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의 暴風의 언덕(Wuthering Heights) ①

시간의 먼지로 빛이 바래지지 않는 소설: 愛憎無限(애증무한)의 사랑이야기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80-1848)
# 1
시간의 먼지로 빛이 바래지지 않는 소설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의 '暴風(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랑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영국 요크셔(Yorkshire)의 廣漠(광막)한 무어랜드[moorland: 常綠灌木(상록관목)인 히쓰(heath)와 가시금작화(heather)가 무성한 황무지]를 강타하는 폭풍처럼 격렬한 낭만적인 사랑의 行路(행로)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독자들의 心琴(심금)을 울린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상상력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돌진하는 시냇물 소리와 천둥소리와 황무지위로 휘몰아치는 바람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 중에서 ‘暴風의 언덕'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시간의 먼지로 빛이 바래지지 않고 독자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에밀리 브론테는 異國的(이국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순수한 영국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상상력의 뿌리는 영국의 잉글랜드이다. 그러나 에밀리 브론테의 특성은 영국적이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그것은 아니다.

그녀는 同時代(동시대)와 다른 주제에 관해 동시대와 다른 관점과 방법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19세기 영국소설의 主流(주류)를 벗어나 홀로 우뚝 서 있는 작가이다. 그녀는 동시대의 작가들과는 다른 세계에 관해 쓰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는 목사이며 鄕土詩人(시인)이던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외부와는 거의 단절된 상태에서 짧고도 긴장된 삶을 보냈다. 그녀가 살던 요크셔는 아직도 현대적 통신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있었기 때문에 시대의 주류를 형성하던 산업혁명의 영향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Queen Elizabeth) 시대와 근본적으로는 동일했다. 그들의 삶은 그들 삶의 무대인 폭풍이 부는 히쓰 荒野(황야)의 바위산과 외딴 계곡처럼 粗惡(조악)하고 초시간적이며 변화가 없는 삶이었다.

그들의 삶은 원시적이어서 그들의 관심분야는 생활주변에 국한되어 있었고 情熱(정열)에는 이를 제어하는 고삐가 없었다. 그들의 활동은 단순하고 現世的(현세적)이었으며, 그들의 세계에는 악령이 出沒(출몰)하며 삶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무어랜드에서는 家門(가문) 간의 분쟁은 累代(누대)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단일 목표에 생의 모두를 바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에밀리 브론테는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 외부세계를 冥想(명상)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녀가 태어나 생을 보낸 요크셔의 무어랜드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인간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세계를 누비며 번영을 謳歌(구가)하던 19세기 영국의 세속적이고도 활기찬 사회는 에밀리 브론테의 시야 밖에 있었다.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과 전통과 도덕적 가치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녀는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 삶의 원초적 樣相(양상)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세상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의문을 던진다.

同時代(동시대)의 여타 소설가들이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 또는 인간과 문명과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행동 규범과의 문제에 주된 관심을 가진 반면, 에밀리 브론테는 인간이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우주 안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인물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照明(조명)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과 영원과 죽음과 운명과 사물의 본질에 비추어 나타난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자연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의 위대한 인물들은 우주라는 거대한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며 그들이 남긴 행동의 軌跡(궤적)이 한 편의 激動(격동)하는 敍事詩(서사시)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간과 자연은 동일한 範疇(범주)에 속하는 동일한 생명체

에밀리 브론테는 신비주의자였다. 그녀는 때때로 환상(vision)의 순간을 가졌으며 이것은 가장 深遠(심원)한 경험으로서 그녀로 하여금 평시에는 숨겨져 있던 초월적인 實在(실재)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이 환상의 순간에 그녀는 인간 세상을 새로운 의미로서 상상하게 되었다.

환상은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철학의 바탕이 되었으며 환상 속에서 그 철학의 특징이 鮮明(선명)하게 드러났었다. 그녀에게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또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우주의 창조물은 어떤 살아있는 정신적 원칙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그 원칙 중의 하나는 거칠고 무자비하며 야생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폭풍의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은 유순하고 자비로우며 수동적인 고요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은 상반되지만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폭풍과 微風(미풍)이 같은 바람인 것처럼 각각의 원칙은 동일한 정신의 다른 樣相(양상)일 뿐이며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각기 다른 구성소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인간 세상에서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의 명령을 거스르며 서로가 방해가 되기 때문에 조화가 깨어지고 不協和音(불협화음)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긍정적인 힘에서 부정적인 힘으로 변화해 버린다.

고요는 조화가 아닌 虛弱(허약)의 원천이 되고 폭풍은 생산적인 힘이 되지 못하고 騷擾(소요)의 震源(진원)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 원칙들이 세속적인 멍에를 벗어날 때에 이들은 방해받지 않고 갈등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원칙간의 불협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되고 각각의 원칙을 궁극적으로 지배하고 통합하는 단일 원칙이 조화와 균형을 가져온다.

에밀리 브론테는 인간과 자연을 상호 대립의 槪念(개념)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녀는 생명이 있는 인간과 생명이 없는 자연을 대립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인간과 자연은 동일한 範疇(범주)에 속하는 동일한 존재이다. 그녀에게 성난 사람과 하늘은 동일한 것이며 이들은 단일한 정신적 實在(실재)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무어황야에 휘몰아치는 폭풍이나 무어황야에서 생을 이어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우주라는 실재를 형성하는 구성분자들이다.


# 2
우더링 하이츠의 奇怪(기괴)한 사람들


‘暴風의 언덕’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고 同一體(동일체)라는 에밀리 브론테의 우주관이 배어 있는 낭만적 비극소설이다. ‘暴風(폭풍)의 언덕’은 인간이 편견과 오만과 오판에 의해 우주를 지배하는 원칙을 파괴할 때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혼돈과 질서의 회복과정에서 죽음과 재생을 가져오게 된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激動(격동)의 비극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1801년,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厭世家(염세가)인 로크우드(Mr. Lockwood)씨는 번잡한 세상을 피해 요크셔의 조용한 시골로 은퇴한다. 그는 쓰러쉬크로스 그레인지(Thrushcross Grange)라는 壯元(장원)의 저택을 賃借(임차)하기 위해 장원의 소유주인 히스클리프(Heathcliff)가 살고 있는 저택인 우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를 찾아간다. ‘Wuthering’은 이 지방의 사투리로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로크우드는 히스클리프가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총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히스클리프에 흥미를 느껴 다음 날에도 히스클리프가 초대하지 않는데도 우더링 하이츠를 방문하기로 한다.

다음날 오후 로크우드는 히쓰황야를 건너 4마일 거리에 있는 우더링 하이츠를 찾아간다. 폭풍과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늙은 하인 조세프(Joseph)가 문을 열어주지 않고 사라지자 쇠스랑을 맨 젊은이가 나타나 그를 안내한다. 그 젊은이는 헤어턴 언쇼(Hareton Earnshaw)로 양쪽 뺨에 수염이 거칠게 나고 입고 있는 옷도 더러웠다.

그는 농장 일꾼처럼 보였다. 로크우드는 아직도 소녀 티를 벗어나지 못한 미모의 처녀를 보게 되는데, 나중에 그녀가 히스클리프의 며느리인 히스클리프 부인(Mrs. Heathcliff)이며 그녀의 어린 남편은 죽었다는 것을 히스클리프로부터 듣는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로크우드는 폭설이 내리는 밤에 쓰러쉬크로스 그레인지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 되어 히스클리프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몇 번이나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가 혼자 나가려 하자 헤어턴이 우더링 하이츠 境內(경내)공원까지만 안내하려고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이것도 못하게 한다.

화가 난 로크우드는 조세프가 들고 있는 랜턴을 빼앗아 들고 뒷문 쪽으로 간다. 조세프는 개들을 시켜 로크우드를 덮치게 한다. 쓰러진 로크우드의 코에서 피가 나온다. 히스클리프는 크게 웃는다. 이때 하녀 질라(Zillah)가 달려와서 로크우드를 구출한다. 기진맥진한 로크우드는 어쩔 수 없이 우더링 하이츠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로크우드가 밤을 보내게 될 방은 2층에 있었고 히스클리프의 엄명에 의해 아무도 이 방에서는 자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곰팡이 슨 책 몇 권이 창문 선반에 있었다. 선반의 페인트칠한 표면에는 캐서린 언쇼(Catherine Earnshaw), 캐서린 히스클리프(Catherine Heathcliff), 캐서린 린턴(Catherine Linton)이라는 이름들이 긁혀 있었다.

로크우드는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것은 곰팡이 냄새나는 성경책이었는데 面紙(면지)에는 캐서린 언쇼라는 이름과 약 25년 전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성경책의 여백은 캐서린이 쓴 落書(낙서)로 채워져 있었다.

글의 주된 내용은 주로 부모가 죽고 난 후 새로이 家長(가장)이 되어 히스클리프를 학대하고 캐서린 자신에게도 暴壓(폭압)적으로 대하는 오빠 힌들리(Hindley)와 힌들리의 忠僕(충복)이 되어 자신들을 들볶는 조세프에 대한 원망과 비판이었다. 로크우드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었다. 창 밖에는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유리창에 부딪히고 있는 전나무 가지를 처리하기 위해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나무 가지 대신에 작고 얼음처럼 찬 손이 그의 손에 잡히었다. 그리고 '들여보내 주세요. 들여보내 주세요”라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하는 로크우드의 질문에 “캐서린 린턴이에요. 지금 집에 돌아왔어요. 무어(moor, 히쓰황야)에서 길을 잃었어요”라는 대답이 왔다.

어린 아이의 얼굴이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보였다. 아이는 로크우드의 손을 꽉 잡고 계속 들여 보내달라고 애원하였다. 로크우드는 손을 홱 빼고는 그 애절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았다. 그래도 어두움 속에서 “20년이 되었어요. 20년 동안 떠돌이로 살았어요”라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크우드는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히스클리프가 나타나 누구 허락으로 이 방에 들어 왔느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히스클리프는 들고 있던 촛불을 주면서 로크우드에게 방밖으로 나가게 한다. 로크우드는 방을 나갈 때 “들어와요, 들어와요. 오! 캐시(Cathy, 캐서린의 애칭), 다시 한 번 이방으로 들어와요. 오! 내 사랑, 이번에는 내 말 들어요, 캐서린”라고 울부짖는 히스클리프의 소리를 듣는다.

(계속)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