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野性女(야성녀) 캐서린의 자연발생적 정열
캐서린은 優位(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히스클리프와 에드가를 대결하게 한다. 그녀가 문을 잠그고 열쇠를 불에 던져서 섬세한 성격의 에드가를 무자비한 히스클리프에게 내맡기며 모욕적인 말로 창피를 주는 장면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대목이다.
캐서린은 에드가가 비겁해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그녀의 야만적인 태도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만한 도덕적인 감각이 없다. 자연에는 도덕적인 감각이 없다. 문명보다는 자연에 가까운 캐서린에게는 문명사회의 우아한 도덕의식이라는 것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그리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캐서린의 沒道德的(몰도덕적)인 의식은 15세가 되어 成人(성인)의 세계로 진입하려 할 때 사회와 충돌하게 되고 그녀에게 긴장과 고통을 가져온다. 이러한 긴장은 그녀의 관심이 초라한 농장일군으로 전락한 히스클리프로부터 상류계급 출신의 에드가에게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캐서린에게 에드가는 바람직한 결혼대상일 뿐 아니라 그녀가 우아한 사회로 들어가기 위해서 따라야 하는 문명적 표준이 되는 인물이다. 문명사회와는 거의 격리된 상태에서 성장한 캐서린이 문명사회의 숙녀처럼 행동하려고 할 때 크나큰 심리적 부담을 가지게 된다. 에드가의 방문을 기다리면서 캐서린은 그녀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어린 시절의 친구 히스클리프를 제거하려 하다가 결국 화를 내게 된다.
그녀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에드가와 단 둘이 있는 것을 저지하는 넬리를 심하게 꾸중하고 에드가에게도 거짓말을 하며 심지어 어린 조카를 때리기도 한다. 에드가가 아이를 구하려고 하자 그녀는 격정에 사로잡혀 그의 뺨을 후려갈긴다. 그의 偶像(우상)인 캐서린의 거짓말과 폭력에 충격을 받은 에드가는 그녀로부터 합리적인 대답을 바라지만 그녀는 말이 없다:
〈캐서린은 침묵했다.
“그리고 당신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어요” 라고 그는 말했다. “난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어떤 것도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다시 말을 시작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에드가에게는 下人(하인)과 싸움을 하고 아이를 두들겨 팰 뿐 아니라 거짓말을 하고 데이트하는 남자의 뺨을 후려갈기는 것은 숙녀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캐서린에게는 그러한 행동이 자연발생적이었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다.(“나는 어떤 것도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에드가가 유지하려 하는 기준이나 올바른 행동의 이미지도 없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래, 갈려면 가도 좋아요. 가세요. 나는 울 거예요. 병에 걸리도록 울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울기 시작한다. 그녀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에드가가 부당하게 비난한다면 병이 들만큼 울어서 그를 징벌하려 하는데 이것은 어린애들이 곧잘 채택하는 복수의 방법이고 자기 방어적 技巧(기교)이다.
15세 때에는 용서받을 수 있던 캐서린의 이러한 지배양식은 결혼 후까지도 이어진다. 그녀는 에드가와 히스클리프를 굴종시키기 위해 단식을 하고 그로 인해 정신착란 상태에 빠진다. 자살하겠다고 위협을 하고 자신이 처한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죽음을 바라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그녀는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를 파멸시킨다. 캐서린의 자연발생적 정열은 문명과의 충돌과정에서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에드가와 히스클리프의 운명에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 18
어머니 캐서린과는 다른 길로 가는 캐시
캐시는 어머니 캐서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녀는 어머니와 비슷한 격정을 가지고 있고 그레인지에서 모든 사람의 偶像(우상)으로 존중받으며 성장하여 자존심이 대단했지만 어머니의 비극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캐시는 성공적으로 成年(성년)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體得(체득)하게 된다.
외부와의 접촉이 없이 그레인지에서 공주처럼 성장한 캐시는 우더링 하이츠를 방문하여 그곳의 농장일군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를 보다 객관적으로 돌아다보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주인의 명령만 따르는 농장일군들에게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대한 캐시의 순진한 생각은 우스꽝스럽고 불쾌한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내 말을 대령시켜요.”
“당신의 하인이 되기 전에 당신이 천벌을 받기를 바라겠어!”라고 젊은이(헤어턴)가 화를 내며 투덜거렸다.
“나에게 어떻게 감히 그런 말투로 말할 수 있어요? 저 사람은 내가 말하면 그대로 실시해야 될 것 아니에요? 당신은 내 망아지를 이리로 끌고 와요.”
캐시는 그 여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고함을 질렀다.'
”부드럽게 말하세요, 아가씨. 정중하게 행동해서 잃을 것은 하나도 없어요… 나는 당신을 섬기라고 고용된 것이 아닙니다.'〉
캐시는 헤어턴 언쇼의 장점을 인식하고 그를 남편으로 선택함으로써 어머니처럼 캐서린 언쇼가 된다. 캐서린 언쇼로 태어나서 쓰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캐서린 린턴이 된 어머니와는 반대로 캐시는 캐서린 린턴에서 캐서린 언쇼로 이름이 바뀐다. 이것은 캐시가 어머니와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캐시의 어머니는 초라하게 전락한 히스클리프를 버렸지만 딸 캐시는 히스클리프가 복수의 의도에서 자신처럼 키워 놓은 헤어턴을 관대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어머니의 잘못을 바르게 고친다. 캐시의 정신적 발달에 있어서 또 하나의 단계는 그녀가 “나는 그를 용서해야 된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하면서 린턴 히스클리프의 사과(나도 나 자신을 어쩔 수 없어요)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그녀의 용서는 그녀가 린턴 히스클리프의 고통을 진심으로 동정하고 “그의 이기심과 악의를 怨恨(원한)이 없이 견뎌내는 것을 배웠다”라는 것을 말해 준다. 성질을 부리는 린턴에게 맞대응하지 않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를 친절하게 돌봄으로써 캐시는 정신적인 승리를 거둔다.
그녀는 린턴으로 인한 고통을 통해 再生(재생)의 축복을 받게 된다. 캐시는 자만과 편견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고통에 동정하고 타인의 결점을 이해하는 보다 성숙한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캐시가 정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난관을 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헤어턴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자마자 그를 고문하고 조종하려는 캐시의 유전적인 충동(그녀는 캐서린의 딸이다)은 철저하게 남성적인 헤어턴의 저항에 부딪히고 이러한 저항은 그녀를 성숙으로 이끈다.
사랑에 빠진 남자를 조종하려는 이브(Eve)적인 충동은 캐시가 히스클리프와 헤어턴이 서로 싸우도록 부추기는 장면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만약 당신이 날 때리면 헤어턴이 당신을 때릴 거예요” 라고 그 여자는 말했다.(그녀의 어머니가 의도적으로 히스클리프와 에드가가 싸우도록 부추긴 것처럼).>
헤어턴의 우정과 애정을 확보한 후 캐시가 試圖(시도)한 첫 번째 본능적인 행동은 히스클리프와 헤어턴 사이의 집착 관계를 깨뜨리는 폭력적인 장면을 만들어서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어턴이 히스클리프에 대해 충성심과 孝心(효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이성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끈끈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끈을 풀려고 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라는 발견한 순간 캐시는 히스클리프에 대해 반감의 표현이나 불평을 피하는 선한 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와 헤어턴 사이에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려고 노력한 것이 마음 아프다”라고 딘 부인에게 고백한다. 이런 점에서 캐시는 그녀의 어머니와는 달리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고 敵(적)과의 대면에서도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여자인 그녀를 排除(배제)한 히스클리프와 헤어턴 사이에 존재하는 남자들만의 관계를 이해하고 용인하는 성숙한 모습도 보여준다. 캐시는 헤어턴의 포리지(porridge, 오트밀 따위의 죽 종류)안에 앵초(primroses)를 꽂아 넣거나 그레인지에서 가져온 꽃으로 헤어턴과 함께 화단을 만들며 헤어턴의 삶을 밝고 명랑하게 만든다.
이것은 그녀가 懺悔(참회)와 心情的(심정적) 변화의 표시로 헤어턴에게 선물로 주는 책과 함께 화합의 효과적인 상징이 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남편 린턴에 대한 캐시의 利他的(이타적)인 獻身(헌신)은 파멸한 아내에 대한 에드가의 따뜻한 보살핌을 상기시켜준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러한 유전적인 요소의 결합은 인간의 성격에 있어서 사회적 심리적 決定論(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한 에밀리 브론테의 믿음의 반영인 것 같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과 환경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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