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의 暴風의 언덕(Wuthering Heights) ⑨

폭풍처럼 달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인물들
# 15
善惡을 초월한 자연적 생명력이 도덕적 판단의 기준


에밀리 브론테의 인생관에는 善(선)과 惡(악)에 대한 일반적인 구분이 없다. 삶의 어떤 양상은 선으로 규정하고 또 어떤 양상은 악으로 단정하는 것은 삶의 경험을 選別的(선별적)으로만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모두 容認(용인)하는 것이 에밀리 브론테의 인생관의 근본이다.

물론 브론테는 인생의 즐거운 부분만이 삶의 진실한 樣相(양상)이라고 믿는 낙관주의자는 아니다. 그녀에게는 폭풍은 微風(미풍)만큼이나 우주의 한 부분이다. 그녀는 인생의 폭풍에 대해 유별나게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인생의 거친 날씨를 가능한 한 거칠게 묘사한다. 그녀의 인물들의 파멸적인 정열에는 고삐가 없고 그들은 그 파멸적인 衝動(충동)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파멸적인 행동과 정열은 근본적으로 파멸적인 충동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쁜 것은 아니다. 충동의 자연스런 진행과정에 逆行(역행)하는 충동만이 파멸적이기 때문이다. 충동이 본래의 자연스런 영역에서 離脫(이탈)하지만 않는다면 충동이 맹렬하거나 무자비해도 우주의 진행과정에서 충동의 역할은 필요하며 용인되어야 한다.

에밀리 브론테가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도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도덕 이전의 超道德的(초도덕적)인 것이다. 그녀의 우주관은 기존 사회의 도덕적 기준보다는 인간 정신의 순수한 도덕적 기준의 바탕이 되는 ‘삶을 형성하는 힘’에 관계되는 것이다. 생명력이 도덕적 판단의 準據(준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브론테의 작품세계에서는 선과 악의 갈등이 없으며 인간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옳은 것과 잘못된 것 사이가 아니고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 사이에서 일어난다.

물론 그녀로부터 보다 많은 同情(동정)을 받는 인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정을 많이 받는 인물이 더 착하고 더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다. 동정을 받든 받지 못하든 모든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칭찬을 받거나 비난을 받을 수는 없다.

심지어 인물 중의 한 명이 心境(심경)의 변화를 일으켜도 브론테는 이를 도덕적 변화과정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캐서린 린턴은 처음에는 헤어턴에게 잔인하게 대하다가 나중에는 친구가 되지만 그녀는 이전의 잔인함에 대해 懺悔(참회)하지도 않으며 작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폭풍처럼 달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인물들

인간의 감정에 대한 에밀리 브론테의 생각도 同時代(동시대)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그녀의 인물들의 감정은 극단적일 만큼 강렬하다. 그들은 그들이 닮은 하늘의 눈바람이나 폭풍처럼 달랠 수 없고 저항이 불가능한 인간들이며 山野(산야)처럼 변함이 없고 번개처럼 맹렬하다.

영어소설의 어떠한 인물의 정열도 그들에 비하면 柔順(유순)하고 찻잔 속의 태풍처럼 보인다. 에밀리 브론테의 남녀 주인공들은 서로의 인격에 매료되거나 서로의 人性(인성)이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사랑하지는 않는다. 캐서린 언쇼가 에드가 린턴에게 끌리듯이 표면상으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끌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보다 깊은 감정은 同類(동류)로서 有緣性(유연성)을 느끼는 사람에게로 향한다. 즉 그들은 동일한 정신적인 뿌리에서 나온 동일한 존재에게 보다 깊은 애정을 갖는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渾身(혼신)의 힘으로 그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히스클리프는 그녀처럼 무어에 몰아치는 폭풍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 사이에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이러한 관계는 그들의 삶의 경험과 결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문자 그대로 一心同體(일심동체)를 이루게 한다. 캐서린은 넬리 딘에게 그녀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가 핸섬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는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든 그의 영혼과 나의 영혼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린턴의 영혼은 달빛과 번갯불, 또 서리(霜)와 불만큼이나 우리의 영혼하고는 달라요. 이 세상에서 나의 비참함은 히스클리프의 비참함이고…

처음부터 나는 그 비참함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느끼고 했어요…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만 남아 있다면 나는 여전히 삶을 계속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모든 것이 남아 있고 그가 없어진다면 우주는 아주 낯설게 될 것이고 나는 우주의 한 부분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린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뭇잎 같아서 겨울이 나무를 변화시키듯이 시간이 그 사랑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내 발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 같아요. 바위는 보기에는 별다른 기쁨이 못되지만 필요한 것이지요. 나는 히스클리프입니다. 그는 항상 내 안에 있으며 나 자신으로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의 資質(자질)은 사랑의 통상적인 정열하고는 거리가 멀다. 캐서린의 사랑은 그 모든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性的(성적)인 것이 없다. 그녀의 사랑은 潮水(조수)를 잡아당기는 달의 인력처럼 관능이라고는 없다. 정이 없다.

캐서린은 그녀의 죽음이 히스클리프를 불행하게 만들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그들 사이의 유대관계(bond)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 할 뿐이다. 한없는 비통함으로 인해 히스클리프가 그녀를 잊지 못한다면 그녀는 그것을 기뻐할 것이다.

〈“당신은 내가 죽은 후에 얼마나 더 오래 살기를 원합니까? …우리 두 사람 다 죽을 때까지 당신을 붙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 난 상관하지 않아요. 난 당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현실과 초자연적인 것의 共存(공존)

에밀리 브론테는 삶과 죽음을 相反的(상반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녀는 영혼의 不滅(불멸)을 믿는다. 영혼의 불멸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정통 기독교의 그것 이상이다. 그녀는 이승에서의 영혼의 불멸을 믿는다.

우주에 내재하는 정신적 원칙의 具現(구현)인 영혼은 이 세상에서도 활동적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떠난 영혼은 이 세상에 계속 남아서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밀리 브론테는 인간의 갈등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고는 보지 않는다. 캐서린 언쇼는 영혼의 고향인 우더링 하이츠가 그리워 천국에 가서도 마음이 비참해지는 꿈을 꾼다.

실제로 그녀는 죽지만 그녀의 혼은 우더링 하이츠에 거처를 정한다. 그리고 죽어서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히스클리프에게 적극적인 영향을 끼친다. 캐서린의 정열은 그녀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히스클리프를 사로잡는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에게는 超自然的(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의 법칙과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작품 속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도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밀리 브론테에게는 초자연적인 것도 자연법칙에 속하는 것이며 그녀의 눈에 비치는 세계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녀의 인물들은 문명세계의 법칙보다는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다. 그래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행위는 문명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야만적이고도 奇怪(기괴)한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 16 문명의 덫에 걸려 파멸되고 상처받는 사람들

언쇼家(가)의 문제는 아버지가 어린 소년 히스클리프를 데리고 와서 가족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삼은 때부터 시작된다. 히스클리프는 '美女(미녀)와 野獸(야수)'(Beauty and the Beast)에 나오는 ‘변장한 왕자’이다. 아버지는 도시에 출장가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약속하지만 바이올린은 망가지고 채찍은 분실되어 그가 가지고 온 유일한 선물은 孤兒(고아)로 변장한 왕자이다.

캐서린은 왕자를 잃어버리고 그래서 왕자는 짐승으로 계속 남아있어야 했기 때문에 비극이 초래된 것이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히스클리프는 計略(계략)을 꾸며서 嫡子(적자)인 힌들리를 逐出(축출)하고 언쇼家(가)와 린턴家(가)를 파괴해버린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반쯤은 야만적이며 强健(강건)하고 자유분방한’ 아이들로 무어에서 天眞(천진)하게 뛰놀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캐서린은 쓰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우아한 문명의 덫에 걸려 죽어간다고 느끼면서도 무어의 어린 시절을 동경한다.

그러나 소년 히스클리프는 악의적이고 陰謀(음모)에 능하며 도덕적으로 잔혹한 成人(성인) 히스클리프와 동일시 될 수는 없고 ‘단순히 무감각한’ 소년이다. 그는 자신을 이상할 정도로 偏愛(편애)하는 언쇼씨 뿐 아니라 캐서린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도 무심하다. 캐서린이 쓰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품위 있는 세계’로 迎入(영입)되고 히스클리프는 배척되는 사건은 캐서린의 생애에서 하나의 轉換點(전환점)을 이룬다.

농장생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한 숙녀로서 ‘실내에만 머물고 일을 하지 않아서 놀랍도록 하얗게 된 손가락을 흔들며’ 우더링 하이츠로 돌아온 캐서린은, 사회적 優越意識(우월의식)과 富(부)에 대한 유혹에 굴복해가면서 히스클리프와의 관계가 疎遠(소원)해지고 ‘자연적인’ 삶으로부터 離反(이반)된다.

새로운 주인 힌들리에 의해 농장일군으로 顚落(전락)된 히스클리프의 원한은 사회계급이 낮고 容儀(용의)가 누추하다고 하여 주변사람-특히 에드가 린턴-으로부터 받는 嘲笑(조소)와 모욕으로 인해 더욱더 강화된다.

히스클리프가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가서 부자가 되어 돌아온 후에 복수의 화신이 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차별에 대한 반항이며 그가 탐욕에 압도되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쇼家와 린턴家(가)의 재산을 차지하는 것도 사회적 평등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히스클리프의 자연세계에는 상류계급이나 하층계급 같은 인위적인 구별은 없다.

에밀리 브론테는 캐서린의 실패를 통해 어린이의 자연적인 善性(선성)이 사회에 의해서 오염되고 부패되는 현상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녀는 사회계급, 조직화된 종교, 사회적 교류, 권위적인 가정생활 등 인위적인 세계로 進入(진입)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문명화시킬 때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어려움과 위험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로크우드가 우연히 읽게 되는 캐서린의 어린 시절 日記(일기)의 초점이다. 캐서린의 일기는 청교도적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강요당하는 아이들이 받는 고통에 대한 諷刺(풍자)이다.

또 하나의 풍자는 문명에 의해 자연적 본능이 아직 파괴되지 않은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인 히스클리프 소년이 응접실에서 울고 있는 문명의 세례를 받은 린턴家 아이들을 조소하는 장면이다.

야성적인 캐서린과 이를 馴致(순치)하려는 어른들과의 관계를 서술한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캐서린을 개선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그를 도발시키려는 못된 즐거움으로 끝날 뿐이었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그녀를 동시에 꾸중할 때 가장 즐거워하였다. 그녀는 대담하고 뻔뻔스러운 표정과 말로 우리에게 반항하였고 조세프의 종교적인 저주를 놀리는 말로 조소하고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만 하였다. 언쇼 씨는 아이들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항상 엄하게 대했다.”〉

에밀리 브론테 자신이 어렸을 때 재능은 뛰어나지만 말썽꾸러기인 남동생에게 동정적이었고 엄격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및 정통 종교에 대단히 반항적이었다. 그녀는 전통적 規範(규범)의 훈련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깊이 생각하고 규범의 강요가 어린 시절의 행복과 성숙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력한 어조로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순진하고 통상적인 주제-사회와 갈등관계에 있는 어린 시절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는 피상적이거나 이론에 치우친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우더링 하이츠와 쓰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相異(상이)한 문화 간의 대립관계에 관한 것이다. 물론 결국에는 쓰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문화가 우더링 하이츠의 문화를 압도하게 된다.

이 소설이 브론테의 當代(당대)보다 거슬러 올라가서 1801년에 끝나는 것은 가부장적인 가족생활에 바탕을 둔 구시대의 粗惡(조악)한 농경문화가 빅토리아的(적) 계급사회와 ‘우아함’에 의해서 도전 받고 馴致(순치)되고 敗走(패주)하기 시작하는 시대의 사건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문명사회의 理想(이상)인 우아함은 캐서린에게는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고 부적합하며 그녀를 붙잡아 매는 사슬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으로 순치 되지 않는 캐서린은 그녀의 자연스러운 열정으로 인해 문명의 덫에 걸려 자신을 파멸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헌신적인 에드가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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