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⑦

헉의 좌절은 우리 인간 모두의 좌절이다
# 13
열광적인 꿈에 불과한 헉과 짐의 뗏목사회


헉과 짐이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내려가는 것은 유람이 아니고 자유에의 추구라고도 할 수 있다. 헉이 잭슨섬으로 돌아와서 搜索隊(수색대)가 오고 있다며 짐을 깨우는 순간부터 우리는 헉이 자유를 위해 投身(투신)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짐, 일어나서 서둘러야 해…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어. 그들이 우리를 쫓고 있어!”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단어이다. 아무도 헉을 쫓고 있지는 않다. 짐 외에는 헉이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 ‘우리’라는 말 한마디는 헉의 정신적 내면에 존재하는 人間愛(인간애)를 含蓄(함축)하고 있다.

헉이 사전에 어떠한 熟考(숙고)도 없이 도망한 노예와 자신을 同一視(동일시)하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헉은 짐을 자유로 이끌지 못한다면 그의 모험은 실패라는 것을 안다. 헉 자신도 짐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추구하는 도망자이기 때문이다.

짐이 노예의 멍에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한다면 헉은 억압적인 남부문명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헉과 짐은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인간사회의 구속이 없는 자유의 상징인 미시시피강으로 뛰어 드는 것이다.

헉에게 미스 와트슨은 자유의 적이다. 미스 와트슨은 비록 물리적 폭력의 性向(성향)은 없지만 미시시피강 流域(유역) 사회의 모든 특징을 보여준다. 그녀는 헉의 정신을 窒息(질식)시키는 문명적 점잔빼기를 강요한다.

따라서 헉과 짐이 뗏목을 타고 내려가며 즐기는 자유는 미스 와트슨이 대표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소설 ‘허클베리 핀’이 보여주는 강렬한 긴장감은 미스 와트슨이 대변하는 고상한 규범과 도망자들의 열망 사이의 不協和(불협화)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긴장은 對照的(대조적)인 두 사회의 竝置(병치)가 주는 날카로운 이미지에 의해서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즉 헉과 짐이 뗏목에서 형성하는 작은 공동체와 미시시피강 연안의 실제사회의 병치로 인해 두 사회는 흑과 백처럼 명백한 대조를 보여준다.

이 두 사회는 헉과 짐이 자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하는 길인 미시시피강에 의해서 분리되어 있다. 헉은 윌크스家 에피소드 후에 다시 뗏목을 타면서 강이 그와 짐에게 의미하는 바를 “다시 자유로우니까 그래서 큰 강에서 우리끼리만 있으며 아무도 우리를 성가시게 하지 않아서 너무나 좋아”라고 말한다.

강은 무심하다. 그러나 강은 헉과 짐이 피해서 도망가는 문명에 의해서 덜 오염되어 있다. 그래서 잭슨섬이나 뗏목에 오르는 순간 헉과 짐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얻게 된다. 섬과 뗏목에서만이 그들은 동지애를 실천할 기회를 가진다.

“다른 곳은 너무 답답하고 숨 막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뗏목에서는 그렇지 않아. 뗏목에서는 대단히 자유롭고 편하고 안락해요”라고 헉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도망한 노예와 백인 소년이 뗏목에서 그들만의 도덕적 규범(code)을 실행하려고 한다. 그들의 도덕은 “뗏목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만족하고 타인들에게 바르게 대하고 친절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신념이 ‘허클베리 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며 이 신념은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辛辣(신랄)한 비판이 된다. 헉과 짐을 강으로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신념이다. 이것은 자연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연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에서 미시시피강을 神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미시시피강은 도피의 수단이 되고 헉과 짐의 도덕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장소이다.

‘허클베리 핀’의 深遠(심원)한 의미는 노예제도, 家門(가문)간의 분쟁, 私刑(사형), 살인, 위선적인 기독교 도덕 등이 뗏목의 理想(이상)에 가하는 충격에 의해서 生成(생성)된다. 그러나 헉과 짐이 거부하는 기존의 사회가 실제 인간사회이며 뗏목사회는 열광적인 꿈에 불과하다. 이것은 비극적인 사실이다.

미스 와트슨처럼 펠프스家 사람들도 主流(주류) 문화의 거의 완벽한 標本(표본)이 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친구와 친척에게 친절하고 폭력이라고는 모른다. 그들은 도망노예 짐을 작은 오두막에 감금해 놓고 특별 宴會(연회)를 열고 즐긴다.

짐이 자유를 얻는 것은 그를 노예로 만든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베푸는 자비의 덕이다. 마크 트웨인의 위대성은 인간이 개인적으로 행동할 때와 사회의 관행에 따라 행동할 때에 나타나는 행동의 不一致(불일치)를 絶妙(절묘)하게 표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셀리 이모와 사이러스 펠프스 삼촌은 모두 충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관대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노예제도처럼 卑劣(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제도를 강렬하게 옹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도망간 노예의 문제에 직면하면 그들의 기독교적 信仰告白(신앙고백)은 노예제도를 當然視(당연시)하는 사회적 도덕의 명령에 압도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相反(상반)되는 행동을 사회가 강요할 때 발생하는 葛藤(갈등)이 ‘허클베리 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현상은 헉의 마음 속에도 존재하며 그의 가장 심각한 내적 갈등의 요인이 된다.

그는 짐에 대해서 순수한 인간애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또한 짐의 처리에 대해서 사회가 그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도 안다. 그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이러한 분단현상은 뗏목과 사회의 분단형태로 상징화된다.

# 14
헉의 좌절은 우리 인간 모두의 좌절이다


‘허클베리 핀’의 세계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사람들의 정신에 사회가 행사하는 힘을 인식할 때만이 충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허클베리 핀’에서 자유는 사회와 사회의 명령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헉과 짐은 개인적인 범죄나 죄의 부담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사회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즉 ‘허클베리 핀’에 나타나는 악은 文明(문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인간의 본성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헉이 사회적 洗腦(세뇌)를 떨쳐버릴 때에 근심과 죄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헉이 실제로 알고 있는 유일한 죄는 사회적 법규의 위반에서 나온다. 헉과 짐의 信條(신조)는 세속적인 것이다. 그것의 목표는 인간사이의 조화이다. 그는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神에 의지하거나 기도하는 것보다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달리 말해서 ‘허클베리 핀’의 중심적 사상은 현실의 삶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啓蒙主義(계몽주의)의 전통에 속한다. 그러므로 소설에 나타나는 추구(quest)의 의미는 종교적 추구와는 다르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헉과 짐이 뗏목을 타고 추구하는 沒我的(몰아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1840년대의 미시시피지역에서 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 추구는 좌절이 불가피하게 된다. 마크 트웨인 자신도 실망을 느끼고 있었음은 소설의 상징적 패턴에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헉과 짐이 자신들을 맡기는 강물은 실제로는 노예자유지역이 아니고 노예지역의 심장부로 향한다. 뗏목이 케이로우를 지났을 때는 追求(추구)는 사실상 운명을 다하게 된다. 증기선이 뗏목을 박살 낼 때까지 독자들은 짐의 탈출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케이로우를 지나서부터 마크 트웨인은 불안의 강도를 줄여가며 불안감이 감소함에 따라 소설은 笑劇(소극)의 色彩(색채)를 띄게 한다. 헉과 짐은 북쪽으로 돌아갈 시도를 하지도 않고 헉은 짐의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자유로 향하는 수단인 뗏목은 動力(동력)과 기동성이 결여되어 있다. 뗏목은 이동의 속도와 방향을 강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헉과 짐을 실은 뗏목은 노예자유지역인 북부가 아닌 남부의 노예지역으로 흘러 갈 뿐이다.

뗏목은 또한 기계화된 증기선에 대적할 수도 없다. 뗏목의 무력함은 뗏목을 타고 있는 사람들의 무력함과 일치한다. 악당들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뗏목을 점령한다. 뗏목은 비록 자유추구의 상징적 장소가 되지만 그 장소는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노예지역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방향, 뗏목의 무력함, 헉과 짐의 선량함과 공격에 대한 脆弱性(취약성)은 자유추구의 결말을 예견하게 한다. 추구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명의 침입에 앞서서 미리 西部로 가려는 헉의 결정은 패배의 고백이다. 그것은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헉 개인의 선한 의도는 사회의 압박 때문에 좌절하게 되고 이것은 우리 인간 모두의 좌절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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