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全세계에 출판된 '폭풍의 언덕'
對立(대립)과 反復(반복): 소설의 구조적 장치
‘暴風의 언덕’은 주제를 표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 외의 다른 외부적인 장식은 모두 배제함으로써 소설 구조에 있어서 集中(집중)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리적으로 소설의 境界(경계)는 북쪽으로는 우더링 하이츠와 남서쪽으로는 쓰러시크로스 그레인지 및 이들 사이에 있는 교회와 교회무덤과 김머톤 시내(川)로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이 경계 밖으로 나간 인물의 일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보고들을 수 없다. 힌들리는 부친의 장례에 아내와 함께 다시 등장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히스클리프도 3년 반 동안 蹤迹(종적)을 감추고 사라졌지만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사벨라와 히스클리프의 奇怪(기괴)한 신혼여행의 행선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사벨라의 편지를 통해서만 듣는다. “내가 그레인지를 떠난 지 24시간도 안되어 내 마음은 그레인지로 다시 돌아왔어요.”
소설의 사건은 언쇼 씨가 리버풀에서 히스클리프를 우더링 하이츠의 세계로 데리고 오는 것으로서 시작된다.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중심적인 갈등도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그레인지의 응접실을 들여다봄으로써 일어난다. 소설은 캐시와 헤어턴이 하이츠를 떠나 그레인지에서 살기로 결정함으로써 결말이 난다. 이와 같이 소설에서 하이츠와 그레인지 밖의 지리적 또는 사회적 세계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 모든 排他性(배타성)에도 불구하고 ‘暴風의 언덕’의 세계는 또한 包括的(포괄적)이다. 그 세계는 출생과 죽음, 사랑, 憎惡(증오), 자연, 계절 등 중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의 생존조건의 縮小版(축소판)이 된다. 요크셔(Yorkshire)의 方言(방언)과 무어랜드 배경에도 불구하고 ‘暴風의 언덕’은 지역소설이 아니며 소설의 지역성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暴風의 언덕’에 나타나는 사건과 이미지의 類型(유형)을 살펴보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중요한 구조적 장치를 발견하게 된다. 즉 對立(대립)과 反復(반복)의 사용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대립과 대조를 이용하여 균형과 통제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이츠와 그레인지의 대립은 ‘暴風의 언덕’의 핵심적인 뼈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것은 대립을 통해서 균형과 통제를 성취하려는 에밀리 브론테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립은 장소에서뿐 아니라 장소와 동일시되는 인물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소설전체의 행위(action)는 대립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충돌이다.
그리고 대립의 집합은 단순한 對照(대조)로서 결말이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복잡한 유형(pattern)을 이루게 된다. 바람이 몰아치는 무어의 하이츠는 숲이 무성한 계곡에 안락하게 자리잡은 그레인지와 대조가 되며 이러한 대조는 그곳에 사는 언쇼家와 린턴家의 사람들 간의 대조와 연관된다.
바닥이 돌로 되어 있는 하이츠의 농가와 그레인지의 화려한 저택과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하이츠의 투박한 실내장식은 그레인지의 세련된 실내장식과 대조를 이루며 문명에 대비되는 野性(야성)의 상징이 된다.
하이츠의 부엌의 큰 참나무 찬장에는 거대한 洋銀(양은) 컵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등받이가 높고 원시적이며 녹색으로 칠해진 의자들이 놓여있다. 반면에 바닥에는 진홍색 카펫이 깔려 있는 그레인지의 응접실은 진홍색 카버를 한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고 금테두리를 한 하얀 천장에는 유리구슬 장식이 銀(은) 줄에 달려있다.
언쇼家 사람들의 눈동자는 검은 색이고 린턴家 사람들은 푸른 눈이다. 언쇼家 사람들은 겨울에 말을 타고 교회에 가지만 린턴家 사람들은 모피 코트를 입고 가족 마차로 교회에 간다. 캐서린이 그레인지의 부드럽고 밝은 세계에 魅了(매료)되어 감에 따라 히스클리프와 에드가의 대립이 浮刻(부각)되어 진다.
그들의 외모와 매너와 성격이 반복적으로 대조된다. 히스클리프가 나가고 에드가가 들어 올 때에 그들 간에 나타나는 대조는 ‘음울하고 丘陵(구릉)이 많은 탄전지대와 아름답고 기름진 地域(지역)의 교환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의 첫 위기는 캐서린이 에드가와 히스클리프 두 사람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두 가지로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린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숲의 나뭇잎과 비슷해요. 겨울에 나무가 변하듯이 시간이 지나면 나의 사랑은 변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히스클리프에 대한 나의 사랑은 땅 속에 있는 바위 같은 것이에요. 보기에 별로 즐겁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에요!”〉
하이츠와 그레인지 사이의 지리적 대립이 여기에서는 성격의 대립을 나타내는 이미저리로 발전한다. 캐서린은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든 그의 영혼과 나의 영혼은 동일한 것이며 린턴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가 다르고 불과 얼음이 다른 것처럼 우리의 영혼하고는 달라요”라고 말하면서도 에드가와 결혼한다.
캐서린과 린턴의 관계는 ‘가시를 끌어안고 있는 忍冬(인동) 덩굴’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히스클리프는 돌아와서 복수심에서 이사벨라를 유혹한다. 이들 둘은 또 하나의 대조를 이룬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가시금작화와 현무암으로 되어 있는 不毛(불모)의 황무지’라는 것을 알고 있는 데 반해,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를 ‘거친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한다. 히스클리프에게 이사벨라는 ‘이상하고 역겨운 동물’이며 캐서린에게는 이사벨라를 히스클리프와 결혼시키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에게 악마(Satan)를 제공하는 것’이다.
# 20
遺傳的(유전적) 대립과 移動(이동)이 象徵하는 것들
캐서린을 치명적으로 아프게 만든 히스클리프와 에드가의 대결에서 히스클리프의 눈에 비치는 에드가는 ‘황소나 된 것처럼 위협하는 어린 양’ 같다. 에드가가 캐서린에게 자신과 히스클리프중에서 擇一(택일)하라고 요구할 때 캐서린은 그와 자신을 대조시킨다:
〈“당신의 혈관은 氷水(빙수)로 채워져 있지만… 내 혈관은 펄펄 끓고 있고 그렇게 찬 것을 보면 내 혈관은 춤을 추어요.” 이 장면 다음에 나오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캐서린은 하이츠와 그레인지의 대조관계를 회상하면서 무어를 대단히 보고 싶어한다. “창문 옆의 전나무 숲을 울리며 지나가는 저 바람-그 바람을 한 번이라도 들이마시고 싶어요.”〉
캐서린과 에드가 그리고 히스클리프와 이사벨라 이 두 세트의 상호 대립적인 인물들로부터 두 번째의 캐서린(캐시)과 린턴 히스클리프가 태어난다. 히스클리프는 사악한 계획에 따라 린턴의 선의의 반대를 압도하며 이 둘을 무자비하게 결합시킨다.
어머니 캐서린처럼 캐시는 자신과 린턴의 대립관계를 의식하고 있다:
〈“…그는 무더운 7월의 하루를 가장 즐겁게 보내는 방법은 벌들이 윙윙거리고 종달새 노래하는 히쓰 언덕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워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바람 부는 푸른 나무에서 로킹(rocking,흔들리는 것)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는 평화의 환희 속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기를 원했고 나는 화려한 축제에 불꽃처럼 춤추기를 원했어요.
나는 그의 천국은 반쯤만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는 나의 천국은 술에 취한 것이라고 말했어요. 나는 그의 천국에서는 잠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고 그는 나의 천국에서는 숨도 쉬지 못할 거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하여 소설 전체를 통해서 인물들은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상호 대립적인 인물들의 결합-에드가와 캐서린, 이사벨라와 히스클리프, 린턴과 캐시-은 파멸을 초래한다. 이러한 대립의 구조에 반복의 유형이 첨가된다. 遺傳(유전)이 대립과 반복의 요인이며 상징적인 이미지가 된다. 캐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특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그녀는 언쇼家 사람들의 아름다운 검은 눈과 린턴의 고운 피부와 섬세한 윤곽과 금발의 곱슬머리를 가진 진정한 미인이었어요. 그녀의 정신은 거칠지는 않지만 高揚(고양)되어 있고 감수성이 강하며 과도하리만큼 애정이 풍부한 마음이 이러한 정신을 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강렬한 애착은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를 닮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녀는 비둘기처럼 부드럽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성과 명상에 잠긴 표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화를 내도 결코 분노로 바뀌지는 않았고 그녀의 사랑은 결코 격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깊고 부드러웠습니다.” 〉
린턴 히스클리프는 린턴家 사람들의 부드러움과 약점을 유전으로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세프의 말대로 히스클리프의 사디즘(sadism)도 가지고 있다. “저 놈은 꼭 지 애비 같아. 우리 모두는 몸속에 부모의 일부를 가지고 있거든.”
헤어턴에게 나타나는 유전적 현상과 그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복잡한 감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스클리프에게 헤어턴은 과거의 具象化(구상화)이고 과거를 聯想(연상)시키는 인물이다. 헤어턴이 힌들리의 아들인 한 히스클리프는 그를 미워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복수심에서 그가 힌들리로부터 당한 것과 똑같이 헤어턴을 취급한다. 동시에 이것 때문에 그는 헤어턴에게서 자신의 반복현상을 보아야 한다. 즉 훌륭한 소질이 학대받고 억압받으며 그래서 동정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의 반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헤어턴은 히스클리프가 사랑하고 두려워한 캐서린의 반복이다. 특히 그의 눈은 바로 언쇼家의 눈이다. 히스클리프의 이러한 복잡한 감정에 대한 응답으로 헤어턴은 히스클리프를 부모처럼 사랑한다. 그는 심지어 히스클리프에 대한 캐시의 비난과 險談(험담)도 용납하지 않는다.
인물과 장소의 圖式的(도식적) 구성 때문에 하이츠에서 그레인지로 또는 그레인지에서 하이츠로의 이동은 또 다른 이동의 前兆(전조)나 반복이 된다. 우더링 하이츠에서 쓰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향하는 첫 번째 이동은 어느 主日(주일)날 오전에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힌들리와 조세프의 暴壓(폭압)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마지막 이동은 캐시와 헤어턴이 그레인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처음과 마지막 이동 사이에 에드가 린턴이 캐서린에게 구혼하기 위해 하이츠로 건너가고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만나고 이사벨라를 유혹하기 위해서 그레인지로 오고, 후에 에드가의 딸이 히스클리프의 아들을 만나러 하이츠로 이동하는 일이 생긴다.
첫 번째 캐서린은 하이츠로 돌아가지 못해서 상심하고, 하이츠에 포로가 되어 있는 두 번째 캐서린은 그레인지로 탈출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이동의 반복은 일상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시간의 흐름과 인물과 상황의 변화를 의미하는 상징이 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