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헤스터의 加害者(가해자)들은?
헤스터 프린은 낭만적 개인주의의 전형이고 호돈은 이러한 철학의 미흡한 점을 浮刻(부각)시키려고 시도한다. 낭만주의적 개인은 초자연적이고 도덕적인 絶對性(절대성)을 부인한다. 그는 신앙적 윤리를 신성시하는 神의 권위는 물론 功利主義的(공리주의적) 윤리를 管掌(관장)하는 사회의 권위도 배척한다.
敬神(경신)과 凡節(범절)을 위반한 헤스터는 자연적인 삶을 살고 자신의 낭만적 沒入(몰입)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비록 그녀는 神과 사회의 법을 깨뜨렸지만 그녀가 낭만적으로 추구하는 자연스런 만족도 얻지 못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헤스터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그녀를 동정하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녀의 죄는 그녀가 당하는 刑罰(형벌)과 피해에 비해 훨씬 가볍다는 알게 되고 이로 인해 그녀에 대한 동정이 더 깊어진다.
헤스터에게 가장 심하게 陰害(음해)를 가하는 인물은 칠링워스이다. 그는 본성의 욕구를 이해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도 않은 해스터와 결혼한다. 칠링워스 자신이 이 점을 인정한다.
“내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어요. 꽃봉오리 같은 당신을 眩惑(현혹)하여 늙은이와 자연스럽지 못한 결혼을 하게 했으니까.”
그의 두 번째 죄는 결혼 후에 가정에 태만하여 장기간 집을 비운 것이다. 그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순진한 헤스터의 깨어나는 정열이 禁斷(금단)의 길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賢人(현인)들의 말씀대로 이렇게 될 줄을 알 수도 있었지.”
칠링워스의 세 번째 그리고 가장 邪惡(사악)한 죄는 恥辱(치욕)을 당하는 헤스터를 냉혹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거짓되고 부자연스러운 관계’로 헤스터를 현혹시킨 첫 번째의 죄를 인정했지만 그가 만든 상황의 결과로 인해 그녀에게 초래된 汚名(오명)은 분담하기를 거부한다. 물론 그는 그녀에게 복수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차가운 관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헤스터에 대한 애정에서가 아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따라 행동한다. 그는 결혼과 복수에 있어서 자신과 관련되는 타인의 이해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만을 소중히 하면서 그 목표의 달성에 偏執狂的(편집광적)으로 매달린다.
그는 그의 아내를 나름대로의 욕구와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인간으로서가 아니고 하나의 家財(가재)로 간주한다. 아내의 過誤(과오)는 형식적으로만 그의 同情(동정)을 자극할 뿐이지만 그의 자존심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헤스터의 不倫(불륜)에 이르는 정열은 고귀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연인의 수치와 고뇌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고 연인의 고통의 짐을 떠맡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同情(동정)은 고귀한 정신의 善(선)한 發露(발로)이다.
그래서 칠링워스는 헤스터에게 三重(삼중)으로 죄를 짓는다: 그는 죄에 대한 가능성을 내포한 인간관계로 헤스터를 유인했고 그녀가 위기에 몰렸을 때 보호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죄에 屈服(굴복)했을 때 그녀를 져버렸던 것이다.
헤스터의 행복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칠링워스의 죄에 비하면 헤스터에 대한 딤즈데일의 죄는 가벼운 편이다. 그의 죄는 “정열의 죄이지 원칙을 위배하거나 목적성을 가진 죄”는 아니다. 딤즈데일은 헤스터에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최악의 죄인은 아니오. 오염된 성직자 보다 더 나쁜 죄도 있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딤즈데일의 도덕적 책임과 헤스터의 그것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헤스터의 죄는 딤즈데일의 죄에 附隨的(부수적)인 것이어서 딤즈데일의 죄보다는 가볍다. 뿐만 아니라 딤즈데일은 헤스터가 가지고 있지 않는 도덕적인 방어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는 성직자로서 헤스터에 대해 도덕적인 의무가 있고 사회에 대해서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또한 호돈의 男女(남녀)에 대한 관점에 의하면 헤스터는 주로 여성적인 감정에 의해 정열의 파도에 뛰어들었지만 딤즈데일은 정열의 파도를 막아줄 방파제로서 남성적인 지성과 도덕적 博學多識(박학다식)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혼으로서 ‘강렬한 동물적 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결혼도 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헤스터는 ‘잔인한 敵對者(적대자)와 이미 결혼으로 맺어진’ 상태에서 너무 늦게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선택 즉 사랑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딤즈데일 목사의 정말로 혐오스러운 잘못은 姦淫(간음)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자백하기를 꺼리는 것과 그의 위선이다.
헤스터는 자신뿐 아니라 딤즈데일의 恥辱(치욕)도 堪耐(감내)하기를 바라지만 딤즈데일은 진실보다는 명예의 보존과 자존심을 더 중하게 여긴다. 칠링워스처럼 딤즈데일도 헤스터를 忽待(홀대)하고 放棄(방기)하여 헤스터 혼자서 형벌을 참아내도록 한 것이다.
# 16
헤스터는 해방된 정신을 대표하는 여성은 아니다
사회도 헤스터를 부당하게 다루고 학대했다. 사회는 共益(공익)이라는 추상적인 목적의 추구과정에서 이탈자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보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청교도들의 그것처럼 공익이 지나치게 추상성을 추구하면 보복의 경향은 더 깊어진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둔 사회적 規範(규범)이 종교적 敎理(교리)나 정치적 이념에 의해서 절대화되는 순간 규범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말살하는 괴물로 변형된다. 헤스터를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공익의 추구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심이 蒸發(증발)되어 버린 증오와 교만과 위선의 괴물로 변형된 인간의 상징이다.
인간사회의 법과 규정은 거의 예외 없이 神聖視(신성시)되고 절대화되어 인간의 共同善(공동선)에 봉사하는 대신에 인간을 억압하는 폭군적 도구가 된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한계이고 모순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이 그 이상에 의해 억압당하고 학대당하는 것이다.
혹독한 율법주의는 청교도 神政(신정)의 특징이었다:
〈 “비인간적인 형벌의 영향은 무자비한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민중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최고의 임무이고 그래서 엄격한 율법주의가 생기게 되었다.”
“그 이론적인 근거는 여호와(Jehovah)가 원초적 입법자이고 성경은 여호와의 법률서이고 목사와 주지사들은 神의 뜻을 받드는 執事(집사)이다.”〉
그러므로 헤스터는 神政(신정)의 권위가 神(신)의 그것으로 인식되는 시대에 청교도 법전의 가혹함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헤스터를 벌하는 청교도 사회에서는 인간을 사랑하라는 인류애의 명령은 무시되고 사회의 제도는 헤스터 같은 異端(이단)에게 합법적으로 복수하는 기관이 되어버린다.
헤스터를 가두고 있는 감옥의 문 옆에 있는 “보석처럼 優美(우미)한” 들장미와 감옥 뜰에 무성히 자라는 우엉이나 명아주 같은 잡초는 “어둠침침하고 신비로우며 괴이하고 정교하며 경이롭기도 한 인간본성”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청교도 사회는 불행하게도 잡초들을 열성적으로 재배하면서도 인간본성의 아름다운 꽃을 가꾸는 데는 태만했다. 청교도들은 ‘문명생활의 검은 꽃인 감옥’을 향기로운 도덕의 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헤스터가 당하는 사회적 추방은 ‘우리의 삶에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회적 유대’를 거의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써 헤스터의 정신과 도덕의식에 致命的(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사람들은 이 여인의 죄를 주홍글자로 표시했고 이것은 너무나 강력하고 파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녀와 같은 죄가 있는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그녀를 동정할 수 없었다.”
‘인간적 동정에서 차단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도덕적 추방의 징표를 달고 있는 헤스터를 두려워하고 멀리했다. ‘가장 죄가 많은 자에게도 형제애를 보여주어야 하는’ 인류 보편적인 의무도 헤스터의 경우에는 파기되었다:
〈사회와의 모든 교류에서 그녀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추방당했고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에 살고 있는 것처럼 혼자였고 보통 인간들의 감각기관이 아닌 다른 五感(오감)으로 자연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았다.〉
고립이 헤스터에게 가져오는 도덕적 위험은 고립으로 인해 타인과의 따뜻한 친교의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추방의 결과로 헤스터의 삶은 ‘정열과 감정의 삶에서 思索(사색)의 삶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迷路(미로)를 안내하는 길잡이 실도 없이 정신의 迷宮(미궁)을 방황했다.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당하는 절망과 불공평을 의식하게 된다.
호돈은 헤스터의 반항적인 心情(심정)을 어느 정도는 공감하면서도 그녀를 ‘도덕의 황야에서 살아가는 해방된 정신을 대표하는 여성이 아니고 규칙도 指針(지침)도 없이 도덕적 황야에서 방황하는 인간 낙오자’로 그리고 있다.
그는 “여인은 사색으로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는 없다. …그리고 헤스터의 스승인 수치와 절망과 고독은 그녀를 잘못 가르쳤다”라고 말한다. 知的(지적) 사색에 대한 여성적인 나약함과 定道(정도)를 이탈하는 생각을 교정해주는 사회적 공동경험의 부족 등으로 인해 헤스터는 자신을 非여성화하고 誤導(오도)된 관념으로 스스로를 속이게 되었다.
인간의 도덕적 상호의존성에 대한 例(예)는 헤스터와 딤즈데일과 펄의 관계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자신을 지탱해줄 헤스터의 결단이 필요해진 딤즈데일은 헤스터가 제안하는 사랑의 도피계획에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헤스터의 계획은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파멸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神의 은총으로 이런 영혼의 죽음에서 벗어난다. 딤즈데일은 죽음의 순간에 神의 은총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허위와 위선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딤즈데일의 이러한 극적인 탈출은 헤스터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딤즈데일의 탈출로 인해 자연적 정열에 영혼을 맡김으로서 불행에서 탈출하려는 헤스터의 試圖(시도)는 좌절된다.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녀의 유일한 행복은 딤즈데일과의 결합이라고 광적으로 주장하지만 그 결합은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의 결합으로 바뀌게 된다.
헤스터의 도덕적 통로가 결코 막히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펄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이 긴 고난의 세월동안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으며 부분적이나마 감정의 배출구가 되었다. 그녀는 세속적인 행복의 挫折(좌절)로 인한 분노를 緩和(완화)시키게 되었을 때 어린 딸 펄과의 애정을 통해서 敬虔(경건)한 諦念(체념)과 그로 인한 재생을 얻게 된다.
우리는 헤스터를 사랑하고 동정하게 되지만 그녀의 과오를 容認(용인)하고 그것을 미덕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녀는 의도적인 죄인이라기보다는 사회 환경의 희생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끝)
(다음 편부터는 토마스 하디의 ‘테스’(Tess) 해설편이 연재됩니다)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⑦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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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06, 09: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