에서 태양의 상징으로, 아리안족의 태양신(the sun-gods)과 그리스의 아폴로(Apollo)神 및 北歐(북구)의 오딘(Odin)과 관련이 있다.
스와스티카의 引喩(인유)에서 핏제랄드는 아폴로神을 염두에 두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개츠비에게 아폴로神의 많은 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아폴로는 神들의 축제와 神들이 참여하는 인간의 축제에서 主役(주역)을 하였고 뮤즈의 여신들이 춤을 출 동안 竪琴(수금)을 연주하였다. 개츠비도 음악과 축제를 배경으로 나타나고 창조적 에너지와 연관되어 있다.
아폴로는 영원한 청춘과 햇빛의 신이었고 그의 別稱(별칭)인 피버스(Phoebus)는 光輝(광휘)를 의미하는 태양의 神이다. 아폴로의 이러한 광휘의 속성은 태양이 새벽에 가져오는 “回歸(회귀)하는 빛의 황홀한 후원자”라고 불리는 개츠비에게도 나타난다.
그의 정원은 ‘불타듯이 빛나(glowing)’는 것으로 묘사된다. 개츠비가 상상하는 데이지는 햇빛에 의해 황금빛으로 도금되어 있다: ”데이지가 白熱(백열)의 태양(the fervent sun)을 바라 볼 때에 그는 그녀의 현관위로 쏟아지는 햇빛의 홍수 속에 서 있다.”
개츠비의 날개 달린 자동차는 찬란한 햇빛을 뿌리며 달린다. 창문이 햇빛으로 희미하게 빛날 때 그의 집은 눈부시게 빛난다(splendid). 햇빛은 심지어 그의 외모를 묘사할 때도 黙示的(묵시적)으로 나타난다. 그의 미소는 햇빛처럼 ‘빛나고(radiant) 있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최초의 인간 아담
개츠비는 미국문학에 나타나는 아담(Adam)의 전통에 속하는 인물이다. 악으로 오염되고 전쟁으로 황폐된 舊大陸(구대륙)을 벗어나 新大陸(신대륙) 아메리카에 처음으로 정착한 청교도들의 이상은 최초의 인간 아담처럼 도덕적으로 순결한 상태에서 새로운 에덴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개츠비도 자신을 순결한 아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츠비는 착각상태에 있는 아담이다. 그래서 그의 천국은 현실의 세계로 추락한다. 그의 에덴동산(gardens)은 폐허가 된다. 핏제랄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늘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보였을 것이고… 장미는 기괴한 물건이고 정원의 햇빛은 粗惡(조악)하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라고 추락한 개츠비의 심정을 추측하고 있다.
地獄(지옥)의 亡靈(망령)
잃어버린 낙원(a lost paradise)이 있으면 지하세계인 지옥도 있을 수 있다. 재의 계곡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재의 계곡은 단테(Dante)의 지옥(Inferno)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음산하고(dismal)’, ‘황량한(desolate)’ 것으로 불려지는 재의 계곡은 ‘한 쪽 방면으로 작고 더러운 江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데 이것은 지옥의 스틱스江[Styx, 三途川(삼도천)]과 같은 것이다.
이 江의 뱃사공은 암흑과 혼돈의 동맹자인 톰 부캐넌이고 소설의 話者(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이 江을 건너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윌슨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회색의 유령으로 자주 묘사된다. 머틀이 “윌슨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데 이 말은 아주 정확한 것이다. 삶의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에 윌슨은 內面(내면)으로는 死者(사자)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머틀의 내면도 공허하다. 그녀는 ‘유령처럼 걸으며’, 그녀의 음성은 생명이 없는 ‘금속성’(metallic)이다. 윌슨의 차고에 놓여 있는 그녀의 시신은 망가진 자동차 같다:
〈“담요로 한 번 싸고 또 한 번 싸 감은 머틀 윌슨의 시신은 무더운 밤에 寒氣(한기)로 고통을 당한 것처럼 벽 옆에 있는 작업대 위에 놓여있었다.”〉
그녀와 똑같이 고통 받고 있는 윌슨은 저주받은 자들이 울부짖는 비탄의 코러스[고대 그리스 연극의 합창무용-主役(주역)의 연기를 보조하며 연극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논평함]를 부른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공포의 고음으로 외친다: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오 하나님!”('Oh, my Ga-od! Oh, my Ga-od! Oh! my Ga-od! Oh, my Ga-od!')〉
그러나 윌슨이 부르짖는 神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닥터 에클버그로서 장님 같은 존재일 뿐이다. 윌슨의 유일한 동반자는 그의 이웃인 마이크리스이다. 마이크리스라는 이름은 인류의 수호자인 大天使(대천사) 미가엘(Michael)로부터 연유하지만 지금의 마이크리스는 亡靈(망령)의 어두운 세계에서 싸구려 식당을 운영하는 그리스인 이민자에 불과하다.
그는 하늘의 보호자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죽은 천사이다. 윌슨이 닥터 에클버그의 광고판 눈을 향해 계속 소리를 지를 때 마이크리스는 단지 “죠지, 다니는 교회가 있나? 죠지, 너는 교회가 있어야 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 16
‘위대한 개츠비’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유형
‘위대한 개츠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 유형을 살펴보는 것도 개츠비의 꿈과 그 좌절의 고통을 절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처음에 선명하게 표출되는 이미지들이 後續(후속)하는 장면에서 반복되면서 처음의 이미지에 역설적인 논평을 가하는 것이 ‘위대한 개츠비’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특징이다.
데이지와 조단은 그들이 등장하는 최초의 장면에서 인간들에게 獻身(헌신)을 바라는 富(부)의 여신들처럼 구름 같은 긴 소파에 흰옷을 입고 앉아있다. 이러한 여신의 이미지는 닉 캐러웨이와 개츠비가 데이지의 초대를 받고 부캐넌의 집에 나타날 때 다시 나타난다.
데이지와 조단은 전과 같은 소파에 ‘그들의 흰 드레스가 선풍기에서 나오는 微風(미풍)에 흔들리면서’ 그리스 신화의 사이런(Siren: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바다요정)처럼 앉아 있다. 그러나 개츠비가 부캐넌의 집 문턱을 넘는 순간 개츠비의 꿈은 깨어지기 시작하고 그 날 오후 끝에 가서는 실제로 그의 꿈은 파괴되어 버린다.
또 하나의 반복의 예는 개츠비가 정원에서 데이지의 선창의 불빛을 동경하듯이 바라보는 처음 장면과 소설의 끝에 가서 데이지와 訣別(결별)한 후에 하나의 “아웃사이더”로서 사라진 불빛 대신 ‘허무(nothingness)’를 응시하는 장면이다.
비의 이미지에서도 반복 현상이 나타난다. 개츠비와 데이지가 재회하는 날 축복이라도 하듯 개츠비의 비가 내린다. 그리고 弔客(조객)이 거의 없는 개츠비의 장례식 날에도 비가 내린다. 처음에는 낭만적 사랑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듯 하던 이미지는 뒤에 가서는 역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이미지가 된다.
‘위대한 개츠비’에는 라이트 모티브[leitmotif: 음악의 主樂想(주악상)] 기능을 하는 반복적인 이미지 체계가 있다. 새와 꽃의 이미지 체계가 그러한 기능을 한다. 나이팅게일의 노래는 개츠비와 데이지의 재회장면에서 사랑의 모티브가 된다. 그들이 개츠비의 집으로 들어 갈 때에 대기는 ‘나무숲에서 나오는 새들의 소리’로 충만하다. 그리고 개츠비의 꿈이 끝날 때 이날이 생각나게 된다. 이때는 나무 그늘이 “이슬 위로 갑자기 드리워지고 유령 같은 새들이 노래를 시작한다.”
소설에서 꽃의 이미지는 새의 이미지보다 더 두드러진다. 데이지는 꽃의 이름이고 그녀는 이탈리아식 정원을 배경으로 현관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데이지는 ‘꽃처럼 열린 태도로’ 그녀를 방문한 닉을 맞이한다. 후에 꽃은 개츠비의 꿈이 어려 있는 밤의 정원을 통해 개츠비와 연관된다.
데이지가 닉의 집에 도착하는 오후에 개츠비는 ‘온실’(greenhouse)만큼 많은 꽃을 보낸다. 그리고 개츠비와 데이지가 개츠비의 집으로 들어갈 때 그의 정원은 노랑수선화와 서양산사나무 및 서양자두 등의 꽃향기로 가득하다. 나중에 개츠비는 1917년 ‘그의 입술이 대이자 그를 위해서 꽃처럼 피어나며’ 그의 꿈의 화신이 되던 데이지를 회상한다.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green)은 ‘위대한 개츠비’의 주제와 관련이 깊다. 개츠비가 동경의 눈으로 응시하는 선창의 녹색 불빛은 개츠비 자신 및 그의 꿈과 동일시된다.
개츠비의 정원은 원래 신대륙을 처음으로 본 네덜란드 선원들에게는 ‘신세계의 푸른 젖가슴’ 같았으며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재의 계곡의 묘사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회색(gray)은 정신적인 죽음을 암시한다. 적색(red)은 폭력과 연관된다. 윌슨 주유소의 붉은 注油(주유) 펌프는 머틀의 죽음과 이로 인한 개츠비의 피살로 結末(결말)이 나는 폭력의 이미지이다.
이들 색채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소설 전체를 통해 間歇的(간헐적)으로 반복되는 흑과 백의 이미지 체계이다. 닉은 초기에 “이스트 에그의 백색의 멋진 궁전들이 바다를 따라 번쩍거렸다”라고 언급하고 그 다음의 장면에서 데이지와 조단이 부캐넌의 거실에서 흰 옷을 입은 모습이 보이고 이때 데이지는 ‘아름답고 하얀’ 소녀시절을 이야기한다.
후에 데이지는 ‘하얀 궁전의 높은 곳에 사는’ 근접이 불가능한 소녀로 언급된다. 개츠비는 흰 옷을 입고 흰 대리석 계단에서 데이지와 재회한다. 반복해서 나타나는 백색은 순수와 경이로움과 동일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데이지의 흰 옷은 순수하지 않다. 그녀의 하얀 드레스는 순수한 사랑의 환상을 자아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뿐이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바보처럼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백색은 富(부)와 연관됨으로써 그 의미는 모호한 성격을 띄게 된다. 뉴욕은 ‘세상의 모든 신비와 아름다움을 약속해주는’ 백색의 도시처럼 솟아 있다. 그러나 도시의 백색에 이어 죽음의 광경이 나타난다. 장례행렬이 지나가고 남부유럽의 이민들이 닉에게 음울한 눈길을 던진다.
장례행렬 뒤에는 백인 운전사가 거만한 흑인의 차를 몰고 따라온다. 이와 같은 갑작스런 反轉(반전)은 백색의 純粹(순수)는 뉴욕 같은 도시의 현실에서는 그 의미가 反轉(반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닉은 울프심을 만나러 어두운 카페에 도착한다. 울프쉼은 백색의 도시에 기생하는 지하세계의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결국 데이지는 물론 흰색의 도시는 경이로운 理想(이상)에 대한 약속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대신에 개츠비는 ‘소름끼치도록 검고 비에 젖은’ 장의차에 실리는 몸이 된다. 소설에서 흰색은 환상을 漸增的(점증적)으로 증폭시키다가 암흑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개츠비와 부캐넌과 데이지 및 조단 기타 다른 인물들의 계속적인 이동과 주소의 변경은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사회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이다. 이들 인물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닉은 부캐넌과 데이지에 대해서 “그들이 왜 동부에 왔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프랑스에서 일 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폴로경기가 있고 부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고 기술한다. 이들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조단도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유목민처럼 방랑한다.
그녀가 이름 있는 골프선수라는 것은 삶으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특권을 누리며 살다보니 그녀는 현실로부터 고립되어 삶과의 깊은 접촉의 경험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발달이나 도덕적인 성숙의 기회를 상실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잘 속이는 도덕적인 미숙아가 된다.
부캐넌이나 데이지와 마찬가지로 조단도 물질적으로 엄청난 부를 향유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황무지에 살고 있는 幽靈(유령)같은 인간들이다. 조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라는 사실에서도 그녀는 인간적으로 未熟(미숙)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절대적인 가치를 상실한 혼돈과 유동의 사회를 표출하는 징표 중의 하나는 수송기계들이다. 수상비행기, 요트, 기선, 통근열차, 대륙횡단열차, 특히 자동차는 사회의 유동성과 불안정을 浮刻(부각)시킨다. 자동차는 가치의 혼돈과 정신의 空洞化(공동화)로 인해 방향을 상실하여 돌발적인 사고와 파멸이 일상처럼 되어 버린 현대사회를 상징한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의 비극이 희망의 밑바닥인 재의 계곡에서 자동차 사고로 머틀이 허망하게 죽음을 당하고 이로 인한 개츠비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 현대의 황무지는 머틀의 육체적 생명력과 개츠비의 정신적 이상을 죽이고도 의식이 없는 무생물인 자동차처럼 무심하다.
# 17
개츠비의 分身(분신) 닉
닉 캐러웨이는 제이 개츠비의 分身(분신)같은 인물이다. 그의 삶의 도정은 개츠비와 평행선을 그린다. 닉과 개츠비는 둘다 중서부에서 성장하였고 중서부에서 꿈을 찾아서 동부로 와서 롱 아이런드에 정착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꿈을 추구한다.
그들은 이웃에 살게 되고 이스트 에그에 있는 부캐넌의 저택으로 초대받는다. 그들은 같은 해 여름에 비슷한 연령의 젊은 여인들과 연애를 한다. 여름이 끝날 때 그들의 꿈은 깨어진다. 닉의 환상은 개츠비의 보다 큰 환상과 함께 깨어져 버리는 것이다.
정신이 맑고 온건한 닉은 개츠비의 逸脫(일탈)의 삶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면서 그의 영웅적인 환상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게 될 것이다. 닉은 개츠비처럼 환상을 쫓는 자는 추악한 현실 속에서도 위대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끝)
(다음 편부터는 에밀리 브론티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해설편이 연재됩니다.)
핏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⑦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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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31, 09: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