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 ③

惡의 독약과 부패의 병균으로 죽음에 이르는 나라
# 7
삶의 때가 층층이 쌓여 慣行(관행)의 노예가 되면…


‘햄릿’의 세계는 신비하고 불확실하고 의문으로 가득 차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1막 1장부터 나타난다. 추운 겨울 한밤중의 칠흑같이 어두운 城壘(성루), 마스크를 한 보초병, 膨滿(팽만)하는 불안감, 정체확인과 확신을 위해 암흑 속에서 오가는 “베르나도냐? ”, “근무 중 이상 없나?”, “누구와 교대했지?”

“뭣! 호레이쇼가 거기에 있다고?’ ‘뭣, 이 유령이 오늘밤에도 나타났다고?”, “‘모습이 先王(선왕)페하 같지 않느냐고?”, “어어 호레이쇼님, 이건 환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선왕페하와 같지 않습니까?”, “왜 경계가 강화되었지요?”, “창으로 저것을 칠까요?” “햄릿왕자님께 알릴까요?” 같은 질문들이 신비감을 강화시킨다.

이런 신비감은 비단 ‘햄릿’의 세계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세계도 喚起(환기)시킨다. 黑暗(흑암)에 둘러싸인 堡壘(보루)에서 정체가 분명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와 직면할 때 인간은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불확실성의 세계에서는 암시와 추측만이 어두움 속에서 明滅(명멸)하며 인간은 이런 세계에서 질서와 確答(확답)을 모색하는 삶을 살아간다.


實在(실재)와 外見(외견)의 불확실한 관계

‘햄릿’의 세계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속성은 實在(실재, reality)와 外見(외견, appearance)과의 불확실한 관계이다. ‘햄릿’은 외견 즉 幽靈(유령, apparition)으로 시작된다. 유령은 어느 정도 실체에 가까우며 실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유령의 啓示(계시)를 통해 眩亂(현란)한 외견의 벽이 뚫리고 그래서 햄릿은 현재의 국왕은 자기를 미워할 뿐 아니라 자기의 부친인 先王(선왕)을 살해하였으며 자기의 어머니는 간통과 近親相姦(근친상간)의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유령은 유령일 뿐이며 혹시 악마가 햄릿 부친의 형상을 위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유령의 啓示(계시)를 완전히 신뢰할 수도 없다는 딜레마(dilemma)도 있다. 실재와 외견과의 이런 불확실한 관계가 가져오는 딜레마는 여러 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宮庭(궁정)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햄릿의 狂氣(광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 국왕 클로디어스와 그의 忠僕(충복) 폴로니우스가 햄릿의 狂氣(광기)를 확인하기 위해 햄릿과 오필리어를 만나게 하고 커튼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햄릿의 관점에서 보면 오필리어가 있다. 그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의 모습은 순결과 신앙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오필리어는 햄릿이 보기에는 약한 자(Flailty)일 수도 있고 왕과 폴로니우스가 꾸미는 계략의 미끼일 수도 있다. 햄릿의 절규 “당신(오필리어)은 수녀원(nunnery)으로 가시오”는 햄릿이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고뇌의 표시이기도하다.

만약 오필리어가 외견 그대로 순결하고 헌신적이라면 살인과 간통, 근친상간과 淫慾(음욕)이 未滿(미만)한 이 더러운 세계는 그녀가 살 곳이 아니다. 그녀가 만약 “as chaste as ice, as pure as snow”(얼음처럼 정숙하고 눈처럼 순결)하다면 세상의 욕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순결한 오필리어가 살기에는 세상은 너무 추악하다는 말이다. 만약 오필리어가 외견과 다르다면 그녀는 nunnery의 또 다른 뜻인 매음굴과 관련이 있다.

햄릿은 叔父(숙부) 클로디어스왕의 범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유령이 말하는 父王(부왕)암살과 동일한 내용의 劇中劇(극중극)을 상연한다. 극이 끝난 후 기도하는 왕과 마주치게 되지만 왕을 죽이지 않는다.

기도는 구원을 암시하며 기도하는 왕을 죽이게 되면 왕을 구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은 기도를 통해 죄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懺悔(참회)는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죽이는 것이 가장 완벽한 복수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순간은 언제나 커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이다.

햄릿은 어머니의 방에서 왕이 커튼 뒤에 숨어있다고 생각하고 커튼을 검으로 찌른다. 그는 악의 심장부를 찌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죽인 사람은 클로디어스가 아니고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다. 이제 햄릿 자신이 살인자가 된다. 실재가 아닌 외견에 의한 행동은 비록 그것의 목적과 동기가 선한 것일지라도 결과는 악이 될 수도 있다.

햄릿과 왕비가 있는 방에 先王(선왕)의 유령이 나타나서 햄릿에게 어머니인 왕비를 잘 보살펴 주라는 말을 하지만 왕비의 눈에는 유령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느냐?” 라고 왕비는 아들에게 묻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십니까?”
햄릿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을 때 왕비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그래도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 보인다”라고 대답한다.

先王(선왕)의 유령은 무덤 너머 저승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는 최고의 실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실재를 보고 있는 햄릿을 왕비는 미쳐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더러운 때가 층층이 쌓여 慣行(관행)의 노예가 되면 실재가 눈앞에 나타나도 그 실재를 認識(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8
악의 독약과 부패의 병균으로 죽음에 이르는 나라


인간이 죽음을 超越(초월)하지 못하는 有限的(유한적)인 존재이고 그 유한한 삶마저 인간이 운명적으로 가지게 되는 약점과 능력의 한계로 인해 고통스럽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 ‘햄릿’이 보여주는 세계이다.

‘햄릿’에서 죽음의 강력한 의미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인간에게는 실패가 필연이라는 것이다. 극에서는 인간의 약함, 인간 목적의 불안정성, 운명에의 從屬(종속) 등 인간의 무력함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한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단 하나의 汚點(오점)이 그 사람의 인격전체는 물론 주변도 오염시킨다.

시간은 인간의 맹세나 의지를 제한하고 약화시킨다. 사랑도 시간이 가면 변화한다. 목적도 변화한다. 클로디어스는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즉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고 싶다’는 의지도 변하기 때문이다”라며 햄릿을 독살할 계획을 지체 없이 실행하기를 촉구한다.

극중왕은 인간 의지의 可變性(가변성)을 더욱더 비관적으로 나타낸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에 의존하고 우리의 기억은 빨리 사라진다. 우리는 강렬한 감정의 상태에서 어떤 것을 제안하지만 그 감정도 사라지고 그와 함께 우리의 결심도 사라진다.

우리의 운명도 변화한다. 이런 변화와 함께 사랑도 변한다. 인간의 의도와 소망이 운명에 종속된다는 것도 ‘햄릿’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운명의 여신은 창녀와 같아서 부패하고 악한 인간들이 창녀의 陰部(음부)에서 번창한다. 운명의 여신은 또한 광란하는 敵(적)과 같아서 적의 돌팔매와 화살에 햄릿같이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거나 죽음에 이른다.

感染(감염)에 대한 강조도 죽음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외견으로는 건강하게 보이지만 內的(내적)으로는 ‘숨겨진 腫瘍(종양)’으로 인해 죽어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파멸시키는 병균으로 감염되어 있으며 개인은 이러한 삶의 조건에 대해 책임이 없다.

이것이 ‘햄릿’의 비극세계이며 삶의 비극적 미스테리(mystery)이다. 햄릿은 이렇게 감염된 덴마크를 물려받았으며 그는 “그것을 바르게 세우도록 태어났다(born to set it right.).”

덴마크의 감염은 毒藥(독약)으로도 나타난다. 클로디어스가 先王(선왕)의 귀에 붓는 독약은 ‘맑고 건강한 피를 응결시키는 癩病(나병)같은 蒸溜物(증류물)’로서 독약과 병균이 결합된 형태이다. 클로디어스라는 병든 영혼으로부터 새어나오는 毒(독)은 덴마크 전체가 부패하고 병들 때까지 퍼져 나간다.

햄릿의 지혜는 ‘병들고’ 왕비는 자기의 영혼은 병든 영혼이라고 말한다. 레어티즈는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복수를 계획하며 국민들은 ‘생각이 진흙탕 물처럼 둔탁하고 불건강하게 되어가고’ 사람들은 오필리어의 발광은 ‘깊은 슬픔의 독’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오필리어를 제외하고 모두 독약으로 죽게 된다.

그러나 죽음의 주된 주제는 깊은 상실감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실감은 햄릿의 父王(부왕)이 햄릿에게 ‘그렇게 정숙해 보이던’ 왕비가 결혼할 때 손을 잡고 맹세했던 서약을 배신하고 자기보다 열등한 인간과 相姦(상간)하는 것을 한탄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오필리아도 사랑을 배척당하고 여자에 대한 비난과 거부의 소리를 듣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아! 여기에 너무나 고귀한 정신이 전락되어 있습니다
朝臣(조신)과 병사와 학자의 눈이요 혀이며 검이던 왕자님이!
아름다운 나라의 희망이고 精華(정화)이며,
풍속의 거울이고 예절의 본보기이며
만인이 우러러 보던 왕자님이 완전히 전락하셨습니다!〉

햄릿의 상실감은 오필리어의 發狂(발광)으로 더욱더 심화된다.

덴마크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때가 있었다. 그때는 햄릿의 어머니가 사랑의 순수를 오염시키기 以前(이전)이었다. 先王(선왕)이 통치할 때의 덴마크는 에덴의 정원이었으며 햄릿은 아름다운 덴마크의 미래이고 장미였으며 오필리어는 5월의 장미였다.

선왕은 덴마크를 위협하는 노르웨이나 폴란드를 격파하고 에덴의 정원을 가꾸고 보호한 영웅이었으며 ‘거인 하이페리온(Hyperion)의 머리칼과 죠브(Job)神의 이마와 軍神(군신)마즈(Mars)의 눈을 가진’ 神적인 존재였다. 神이 다스리는 완벽한 에덴에 사악한 뱀이 침투한다.

하이페리온의 王座(왕좌)는 사악한 왕이 차지하고 하이페리온의 침상은 色魔(색마)가 더럽힌다. 에덴은 잡초가 무성한 폐허로 변한다. 만물이 악취가 나도록 오염된다. 타락한 왕비의 아들인 햄릿뿐 아니라 덴마크의 모든 사람들이 오염되어 버린다. 그래서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당신은 왜 죄인을 낳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까?”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 9
正義(정의)의 실현을 어렵게 하는 要因(요인)들


햄릿은 천사와 짐승의 중간에 있는 인간의 困境(곤경)을 의식하고 있다. 인간은 神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영광스러운 존재이면서도 아담의 原罪(원죄)를 물려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곤경에서 해방될 수 가 없다.

햄릿의 문제는 선왕 유령의 명령을 수행하여 왕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햄릿은 신비와 혼란스런 外見(외견), 병든 의식, 懦弱(나약), 喪失(상실)의 세계에서 판단하고 행동을 취해야 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햄릿은 어머니가 선왕이 죽은 지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숙부와 近親相姦(근친상간)같은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는 인간에게서 짐승 같은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다음 유령의 계시가 또 하나의 충격을 가져온다.

물론 햄릿은 뱀 같은 삼촌이 선왕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도 어머니를 보면서 인간은 천상의 침상에 있으면서도 지상의 쓰레기를 뒤질 만큼 형편없이 전락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햄릿을 더 절망시키는 것은 햄릿 자신의 본성도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담의 顚落(전락)으로 인한 인간 정신의 오염은 삶의 의미를 빼앗아 가며 理性(이성)을 광기로 변모시키고 여인을 ‘죄인의 增殖者(증식자), a breeder of sinners’로 만들며 햄릿마저 살인자로 전락시킨다. 햄릿은 신비할 만큼 알 수 없고 죄악으로 未滿(미만)된 세계와 직면해야 한다.

복수를 해야 한다는 유령의 명령은 햄릿의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그는 부패한 세계를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不可解(불가해)한 수많은 외견의 세계에서 복수의 행동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심지어 腫瘍(종양)의 核(핵)인 숙부 클로디어스마저도 외견상으로는 진실하게 보인다.

햄릿은 악을 감추고 있는 숙부 주변의 外見(외견)적인 인물과도 부딪혀야 한다. 그들 중의 어떤 인물은 그의 어머니처럼 내면적으로 깊이 오염되어 있다. 어떤 인물은 레어티즈처럼 내면으로는 고귀하지만 외견상으로는 오염된 것처럼 보인다. 로젠크랜쓰(Rosencrants)와 길덴스턴(Gildenstern)처럼 특별히 부패하지는 않지만 무한히 부패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있다.

폴로니어스 같이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오필리아처럼 순수하지만 본의 아니게 악한 陰謀(음모)에 이용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실재에 대한 近接(근접)이 어렵고 혼돈스러운 세계에 투입된 햄릿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햄릿의 행위의 목적은 비록 정의로운 복수이지만 그 목적의 수행과정은 필연적으로 죄를 內包(내포)하게 된다.

그는 복수를 끝내기도 전에 죄가 없는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되고 오필리아가 미치게 되는 契機(계기)를 제공하고 어린 시절의 두 친구를 死地(사지)로 보내게 된다. 그는 결코 이런 죄로 자신을 더럽히기를 원하지 않지만 유령의 명령을 받는 순간부터 이러한 오염은 불가피하게 된다.

인간의 不完全性(불완전성, human infirmity)도 正義(정의)의 실현을 어렵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햄릿은 천사와 짐승 사이에 있는 인간의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그는 또한 혼란스럽고 오염된 세계에서 행동해야 될 뿐 아니라 항상 頹落(퇴락)하는 것이 운명으로 되어 있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감정과 생각의 균형을 유지하고 행동과 말을 맞추고 격정의 와중에서도 節制(절제)를 획득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 햄릿도 처음에는 지나치게 精密(정밀)한 사색가와 감정의 노예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된다.

그는 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인간의 본성에는 矛盾(모순)과 激情(격정)과 不條理(부조리)와 狂氣(광기)의 屬性(속성)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航海(항해)에서 돌아온 햄릿은 불확실하고 불가사의한 우주와 전락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되고 그 결과 이전과 다른 새로운 햄릿이 되어 광인의 옷을 벗어버리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나타난다.

그는 어떤 神的인 존재가 우주를 지배하며 인간의 목적을 형성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달리 말해서 인간의 행동과 판단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햄릿은 배우고 수용하게 된 것이다.

항해에서 돌아오기 전까지의 햄릿은 인간의 이러한 한계를 초월해서 神이 섭리하는 神(신)의 領域(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무시하고 인류의 짐을 너무 성급하게 짊어졌었다. 그는 獨善(독선)에 사로잡혀 세계는 혼란에 빠져있다고 판단하여 세계를 바로 세워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오필리어를 오판하여 그녀를 단지 ‘죄인의 증식자’로만 보게 된다. 자신도 하늘과 땅 사이에 기어다니는 벌레로 간주하게 된다. “어머니는 하늘에 맡겨라”는 유령의 반복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비판한다. 심지어 왕에 대해서도 神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클로디어스의 구원은 神이 결정할 일인데도 햄릿은 기도하는 왕을 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햄릿은 인간 이성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어떤 목적을 세워서 어떻게 처리하더라도 마무리는 神이 한다”고 고백한다.

햄릿은 이제 어떤 일이 닥쳐와도 피하지 않고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다. 햄릿의 정신의 변화는 墓地(묘지)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묘지가 주는 궁극적인 象徵性(상징성)은 햄릿로 하여금 인간의 생존조건을 인식하게 한다.

묘지에는 神이 보기에는 지극히 하찮은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神을 속이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고 죄악을 일삼던 정치인, 朝臣(조신), 법률가들이 누워 있다.

순결한 오필리어도 누워있다. 어릴 때 천진스럽게 같이 뛰놀던 요릭(Yorick)도 누워 있다. 죽음은 악인도 선인도, 王侯將相(왕후장상)과 시골처녀와 광대도 모두 한 줌의 흙덩이로 만든다. 善(선)과 惡(악)의 끝은 똑같이 죽음으로 귀결된다.

무덤을 떠난 햄릿은 敵(적)과 마지막으로 대결하게 된다. 그는 선과 악의 결투장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디에 가더라도 독이 배어 있는 칼이 결투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결투에서 승리하더라도 우리는 모든 것을 상실하는 致命傷(치명상)을 입게 마련이다.

햄릿의 장례식이 군인의 장례의식으로 거행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의 투기장에서 싸우는 군인인 것이다. 햄릿의 비극성은 인간의 선한 의지가 적대적이고 비합리적인 환경과 인간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결함으로 인해 좌절과 죽음을 가져오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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