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 ⑥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 17
피와 살이 없는 허무주의적 超人 햄릿


햄릿은 타인들을 탐색하고 분석하고 감시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는 주저함이 없이 상대의 허점을 찌른다. 그는 대체로 무자비하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성취하는 것이라고는 그들을 고문하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힘은 사람들을 꿰뚫어 보는 데서 나온다.

사람들은 그와 접촉하게 되면 자신들의 缺陷(결함)을 알게 된다. 어디에 가든 초인간 햄릿은 사람들의 결함을 노출시킨다. 햄릿의 毒(독)은 세상의 모든 긍정적인 것을 위협하는 否定(부정)의 독이며 虛無(허무)의 독이다. 그러나 이 악의 요소가 햄릿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어떤 때는 그의 어머니에게 애정이 어려 있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어머니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보이며 무자비하게 비꼬는 말로서 피를 말리듯이 어머니를 고문한다. 어느 한 순간에는 그는 아래와 같이 부르짖는다:

〈나는 오필리아를 사랑했었다.
수만 명 오빠들의 사랑을 다 끌어모아도 나의 사랑에는 못 미칠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이러한 감정을 吐露(토로)하는 자신을 비웃는다. 그의 마음은 빠르게 변화하는 의식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한 순간은 유머와 상냥함과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나서 갑자기 전 우주는 캄캄해지면서 사라져 버리고 공허만 남게 된다.

햄릿은 자비와 냉소의 지옥사이를 오가는 二重人格者(이중인격자)이다. 햄릿은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열정을 오랫동안 가지지 않는다. 열정은 목적이 있지만 햄릿에게는 열정을 쏟아 부을 목적이 없다. 그의 병은-혹은 그의 시각은-否定(부정)의 병이다.

즉 죽음이 그의 병이다. 햄릿은 살아있는 죽음이다. 그래서 극의 분위기가 처음부터 대단히 음울하다. 극은 先王(선왕)의 살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극의 나머지는 이 충격이 주는 음산한 파장이다.

父王(부왕)의 죽음의 비밀을 유령으로부터 들은 이후로 햄릿의 정신은 焦土化(초토화)된다. 인간에 대해서 이미 실망하고 있던 그는 죽음과 대화를 한다. 마침내 죽음은 햄릿까지 사로잡는다. 유령으로부터 胚胎(배태)된 이 죽음은 신비한 힘으로서 이 힘 앞에는 모든 사람이 굴복하게 된다.

이것이 극에서 햄릿이 독백을 통해서 죽음을 분석하고 무덤에서 나온 해골에 그토록 매료되는 이유이며 ‘本意(본의) 아닌 살인’과 ‘奸巧(간교)한 음모’에 의한 죽음이 이어지다가 끝에 가서는 마침내 대학살로 결말이 나는 이유이다.

〈이 死山(시산)은 무참한 학살을 말해주는구나!
오, 오만한 죽음이여, 너의 영원한 무덤에 무슨 잔치가 임박해서
이렇게도 많은 王侯(왕후)를 단칼에
이렇게 피비린내 나도록 쓰러뜨리는가?〉

유령은 ‘천벌을 받을 魔鬼(마귀)’이거나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건전한 精靈(정령)’은 아니다.

劇(극)은 죽음의 행진곡으로 끝난다. 극 전체를 통해서 불길한 대포소리가 세 번 울린다. 1막에서 햄릿이 유령을 보기 전에 한 번, 그리고 5막에서 두 번 대포소리가 울려 퍼진다. 햄릿은 죽음의 영원한 深淵(심연)속으로 떨어진다.

피와 살이 없는 허무주의적 초인간 햄릿은 피와 살을 가진 보통 인간들의 한심한 작태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嘲弄(조롱)하며 인간존재의 무의미에 절망하다가 죽음의 세계로 가버리는 것이다.


# 18
누가 오필리어를 죽였는가?


오필리어와 햄릿의 관계는 순수하며 오필리어는 대단히 아름답고 섬세한 感受性(감수성)을 가진 수줍은 처녀로 假定(가정)하는 것은 오판이다. 오필리어는 高潔(고결)한 젊은 여인이 아니다. 이것은 그녀가 햄릿의 음란한 대화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사실에서도 立證(입증)되는 것이다.

貞潔(정결)한 여인이라면 남자의 猥褻的(외설적)인 말을 참고 넘긴다는 것은 당시의 관습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와 같이 개방적인 시대에서도 결혼을 염두에 두고 교제하는 진실한 두 남녀라면 이런 음탕한 대화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오필리어는 세상에 물의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평판이 좋지는 않은 여자라고 말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녀는 폴로니어스의 딸이다. 그리고 폴로니어스는 고리타분한 말이나 늘어놓는 평범한 인물은 아니고 權謀術數(권모술수)에 능하며 교활한 宮內大臣(궁내대신)이다. 그는 빙산처럼 자신의 일부만 노출시킨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세속적인 지혜의 말은 그의 내면의 일부만을 노출시킬 뿐이다.

그는 아들에게 “무엇보다도 너 자신에게 진실해라… 그 누구에게도 거짓으로 대하지 마라”라고 處世(처세)에 대한 조언을 한 후에 아들의 행동을 감시할 스파이를 바로 派遣(파견)할 만큼 말과 행동이 다르다.

폴로니어스는 자신의 딸인 오필리어게도 솔직하지 못하다. 오필리어가 햄릿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할 때에 그는 이것을 ‘사랑의 광기’로 해석하고 “최근에 그에게 무슨 심한 말을 한 적이 있느냐?”냐고 묻는다. 오필리어는 답한다:

〈아뇨. 아버님이 분부하신 대로
받은 편지를 돌려보내고 만나자는 것을 거절하였어요〉

이 말에 폴로니어스는 대단히 만족해한다:

〈그래서 失性(실성)하신 거로군.
내가 더 주의하고 보다 더 잘 판단하면서
관찰하지 못해서 유감이구나,
이 아비는 그 분이 혹시나 한 때 기분으로
네 몸을 망치지나 않으실까,
그 걱정만 앞서 지나친 의심을 하였구나!〉

그러나 폴로니어스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오필리아를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위험을 피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필리어를 권모술수 게임에 하나의 카드로 이용하려고 한다. 오필리어는 순순하게 햄릿왕자의 妃(비)가 되어도 좋고 왕자의 請婚(청혼)에 의도적으로 저항함으로써 값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

만약에 햄릿 자신이 왕의 敵(적)이 되고 그와 緣(연)을 맺는 것이 왕의 은총을 얻는 데에 방해가 된다면 오필리어는 왕의 스파이가 되어 햄릿에 관한 정보를 탐지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오필리어는 궁정이 음모의 요람이었던 시대에 家門(가문)의 야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가련한 여인들과 같다. 어떠한 가문도 가문의 미인을 왕이나 王家(왕가)의 인물과 결혼시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불행히도 역사적으로 보면 왕들은 결혼에 있어서 미모 뿐 아니라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앙 등 결혼외적인 요소도 고려하였다. 그래서 왕가와 인척관계를 맺은 가문의 이념이나 신앙에 대한 왕의 지지가 철회되면 해당가문의 여인은 가문과 함께 치명적인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목을 자르는 도끼에는 騎士道(기사도)라는 것이 없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왕비를 처형대로 보낸 헨리 8세 (Henry the Eighth)의 治世(치세)로부터 멀지 않은 後代(후대)에 살았던 셰익스피어는 이런 죄가 없는 여인들의 학살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정신적으로 순결하였던 여인들도 斷頭臺(단두대)에 설 때쯤 되면 더 이상 순결하지도 않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음모와 암투가 橫行(횡행)하는 궁정이 순진한 젊은 처녀들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학살보다도 더 나쁜 죄이다.


# 19
오필리아는 원칙을 져버린 사회의 희생자


오필리아는 순수를 상실했다. 아버지와 클로디어스가 엿듣는 가운데에 햄릿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진리와 진실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이다. 그녀는 햄릿의 의도적인 淫談悖說(음담패설)에 혐오감을 느끼거나 놀라지도 않는다. 햄릿의 猥褻(외설)은 그의 정신적 炎症(염증)을 덮고 있는 부스럼 딱지 같은 것이다. 그녀는 햄릿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마음을 상실하였다.

궁정은 오필리어로부터 정직성을 빼앗아갔고 그녀의 정신적 상실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았으며 그녀를 광기로 몰고 가서 죽게 했다. 오필리어에 관한 神話(신화) 중의 하나는 사랑 때문에 미쳐서 자살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릇된 것이다.

극의 어디에도 오필리어가 햄릿에 대해서 열정이나 애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 없다. 정신이상의 상태에서도 그녀는 햄릿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고 죽은 아버지에 대해서만 많은 말을 한다. 물론 그녀는 상황적으로 사랑을 恨歎(한탄)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왕족 중의 한 사람에게 살해당하였다. 왕자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오빠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는 공포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위기 속에 있게 된다.

클로디어스에 적대적인 군중들은 오필리어의 죽음을 왕가에 대한 적개심을 鼓吹(고취)시키는 구실로 삼는다. 그래서 왕가는 孤立無援(고립무원)의 오필리어에게 등을 돌린다. 클로디어스는 일반 민중의 적대감에 대해 말한다:

〈폴로니어스의 죽음에 대해서 백성들이 억측이나 불손한 생각을 품고 소문을 퍼뜨리며 동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올바른 판단도 없이
허겁지겁 비밀히 매장해 버렸어.〉

호레이쇼도 오필리어가 “악의에 찬 군중들에게 위험한 억측을 퍼뜨릴 위험이 있다.”라며 걱정하고 왕비는 오필리어의 면담 신청을 거절한다. 이렇게 왕과 廷臣(정신)모두가 위험을 느끼며 孤立無援(고립무원)의 오필리어를 경계하고 멀리한다.

사랑과 공포 때문에 오필리어가 자살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살을 하지 않았다. 왕비는 오필리어의 溺死(익사)를 사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왕비가 거짓말한다는 표시는 전혀 없다.

오필리어가 자살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교회묘지에서 일하는 두 광대(clown)뿐이다. 셰익스피어 극에 자주 등장하는 광대들은 거짓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백치 같은 하층민들의 전형이다. 神父(신부)는 “오필리어의 죽음이 의심스럽다”며 오필리어를 교회의식에 따라 매장하는 것을 반대한다.

묘지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오필리어를 무덤으로 보내는 데 一助(일조)를 하는 죄인들이다. 자비심이 모자라는 신부도 예외가 아니다. 오필리어에게 가짜애인이었고 暴君(폭군) 같았던 햄릿의 죄가 제일 크다. 그는 연인이자 백성인 오필리어를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필리어를 파멸시킨 것은 왕과 왕비 햄릿 등 궁정의 모든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국가운영을 위해서 또는 정치와 음모 때문에 원칙을 포기해 버리는 사회의 희생자였다.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 조차도 그녀의 비극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激情(격정)과 情慾(정욕)에 잘 휘말리는 성격이어서 오필리어의 아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레어티즈가 햄릿의 구애를 경계하라고 충고할 때에 오필리아의 조롱이 섞인 응답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오빠,
높으신 목사님같이 천당으로 가는 험한 가시밭길을
나에게 가리키지 말아요
마치 자신은 환락의 길을 밟아가면서
스스로의 입에서 나오는 충고는 아랑곳하지 않는
방탕하고 부주의한 난봉꾼처럼〉

당신도 마찬가지라는 오필리어의 應酬(응수)에 레어티즈는 “내 걱정은 하지 마라”라며 전혀 변명하지 않는다. 이 둘은 모두 規範(규범)을 잘 따르는 모범적인 인물은 아니다. 폴로니어스가 파리에 있는 아들의 행동상황을 살피기 위해 하인 레이날도를 스파이로 파견한다는 것은 평소의 레어티즈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구나 감시사항 중에는 賣淫窟(매음굴)출입여부도 있는 것을 보면 레어티즈의 放縱(방종)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레어티즈가 그의 여동생의 무덤 안으로 뛰어들어 갈 때 그는 아래와 같이 울부짖는다:

〈이제 산 자와 죽은 자 할 것 없이 그 위에 흙을 쌓아라
이 평지가 산이 되어
옛날의 필리언산이나 푸른 올림푸스의 하늘에 닿을 듯한 산봉우리보다
더 높이 솟을 때까지.〉

셰익스피어에게는 이런 감정의 폭발은 歡樂(환락)의 길이나 매음굴과 관련을 가진다. 레어티즈의 슬픔의 표현은 극단적이다. 그의 마음은 죽은 오필리아를 떠나 멀고 먼 올림푸스로가는 여행길에 오르고 여행의 흥분 때문에 진정한 슬픔을 망각해 버린다. 감
정의 낭비 속에 오필리아의 모습은 무시되는 것이다.


# 20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덴마크 궁정 전체가 부패해 있다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주장이다. 사회가 부패해 있다. 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 부패가 있게 마련인 것이 인간사회이다. 그러므로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그러므로 햄릿이 유령의 명령에 복종하여 궁정을 지배하며 사회의 상징인 클로디어스를 처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缺陷(결함)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에까지 올라간다. 인간사회의 결함은 共時的(공시적)이면서 또한 通時的(통시적)이라는 말이다. 햄릿의 아버지인 유령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지은 죄를 회개하며 煉獄(연옥)에 있다. 그의 죄는 그가 아들 햄릿에게 처벌해 주기를 바라는 죄와 같은 종류의 죄이다:

<나는 너 아버지의 혼령,
밤이면 잠시 지상에 나타나고
낮에는 지옥의 業火(업화)에 싸여
살아생전에 지은 더러운 죄가
죄다 불에 타서 淨化(정화)될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할 운명. 그러나 내가
내가 갇혀 있는 감옥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않다면,
감옥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 마디라도 한다면
너의 혼은 빠지고 너의 젊은 피가 얼어붙을 것이며
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성난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갈가리 곤두설 것이다〉


惡의 뿌리는 인간자체에 있다

유령은 정말로 죄인이었다. 그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다. 세상에 있는 악은 특별히 부패하다고 생각하는 현 세대의 산물이 아니고 以前(이전)의 부패했던 세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악이다. 악의 뿌리는 인간 자체 안에 있다. 우리가 가진 악의 性向(성향)을 전통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 된다.

그런 전통 자체가 죄가 있는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原罪(원죄)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악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래서 인간은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부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생각이다.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비도덕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운명적으로 처하게 되는 이러한 暗鬱(암울)한 삶의 조건을 냉엄하게 표출하고 있는 ‘햄릿’은 지금까지 쓰여진 모든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비관적이라고 해도 誇言(과언)은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美(미)와 榮光(영광)을 看過(간과)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인간적인 한계를 초월할 만큼 아름답고 知力(지력)이 뛰어나고 博學(박학)하며 英勇(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참으로 걸작품이야. 이성은 뛰어나고 능력은 무한하며 자태와 거동은 훌륭하기 이를 데 없고 지혜는 천사요 神(신)과 같으며 지상최고의 아름다움이고 동물의 典範(전범)이란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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