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자연에는 순결이라는 개념이 없다
욕망과 양심이라는 두 세력은 테스의 의식을 무대로 하여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며 테스의 사랑의 욕망이 강해질수록 도덕적 양심의 반격도 비례적으로 강화되기 때문에 테스의 고통이 가중된다.
테스의 욕망에 에인젤의 욕망까지 가세하여 ‘하나의 연약한 양심’을 압박한다. 테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다하여 에인젤을 사랑해서는 아니 된다는 애초의 결의를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테스는 남녀 간에도 도덕적 진실은 존재한다며 도덕적 결의를 다지면서도 ‘도덕적 저항력이 욕망의 重壓(중압) 아래 붕괴될 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양심과 욕망이라는 두 힘이 충돌하며 테스를 무자비하리만큼 괴롭힌다. 그러나 테스의 욕망은 그녀의 도덕의식보다 강렬하다. 도덕의식에는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것도 內包(내포)되어 있지만 욕망은 절대적인 자연현상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순결과 죄의 구분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죄의식으로 인한 테스의 煩惱(번뇌)도 불필요한 것이다. 순결을 상실한 테스가 에인젤과 결혼하는 것은 인간의 양심과 관습에 거역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자연의 법칙에 違背(위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테스와 에인젤이 사랑을 하고 결혼하여 자손을 남기는 것이 자연법칙에 더 부합되는 것이다. 종족보존의 목적을 위해 자연은 순결보다는 간통을 선호한다. 자연에는 순결이라는 개념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테스와 에인젤 두 사람은 ‘한 계곡의 두 시냇물’처럼 서로를 향해 收斂(수렴)하게 되어있다. 사랑이라는 정열의 홍수가 도덕적 양심의 벽을 쓸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테스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그이를 가지도록 할 수 없어!”(I can't bear to let anybody have him but me!)라고 절규하며 마침내 사랑이라는 人類蒼生(인류창생)의 원초적 욕망에 굴복해 버린다.
테스는 ‘자연의 인질’이지 도덕적 규범의 인질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도덕적 堡壘(보루)는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하디는 이점을 명백히 지적하고 있다:
〈모든 창조물을 사로잡고 있는 ‘쾌락에 대한 욕망’(the appetite for joy)은… 사회적 典範(전범)으로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덕적 의식에 대한 욕망의 완전한 승리는 소설의 끝 부분에 가서 테스가 알렉을 살해하고 에인젤을 뒤따를 때에 이루어진다. 알렉은 테스를 무한히 괴롭히는 죄의식의 客觀的 相關物[객관적 상관물, objective correlative: 어떤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 개인적 정서의 객관화를 위해 이용된 心象(심상), 사건, 상징]이다. 알렉을 죽임으로써 테스는 에인젤과의 결합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물-즉 도덕의식-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테스의 살인도 불사하는 강렬한 사랑은 관습의 堡壘(보루)인 에인젤의 ‘쇠’같은 도덕의식도 변하게 한다. 물론 에인젤의 변화는 브라질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필요로 한다. 브라질은 ‘관습의 효력이 영국만큼 강하지 않은 곳’이다. 영국적 도덕규범의 영향력이 極小化(극소화)되는 브라질에서의 현실(reality)수업을 마친 후에야 에인젤은 테스의 사랑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원초적 욕망의 세계로 歸依(귀의)한 후 테스와 에인젤은 짧은 기간이나마 완벽한 사랑을 하게 된다. 스톤헨지에서 체포되어 죽기 전 테스가 에인젤과 함께 지낸 숲 속의 빈집은 기존의 도덕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도덕의 진공지대이며 관습과 규범의 간섭 없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행복한 집’(happy house)이다.
그러나 慣習(관습)의 통제를 벗어난 욕망의 충족은 관습에 의해서 반드시 보복을 당한다. 관습도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인간의 본능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관습이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관습과 이와 同類(동류)인 도덕적 규범이나 법률이 없으면 인간 공동체는 존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사회적 동물로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만 생존의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몰도덕적 욕망도 필요하지만 욕망을 통제하는 도덕적 규범도 필요한 矛盾的(모순적)인 존재이다. 테스의 비극은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다.
# 15
‘쫓기는 짐승’ 테스
욕망의 무한성은 또한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하나의 생명체는 탄생의 순간부터 생명의 鼓動(고동)이 멈출 때까지 삶의 의지로서의 욕망을 超脫(초탈)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은 욕망의 영구적인 충족을 불가능케 함으로써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생존활동을 중단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디는 이런 현상을 자연의 ‘충족되지 않는 의지’(the unfulfilled intention)라고 부른다.
자연은 생명을 만들어 내지만 생명을 維持(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자원의 공급에는 극히 인색함으로써 각 생명체로 하여금 지속적인 활동이 없이는 생명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고 또 自然淘汰(자연도태)라는 형벌을 면치 못하게 함으로써 종족의 발전을 도모한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테스의 생애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현상은 “그녀는 끊임없이 걸어다니며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스의 중단 없는 이동은 욕망의 무한성에 대한 훌륭한 이미지가 된다. 하디는 끊임없이 이동해 다니는 테스를 통해 충족을 모르는 욕망에게 酷使(혹사)당해야 하는 인간의 생존조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동의 가장 뚜렷한 이미지 중의 하나는 ‘쫓기는 테스’의 이미지이다. 테스는 ‘사냥당하는 동물’(hunted animal)의 이미지이다. 쫓는 자는 욕망이라는 사냥꾼들이다. 사냥꾼들은 알렉, 에인젤, 路上(노상)의 行人(행인) 등 테스의 육체적 매력을 탐하는 남성들이거나 가난이다.
그녀는 가난에 쫓겨 부유한 친척이 사는 트란트릿지로 고용살이를 간다. 그러나 그곳에는 알렉이라는 방탕한 사냥꾼이 테스라는 흰 사슴을 기다리고 있다. 시골처녀가 남성들의 사냥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영국農村民話(농촌민화)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며 실제로 테스의 조상 중에는 처녀를 붙잡아서 능욕한 騎士(기사)들도 있었다.
테스도 이러한 사냥감 중의 하나라 하겠다. 테스의 고향 말로트에 있는 흰 사슴의 숲(the Forest of White Hart)의 이름은 헨리 8세의 治世(치세) 때에 왕이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던 흰 사슴을 그의 신하가 죽인 죄로 벌금형을 받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이 전설은 체이스 숲(the Chase)에서 알렉에게 유인되어 순결을 빼앗기는 테스의 운명을 前兆(전조)하는 것이다.
트란트릿지에서 귀향한 후 이듬해 봄 테스는 탈봇트헤이즈로 이동하여 재생과 안정을 希求(희구)하지만 엔젤의 구애에 쫓기고 끝내는 버림받아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또 다시 재출발을 시도한다. 테스의 ‘사냥 당하는 동물’ 이미지는 소설 전편을 주도하고 테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쫓기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쫓기는 테스의 처지는 이동에 비례하여 더욱더 악화 될 뿐이다. 특히 프린트콤-애쉬로 가는 노상에서 낯선 남자에게 쫓기는 장면은 ‘쫓기는 테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쫓기는 그녀의 영혼이 도망갈 곳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뒤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빨리 도망가기 시작하여 플랜테이션[plantation, 造林地(조림지)입구까지 달려갔다. 그리고는 造林地(조림지) 안으로 뛰어 들어가 숲의 그늘에 가려서 눈에 띄지 않을 곳까지 계속 뛰었다.〉
테스의 ‘쫓기는 영혼’ 이미지는 추수철 프린트콤-애쉬 농장의 쥐잡기(rat-hunting)에서 鮮明(선명)하게 나타난다:
〈쥐 잡는 계절이 마침내 다가왔다. 그래서 쥐 사냥이 시작되었다. 쥐들은 탈곡작업으로 인해 곡식 낟가리가 점점 줄어 감에 따라 모두 낟가리 맨 바닥에 모 있다가 마지막 짚단까지 벗겨지는 순간 사방으로 도망갔다.〉
테스의 쫓김은 스톤헨지에서 그녀를 추적해온 경관들에게 체포됨으로서 끝난다. 테스는 “잡혀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라며 순순히 체포에 응한다. ‘쫓기는 짐승’ 테스의 일생이 끝난 것이다. 하디는 이것을 ‘神들의 제왕’이 테스와의 사냥놀이(sport with Tess)를 마쳤다는 말로 논평하며 소설을 끝낸다.
자연과 자본주의는 同類(동류)
‘테스'에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요소도 인간을 혹사하는 무한한 욕망의 훌륭한 이미지가 된다. 19세기 前半(전반)을 통해 영국농촌을 蠶食(잠식)해버린 신흥자본주의는 욕망에 한계를 두지 않고 모든 생명체를 몰아 부치는 자연의 속성을 가장 완벽하게 나타낸다.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適者生存(적자생존)이라는 냉엄한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회의 각 구성원은 淘汰(도태)를 면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하며 또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다.
‘테스’에는 욕망의 사회적 化身(화신)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위력이 膨滿(팽만)해 있다. 테스가 찾아가는 알렉의 집안은 신흥자본가의 전형이다. 알렉의 아버지 사이먼 스토우크(Simon Stoke)는 잉글랜드 북부 공업지대에서 상업(일설로는 고리대금업)으로 큰 재산을 모은 후에 농업지대인 트란트릿지에 더버빌이라는 귀족의 家名(가명)을 도용하여 정착한 자본가이다.
가난한 테스의 부모는 부유한 친척을 이용하겠다는 욕망에서 테스를 알렉에게 보낸다. 테스의 자존심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알렉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해 테스의 비극이 시작된다.
자본주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미지는 기계이다. 기계는 산업혁명의 대표적 상징물이며 부의 축적에 있어서 上限(상한)이 없는 자본주의의 냉혹성을 가진 無情(무정)의 존재이다. 특히 테스가 직접 접하게 되는 수확기계는 농촌을 侵奪(침탈)하는 자본가의 대리인이며 농민을 무자비하게 혹사하는 폭군이다:
〈곡식 낟가리 가까이에 여자들(일군들)이 모셔야하는 붉은 폭군이 있었다. …그것은 수확기계로서 가동될 때는 하도 빨리 곡식다발을 먹어치워서 여인들은 모든 힘을 다해서 또 모든 신경을 써서 곡식다발을 날라야 했다.〉
그리고 수확기계를 조종하는 시커먼 엔진맨(engineman)은 ‘토피트(Tophet)에서 온 생물의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토피트는 지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무한한 욕망의 세계 즉 자본주의 세계를 상징하며 거만스러운 엔진맨은 그 하수인이라 하겠다.
테스는 수확기계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한다. 수확기계는 지구상의 곡식다발을 다 삼켜도 한이 차지 않을 듯이 테스가 기진맥진하여 거의 쓰러질 정도가 될 때까지 계속 돌아가기 때문이다.
(계속)
토마스 하디의 ‘테스’(Tess) ⑦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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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15, 11: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