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 ⑩

未來는 現在를 거짓으로 만든다
# 33
가치의 永續(영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시간


그러나 극의 진행과 더불어 이런 外見(외견)의 문제들과 함께 햄릿 뿐 아니라 모든 비극적인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극중 왕(the Player-King)이 이런 문제를 선명하게 언급한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이자 역사의 문제이며 시간 속의 표현의 문제이다. 시간은 瞬間(순간)마다 현재를 과거로 만들며 현재의 가치를 퇴색시키며 가치의 永續(영속)을 불가능하게 한다. 만물은 流轉(유전)하고 진리는 시간에 의해 변화하게 되어 있어서 영원한 것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말을 하는 순간 그 말은 信憑性(신빙성)이 없는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다. '곤자고의 살해'에서 극중 왕은 남편이 죽더라도 결코 재혼하지 않겠다는 아내의 맹세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대가 지금 하는 말 진심으로 믿는 바이오.
그러나 우리가 결심한 것을 종종 우리가 깨뜨리는 법이요.
각오란 필경 기억의 종살이, 태어날 때는 아무리 강해도 지탱할 기운이 약한 것이요.
선 과일처럼 지금은 나무에 달려 있어도 익으면 저절로 땅에 떨어집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에 진 빚이니 우리 스스로 갚기를 잊어버리는 것은 필연이지요.
격정에 휩쓸려 約定(약정)한 일은 격정이 식으면 잊어버립니다.
강렬한 슬픔이나 기쁨은 그것의 강렬한 실행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가장 큰 곳에 가장 큰 슬픔이 있어요.
사소한 일로도 기쁨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소. 그러니 이상할 것 없어요.
처지에 따라 우리의 사랑이 변한다 하더라도.

내 말을 정리하자면
사람의 의도와 운명은 相反(상반)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은 언제나 뒤집혀지기 마련이란 말이요.
생각은 내 것이로되 생각의 결과는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극중 왕은 아내의 진실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는 인간의 각오나 결심의 妥當性(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생각은 삶의 노예이고 삶은 시간의 어릿광대이다. 생의 道程(도정)에서 생각은 삶의 從屬變數(종속변수)이며 삶은 시간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어릿광대의 희극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과 표현이 일치하더라도 시간의 진행은 인간의 의지를 거짓말로 만든다.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에 있는 세계에서 “생각은 내 것이로되 생각의 결과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나 의도의 信憑性(신빙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시간의 문제가 햄릿의 독백 “사느냐 죽느냐”를 영원한 딜레마로 만든다. 인간의 어떤 행동도 불확실성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불확실성은 死後(사후)세계에까지 연장되기 때문에 죽음이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햄릿의 양심은 그로 하여금 미래의 시간에 일어날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생각만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은 우리 모두를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며,
그래서 처음 覺悟(각오)할 때의 생생하던 決意(결의)의 색채는
생각의 창백한 그늘 때문에 병색이 되고
크고 중요하던 일도 이로 인해서 흐름이 뒤틀려서
마침내 실행의 명분을 잃고 마는 것이다.〉


# 34
未來는 現在를 거짓으로 만든다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는 같을 수 없다는 우울한 생각으로 인해 햄릿은 사랑도 또 하나의 僞善(위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위선의 세계에서는 진실한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필리어: 왕자님께서 주신 선물이 여기 있습니다. 벌써부터 돌려 보내드리려고 했어요. 받아 주시옵소서.
햄릿: 아니. 나는 선사한 적이 없어.

사랑에 대한 어제의 盟約(맹약)도 오늘의 거짓이 되는 것이다:

〈햄릿: 내가 당신을 사랑한 적이 있었지.
오필리어: 정말이에요, 왕자님, 저도 그렇게 믿었어요.
햄릿: 당신은 나를 믿지 말았어야지. 낡은 바탕에 아무리 미덕을 접붙여 보았자 소 용없어요. 밑동의 본바탕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거든. 나는 그대를 사랑한 적이 없었소.
오필리아: 제가 잘못 생각했었군요.〉

미래가 현재를 거짓으로 만드는 실존의 세계에서는 행동 자체가 거짓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행동의 고민이 생기게 되며 이러한 고민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적인 삶의 조건에서 자신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내뱉는 “수녀원으로 가라. 왜 죄인을 낳는 사람이 되려는가?”는 삶 자체가 죄악을 잉태하는 현실적 세계를 떠나라는 충고이다.

햄릿에게 墓地(묘지)는 요맄의 해골과 함께 시간의 威力(위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된다. 그것은 모든 행위는 망각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立證(입증)하는 증거이다. 무덤은 알렉산더대왕의 세계정복도 요맄의 장난이나 嘲笑(조소)처럼 무의미하게 만든다.

죽음은 우리 인간의 모든 말이나 행동은 여인의 화장만큼이나 덧없고 거짓된 것이라고 증언한다: <“너 해골(요맄의)은 마나님 내실로 가서 그녀에게 화장을 아무리 진하게 하여도 결국 이런 꼴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란 말이다”〉

이 말에 대한 호레이쇼의 논평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 이상한 것 같습니다”는일반 사람의 맑은 정신에서 나오는 충고이다.

햄릿의 죽음에 대한 허무주의적 시각은 인간사를 모두 歪曲(왜곡)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을 무의미하게 한다.


# 35
탈출로가 없는 햄릿


모든 비극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Sophocles(소포클레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의 Oedipus<에디푸스: 宿命(숙명)으로 인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Thebes(테베)의 왕>는 神託(신탁)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Colinth(콜린쓰)를 떠나 도망가지만 그의 운명을 피하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운명을 실현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인간의 삶은 인간의 統制(통제)를 벗어나 있다고 말한다. ‘햄릿’의 극중 왕의 말이 이에 딱 들어맞는다:

〈우리의 의지와 운명은 너무나 相反(상반)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란 언제나 뒤집혀지기 마련이오.
생각은 우리의 것이지만 일이 되고 안 됨은 우리의 것이 아니오〉

‘햄릿’도 肉身(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한계를 다루고 있다. 극의 초기에 폴로니어스는 오필리어에게 햄릿의 행동을 얽어매는 사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슬은 햄릿이 어느 정도의 자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묶여 있는(tethered)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유용한 이미지이다.

레어티즈도 오필리어에게 비슷한 내용으로 충고한다. 그는 햄릿의 자유를 구속하는 운명적인 한계를 보다 明瞭(명료)하게 표현한다. 그는 왕자의 “의지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왕자님은 신분을 어길 수 없는 몸이어서
일개 평민과는 달리 마음대로 뜻대로 할 수 없는 분이시다.
왕자님의 결정에 온 나라의 安危(안위) 달려 있어.〉

레어티즈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왕위계승권자인 햄릿이 오필리아와 결혼할 자유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햄릿은 先王(선왕)의 아들로서 왕위계승자이고 덴마크의 안전과 복지는 그의 행동에 좌우되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인간이 아무리 일을 잘 처리해도 마무리는 神이 하신다”라는 햄릿 자신의 말대로 인간의 자유의지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햄릿은 개인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존재론적 조건에 의해 묶인 몸일 수밖에 없다.

햄릿은 처음부터 묶여 있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준다. 햄릿에게 덴마크는 감옥과 같다. 실제로 그는 왕의 반대로 위텐버그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덴마크라는 수용소에 억류되어있는 것이다.

왕위를 찬탈한 클로디어스는 불만에 차 있는 햄릿을 덴마크에 묶어 놓고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屈從(굴종)을 ‘정중하고 자발적인’ 것으로 찬양하며 禮砲(예포)로서 축하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햄릿의 탈출로를 무자비하게 차단하는 것이다.

햄릿은 嫌惡(혐오)스러운 클로디어스의 궁정과 클로디어스로 대표되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있다. 햄릿에게는 또 다른 탈출로가 열려있다. 그는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도 神(신)에 의해서 차단된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햄릿은 엘시노에 묶여있다. 그는 왕위계승권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탈출로는 모두 막혀있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을 혐오하는 것이고 육신이 스스로 녹아서 흙이 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햄릿의 실질적 감옥은 물론 물리적 공간보다는 정신적인 것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로젠크랜쓰와 길덴스턴에게 “오 하나님, 제가 나쁜 꿈만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호두껍질에 갇혀서라도 무한한 우주의 왕이 될 수 있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그의 故友(고우)들인 로젠크랜쓰와 길덴스턴은 햄릿이 왕관에 야망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햄릿이 생각하고 있는 나쁜 꿈 또는 그의 말대로 형체 없는 亡靈(망령)은 분명히 유령과 악몽 같이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엘시노에 묶어 놓은 것은 유령이 햄릿에게 부과한 復讎(복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햄릿을 사로잡고 있는 유령은 클로디어스왕 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인물이다. 햄릿은 “I am bound to hear”(나는 들을 의무가 있어요)라며 유령에게 말하라고 요구한다.

유령은 意味深長(의미심장)한 단어 ‘bound”’를 햄릿에게 적용하여 〈“So art thou to revenge, when thou shalt hear.”(너는 내 말을 듣고 난 후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라고 명령한다. 〈“Remember me.”(내 말을 명심해라)〉라는 유령의 명령에는 탈출로가 없다. 햄릿은 육신의 煩惱(번뇌)를 버릴 수 없듯이 아버지의 혼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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