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 ⑦

超人에서 人間으로 下降(하강)하는 햄릿
# 21
햄릿은 虛點(허점)이 없는 완벽한 인간이지만…


인간에 대한 햄릿의 이러한 찬사는 바로 자신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햄릿의 정신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만 外見(외견) 아래 숨어 있는 精髓(정수)를 놓치지 않으며 어리석음에 대한 屈從(굴종) 보다는 지혜의 탐색에 민첩하다.

정신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뛰어나게 훌륭하며 大膽無雙(대담무쌍)하고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는 허점이라고는 없는 완벽한 인간이다. 너무나 완벽해서 초자연적인 존재의 도움이 없이 만인의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햄릿은 인간에 대한 찬사의 끝에 “흙으로 만든 만물의 精髓(정수)인 인간이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And yet to me, what is this quintessence of dust?) 인간이 싫다. 여자도 싫고…”라며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한다.

동물의 典範(전범)이라는 인간은 동물일 뿐이고 인간이 사는 세상은 너무나 병이 들어 세상의 아름다움도 毁損(훼손)되어 있다. 햄릿의 인간에 대한 讚辭(찬사)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또한 逆說的(역설적)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거의 상실했다. 그는 햄릿을 나쁜 사람으로 그리기를 원했음에 틀림없다. 햄릿을 통해 神(신)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을 죽이는 생각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햄릿은 기도하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클로디어스가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를 죽이지 않는다.

〈칼을 치워라, 좀 더 끔찍스러운 때를 기다려라.
취해서 곤드라질 때거나 화를 내어 발광할 적에나
자리 속에서 음란을 탐하거나
악담을 하며 노름을 하거나 그 밖의 무엇이든
구원 없는 악행에 빠져있을 때에
저놈의 발뒤꿈치가 천당을 향해 발버둥치고
저놈의 혼은 저놈이 가는 지옥처럼 저주받고 검게 되도록
그 때에 저놈을 처치하자.〉

햄릿은 영국 왕에게 보내는 위조편지에서 로젠크랜쓰와 길덴스턴을 보는 즉시 처형하여 죽기 전에 贖罪(속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도록 지시한다. 이와 같이 햄릿은 肉身(육신)의 살해는 물론 영혼의 살해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냉혹한 살인자이다. 희생자에게 구원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살인자는 정말로 대단히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이 나쁜 사람에게 한 가지 德性(덕성)을 부여된다. 그것은 정치적 행동이다. 햄릿은 마지막 숨을 쉬면서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며 왕위를 포틴브라스에게 移讓(이양)한다. 그는 정치가이고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군주이다. 인간에게 환멸을 느끼고 세계의 아름다움과 전범을 懷疑(회의)하게 되더라도 국민을 배려하는 정신은 찬탄할만하다.

초인간적일 만큼 뛰어난 인물인 햄릿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서 끊임없이 죄악의 인간세계로 回歸(회귀)하지만 種族(종족)이 살아남도록 하려는 의지와 행동에서는 초인적인 面貌(면모)를 보여준다.


# 22
淨化(정화)의 깃발을 들어야하는 햄릿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불만이 단지 개인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를 타락시키는 가치관이나 태도는 근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부패한 가치관이나 태도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햄릿의 현실에 대한 불만은 개인적인 타락이나 부패보다는 개인이 몸담고 있는 현실적 세계에 대한 것이다.

햄릿은 사회전체에 反旗(반기)를 들고 있다. 그는 ‘덴마크는 타락한 상태에 있다’고 한탄한다. 타락은 덴마크 궁정의 문제이다. 이점이 극 전체를 통해서 강조된다. 국왕과 국가는 상호간에 매우 닮았다.

혼란 상태에 있는 것은 햄릿이 아니고 시대이다. 시대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자신도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을 햄릿은 알고 있으며 이점이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의 어려움이다. 淨化(정화)의 깃발을 들고 부패한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햄릿의 운명이다:

〈세상이 혼란 상태에 빠져있구나! 이 무슨 詛呪(저주)인가
내가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햄릿은 삼촌과 어머니의 타락을 통해서 덴마크 궁정 전체의 타락을 보게 된다. 그는 국왕 클로디어스를 酒色(주색)에 빠져 있는 살인자로 간주한다. 왕비는 타락에 젖어 있다.

국민의 삶에는 관심도 없이 권력쟁취에 餘念(여념)이 없는 정치인들은 원칙도 없이 時流(시류)에 迎合(영합)하고 권모술수에 능할 뿐이다. 여인들은 궁정의 음모에 이용되는 도구가 되고 나아가 매춘부의 역할을 기꺼이 自任(자임)한다. 친구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의 가치는 퇴색해 버렸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햄릿은 “사람이란 계속 미소를 지으면서도 악한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덴마크에서는 확실히 그런 것 같다”라고 고통스럽게 부르짖는다. 인간은 천사의 모습을 하고서 악을 행할 수 있으며 이런 일이 덴마크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햄릿의 판단이다.


미소를 지으며 惡行(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

햄릿이 극중극에서 시험하고 있는 것은 유령의 信賴性(신뢰성)이나 왕의 양심만이 아니고 덴마크궁정의 도덕성이다. 덴마크는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다. 셰익스피어는 도덕적으로 병든 덴마크의 사회를 대단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폴로니어스는 권모술수에 능하고 파리에 유학 중인 아들은 환락에 빠져 있다.

클로디어스는 살인과 簒奪(찬탈)의 重罪(중죄)를 범한다. 노르웨이의 포틴브라스 왕자는 덴마크를 가로질러 폴란드를 침공하며 그의 部隊長(부대장)은 이를 당연한 世上事(세상사)로 받아들인다. 클로디어스도 침공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마음에 든다.”라고 말한다. 햄릿은 폴란드침공을 덴마크의 부패와 연관 짓는다:

〈이것은 富(부)하고 안일에 빠지면 생기게 마련인 종기,
안에서 곪아 터져도 밖에는 아무런 증세가 없으니
목숨을 잃고 말 수 밖에〉

오필리어는 햄릿으로부터 창녀가 되라는 등 무자비하게 모욕을 당한다. 문학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에서 햄릿이 토해내는 합리적이고도 고매한 말들은 비참한 상태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왕비의 마음을 匕首(비수)처럼 찌르며, 타락했지만 인간적인 그녀의 가슴을 둘로 갈라버린다. 햄릿은 獨白(독백)과 무덤의 장면에서 덴마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배신과 불행을 상징하는 인물 폴로니어스

햄릿은 宮內大臣(궁내대신) 폴로니어스를 너무나 경멸한 나머지 한 순간의 동정도 베풀지 않고 바로 그의 가슴을 찔러버린다. 햄릿에게는 폴로니어스가 인간의 배신과 불행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폴로니어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는 기술'이 출중하다고 스스로 자랑할 만큼 궁내대신의 역할을 잘 해낸다.

정치적으로 그는 권모술수가이고 도덕적으로는 햄릿이 그의 面前(면전)에서 바로 말하듯이 생선장수 같다. 그에게는 도덕적 가치도 거래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폴로니어스는 햄릿 앞에 딸을 풀어놓기('loosed' 이 단어는 가축업자의 용어) 전에 결혼시장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딸에 대한 햄릿의 애정을 경계한다:

〈음, 내가 가르쳐 주마. 순수하지도 않은 그런 제안을
진정한 것으로 받아 들였으니 너는 어린애라고 해야 겠구나.
좀 더 비싸게 값을 불러라.〉

그리고

〈그의 맹세를 믿지 마라. 왜냐하면 그의 맹세는
겉옷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의 사랑의 중개자가 아니라
단지 不淨(부정)한 옷을 입은 사랑의 권유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라며 오필리어에게 햄릿과 절교를 명령한다.


# 23
철학적 이상주의를 排擊(배격)하게 되는 햄릿


햄릿이 看破(간파)한 것은 폴로니어스 뿐 아니라 폴로니어스 같은 인간을 용납하는 사회 전체의 도덕성이다. 햄릿은 지금까지 오필리어를 사랑해왔지만 이제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면서 오필리어를 개인적으로는 순수하고 죄가 없지만 궁정의 부패한 음모의 저당물로서 생각하게 된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녀를 다르게 보게 되고 다르게 보이는 그녀를 사랑할 수 없다. 오필리어가 음모의 도구가 된 것을 알고 난 이후 햄릿은 무자비하게 되고 극중극 장면에서는 그녀를 창녀로 취급하며 그녀 뿐 아니라 자신마저도 冒瀆(모독)한다.

햄릿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세계에 대한 그의 새로운 시각을 행동과 일치시키는 데에 있다. 그는 그러한 행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유능하고 인기가 있는 왕자였다.

그는 유령을 따라가고, 극을 연출하며, 어머니에게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노인을 죽이고, 영국으로 가는 배에서 맞이하는 위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등 극 전체를 통해서 필요할 때는 대담하고도 결정적인 행동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특별히 그의 양심을 괴롭히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행동에 바로 옮기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는 것은 국왕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절대적인 의미에서 죽이는 것을 ‘나쁘게’ 간주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국왕을 죽인다는 것이 복수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왕의 살해를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햄릿을 優柔不斷(우유부단)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햄릿은 행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는 그의 개인적인 불행과 나라의 부패를 모두 국왕 탓으로 돌리고 그를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폴란드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歸還(귀환)하는 젊은 포틴브라스가 덴마크를 통치하게 될 것인데 이것은 햄릿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햄릿이 처한 困窮(곤궁)한 상황은 현대 지식인이 직면해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지식인의 이념과 가치는 그의 행동과 葛藤關係(갈등관계)에 있다. 지식인의 사고와 행동이 분리되는 것은 지식인에게는 그의 이념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이나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권력의 집행과정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사상과 예술의 세계로 도피하여 행동보다는 가치를 상위에 두고 부패한 현실로부터 자신의 이념을 防禦(방어)하려고 노력한다.

햄릿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그는 행동의 세계로부터 도피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喪失(상실)의 청년 햄릿은 현실에 소속하지 못하는 것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고 냉소적이며, 경멸적이고, 그의 언어는 국왕과 왕비 등 현실의 인물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러한 햄릿을 현대의 지식인들은 이상적인 인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이상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劇(극)의 후반에 가서 절망의 벼랑 끝에 서게 된 햄릿은 사고와 행동의 분리를 거부하며 덴마크의 궁정으로 돌아온다. 오필리아의 죽음으로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햄릿은 “덴마크의 국왕 햄릿이다!”라고 절규하며 무덤으로 뛰어 든다.

그는 모든 의심을 떨쳐버리고 현실에 뛰어 들어 행동에 나선 것이다. 햄릿이 행동의 필요성을 조용히 수용하는 극의 마지막 장인 5幕(막)의 분위기는 서럽도록 節制(절제)되고 차분하다. 햄릿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더 이상 냉소적이지도 않다. 그의 마음은 다가오는 도전에 냉소도 속임수도 없이 용감하게 맞서려는 戰意(전의)로 가득 차게 된다.

5幕(막)은 햄릿이 처한 문제의 극적인 해결이 아니라 인간적인 품위의 회복과 철학적 이상주의의 排擊(배격)을 담고 있다. 이상주의적 인간이 되고자 하였던 햄릿은 다시 덴마크의 왕자로 돌아와서 16세기의 왕자라면 당연히 해야 되는 일-아버지의 살인자를 죽이고 멍청한 레어티즈를 용서하고 당연히 자신의 것인 王座(왕좌)에 관심을 표시하고 죽어가면서 왕좌를 포틴브라스에게 양위하는 것-을 한다.

이것은 햄릿이 대표하는 모든 것에 대한 거의 전적인 패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패배는 인간은 이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적인 승리이다.


# 24
超人에서 人間으로 下降(하강)하는 햄릿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인물들 중에서 최고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는 로미오(Romeo)의 정열과 핱스퍼의 용맹과 대담성,

폴스타프의 機智(기지)와 知慧(지혜), 리차드 2세(Richard Ⅱ)의 詩的(시적)인 상상력, 브루투스(Brutus)의 이상주의, 헨리 4세(Henry Ⅳ)의 단순성과 동정심,

리처드 3세(Richard Ⅲ)(셰익스피어 사극 ‘리처드 3세’의 주인공)의 냉소와 反語(반어)를 가진데다 뛰어난 類推(유추)의 능력과 冥想的(명상적) 멜랑콜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진실과 사랑과 창조와 무엇보다도 이러한 가치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자유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상적인 超人(초인) 햄릿이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다. 만약 예수가 이런 지시를 받았더라면 그것을 수용했어야 했을까? 거의 모든 독자와 해설자와 비평가들은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것은 햄릿의 의무이며 좀 더 빨리 죽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殺害(살해)의 遲延(지연)은 햄릿의 약점이고 재난이며 이로 인해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햄릿이 유령의 명령에 좀더 일찍 복종하였더라면 아버지의 살인자에게 복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 역사는 流血(유혈)이지만…

햄릿이 왕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독자와 관객의 일치된 생각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억울하게 당하고도 제대로 보복을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의식 속에 축적되어 있으며 이렇게 좌절된 복수가 種族的(종족적)복수심(racial revenge)으로 보편화되어서 작중인물에게 복수심을 投射(투사)함으로써 만족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 개개인이 모두 종족복수의 저수지라면 또한 드물지만 수백년 동안 복수에 저항하는 경향의 저수지일 수도 있다. 극장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날 기회는 없다. 관중 속에서 우리는 극을 詩(시)가 아니고 드라마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민한 독자는 조용한 곳에 혼자 있을 때는 햄릿이 사람을 죽이며 피를 흘린다는 생각에 戰慄(전율)할 것이다. 물론 近親復讐(근친복수)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었고 복수는 시인들이 選好(선호)하는 주제였다. 역사 자체가 流血(유혈)이다.

그런데도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아”라는 모세의 율법 못지않게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附言(부언)도 상상의 왕국 詩에서는 절대적인 것으로 존속해 왔다. 관습이 복수의 피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고 국가가 이를 합법화며 낭만이 그 것을 위장하더라도 인간본성의 보다 선한 면으로 보면 복수의 피는 流血(유혈)인 것이다.


詩(시)의 궁극적인 기능은 인간의 잔인성에 맞서 인간을 방어하는 것

인간의 殘忍性(잔인성)에 맞서서 인간을 방어하는 것이 詩의 궁극적인 기능이다. 가장 위대한 詩는 野蠻性(야만성)으로 위협받고 있는 세상을 하나의 城砦(성채)처럼 그리고 있다. 그 성채는 무한의 암흑에 둘러싸여 흔들리고 있는 하나의 촛불처럼 崇高(숭고)하다.

최초의 햄릿은 王位(왕위)에 대해서는 관심을 전혀 두지 않고 극예술이나 연기와 劇作(극작)에 몰두한다. 예술에 전념하는 모든 사람들처럼 그는 철학과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그는 그 자신이 상상력의 천재이기 때문에 그의 상상력을 촉진시켜줄 폴스타프같은 인물이 필요 없다. 햄릿은 그 자신이 폴스타프이다.

햄릿의 아버지 大 햄릿은 생전에 주로 전쟁에만 관심이 있었고 죽은 후에는 아들에게 복수라는 폭력적 행동을 명한다. 햄릿은 그 명령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햄릿은 존재의 바탕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그는 복수라는 파괴적 폭력과 이에 반대하는 양심사이에서 방황하며 복수를 遲延(지연)하게 된다. 그는 전쟁영웅 아버지처럼 복수를 즐기기에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도덕적이며 知的(지적)인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햄릿의 복수지연은 비난대신에 칭찬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복수를 지연하는 것은 그의 고매한 영혼이 아직 살아있으며 아무런 갈등도 없이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힘이 비슷한 두 팀의 줄다리기에서 로프는 처음에는 꼼짝하지 않고 있지만 한 쪽 편의 힘이 빠지면 로프는 갑작스레 난폭하게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햄릿은 복수를 遲延(지연)하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빠르게 행동한다.

햄릿은 마침내 레어티즈의 수준으로 下降(하강)한다. 햄릿은 레어티즈와의 결투에서 毒劍(독검)을 맞고 거의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레어티즈를 죽이고 왕에게 복수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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