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자연도 사악한 神의 대리인
하디의 세계에서는 자연도 사악한 신의 대리인이 된다. 하디는 자연을 弱肉强食(약육강식)이라는 잔인한 생존법칙과 適者生存(적자생존)이라는 냉혹한 채찍으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무자비하게 혹사하면서 種(종)의 보존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사악한 神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자연의 잔인성을 克明(극명)하게 입증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다른 생명체의 삶을 방해하거나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이 삶의 필연적인 방식인 것이다.
지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먹이사슬에서 하나의 고리가 되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일을 끝없이 계속하고 있으며 그래서 자연은 悽絶(처절)한 殺戮(살육)의 場(장)이다. 하디는 그의 마지막 소설 ‘불운의 쥬드’(Jude the Obscure)에서 ‘자연법칙은 상호도살’(mutual butchery)이라며 자연에 대해서 극도의 비관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하디의 인물들 중의 하나인 양치기 가브리엘 오크(Gabriel Oak)는 자신이 牧羊者(목양자)로서 양들의 보호자인 동시에 양을 죽이는 도살자라는 二律背反的(이율배반적)인 사실을 의식하고 마음이 어두워진다:
〈그의 양떼가 양고기로 생을 마치게 되며 모든 양치기는 무방비상태에 있는 양들의 악랄한 배신자가 되는 날이 온다는 사실이 그의 삶에서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다.〉
정성을 다하여 자신을 보살펴주는 주인이 사실은 자신들의 목숨을 빼앗을 존재라는 것을 양들은 의식조차 못한다. 이와 같이 오크처럼 양을 치유하고 양을 보호하면서도 결국은 양의 학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오크와 양을 창출한 자연은 존재론적으로 잔인하며 몰도덕적이고 그 성립바탕은 罪惡(죄악)이라는 것이 하디의 생각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제품’(fair product of nature)으로 테스를 창출하고서도 그녀를 갖가지 감내하기 힘든 고난 속에 투입하여 희롱하다가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연은 잔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디가 테스의 죽음을 ‘신들의 제왕’(President of the Immortals)의 장난으로 간주하는 것은 ‘리어王’(King Lear)의 인물들의 허망한 운명을 연상시킨다:
〈神들이 인간을 대하는 것은 소년들이 파리를 다루는 것과 같다. 그들은 우리를 장난삼아 죽인다.〉
라는 세익스피어의 한탄은 하디 비극소설의 거의 전 인물들에게 해당되며 실제로 하디는 ‘테스’에서 테스와 마리안이 겨울날 프린트콤 애쉬의 황량한 들녘에서 무를 캐고 있는 모습을 ‘두 마리의 파리’로 비유하고 있다.
생명을 創出(창출)하고서는 그 생명을 혹사하다가 끝내는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자연은 너무나 냉혹하다. 생존의 끝은 無(무, nothingness)의 세계인 죽음이다. 그래서 하디는 자연은 죽이기 위해서 생명을 탄생시킨다며 자연의 무심함을 원망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은 좌절된 목적추구행위이며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지만 죽음의 세계로 불려간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가을이나 봄이나 어느 때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 웰햄의 숲은 말합니다;
“생명은 죽이기 위해서 탄생시키는 거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내고는 그 생명을 죽이는 자연은 하디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사악한 것이다. 그래서 하디는 “자연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거룩한 것은 아니다. 자연은 대단히 악의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디는 또 다른 詩(시)에서 자연을 자동기계나 거대한 백치 또는 腦死(뇌사)상태에 있는 神으로 比喩(비유)하며 자연의 무능과 무심함을 비판하고 있다.
〈만들고 뒤섞을 수 있는 힘은 강하지만
돌보는 능력은 없는 어떤 거대한 정신박약자가
장난삼아서 우리를 만들고 이제는 우리를 팽개쳐버렸는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의식하지 못하는 자동기계의 所産(소산)인가?
아니면 우리는 머리와 눈은 이미 간 상태에서 고개를 떨구며 죽어가고 있는
神의 살아있는 유물인가?〉
# 13
‘욕망이라는 덫에 걸린 새’와 같은 테스
자연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고통과 불행의 奈落(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수단은 慾望(욕망)이다. 자동기계나 白痴(백치)처럼 무심하게 생명을 찍어내는 자연은 각 생명체에게 욕망을 심어 놓고 욕망의 충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몰아 부친다.
욕망은 삶의 의지(will to live)이며 종족보존의 본능에서 나온다. 욕망은 소위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유전인자의 所産(소산)이다. 현대 생물학에서는 인간을 ‘유전인자의 로봇’(robots of genes)으로 간주한다.
하디가 생각한 자동기계는 유전인자로 보아도 될 것이다. 종족의 보존과 발전이란 바로 유전인자의 보존과 擴散(확산)을 의미한다. 유전인자의 실행도구인 욕망의 관점에서 ‘테스’를 조명해 보는 것도 하디의 비관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테스’의 비극적인 운명도 욕망으로 인한 것이다. 테스의 일생은 욕망의 탄생, 추구, 좌절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테스는 삶의 의지인 욕망의 重壓(중압)으로 고통 받는 욕망의 포로이며 ‘욕망이라는 덫’에 걸린 새와 같아서 욕망에서 해방 될 수가 없다.
욕망은 테스를 꼭두각시처럼 임의로 조종하며 테스를 파멸로 몰고 간다. 테스의 욕망은 테스의 도덕의식을 압도하여 테스로 하여금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 및 법률과 충돌하게 만들고 그 결과 테스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덕성도 욕망처럼 종족보존 본능에 緣由(연유)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살수는 없고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즉 인간의 본능이 사회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사회는 존속을 위해서는 개인 간에 相沖的(상충적)인 욕망을 관리할 수 있는 도덕적 규범과 법률이 필수적이다.
사랑의 욕망으로 고통 받는 여인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도덕의식이나 법의식도 그 뿌리는 인간의 생존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욕망이나 이성이나 도덕성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 중에서 욕망이 가장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초도덕적이다.
욕망 중에도 사랑의 욕망이 가장 맹목적이고 가장 몰도덕적이다. 사랑의 밑뿌리는 '자연계를 추진하는 비인격적인 성적 충동'이고 종족보존 본능이며 생명탄생의 始原(시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디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녀는 모두 사랑의 포로가 된다.
'테스'의 테스, 이즈, 레티, 마리안 등 하디의 여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육체의 고뇌'(anguish of the flesh)를 앓고 있으며 하디는 이것을 '남자에 대한 여인들의 말없는 갈망의 소리'로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소위 '잔인한 자연법칙의 지배로 인해 신음하는 사랑의 노예들'인 것이다.
에인젤에 대한 충족 될 수 없는 사랑의 욕망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탈보트헤이즈의 처녀들에 관한 다음의 묘사는 ‘잔인한 자연법칙’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문’ 중의 하나의 좋은 예가 된다.
〈침실의 공기는 처녀들의 속절없는 정열로 고동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잔인한 자연법칙이 그들에게 부과한 -그들이 예상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감정의 압제(oppressiveness)로 인해 안절부절 못하며 꿈틀거리고 있었다(writhed).
그 날 낮의 그 사건이 그들 가슴을 태우고 있던 불길(flame)에 기름을 부었고 그 拷問(고문, torture)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정열로 인해서 한 개인으로서 구분 짓던 그들의 개인차는 추상화되어 사라져 버리고 그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오직 한 유기체의 부분이 되었다.〉
‘oppressiveness’, ‘writhe’, ‘flame’, ‘torture’ 등의 단어는 사랑의 욕망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을 나타내는 이미지들이다.
테스는 에인젤을 만나 사랑하게 된 이후 격심한 갈등에 빠지게 된다. 갈등의 진원은 욕망과 양심의 갈등이다. 양심이 테스를 괴롭히는 것이다. 양심은 욕망의 무분별한 奔出(분출)을 억제하고 통제하여 인간종족의 보존과 발전을 추구하며 인간도덕의식의 밑뿌리가 된다.
양심의 기준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양심이 인류의 보편적인 속성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양심은 욕망보다는 특정 사회문화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다. 인간이 만든 문화적 환경은 개인의 도덕의식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테스의 양심도 그 형성과정에서 그녀가 태어나서 성장한 문화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테스가 처녀적 純潔(순결)이 그렇게 중요시되지 않는 시대나 사회에 태어났더라면 알렉과의 성적경험 때문에 에인젤에 대해 그렇게 강한 양심의 呵責(가책)이나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토마스 하디의 ‘테스’(Tess) ⑥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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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14, 11: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