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헤스터는 罪人(죄인)인가?
처음부터 ‘주홍글씨’는 미국문학의 古典(고전)이 되었다. 주홍글자 A는 惡(악)이라는 인간의 영원한 문제를 생생한 언어로 나타내는 모든 죄악의 상징처럼 보였다. 1850년 ‘주홍글씨’가 출간되었을 때 그것은 당시의 문제이면서도 초시간적인 문제였다.
惡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인류 보편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기독교적인 특히 청교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모두 原罪(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죄인들이다. ‘주홍글씨’는 인간의 죄(sin)에 대한 19세기적인 해답이 되었다.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19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죄는 때로는 고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덕은 하찮은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천성적인 정열은 선한 것이며 사회가 정열을 억압하는 것은 나쁘며 문명인보다는 ‘고귀한 야만인’이 우월하다고 믿는 루소(Rousseau) 같은 사람들은 주홍글자를 인간의 자연적인 본능에 사회가 붙여놓은 汚辱(오욕)의 烙印(낙인)으로 간주할 것이다.
‘주홍글씨’가 전달하는 의미는 모호하다. 도덕적 전통주의자들은 주홍글자가 상징하는 것은 죄악이며 “헤스터 프린은 十誡命(십계명)을 위반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헤스터는 단지 인간의 깊은 본능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라며 헤스터의 간통을 옹호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超越主義的(초월주의적) 이상주의자들(transcendental idealists)은
〈“헤스터는 부분적으로는 有罪(유죄)이다. 그녀는 그녀의 연인이 믿고 있는 도덕성에 違背(위배)되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도덕성에 위배되는 죄는 짓지 않았다. 그녀는 ‘보다 고차원의 법’을 믿었기 때문이다. 헤스터는 자신에게는 진실했다.”〉
고 주장할 것이다.
주홍글자의 의미에 대한 청교도 등 도덕적 전통주의자들의 해답은 명확하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과 이상주의자들의 해석은 상호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호돈 자신도 헤스터의 도덕성에 대해서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헤스터를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면서도 黙示的(묵시적)으로 그녀를 이상적인 여인으로 찬양하고 있다. 낭만적 부도덕성과 超越主義(초월주의)적 이상주의간의 이러한 혼돈은 미국적 도덕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
전통적 도덕주의자들에 의하면 헤스터 프린은 진실로 죄있는 여인이다. 비록 그녀의 僞善的(위선적)인 연인과 복수심에 불타는 남편의 죄에 비하면 그녀의 죄는 가벼운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죄이다. 그리고 그녀의 죄로 인해 죽음이 오고 비극이 일어난다.
그녀는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는 신성하고 신비한 진리를 전달하는 여자 예언자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 도덕주의자들에게는 ‘주홍글씨’는 헤스터의 죄에 대한 비극적인 刑罰(형벌)을 용인하고 그녀의 구원의 가능성을 완전히 排除(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통주의자들에게는 죄의 종류와 정도가 다양하다. ‘주홍글씨’에서도 죄의 정도가 다양하다. 헤스터는 정열 때문에 죄를 범했지만 그녀의 연인 딤즈데일은 정열과 隱蔽(은폐)로 인해 죄를 짓게 되고 그녀의 남편은 ‘차가운 피로 인간성의 고결함’을 파괴함으로써 용서받기 어려운 죄를 범했다. 그러므로 헤스터의 죄가 가장 적고 형벌도 가장 가벼웠다.
그러나 헤스터는 죄를 지었으며 전통적 청교도 敎理(교리)에 의하면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천국의 문은 영원히 닫혀있다. 헤스터는 이브처럼 원형적인 죄를 범했고 이브처럼 비극을 맞이했다.
그녀의 비극은 新天地(신천지)에 에덴을 건설하려는 아메리칸 드림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것이다. 전통주의자들에게는 자연에 부합되는 자유를 갈망하는 낭만적인 꿈은 공허한 것으로 보였다. 죄와 벌은 영원한 것이며 불변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카톨릭 교회의 敎理(교리)도 헤스터의 죄는 확실한 것이고 그녀의 자유의 꿈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堅持(견지)한다. 그러나 카톨릭 비평가들은 호돈의 청교도 교리가 죄의 용서를 부정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헤스터는 참회와 善行(선행)으로서 그녀의 죄를 갚는다: “헤스터는 참회하는 죄인이고 딤즈데일은 반쯤 참회하는 죄인이며 칠링워스는 참회하지 않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헤스터는 비록 죄인이고 자유의 꿈은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루소의 추종자들인 열성적인 낭만주의자들은, 헤스터는 전혀 죄가 없으며 설혹 죄가 있다 해도 죄를 미덕으로 변형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호돈 자신이 헤스터의 가슴에 있는 주홍글자를 승리의 상징인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헤스터의 行路(행로)는 자유로의 行路(행로)이며 주홍글자는 다른 여인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 땅으로 가는 旅券(여권)’이라는 것이다. 헤스터는 정열의 ‘죄’를 결코 참회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것을 결코 죄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들에게는 헤스터는 낭만적으로 죄가 없으므로 ‘주홍글씨’의 비극은 결코 여주인공 헤스터의 비극적 缺陷(결함)에서 결과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의 內在的(내재적) 모순에서 나온 것이다. 도덕률은 인간의 본성에 폭군적 제재를 가하기 때문에 문명사회에서는 인간의 행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6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주홍글씨’는 완벽성의 비극이 된다. 이상적인 여성은 사회의 硬直(경직)된 도덕적 전통 때문에 패배할 운명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헤스터 프린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연인에게 불리한 말이나 행동을 결코 하지 않을 만큼 사랑에 완벽하도록 충실하기 때문에 청교도들로부터 詛呪(저주)를 받는다.
인간의 약함이나 인격의 비극적 불완전이 아니라 결정론적 사회적 환경이 ‘주홍글씨’의 비극을 초래한다고 열성적 낭만주의자들은 주장한다.
'헤스터 프린은 분명히 죄인'이라는 정통 도덕과 이와 반대로 그녀는 죄를 전혀 짓지 않았다는 낭만주의적 신념 사이를 조정하려는 것이 초월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들 이상주의자들은 전통적 도덕의 권위를 부정하기 때문에 때때로 낭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도덕적 법률을 제시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은 또한 도덕주의자처럼 보인다.
초월주의자들은 낭만주의자들처럼 헤스터가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으며 이것은 현명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헤스터의 사랑은 盲目的(맹목적)으로 정열적이지도 않고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헤스터는 그녀의 연인에게 “우리의 사랑은 그 자체의 신성함을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絶叫(절규)한다. 초월주의자들에게는 헤스터가 딤즈데일을 사랑한 것은 사악한 남편(그녀는 그를 사랑한 적이 결코 없었다)에게나 혹은 전통적 도덕(그녀는 전통적 도덕을 믿지 않았다)에 대한 不忠(불충)이 아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연인과의 영원한 결합을 시도했다. 이는 그녀의 사랑이 7년 간의 고립과 恥辱(치욕)을 견뎌내었다는 사실에서 입증이 된다. 그녀는 그녀의 감정과 이성 사이에 어떠한 갈등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의 흐름’에 順從(순종)한 것뿐이다. 그녀는 낭만적으로 부도덕하거나 사회와 戒律(계율)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반역한 것은 아니었다.
열정만이 아니고 目的意識(목적의식)이 있는 사랑은 초월주의적 헤스터를 단순히 낭만적인 여자주인공들과 구별시킨다. 헤스터는 ‘도덕률’을 부정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넘어서 보다 ‘高次元(고차원)의 법률’을 향해서 의도적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그녀는 낭만과 전통을 초월한 것이다.
호돈 자신도 “그녀는 우리 조상들이 알고 있었더라면 주홍글자로 나타내는 범죄보다도 더 파멸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을 만큼 자유로운 思索(사색)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일반적으로 용인된 계율을 明示的(명시적)으로 초월하고 있었다”고 선언했다. 헤스터는 의식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도덕성의 ‘여자 예언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초월주의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헤스터의 사랑이 없는 결혼은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 아니기 때문에 헤스터의 간통은 十誡命(십계명)을 위반하는 죄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또한 낭만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사회의 죄 없는 희생자도 아니다. 그녀는 남편의 정체를 연인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죄를 지은 것이다. 그녀는 이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오, 아서(Arthur),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 밖의 모든 일에 있어서는 나는 진실하기 위해 분투했어요. 진실이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제가 굳게 붙들고 있던 단 하나의 미덕이었어요. 당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 때를 제외하고는 진실을 정말로 단단히 붙들고 있었어요. 그 때 나는 당신을 속이는 일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위협하더라도 거짓말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지요.”〉
전통적 도덕률이 아니고 초월적 진리가 헤스터의 양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양심이 있었고 그 양심에 위배하여 남편의 정체를 숨기는 죄를 지었다.
헤스터 프린은 이상적 진리보다는 낭만적인 사랑을 위해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연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보다 높은 진리를 壓倒(압도)함으로써 악을 행했다. 그녀는 연인에게 모든 것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희생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전통적 도덕보다는 한 차원 높은 법이지만 인간의 사랑은 기껏해야 ‘악마적’이다. 사랑이 準據(준거)로 삼아야 할 최고의 법은 ‘神聖(신성)한 진리의 법’이며 이런 사랑이 이상적인 사랑이며 天上(천상)의 사랑이다.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는 진리인데 헤스터는 사랑을 위해 진리를 배반한 것이다.
초월적 이상주의자들에 의하면 헤스터 프린의 죄는 인간적인 사랑을 초월하지 못한 것이다. 欺瞞(기만)에 의해서 연인을 보호하려다가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도 정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神에게 죄를 지었다. 始初(시초)에 진실 전체를 말했더라면 그녀는 결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한 자존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스터 프린이 초월주의적으로 완벽했다 하더라도 비극은 일어났을 것이다. 초월주의적 사상은 비극을 含蓄(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비극은 주인공의 개인적인 불완전함에서 결과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적 관점에서는 비극은 사회의 악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비극은 도덕적 기준이나 가치간의 갈등으로부터 생긴다. ‘주홍글씨’의 비극은 딤즈데일 목사의 정통 도덕과 여주인공의 초월주의적 도덕의 갈등에서 나왔다.
아서 딤즈데일은 헤스터 프린과는 달리 정열 때문에 눈이 멀어 죄를 지었으며 그는 자신이 나쁘다고 느끼고 있는 행동을 범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도덕을 위배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에 헤스터가 추구하는 자유를 가질 수 없으며 본인도 그렇게 느낀다.
만약 그가 정통도덕주의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양심의 가책이 없이 헤스터와 함께 서부 邊境(변경)으로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어요.”
목사는 꿈에서 깨어나도록 강요받는 것처럼 대답했다.
“나는 도망갈 힘이 없소. 비참하고 죄가 많은 몸이지만 攝理(섭리)의 하나님이 나를 살도록 해준 이 장소에서 나의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③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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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26, 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