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햄릿의 厭世主義(염세주의)와 도덕적 허무주의
햄릿의 첫 번째 독백의 첫 마디는 햄릿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鮮明(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아, 이 너무나 더러운 몸뚱이 녹고 녹아 한 방울의 이슬이 되어라.
아니면 하나님이 자살을 금하는 법을 만들지 않으셨으면! 오, 하나님,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지겹고 진부하고 답답하며 쓸데없게 보입니다.
세상이 싫다! 아! 싫다! 세상은 잡초가 씨가 달릴 때까지 무성히 자라나는, 김 매지 않는 정원 같은 곳이야. 악취가 나고 추잡한 것들이 세상을 온 통 다 차지해 버렸어〉
햄릿의 이러한 독백에는 삶에 대한 역겨움이 있으며 심지어 죽음에 대한 渴望(갈망)마저 배어 있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갈망은 하도 강렬하여 햄릿의 자살을 막아주는 유일한 抑制策(억제책)은 자살을 금지하는 종교적 律法(율법)뿐이다. 무엇이 햄릿로 하여금 삶을 嫌惡(혐오)하고 죽음을 생각하게 하였는가?
독백의 나머지 부분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햄릿의 厭世(염세)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父王(부왕)의 죽음은 그에게 깊은 슬픔을 가져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 때문에 햄릿처럼 고귀한 정신의 인물이 세상이 악취가 나고 추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싫어하게 되지는 않는다.
유령의 말에 대한 막연한 의심 때문만도 아니다. 더구나 王權(왕권)을 계승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비록 왕을 선출하는 투표권을 가진 궁정신하들의 비굴한 아첨에 역겨움을 느끼지만 독백에서나 어디에서도 햄릿은 왕권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는다.
햄릿의 厭世主義(염세주의)적 인생관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도덕적 충격 때문이다. 햄릿이 오필리아와의 사랑으로 가슴을 앓고 있을 때, 그리고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무섭게 드러나는 어머니의 타락한 본성은 그에게는 堪耐(감내)하기 힘든 충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충격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햄릿의 나이가 20이든 30이든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나이가 어느 쪽이든 어머니는 성숙한 부인인 것이다.
햄릿은 그와 같은 위치에 있는 모든 아들들처럼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어머니를 믿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헌신적이었을 뿐 아니라 신혼 때의 신부처럼 아버지에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었다:
〈먹음으로 인해서
식욕이 증가하는 것처럼〉
햄릿은 어머니가 “니오베처럼 눈물에 젖어” 아버지의 시신을 따라가는 것을 보았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되어 -“오! 짐승도 더 오래 슬퍼했을 것이다.”- 그녀는 재혼했다. 그것도 햄릿의 눈에는 징그럽도록 비열한 삼촌과 결혼한 것이다.
햄릿이 보기에는 어머니의 결혼은 근친상간이다. 그녀의 재빠른 결혼은 국가의 保衛(보위)를 위하거나 심지어 가족에 대한 애정에서가 아니라 놀랍도록 경박한 감정과 ‘악취가 나고 추잡한’ 情慾(정욕)의 분출이기 때문이다.
이런 황량한 상황에 처한 햄릿은 헤어나기 힘든 도덕적 虛無(허무)를 경험하게 된다. 그의 정신은 파멸의 경지에 이른다. 그는 오필리아를 전과 똑같은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없다. 그녀는 여자이고 그의 어머니도 여자이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는 공포와 역겨움을 가슴깊이 숨겨 두어야 한다. 그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은 어머니의 방에 있는 아버지의 결혼 침대 옆에서, 마음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함께 섞여 있는, 이러한 공포와 역겨움의 감정을 홍수처럼 쏟아 낼 때이다.
햄릿이 가진 최고도의 타고난 자질과 도덕적 감수성과 천재성이 그에게 오히려 害(해)가 되고 敵(적)이 되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그가 어머니와 삼촌간의 결혼 때문에 받은 충격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 더욱더 명백해질 것이다.
천성적으로 도덕성이 무딘 사람은 인간성의 황폐함을 직접 경험해도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정신활동이 보다 느리고 제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정신세계에 침투해 들어온 역겨움과 불신을 그토록 깊고 넓게 확장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햄릿은 善(선)은 물론 惡(악)도 모두 느끼고 볼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思索(사색)이 그의 삶의 요소이다. 그런데 그의 사색은 感染(감염)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의 상처를 스스로 파헤치고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하나의 생각(idea)이 그를 사로잡으면 고뇌 속에서 그 생각에 매달리게 되고 그 생각에서 떠날 수가 없다.(‘내가 반드시 기억해야하만 하는가? 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열정이 사라지고 처음의 생각이 가지고 있던 斬新性(참신성)이 퇴색되어 가면 그 생각은 사라지면서 무한의 권태와 자살충동이라는 병든 갈망만을 뒤에 남게 될 뿐이다.
이렇게 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을 때에 그리고 壞滅(괴멸)을 향해 점점 침몰해 가는 시간에 햄릿은 유령으로부터 어머니의 간통과 아버지의 살해의 비밀을 들으면서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공포와 驚愕(경악)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유령은 햄릿에게 복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아버지를 살해한 자에게 아들이 복수하는 것은 하늘이 내린 신성한 의무이기 때문에 햄릿은 복수의 의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복수의 명령은 너무 늦게 왔다. 그 명령은 햄릿을 사로잡고 있는 憂鬱(우울, melancholy)한 마음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는 복수에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한 후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세상이 혼란 상태에 빠져있구나! 이 무슨 저주인가
내가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그리고 햄릿 이야기의 나머지는 의무를 수행하려는 헛된 노력과 무의식적인 자기변명 및 효과 없는 자기 叱責(질책)과 복수의 연기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일 뿐이다.
#11
햄릿의 멜랑콜리 症候群(증후군)
햄릿의 憂鬱(우울, 멜랑콜리: melancholy)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의 멜랑콜리는 흔히 말하는 정신병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멜랑콜리는 정신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은 있다. 죽음에 대한 동경은 거역할 수 없는 자살충동이 될 수도 있다.
감정과 의지의 亂調(난조)는 감각과 지성의 마비로 연장될 수 있으며 妄想(망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게 된다. 그러나 햄릿의 멜랑콜리는 이런 상태하고는 다르다. 그의 우울은 그의 의도적인 광기하고도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호레이쇼와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는 한 번도 미친 徵候(징후)를 나타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햄릿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햄릿 자신도 자신을 무책임하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책임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햄릿의 멜랑콜리는 그의 非行動性(비행동성)의 원인이 된다. 그의 비행동성의 직접적인 원인은 인생과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한 嫌惡感(혐오감)이다. 혐오의 대상에는 자신도 포함된다. 삶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해 햄릿은 죽음을 동경하거나 만사에 무관심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 상태는 결정적인 행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몸은 무기력하게 되고 정신은 무심하거나 냉정하게 된다. 그런데 햄릿이 실행해야 되는 복수는 대단히 예외적인 것이다. 그것은 난폭하고 위험하며 완벽하게 수행하기가 어려우며 명예로운 인간에게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또한 유령의 명령이기 때문에 명령의 진실성을 완전히 신뢰하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만약 햄릿의 정신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이러한 장애들은 그의 행동을 저지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햄릿은 정신적으로 병적일 만큼 우울한 상태에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감정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삼촌에 대한 혐오감, 복수를 하려는 의지와 의무수행의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결정적인 행동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한 動機(동기)들은 이보다 더 강력한 우울증적인 성향- 삶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에 압도되어 버린다. 이로 인해서 햄릿은 복수를 遲滯(지체)하게 되고 ‘행동의 명분’을 상실하게 된다. 그의 행동의지는 병적인 감정을 뚫고 어렵게 분출하지만 다시 멜랑콜리의 늪으로 沈潛(침잠)해 버리게 된다.
이 멜랑콜리는 또한 햄릿이 수행해야 되는 복수라는 과업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해부하는 일과도 연관된다. 햄릿은 아마도 “내가 유령에게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제? 어디에서? 복수의 試圖(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내가 죽을 것인가?
나의 완전한 誤判(오판)으로 인해 국가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고 고상한 일인가? 이따위 세상에서 그런 일을 한들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슴에 수없이 떠올렸을 것이다.
이 모든 의문들은 부친암살자를 처리해야 되는 임무를 가진 햄릿이 취할 정당한 의문은 아니다. 이런 질문들은 사색이라는 이름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고 단지 행동을 미루는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경멸을 深化(심화)시킴으로써 멜랑콜리를 악화시키는 症候群(증후군)이다.
햄릿의 멜랑콜리는 그의 무기력증 뿐 아니라 활력의 요인도 된다. 그의 재빠른 행동은 일반적으로 능동적인 사람들의 특성에서 나오는 결과이며 이런 성격의 사람은 돌발적인 자극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충동에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햄릿이 이런 재빠른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만족하는 것도 그의 멜랑콜리 때문이다.
그는 생생한 흥미를 가지고 劇中劇(극중극)을 상연하고 극의 성공에 대단히 기뻐하지만 그 기쁨은 극의 성공으로 인해 그가 목표(복수)에 보다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니고 극의 성공이 그의 적(클로디어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또 그의 능력을 顯示(현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英國(영국)으로 보내서 그를 제거하려는 왕의 계획을 좌절시키려는 생각에 즐거움마저 느낀다. 그는 항해 도중에 그가 발휘한 活躍(활약)과 연설솜씨를 자랑스럽고 만족스럽게 회상한다. 이러한 행동에 무기력한 自意識(자의식)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는 이런 행동에서 옛날의 힘을 느끼고 이런 행동을 통해 인간에 대한 혐오를 잊었다. 그의 고통스러운 모습, 야만적인 조급성, 자기도취, 경멸하는 사람은 물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과 운명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것-이런 것들도 모두 햄릿에게 나타나는 멜랑콜리의 症候群(증후군)이다.
# 12
햄릿의 멜랑콜리: 인간성에 내재하는 비극적 신비의 發顯(발현)
햄릿의 무기력증은 그의 멜랑콜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햄릿은 4막 4장의 독백에서 복수를 연기하며 주저하고 있는 이유를 ‘그것을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거나 짐승 같은 망각’ 때문이라고 자신을 질책하지만 그의 神(신)과 같은 뛰어난 理性에 대해서는 그것이 誤用(오용)되거나 過用(과용)되었다고 痛嘆(통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짐승’ 같은 망각이나 ‘우둔함’, ‘모두 잠이나 들게 하는 것’, 그리고 하늘이 주신 이 이성을 “곰팡이가 슬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인생의 좋은 일이라고는
먹고 자는 것 뿐 이라면 인간은 뭐지? 짐승이지 그 이상은 아니야〉
그래서 그는 2막2장의 독백에서 ‘꿈속에 있는 인간처럼 얼이 빠져서 해야 될 일을 재빨리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우둔하고 정신이 멍한 악한’이라며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 해야 될 일에 우둔하리만큼 무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령이 두 번째로 나타날 때에 햄릿은 행동이 느린 아들을 꾸중하러 왔느냐고 묻는다. 유령은 ‘망각’하지 말라며 그의 방문목적은 무디어진 햄릿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햄릿은 鈍感(둔감)하고 무관심하며 우울한 정신상태로 인해 자신의 의무를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의무를 아예 잊고 있는 것이다.
유령이 처음으로 햄릿에게 나타나서 복수를 명령하고 “내 말을 기억해라”라고 말하고 再次(재차) 방문할 때도 “잊지 마라”라고 다시 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령은 햄릿이 평소에도 멜랑콜리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복수의 의무를 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햄릿은 자신이 왜 복수를 연기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 이것도 그의 멜랑콜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열연하는 배우들이나 포틴브라스의 용감한 군대를 보면서 햄릿은 자신의 非行動性(비행동성)을 더욱더 부끄러워하게 된다.
그는 당황한 가운데
〈내가 왜 이렇게 망설이나? 비겁하기 때문인가? 게으름 때문인가? 내가 이 일을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기 때문인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게으르게 앉아 있도록 하는가? 그런데 나는 행동할 수 있는 명분과 의지와 힘과 수단이 있지 않은가?〉
라며 자신에게 反問(반문)하지만 자신의 무기력의 원인을 정확히 집어내지를 못한다. 사람을 무심하고 둔감하게 만드는 멜랑콜리로 인해 햄릿은 행동의 의무를 명확히 파악하는 분석의 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햄릿의 멜랑콜리에 대해서 다소 張皇(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이는 심리학적 견지에서 보면 멜랑콜리는 비극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며 멜랑콜리를 고려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하면 햄릿의 비극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햄릿의 멜랑콜리는 그의 思辨的(사변적)인 천재성과 연결되어 인간성에 내재하는 비극적 신비의 상징으로 發顯(발현)되지 않았다면 햄릿 개인의 병적인 현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비극적 신비에 접할 때마다, 神(신)과 같은 인간의 정신이 발산하는 驚異(경이)와 敬畏(경외)를 느낄 때마다, 그리고 영원 속으로 방랑하는 思惟(사유)를 느낄 때마다, 그러면서도 微弱(미약)한 행동의지로 인해 무력하게 되는 그를 볼 때마다, 또한 생각의 神性(신성) 그 자체 때문에 무력하게 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햄릿을 기억하게 된다.
인격과 생각이 神性(신성)에 가까운 햄릿 같은 超人(초인)이 살아가며 뜻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에는 이 세상은 존재론적으로 너무나 부패하고 결함이 많다. 우리는 햄릿에게서 인간 영혼의 무한성과 동시에 그 무한성을 제한하는 숙명을 보게 된다.
(계속)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 ④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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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24, 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