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 1804~1864)(출처: allposters.com)
지상낙원에도 감옥이 있어야 한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의 出刊(출간)은 미국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문학적 사건이 되었다. ‘주홍글씨’는 유럽의 최고 수준의 문학작품과도 견줄 수 있는 첫 번째의 미국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홍글씨’는 미국의 풍토의 산물이고 뉴잉글랜드의 심장부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미국적인 소설이었다. ‘주홍글씨’로 인해서 미국은 문학도 유럽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주홍글씨’의 著者(저자)인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의 조상들은 종교적 자유를 찾아 뉴잉글랜드(New England)에 정착한 淸敎徒(청교도)들이었다. 청교도들은 기독교적 이상주의자들이었다.
정치적 속박과 종교적 탄압을 피하여 新大陸(신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舊大陸(구대륙)의 타락과 죄악으로 오염되지 않은 原初的(원초적)인 순수세계인 새로운 에덴을 건설하려고 했다.
에덴이라는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은 神(신)의 戒律(계율)을 철저하게 따르고 神(신)의 계율에 의해 사회를 통제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神政(신정)을 실시했다. 그러나 인간은 全能(전능)한 神(신)의 계율을 하나도 어김없이 완전히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神政(신정)을 실현하여 행복을 누리기에는 너무나 결함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율을 위반하는 罪人(죄인)이 나오게 되어있다. 그리하여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處女地(처녀지)에 도덕적 순수와 행복의 유토피아를 세우면서도 감옥과 묘지를 위한 땅도” 할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 사회는 聖者(성자)들의 교회와 죄인의 감옥이 공존하는 곳이다. 감옥이 없으면 지상낙원의 건설이나 維持(유지)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인간의 생존조건이다.
‘주홍글씨’는 1640년대의 보스턴(Boston)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죄와 벌에 관한 이야기이다. 호돈은 뉴잉글랜드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스턴지역 鄕土(향토) 年代記(연대기)와 法庭(법정) 季刊誌(계간지)를 愛讀(애독)했다.
‘주홍글씨’는 이런 史料(사료)에 나타나는 간통사건에 관한 재판과 형벌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호돈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사실과 허구’의 결합체이다. 특히 사랑하지 않는 늙은 남편과 결혼하고 간통죄를 범한 헤스터 크래포드(Hester Craford)라는 젊은 여인의 재판에는 엄격한 청교도였던 호돈의 조상들도 관여했었다.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헤스터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由來(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제외한 주지사 등 대부분의 인물들은 實名(실명)으로 등장하고 거리나 장터도 1640년대의 보스턴의 그것들과 동일하다. 호돈은 ‘주홍글씨’의 무대와 인물들과 사건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면서 뉴잉글랜드의 과거역사를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미국적 이상주의는 자연의 모든 현상에서 정신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다분히 플라토닉하면서도 삶의 모든 면에서 神의 섭리를 읽는 기독교적 정신작용에 緣由(연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는 極端(극단)에 이르러 도망간 소나 죽은 물고기 같은 극히 작은 일도 神의 섭리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홍글씨’의 청교도들은 헤스터의 간통을 神의 분노로써 다스리려 했고 주홍글자 ‘A’를 神이 내린 형벌의 상징이라고 확신했다.
엄격한 청교도 교육을 받은 호돈은 ‘주홍글씨’에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이상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인간성을 억압하게 되는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인간 정열의 제한 없는 방출이 초래하는 혼돈과 무질서에 대해서도 憂慮(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정열을 禮讚(예찬)하면서도 계율의 필요성도 看過(간과)하지 않고 있다. 호돈은 정열과 계율의 갈등과 이로 인한 죄와 벌과 懺悔(참회)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罪意識(죄의식)이 인간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深奧(심오)하게 표출하고 있다.
# 2
罪(죄)를 自白(자백)한 헤스터의 고통과 煩悶(번민)의 세월
‘주홍글씨’는 姦通罪(간통죄)로 복역하던 Hester Prynn(헤스터 프린)이 감옥에서 나와 교구직원(town-beadle)에 이끌려 絞首臺(교수대: scaffold)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3개월된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A’라는 붉은 글자의 繡(수)를 달고 있었다. A는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의 머리글자이다. 그녀는 3시간 동안 군중들 앞에서 ‘전시된’ 후에 죽을 때까지 그 붉은 글자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A 글자는 교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은 물론 上席(상석)에 앉아 있는 매사추세츠 식민지(Massachusetts Colony)의 지도층 인사들인 주지사 벨링햄(Governor Bellingham)과 Wilson(윌슨) 목사, Dimesdale(딤즈데일) 목사 등 모든 사람의 눈길을 마법처럼 사로잡고 있었다.
헤스터는 주지사와 윌슨 목사가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라고 다그치지만 戀人(연인)의 정체를 밝히기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깊은 학식과 높은 덕망으로 유명한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 憂愁(우수)에 찬 목소리로 간곡하게 권유해도 소용없었다. 아기의 아버지는 바로 딤즈데일 목사이다.
군중 속에는 그녀의 남편 Chillingworth(칠링워스)도 있었다. 그는 헤스터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을 입술에 대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못하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늙은 醫學者(의학자)로서 의학연구관계로 아내보다 늦게 영국을 떠났었고 도중에 그가 탄 배가 난파를 당하는 바람에 인디언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헤스터보다 1년이나 늦게 지금 도착한 것이다. 나중에 그는 감옥에 찾아와서 간통상대를 실토하라고 헤스터를 執拗(집요)하게 다그쳤다.
헤스터가 끝까지 거절하자 그는 그녀의 姦夫(간부)를 반드시 찾아낼 것이며, 자기는 부정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니 자기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비밀로 할 것을 맹세하게 하고 ”만약에 당신이 맹세를 깨뜨리면 그놈의 명성과 그놈의 지위와 그놈의 목숨은 끝장이 될 것“라며 냉혹하게 위협했다. 헤스터는 칠링워스를 악마라고 부르면서도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감옥에서 나온 헤스터는 마을에서 떨어진 숲 근처의 빈집에서 살게 된다. 그 집은 초기 정착민들이 살던 집이었다. 헤스터는 바느질과 手藝(수예)로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녀의 수예기술은 뛰어나서 보스턴의 상류층 부인들도 그녀의 단골이 되었다. 그녀는 검소하게 살면서 남는 돈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다만 어린 딸 Pearl (펄)에게 만은 화려한 옷을 입혔다.
청교도 법정이 내린 주홍글자형벌로 헤스터는 고통과 苦惱(고뇌, anguish)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사람들은 그녀와의 접촉을 피했다. 貴婦人(귀부인)들은 물론 심지어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들조차 그녀에게 경멸의 눈길을 던졌다.
아이들은 이 陰鬱(음울)한 여인을 마녀처럼 두려워하고 그녀가 지나가고 나면 뒤 따라 오면서 고함을 질렀다. 성직자들은 그녀를 만나면 訓戒(훈계)를 시작하고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朱紅色(주홍색) 글자 A에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헤스터에게 가공할 고통을 가져왔고 그 고통은 세월이 가도 전혀 鈍化(둔화)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고문당하듯이 보냈다.
復讎(복수)의 과정에서 악마로 변해 가는 칠링워스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는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결코 순수하고 의롭지는 않았다. 그는 헤스터의 연인의 탐색과 膺懲(응징)에 偏執狂(편집광)적으로 집착했다. 그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딤즈데일이 헤스터의 연인이라는 心證(심증)을 가지게 된다.
칠링워스는 딤즈데일의 主治醫(주치의)가 되어 치료를 빙자하여 딤즈데일의 집에 寄居(기거)하면서 그의 비밀을 면밀하게 캐어나갔다. 어느 날 병약해진 딤즈데일 목사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칠링워스는 목사의 가슴에 손을 얹고 옷을 젖혔다.
그리고 목사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주홍글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얼굴은 狂暴(광폭)한 歡喜(환희)로 가득하게 된다. 그의 모습은 영혼을 지옥에 빠뜨린 악마의 그 것과 닮았었다.
罪를 고백하지 못하는 딤즈데일의 고통과 煩悶의 세월
딤즈데일은 마음 속에 숨겨둔 죄로 인해, 그 죄를 공개적으로 참회하지 못하는 비겁함 때문에, 그리고 교묘하게 그의 양심을 찌르면서 그의 죄의식을 증폭시키는 칠링워스의 간악한 계략으로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슬프고 고뇌에 찬 딤즈데일의 설교는 대단히 감동적이고 가슴을 적시는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딤즈데일은 가장 미천한 사람들에게도 깊은 이해와 따뜻한 동정을 나타내었고, 고통받는 죄인들에게도 형제적 紐帶感(유대감)을 가졌다.
사람들은 세상의 죄악에 대한 煩悶(번민)으로 허약해진 딤즈데일이 그들 앞에서 산채로 昇天(승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만큼 그를 거룩한 존재로 우러러 보게 되었다. 그러나 딤즈데일은 사람들이 그를 거룩하게 볼수록 고통이 더 심해져가게 되었다. 그는 고뇌와 번민으로 不眠(불면)의 밤들을 보내야 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