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Hardy (1840 - 1928)/ (출처: famouspoetsandpoems.com)
자연은 사기꾼이다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의 토마스 하디(Thomas Hardy)는 잉글랜드의 남서부에 있는 古都(고도) 돌체스터(Dolchester) 隣近(인근)의 어퍼 보크햄프톤(Upper Bockhampton)이라는 마을에서 1840년에 태어나서 87세의 나이로 1928년에 죽었다.
그는 아직은 현대 과학문명에 의해 전통가치의 손상을 입지 않은 平穩(평온)한 영국농촌에서 信仰心(신앙심) 깊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石手(석수)이고 교회성가대의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어머니는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책읽기를 대단히 좋아했다. 하디는 3세에 책을 읽고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만큼 조숙했다. 그는 부모를 통해서 건축과 문학과 음악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하디는 어렸을 때 겨울철 들녘에서 굶어 죽은 새의 모습에 충격을 받을 만큼 일찍부터 생명체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이런 성향이 神에 대한 신앙의 상실과 함께 그의 유명한 悲觀主義(비관주의, pessimism의 배경이 되었다.
하디에게는 神에 대한 신앙의 상실은 단순히 종교적인 次元(차원)을 넘어서 그가 태어나서 성장한 영국 농촌과 교회가 대표하는 정신적인 안정과 희망의 상실을 의미했다. 신앙의 상실은 長久(장구)한 세월동안 사람들을 安穩(안온)하게 감싸 온 기독교적 전통과 神(신)이라는 보호자를 잃어버리고 황량한 우주에서 고아 같은 존재로 放棄(방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디는 비록 기독교적 신앙에서 멀어졌지만 孤兒(고아)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듯이 잃어버린 전통과 神을 그리워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교회에 출석했다. 그는 古色蒼然(고색창연)한 교회 건물에 깊은 애착을 느꼈었다. 그는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며 愛唱(애창)해온 찬송가를 사랑했다.
그는 국민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고대 로마시대의 遺物(유물)이 발굴될 만큼 古都(고도)인 고향 돌체스터를 떠나지 않고 그 곳에서 일생을 보내었다. 그만큼 잃어버린 전통에 집착했던 것이다.
하디는 현대산업세력의 侵奪(침탈)로 정신적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피폐해 가고 있는 농촌을 깊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弱肉强食(약육강식)이라는 자연계의 잔인한 지배원리가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강자인 산업자본이 약자인 농촌을 집어삼키고 농촌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어 流浪(유랑)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기독교적 전통과 평화를 누리며 소박하게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사회의 落伍者(낙오자)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하디는 그의 비극소설을 통해 선량한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困窮(곤궁)으로 인해 파멸해 가는 과정을 비관주의적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하디의 우주관은 비관주의적이다. 全知全能(전지전능)한 神이 있어서 절대적 가치기준에 의해서 질서를 잡아주지 않는 우주는 도덕적 필연과 질서보다는 우연과 混沌(혼돈)이 지배하는 무의미한 곳이다.
그래서 하디의 소설에는 가치중립적이고 쇠붙이처럼 무심한 우연이 개입하여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설의 인물들에게는 그 우연은 주로 불행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동물이든 식물이든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도 우연에 의한 것이다. 그 생명체가 반드시 태어나야한다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강하게 태어나거나 약하게 태어나는 것도 필연이 아닌 우연의 결과이다. 이렇게 태어난 생명체는 결코 우호적이지만 않는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하지만 결국 절대적 無(무)를 향해 衰落(쇠락)해 갈 뿐이다. 생존의 끝은 죽음이며 죽음의 세계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現世(현세)의 고난과 고통을 보상해줄 來世(내세)가 아니고 절대적 空虛(공허)일 뿐이다.
절대적 價値基準(가치기준)을 제공하고 영원한 삶에 대한 최종적 보장이 되는 神에 대한 신앙의 상실은 하디에게는 혹심한 정신적 상처(trauma)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惡意(악의)의 神이라도 있으면 生의 無意味(무의미)와 空虛(공허)에서 탈출 할 수 있겠으며 生老病死(생로병사)에 따른 고통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에 復讎(복수)의 神이 저 하늘에서
“너 고통받는 것아, 알아라.
너의 슬픔이 나의 歡喜(환희)라는 것을.
너의 사랑의 상실이 내 憎惡증오)의 利得(이득)이라는 것을.“
라고 하신다면,
그러면 견딜 수 있겠어.
주먹을 쥐고 몸을 꼿꼿이 하면서
나보다 강한 存在가
의도적으로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것에
반쯤은 마음이 풀려서
죽을 수 도 있겠어.〉
절대자인 神이 없는 우주에서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을 수 없으며,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지상에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절대적 가치나 진리를 파악하기에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어디에서나 편견이나 獨善(독선)이나 비합리적인 관습에 사로잡혀 생존의 고통을 악화시키며 관습에 拒逆(거역)하거나 위배되는 개인을 억압하고 추방하는 경향이 있다. 하디는 이렇게 사회로부터 추방되어 고통 받는 인물들의 불행한 삶을 통해서 사회적 생존조건의 非情(비정)함을 비관주의적 視點(시점)으로 표출한다.
사랑의 욕망도 하디의 비극세계에서는 불행한 결말을 가져온다. 사랑의 욕망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種族保存(종족보존)의 수단으로 생명탄생의 始原(시원)이 되지만 하디의 인물들은 사랑으로 인해 이성의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관습의 벽과 충돌하며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자연은 맹목적인 사랑의 환희를 미끼로 하여 남녀를 결합함으로써 종족보존의 목적을 달성하지만 사랑으로 인한 고통이나 고난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디에게는 사랑은 자연의 詐欺的(사기적) 操縱(조종)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놀음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비극적인 삶의 현상에 불과하다. 그는 자연을 大 僞善者(위선자)(the arch- dissembler)라고 했다.
‘테스’는 하디의 위대한 소설 중에서도 가장 痛烈(통렬)한 비애를 자아내는 비극소설이다. ‘테스’는 신앙상실로 인한 절망, 산업세력에 의해서 침탈당하는 농촌의 피폐와 경제적 곤궁, 사람들을 평온하게 감싸온 전통의 소멸, 인간의 삶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非友好的(비우호적)인 생존 조건,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랑의 욕망 등이 混融(혼융)되어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엮어 내면서 우리의 가슴을 비애로 적셔준다.
# 2
蕩兒(탕아) 알렉에게 純潔(순결)을 빼앗기는 테스
‘테스’의 이야기는 敎區牧師(교구목사) 트링햄(Tringham)과 존 더비필드(John Durbeyfield)의 우연한 만남(chance meeting)으로부터 시작된다. 목사는 가난한 시골 行商(행상)인 존을 [卿(경), Sir John]이라는 존칭으로 부르며 더비필드는 옛날 영국의 名文家(명문가)인 더버빌(d'Urbervilles)家의 후손이라고 말해준다.
트링햄 목사는 權門勢家(권문세가)가 어떻게 멸망하는가를 환기시키기 위해 더비필드의 가문이야기를 했지만 존 더비필드는 자신이 세력있는 가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단히 기뻐한다.
더비필드는 그의 딸 테스(Tess)를 포함하여 흰옷을 입은 처녀들이 메이데이(May Day:새봄을 축하하는 축제)춤을 추고 있는 마을로 돌아온다. 祝祭(축제)에서 테스는 클레어(Clare)家의 형제들인 펠릭스(Felix)와 커스버트(Cuthbert)와 엔젤(Angel)을 만나게 된다. 엔젤은 테스와는 춤을 추지 않았지만 뛰어난 미모의 테스를 주목하게 된다.
테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저명한 가문의 후손임을 축하하느라고 선술집(tavern)에 있었다.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에 꿀을 카스터브릿지(Casterbridge)까지 싣고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테스는 아버지를 데려오도록 어머니를 술집에 보내지만 어머니도 돌아오지 않는다. 테스는 동생 아브라함(Abraham)도 보내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선술집에서 존 더비필드는 테스를 더버빌家의 후손들에게 보내어 친척임을 알리고 테스가 명문가의 신사와 결혼할 자격이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새벽 존 더비필드가 몸이 불편해서 테스가 아브라함과 함께 꿀을 카스터브릿지까지 배달하게 된다.
가는 도중에 테스는 깜빡 잠이 들고 그녀가 몰고 가던 배달마차가 우편마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마차를 끌던 말(프린스, Prince)이 죽음을 당한다. 유일의 생계수단인 말을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테스는 친척관계임을 밝히기 위해 트란트릿지(Trantridge)에 있는 더버빌 家門(가문)의 부유한 후손으로 알려진 스토크 더버빌(Stoke-d'Urbervilles)의 집으로 간다.
스토크 더버빌의 본명은 원래 스토크이며 그는 북부에서 거금을 모은 뒤에 남부에 정착하여 名文家(명문가)의 후손행세를 하기 위해 더버빌이라는 家名(가명)을 차용했다. 테스는 물론 이 사실을 모른다.
더버빌 저택에서 테스는 이미 故人(고인)이 된 스토크의 아들 알렉 더버빌(Alec d'Urbervilles)을 만난다. 알렉은 바람둥이로서 테스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테스를 유혹하려고 한다. 테스가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후에 스토크 더버빌 부인으로부터 닭농장 관리를 맡기겠다는 편지가 온다.
알렉이 테스를 데리러 왔을 때 어머니 조안(Joan)은 테스와 알렉이 결혼하기를 바란다. 더버빌 저택으로 가는 도중에 알렉은 마차를 난폭하게 몰면서 테스에게 자기의 허리를 잡으라고 말한다. 테스가 거절하자 그는 시골처녀답지 않게 까다롭게 군다며 테스를 비난한다.
테스는 더버빌 부인과 면담했을 때 부인은 눈이 멀어 있고 테스가 친척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렉이 부인의 이름을 盜用(도용)하여 테스의 집에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알렉의 집요한 유혹이 계속되지만 테스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Marlott(말로트)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느 주말에 테스는 다른 처녀들을 따라서 체이스보러(Chaseborough)로 놀러갔다. 저녁에 트란트릿지로 돌아오는 도중에 카(Car)라는 처녀가 머리에 이고 있는 버드나무 광주리에서 唐蜜(당밀, treacle)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일행이 모두 웃었다. 테스도 웃었다. 카는 테스에게 왜 웃느냐며 시비를 건다.
이 때 알렉이 말을 타고 나타나서 테스를 태우고 떠나가 버린다. 알렉이 테스를 데리고 재빨리 사라질 때 카의 어머니는 “테스는 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 뛰어 든 거야”라고 말한다. 그는 테스에게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테스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뿐더러 때때로 그에 대해서 분노마저 느낀다고 대답한다.
알렉은 트란트릿지로 가는 길이 아닌 체이스 숲으로 들어가서 시간을 지체시킨다. 이를 알게 된 테스는 걸어서 가겠다고 말한다. 알렉은 길을 알아보고 오겠다며 가버린다. 알렉을 기다리던 테스는 지쳐서 잠이 든다. 그 날 밤 테스는 순결을 상실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