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日常(일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햄릿은 무덤으로 뛰어 들며 자신이 왕자라고 선언한다. “이 사람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다”라는 햄릿의 宣言(선언)은 적들의 어떠한 위협에도 왕자로서의 위신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레어티즈에 호통치는 말은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自我(자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뭘 하겠어? 자, 말해 봐.
울 테야? 싸울 테야? 단식? 옷을 찢어?
눈물이나 나게 식초를 마실 테야? 거짓 눈물을 흘리게 악어를 먹을 테야?
나도 하겠어. 훌쩍거리려고 여기 왔어?
오필리어의 무덤에 뛰어 들어 나와 맞서겠다는 건가?
함께 생매장을 당하겠다고? 나도 묻히겠다.
산이 될 때까지 흙을 덮어서 평지가 산이 되라고 하였지? 흙을 퍼붓게 하라
우리 위에 흙을 얼마든지 올려서 꼭대기가 黃道(황도)에 그을리며
오사山도 사마귀처럼 작게 보이게 하라. 아니 마음대로 말해봐
나도 너만큼 떠들 수 있어.〉
행동이 말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 행동은 거짓과 위선이 된다. 햄릿은 말과 행동의 일치를 불가능하게 하고 말 자체가 위선과 假裝(가장)이 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인간사회에 절망하고 분노한다. 햄릿같이 절대정의를 추구하는 도덕주의자들에게는 분노가 일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햄릿은 끝에 가서
〈때에 따라서는 무분별이 도리어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심사숙고한 계획도 실패하는 수가 있으니까.
손질이야 우리가 대강 해놓겠지만
마지막 끝마무리를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라며 外見(외견)뒤에는 사물의 운행을 섭리하는 神(신)이라는 全能(전능)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햄릿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그는 왕을 죽인다. 그는 邪惡(사악)한 악의 종양을 제거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은 물론 7명의 다른 사람들도 죽는다. 비극 ‘햄릿’이 우리의 心琴(심금)을 울리는 것은 참새 한 마리의 죽음에도 神(신)의 섭리를 발견할 만큼 심원한 사고력과 외견의 껍질을 뚫고
실재를 직시할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부패한 사회에 迎合(영합)하지 않고 절대정의를 추구하는 햄릿이 인간적인 한계와 부패한 사회조건으로 인해 패배와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淨化(정화)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의 제물이라 하겠다.
# 29
“模糊(모호)한 말은 우리를 망치게 한다”
“….幽靈(유령)에게 말해 보게, 호레이쇼.'(마셀러스)
“응답이 있을 거야.” (베르나도)
“하늘의 이름으로 엄중히 명한다. 말을 하라.”(호레이쇼)
“나에게 말을 하라. 오, 말을 해다오!”(호레이쇼)
“말을 해 보라(speak)”라는 응답 없는 말은 ‘햄릿’의 1막 1장 전체를 통해서 종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유령과의 대화에는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把守兵(파수병)들이 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문제는 1막 1장의 특수한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고 작품 전체에서 걸쳐 일어나고 있다.
‘햄릿’에서는 誤解(오해)는 가장 흔한 현상이다. 햄릿은 왕을 포함한 궁정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도 없다. 궁정의 사람들로서는 왕자의 거칠고 혼란스러운 말들을 이해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언어적으로 햄릿과 遭遇(조우)한다.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는 서로 가장 가까운 관계임을 상기시키며 햄릿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폴로니어스와 로젠크랜쓰 및 길덴스턴은 햄릿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필리어는 햄릿의 미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 자신이 광인이 된다. 오르직과 묘지일꾼들은 햄릿을 공격하여 그로 하여금 “模糊(모호)한 말은 우리를 망치게 한다”라고 고백하게 한다.
문제는 언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어려움은 행위의 領域(영역)에 존재하는 어려움을 반영한다. 햄릿에게는 실제적이고 치명적이며 象徵的(상징적) 차원의 복수라는 과업이 있다. 그의 복수는 아버지와 클로디어스에 대한 관계, 국가에 대한 관계, 인간적이면서도 神적인 正義(정의)에 대한 관계를 나타내어야 한다.
햄릿은 복수에 대한 압력이 강해짐에 따라 복수의 실행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발견한다. ‘햄릿’에서 무엇이라도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어떠한 일이라도 행위로 옮기는 것도 어려워진다. 이러한 문제는 햄릿 뿐 아니라 그와 관련을 맺는 모든 사람들에게 타격을 준다.
햄릿과 接(접)하게 되는 클로디어스를 비롯한 그 밖의 모든 인물들도 행동의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덴마크의 부패는 언어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상징적 체계인 사회의 뿌리를 공격해 버린 것이다.
모호한 언어와 이로 인해 행위가 어려워지는 문제-이런 문제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1막 1장은 의사소통 불가능이라는 문제와 원인을 암시해 준다. 마셀러스와 베르나도는 유령에게 말을 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전문가를 불러온다: “호레이쇼, 자네는 학자가 아닌가? 유령에게 말해 보게.”
그러나 호레이쇼도 의사소통의 難關(난관)을 뚫을 수가 없다. 그는 말없는 유령에게 말을 하도록 권유하는 말을 쏟아내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무력을 사용해보지만 그것도 허사가 된다. 마침내 그는 先王(선왕)의 형상을 가진 유령이 왕자인 햄릿에게는 입을 열 것이라는 생각에서 햄릿에게 自初至終(자초지종)을 알리기로 한다.
호레이쇼나 마셀러스는 유령을 상대할 적임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유령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유령과 적절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들은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언어가 부족하다.
그들은 유령과의 대화에 필요한 儀式(의식)이나 儀禮(의례)에 대해 무지하다. 유령은 그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전적으로 새로운 대상이다. 유령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異例的(이례적)인 존재이고 그들에게는 유령을 취급하는 필요한 관습적 언어나 儀式(의식)이 결여되어있다.
우리가 유령을 보기 전에도 덴마크의 문제는 儀式(의식)의 典範(전범)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징후를 보게 된다. 극에 나오는 첫 번째 말부터 儀式(의식) 순서의 顚倒(전도)현상을 보여준다.
〈베르나도. 게 누구얏?
프란시스코. 아니, 대답을 해라. 정지하고 신분을 밝혀!〉
未知(미지)의 인물이 哨兵(초병)에게 정체를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은 顚倒(전도)된 의식이다. 그리고 경계병들은 그들의 경계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단지 뭔가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알뿐이다. “자, 앉아서 아는 사람은 말 좀 하게나”라며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밤마다 파수를 세워 경비를 엄하게 하며
나라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뭐지?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대포를 鑄造(주조)하고
전쟁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외국과 거래하는 이유는?
왜 배만드는 목수를 징발하여 일요일도 평일도 쉬는 날도 없이 힘든 일을 시키지?
무슨 사태가 臨迫(임박)했기로 이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지땀을 흘려야하는가?
어디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주게나.〉
# 30
儀式(의식)의 파괴가 變則(변칙)을 낳는다
일요일과 평일 사이 그리고 밤과 낮 사이에 구별이 없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는 사소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대단히 충격적인 유령의 출현과 동일한 範疇(범주)에 속한다.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겪다보니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관습과 儀式(의식)에 대한 확신을 剝奪(박탈)당하고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햄릿이 파수병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유령에 대해서 뿐 아니라 클로디어스왕의 근황에 대해서도 물어 본다. “북과 나팔의 풍악”에도 불구하고 클로디어스마저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다. 왕의 儀式(의식)도 의미의 전달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剝奪(박탈)당한 儀式(의식)에 대해서 유령이 햄릿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살아생전의 모든 죄를 지고서
聖餐(성찬)도 최후의 塗油(도유)받지 못하고 告解(고해)도 못한 채
죄를 청산도 못하고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목숨이 끊겨서 저승길에 나오게 되었다〉
大(대)햄릿의 피살은 형제살해와 정치적 암살에다 이어서 간통과 近親相姦(근친상간)에 까지 이어지는 “가장 추잡하고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것이었다. 이제 유령은 “더러운 죄가 모두 불타서 정화될 때까지”, “밤마다 헤매고 다녀야 한다.”
大(대) 햄릿의 암살은 ‘햄릿’에서 첫 번째의 “손상된 의식”이며 이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난다. 특히 죽음과 埋藏(매장)의 경우에 그렇다. 폴로니어스와 오필리어는 비밀히 매장된다. 레어티즈는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儀式(의식)의 典範(전범)에 맞추지 않고 비밀히 매장한 것을 클로디어스에게 강력하게 항의한다.
그리고 오필리아의 ‘略式(약식) 매장’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난은 정당한 의식의 부재에 대한 강력한 항의이다. 그러나 햄릿의 시야는 보다 넓고 깊어서 레어티즈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기존의 의식은 부패해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
大(대) 햄릿이 살해되어 유령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은 儀式(의식)의 파괴로부터 緣由(연유)하는 치명적인 變則(변칙)의 결과이며 이로 인해서 새로운 의식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다. 햄릿이 복수의 책임을 지도록 명령을 받는 것은 새로운 의식에 대한 필요를 암시한다.
望樓(망루)에서 궁정으로 무대를 옮겨 보면 햄릿 자신이 變則(변칙)의 化身(화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혼과 戴冠式(대관식)을 축하하는 賀客(하객)들 가운데서 햄릿은 죽음과 簒奪(찬탈)을 슬퍼하면서 홀로 앉아 있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노골적인 변칙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는 서로 양립하는 말을 함께 쓰는 矛盾語法(모순어법)을 사용하여 햄릿을 제압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형수요 지금은 왕비를
짐은 패배한 기쁨처럼
祥瑞(상서)로우면서 아래로 처진 눈으로
장례식엔 환희로서, 결혼식에서는 輓歌(만가)로
즐거움과 슬픔을 똑 같이 저울질하며
과인의 妃(비)로 맞이하였소>
이러한 저울질은 속임수이지만 효과는 있다. 朝臣(조신)들은 ‘지혜롭게도’ 이런 일에 잘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햄릿만이 현실은 그렇게 쉽게 조작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왕과 조신들에게 상기시킬 뿐이다. 햄릿은 파괴된 의식에 굴하지 않는 변칙적인 인물이다.
# 31
덴마크는 병이 든 것이다
햄릿과 클로디어스의 대결에서 클로디어스의 무기가 矛盾語法(모순어법)이라면 햄릿의 그것은 신소리
그래서 신소리는 극 전체를 통해서 햄릿이 실행하는 역할의 典型(전형)이 된다. 햄릿과 클로디어스간의 말의 대결은 물리적 대결을 前兆(전조)하고 있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에게 〈“my cousin Hamlet, and my son'(내 조카요 이제는 나의 아들)〉이라고 인사를 하지만
햄릿은 〈“a little more than kin, and less than kind'(친척치고는 좀더 되지만 부자취급은 안될 말이지)〉라고 응답한다(방백).〈*cousin kinsman of any kind except parent, child, brother or sister〉
햄릿은 자신에게 삼촌이면서 아버지도 되는 클로디어스와의 重複的(중복적)친척관계를 상스럽고 부자연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클로디어스는 묻는다,〈“How is it that the clouds still hang on you?' (어째서 아직도 구름이 너를 덮고 있는 거냐?) “Not so my lord; I am too much in the sun.' (그렇지 않습니다. 햇빛을 너무 많이 받고 있습니다)〉
-왕이 주는 관심의 햇빛(sunshine)과 重複(중복) 부모에 대한 ‘과중한 아들 되기’(sonship)는 따가운 햇볕 속에 있는 것처럼 혐오감을 준다. 햄릿의 신소리는 단어의 의미를 任意(임의)로 남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또한 의도적으로 단어 간의 차이를 모호하게 하면서 타협을 모색하는 클로디어스의 의도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결혼식과 戴冠式(대관식)으로 축제의 분위기에 싸여 있는 궁정에서 햄릿의 복장과 태도-그의 검은 상복과 아래로 내리 깐 눈-자체는 결혼의 의미에 장례식의 의미를 附加(부가)하면서 일종의 말없는 신소리가 된다.
햄릿의 신소리는 언어외적인 사회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햄릿은 實在(실재)와 연결 관계를 상실한 궁정의 언어를 이해하지 않으려 하고 할 수도 없다. 살인의 죄를 범한 클로디어스왕이 다스리는 덴마크에서는 언어가 올바른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喪失(상실)한 것이다.
햄릿의 신소리는 덴마크라는 국가건물의 구조적 결함을 지속적으로 탐색하면서 그 건물을 붕괴시키려고 위협한다. 그는 클라디우어의 모순 어법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분위기를 一觸卽發(일촉즉발)의 위기까지 몰고 간다.
햄릿의 공격적인 신소리는 그의 三段論法(삼단논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가 클로디어스의 모순어법을 戱畵(희화)해서 말하는 “나의 삼촌-아버지와 나의 숙모-어머니”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삼단논법적 推論(추론)에 의해 國王(국왕)이 단순히 ‘dear mother'가 되는 歸謬法(귀류법,reductio ad absurdam)에 도달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자와 여자이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다. 고로 그는 나의 어머니이다.”
클로디어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삼단논법은 미친 짓이다. 이것의 논리는 햄릿의 奇怪(기괴)한 기질 때문이다. 정신이 제대로 맑은 사람은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라는 것은 隱喩的(은유적)이며 상징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미친 사람만이 언어적 대화에서 문자 그대로를 믿는다는 것을 안다.
미친 사람은 사회적인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가 완전히 실천할 수 없는 관습의 의미를 탐색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가 숨기고 있는 缺陷(결함)을 노출시키게 된다. 언어의 의미를 執拗(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햄릿은 관습과 타협의 숨은 결함을 가차 없이 赤裸裸(적나라)하게 밝혀낸다.
햄릿 뿐 아니라 狂氣(광기)와 狂言(광언)이 국가에 미치는 위협은 오필리어에게서도 나타난다. 오필리어는 정상적인 행동의 범위 내에서는 자신의 경험이나 입장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광기에서 가장 효과적인 표현수단을 찾는다.
미친 오필리어가 쏟아내는 말은 클로디어스에게는 詛呪(저주)와 같은 반응을 일으킨다. 맑은 정신으로 하는 이성적인 비난이나 고발에 대해서 클로디어스도 이성적으로 대답을 하고 방어할 수 있다. 그는 레어티즈의 공격적인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狂人(광인)의 광기가 뿜어내는 비난에 대해서는 노련한 클로디어스도 束手無策(속수무책)이다. 이것은 정상인의 정상적인 언어자체가 저주를 받아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덴마크는 병이 든 것이다.
# 32
진실은 현실이라는 때묻은 옷을 입고 있다
햄릿을 除外(제외)한 궁정의 나머지 사람들은 일상적인 표현양식에 어떠한 잘 못도 보지 못한다. 햄릿은 심지어 유령이 그 앞에 나타나기 전에도 궁정의 언어에 왜 거부감을 느끼고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타협도 배척할까?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표현은 왜 전통적인 樣式(양식)에서 벗어나 있을까? 그 이유는 햄릿이 비극적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인간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는 도달 불가능한 가치에 대해 排他的(배타적)이며 절대적인 욕망을 가진다. 둘째 그 결과로서 그의 욕망은 전부 아니면 無(무)를 추구하고 전부와 無 사이의 중간지대나 近似値(근사치)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며 가치에 대한 어떠한 상대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햄릿은 전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무를 선택한다.
實在(실재)와 이를 표현하는 언어 사이에는 갈등과 모호성이 존재하며 이는 모든 언어표현을 단순한 外見(외견)으로 만든다. 달리 말해서 인간의 언어는 실재를 완벽하게 나타낼 수 없으며 실재와 외견 사이에는 間隙(간극)이 필수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외견에 만족하지 못하고 실재를 추구하는 절대주의자 햄릿은 외견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외견인 모호한 세계에서는, 그래서 오해와 誤認(오인)이 불가피한 세계에서는 어떠한 언어적 상징도 실재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
사물의 內的(내적)인 眞髓(진수)에 대한 햄릿의 執着(집착)은 고귀하지만 無味乾燥(무미건조)하다. 自我(자아)와 세계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것은 젊은이다운 고귀한 행동이다. 햄릿같은 인간에게는 진리는 현실과 遊離(유리)된 독립적인 것이다.
햄릿은 진리는 현실의 때 묻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벌거벗은 裸身(나신)의 진리를 요구한다. 햄릿이 性的(성적)으로 혐오감을 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가 현실 세상과의 거래에서 그의 영혼이 강간당하였다는 느낌에서 현실에 반역하기 때문일 것이다.
햄릿은 모든 言行(언행)이 모호한 외견에 불과한 세상에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며 일종의 매춘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햄릿이 복수를 遲延(지연)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모든 말과 행동을 단지 외견과 위선적 遊戱(유희)로 간주하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언어와 儀式(의식)으로부터 遊離(유리)되어 있는 젊은이에게 아버지의 아들답게 말하고 행동하라는 威壓的(위압적)인 명령이 떨어진다.
유령이 햄릿에게 의식의 규범(ritual modes)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거친 正義(정의)'의 복수가 아니고 복수의 과정에서 질서 있고 의미 있는 행동과 말을 요구하는 것이다. 언어의 수준에서 햄릿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은 행동의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모든 표현이 모호한 외견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햄릿의 복수는 모호성이 없는 명백한 행동이 되어야 한다. 햄릿은 죽은 아버지의 명령 뿐 아니라 진실을 명백하게 표현하려는 자신의 요구도 만족시켜야 한다.
햄릿이 직면한 표현의 문제는 햄릿에게만 있는 문제일 뿐 아니라 살인과 簒奪(찬탈)과 간통과 근친상간의 죄악으로 오염된 덴마크의 문제이기도 하다. 죄악이 主流(주류)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는 언어는 진실을 표현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진실과는 거리가 먼 외견만이 존재하게 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