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⑥

딤즈데일의 인간적 勝利(승리)
# 13
딤즈데일의 구원에 있어서 펄과 칠링워스의 역할


딤즈데일의 구원에는 펄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펄의 인간적인 특성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녀는 매우 중요하고 복잡한 상징적 인물이다. 그녀는 실제로 딤즈데일의 죄의 결과이다. 진홍색 옷을 입은 그녀는 주홍글자 A의 화신이다.

딤즈데일이 펄을 자식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의 죄를 고백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펄의 존재 자체는 칠링워스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그녀의 이름 펄(Pearl: 진주)은 예수 그리스도나 세례를 통한 淨化(정화)라는 聖書的(성서적)인 의미를 含蓄(함축)하고 있다.

그녀는 정화된 인간의 정신과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녀가 냇물을 사이에 두고 딤즈데일과 떨어져서 꽃에 파묻혀 있는 모습은 中世(중세)의 은총의 聖像(성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딤즈데일에게 펄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힘이 된다. 펄의 이런 역할은 교수대 장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딤즈데일은 펄의 손을 잡고 펄과의 親子(친자) 관계를 인정하고 펄을 잡은 손을 통해 헤스터와 결합하게 된다:

〈“목사는 펄의 다른 쪽 손을 찾아서 잡았다. 그 순간 자신의 생명이 아닌 새로운 생명이 용솟음치며 솟아 나와서 그의 가슴속으로 急流(급류)처럼 흘러들어 오며 그의 전신의 혈관을 통해서 퍼져나갔다. 마치 엄마와 아이가 그들의 활력에 넘치는 체온을 그의 미지근한 몸 안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처럼. 세 사람은 電氣(전기)의 체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딤즈데일이 자기 자신을 알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도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는 펄을 공인해야한다. 펄을 공인했을 때 생명력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가 사회적 및 도덕적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죄를 짓는 경향을 자신에게서 肅淸(숙청)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딤즈데일이 자신도 타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열을 가진 인간이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지식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자신도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嫌惡(혐오)하는 것이다. 그는 햄릿처럼 자신이 몸을 담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어서 이를 멀리하려고 한다.

펄과 칠링워스의 역할은 重複的(중복적)이다. 펄도 칠링워스만큼 디즈데일을 고문하는 존재이다. 칠링워스가 居處(거처)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딤즈데일을 탐색할 때에 창가에 다가온 펄은 딤즈데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조롱하는 것이 된다. 펄의 잔인함은 딤즈데일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딤즈데일은 꿈에서 헤스터의 주홍글자와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펄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교수대의 장면에서 펄은 어두움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칠링워스를 가리킨다. 그녀는 또 숲에서 주홍글자를 떼어낸 헤스터의 가슴을 가리킨다.

이 두 장면은 모두 딤즈데일에게 죄를 상기시키는 고문이 된다. 펄은 또 교수대에서와 숲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손을 언제 잡아 줄 것이냐고 질문함으로써 딤wm데일의 고뇌를 심화시킨다.

펄의 이 모든 행동이 딤즈데일로 하여금 자신의 毁損(훼손)된 인간 조건을 인식하도록 이끌 것이기 때문에 펄은 딤즈데일에게는 재생을 가져오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칠링워스도 펄과 마찬가지로 딤즈데일에게는 재생의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한다. 딤즈데일은 죽음 전에 칠링워스가 가한 고통은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했으며 神의 攝理(섭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칠링워스의 복수는 참회의 고통을 지속시켜 주었다며 神에게 감사 드린다. 칠링워스도 펄과 마찬가지로 딤즈데일의 구원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 14
딤즈데일의 인간적 勝利(승리)


소설의 처음에 딤즈데일은 죄악의 열정이나 감정이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의 간통을 그가 矯正(교정)할 수 있는 하나의 탈선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그가 공개적으로 죄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죄에 대한 가능성은 인간조건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믿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淨火(정화)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저주하고 칠링워스의 審問(심문)에 자신을 맡긴 것이다. 죄의 가능성을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개인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호돈의 생각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는 고귀한 점도 가지고 있다. 그 거부는 인간의 삶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려는 갈망에서, 그리고 神에게 다가가려는 고매한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헤스터와 만나는 숲에서 딤즈데일의 정신상태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헤스터에 대한 그리움을 잊어버리기 위한 7년 간의 노력 후에 숲에서 헤스터와 마주친 딤즈데일은 헤스터에 대한 그의 감정이 전과 똑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그는 이러한 감정은 그의 본성에 근본이 된다는 것을 자신에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무리 많이 참회를 하여도 이 감정을 몰아 낼 수는 없다. 그는 자신도 神이 아닌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그의 몸에는 교수대의 밤에서보다도 더 강렬하고 영속적인 에너지의 流入(유입)이 일어나게 된다. 딤즈데일은 그의 이런 감정을 헤스터에게 말한다:

〈“나는 병들고 죄로 汚染(오염)되고 슬픔으로 멍이든 내 자신을 이 숲의 나뭇잎 위에 던져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힘으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어요. 이것이 이미 더 좋은 삶이 되어 버렸소!”〉

그는 가슴속에 있는 감정을 새롭게 긍정함으로써 苦行(고행)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나 자연의 세계인 숲에서는 이러한 감정에 자유롭게 沒入(몰입)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이런 감정은 제한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딤즈데일은 숲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도중에 여섯 번의 對決(대결)을 통해 이런 감정의 통제에 대한 當爲性(당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다섯 번의 경우에 그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려는 유혹을 받지만 자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어떤 교회 집사에게 최후의 만찬에 대해 不敬(불경)스런 말을 하고 어느 외로운 여신도의 내세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어떤 젊은 처녀에게 음탕한 신호를 보내려 하고 아이들에게 추잡한 말을 던지고 만취한 선원에게 상스러운 농담을 주고받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딤즈데일은 이런 감정의 發露(발로)는 타인에게 불필요하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자신을 천하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사악할 수도 있는 감정의 추구에 자신을 맡겼던 것이다. 만약에 딤즈데일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완전히 따른다면 그는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다.

딤즈데일은 이제 세 번째 단계에 들어간다. 인간 마음에 있는 모든 감정을 인정하면서 감정의 근본적인 樣相(양상)에 순응하려고 한다. 그는 이런 초기의 감정상태로부터 미묘하게 離脫(이탈)해 간다. 소설의 끝에 가서는 그는 극단을 피하고 하나의 종합을 시도한다.

첫째, 그는 칠링워스의 審問(심문)을 차단시켜서 그의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칠링워스의 가혹한 형벌을 거부한다. 그는 한 손은 성경(엄격한 정의)에 얹고 다른 손은 그의 가슴(무제한의 감정)에 놓음으로써 계율과 감정의 조화를 시도한다.

둘째, 그는 감정에 완전히 순응하여 사랑의 도피를 하자는 헤스터의 계획을 거부한다. 초기에는 분명히 부정적인 양상이었던 知的(지적)인 자존심이 이제는 감정의 放縱(방종)으로부터 딤즈데일을 구출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게 된다.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갖게 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의 班列(반열)에 들어오지만 肉慾(육욕)의 耽溺(탐닉)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최고수준으로 올라가서 동료 인간들을 지도하기를 원한다. 그는 惡의 가능성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도 존엄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지막 교수대장면은 딤즈데일에게는 승리의 순간이다. 選擧日(선거일) 설교에서 딤즈데일은 ‘불의 혀’(tongue of flame)로서 인간의 조건과 神과의 관계에 대해서 열변을 토해낸다.

그의 입에서는 “다른 모든 음악처럼 열정과 비애와 부드러우면서도 高潮(고조)된 감정”이 뿜어져 나온다. 그는 청중들에게 神의 은총을 구하는 데 절망하지 말라고 촉구한다. 설교 후에 딤즈데일은 그의 죄를 자백하고 참회하면서 神의 은총을 희망하며 자신을 神에게 맡긴다.

그의 행위는 죄로 물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그의 지도력이 發揮(발휘)되는 순간이다. 그는 펄이 親子(친자)임을 선언하고 칠링워스의 파괴적 魔手(마수)로부터 탈출한다.

딤즈데일은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악을 참회하고 또한 동료 인간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것이 우리가 그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는 전부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능한 線(선)까지 승리한 인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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