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하디의 ‘테스’(Tess) ⑧

인간은 모두 착각 속에 살아간다
# 16
테스의 죽음을 前兆(전조)하는 出血(출혈)의 이미지


붉은 색은 테스의 비극적인 운명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이미지이다. 붉은 색은 소설 序頭(서두)의 테스의 머리에 꽂혀있는 붉은 리본에서부터 마지막 부분의 천장에서 베어 나오는 붉은 피와 스톤헨지의 붉은 태양 빛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붉은 색은 정열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붉은 색은 피의 색깔이다. 피는 생명이다. 생명력이 넘치던 테스는 出血(출혈)을 계속하다가 끝내 죽음에 이른다. 프린스의 죽음이 테스의 죽음을 前兆(전조)한다:

〈우편마차의 날카로운 끝채(shaft)가 불행한 프린스의 가슴을 칼처럼 찔렀다. 상처로부터 생명의 피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와서는 소리를 내며 길 위에 떨어졌다. 테스는 절망적으로 앞으로 뛰쳐나가 상처구멍을 손으로 막았지만 얼굴에서 웃옷까지 진홍색 핏방울로 덮어쓰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어찌해 볼 수도 없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프린스도 꼼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데까지 굳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프린스는 갑자기 축 쳐지며 쓰러졌다. 이윽고 태양이 솟아오르고 프린스의 피는 무지개빛을 반사하고 새들은 노래를 불렀다.〉

출혈에 의한 죽음의 전조는 테스가 프린트콤-애쉬로 가는 도중에 목격하게 되는 총에 맞은 꿩들의 처참한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총에 맞아 바로 죽거나 밤이 되기 전에 죽은 꿩들은 사람들이 모두 찾아서 가져 가 버렸지만 심하게 부상을 입은 꿩들은 도망을 쳐서 숨거나 나무 가지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꿩들은 거기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중 밤에 피를 흘리는 바람에(with loss of blood) 점점 힘이 빠져서 한 마리씩 떨어지는 것을 테스는 듣고 있었다.〉


# 17
테스의 패배는 인류 공통의 패배


테스의 비극적 생애는 테스 개인만의 것이 아니고 인류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테스의 생애가 그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선 그녀의 출신 家門(가문)이 더버빌이라는 古家(고가)이며 소설의 제목 ‘더버빌家의 테스’가 암시하듯이 個體(개체)로서의 테스는 더버빌이라는 집안의 한 구성원이라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리고 테스의 이야기는 아버지 존이 그가 유구한 전통가문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즉 현재가 과거와 접하게 될 때 테스가 무대에 등장한다. 현재는 과거의 再版(재판)이며 연속인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재현이거나 화신이라는 아이디어는 소설 전체를 통해서 노래의 후렴처럼 반복해서 나타난다. 우선 테스 자신의 용모에도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나타난다:

〈그녀의 그 모든 성숙한 여인의 생기발랄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녀의 뺨에서 12세 때의 뺨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눈에는 9세 때의 반짝임이 있었고 입술의 곡선에는 심지어 5세 때의 곡선도 힐끗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테스는 알렉을 처음 볼 때 '그의 얼굴 모습에서 수백년 된 더버빌 가문과 영국역사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 알렉이 테스를 유인하여 凌辱(능욕)하는 것도 과거로부터 존속해온 것의 재현에 불과하다.

테스의 갑옷 입은 조상들도 “싸움에서 돌아오다가 이보다 더 잔인하게 시골 처녀들을 다루었었다.” 테스와 알렉은 조상 때의 일을 다시 한번 再演(재연)하는 것이다. 테스는 물려받은 본성에 따라 마치 역사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거나 이전에 수 없이 上演(상연)된 극의 배우인 것처럼 그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조상들이 살아온 삶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테스 자신이 이런 강요된 운명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탈보트헤이즈에서 에인젤이 역사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할 때 테스는

〈내가 지금 까지 살아온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옛날 책에 저와 같은 사람이 있었으며 저가 그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하기 때문이에요. 제일 좋은 것은 우리의 본성과 우리의 과거의 행동은 수억의 사람들의 그것과 똑같으며 우리의 다가오는 삶과 행위도 또한 수억의 사람들의 그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라며 거절한다.

역사는 동일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테스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테스의 모든 행위는 그녀 자신만의 행위라기보다는 그녀를 대리인으로 하는 조상의 행위이고 앞으로 다가올 후손들의 행위이고 인간의 보편적인 행위이다.

과거의 현재화 즉 역사의 반복성은 테스에게 나타나는 神話的(신화적) 요소에 의해 더욱더 강화된다. 신화는 종족 내지 인류공동의 욕망이나 소망이 投射(투사)된 것이며 인간본성의 深淵(심연)이 이야기 형식을 빌려서 表層(표층)으로 나타난 것이다.

신화는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태고의 신화적 인물이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게 한다. 테스는 욕망의 희생양(scapegoat)이고 大地(대지)에 풍요를 가져오는 多産(다산)의 여신이며 재생의지의 化身(화신)이다.

이것은 테스가 인류 최초의 신화적 인물인 이브(Eve)와 동일시된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이브는 욕망의 통제에 실패하여 낙원에서 逐出(축출)된 욕망의 희생자이고 다산의 원조이며 재생의지의 원형적인 인물이다. 이브가 여성의 대표인 것처럼 테스도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여성들의 원형이 되는 여성이다.

테스의 인생은 轉落[(전락), Fall]으로부터 재생(Redemption)에로의 旅路(여로)이다. 상실되고 파괴된 낙원의 복구는 인류공동의 소원이며 하디의 거의 모든 소설의 基底(기저)에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형의 복구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原罪(원죄)로 인해 실패하게 되어있다. 하디의 주인공들은 모두 ‘죄를 짓고 재생을 시도하고 패배하여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밟는다. 즉 이들은 인류의 원조인 아담과 이브가 걸어간 전락의 행로를 반복한다.

인류의 전락이라는 신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테스가 에인젤에게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도 순결하고 선한 에인젤의 사랑에 의해서 죄를 용서받고 재생을 구하려는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나 逆說的(역설적)이게도 에인젤도 자신의 상실된 순결의 회복을 테스에게서 구한다. 그러므로 테스와 에인젤의 재생의지는 좌절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에인젤과 테스는 전락이전의 아담과 이브가 아니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실질적인 삶의 경험에 의해 오염된 상태에서 만나기 때문에 재생은 불가능하다.

무참한 죽음이 테스에게 찾아오고 에인젤과 리자-루는 아담과 이브가 善과 惡, 죽음의 현실화라는 지식을 가지고 천국을 떠나는 것처럼 서로 손을 잡고 웨섹스(Wessex, 하디가 그의 소설에서 命名(명명)한 잉글랜드 남서부)를 떠나간다.

천국의 실험이 끝난 것이다. 테스의 패배는 인류 공동의 패배이며 테스는 결국 잃어버린 낙원의 회복이라는 인류공동의 소망을 위해 분투하다가 희생되는 원형적 희생양(archetypal scapegoat)이다.


테스는 多産(다산)과 풍요의 화신

테스가 원형적인 여성으로 간주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는 출산과 풍요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성적인 매력-그녀의 풍만한 몸매와 '모란꽃 입술'(peony mouth)-은 비너스(Venus)같은 여신이 상징하는 多産(다산)과 관련된다.

테스는 메이데이 클럽워킹(May Day Club Walking)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클럽워킹은 풍요와 다산의 농업여신인 시어리즈(Ceres)를 기리는 축제이다. 테스는 흰옷을 입고 나타나 大地(대지)에 풍요를 가져오도록 기원하는 儀式(의식)에 참여한다.

그리고 테스가 순결을 상실하는 체이스숲(the Chase)은 ‘영국에 남아 있는 소수의 원시시대 숲 중의 하나’로서 다산의 상징인 겨우살이(mistletoe)가 아직도 자라고 있는 곳이다. 후에 에인젤은 신혼 초야에 겨우살이를 테스의 침대에 걸어 놓는데 이것은 테스가 다산의 화신임을 암시한다.

더구나 에인젤은 테스를 결혼과 다산의 여신인 디미터(Demeter)에 비유하기도 한다. 테스의 神性(신성)은 죽기 직전의 사생아 소로우(Sorrow)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한 밤중 흰옷을 입고 동생들을 깨워 앉혀 놓고 세례의식을 집행하는 테스는 인간이 아닌 神처럼 보인다.

테스는 또한 만인의 어머니이며 大母(대모)인 시벌리(Cybele)와 관련된다. 이것은 테스가 프린트콤-애쉬로 가는 도중 지나가게 되는 구릉지대의 묘사에서 암시된다:

〈둘째 날 저녁 무렵 테스는 울퉁불퉁한 白堊層(백악층)의 고원지대에 있는 古墳群(고분군)에 도착했다. 그 곳은 多乳房(다유방)의 여신인 시벌리가 등을 대고 누워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大地母[(대지모) The Earth Mother]의 완벽한 像(상)이다.

테스가 다산과 풍요의 화신이라면 에인젤은 去勢(거세)된 남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신혼의 첫날밤에 에인젤은 夢遊(몽유)상태에서 테스를 안고 집 밖으로 나와 급류가 흐르는 江의 좁은 다리를 위험하게 건너 묘지의 석판 위에 눕히고 죽음의 儀式(의식)을 거행한다.

테스를 죽음의 묘지에 눕히는 에인젤은 생식능력을 상실한 不毛(불모)와 不姙(불임)의 죽은 神의 이미지를 갖는다. 이 장면은 생명력이 넘치는 테스가 생명력이 증발해버린 에인젤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조하고 있다. 에인젤은 브라질에서의 고행을 겪은 후에야 생명의 화신 테스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18
인간은 모두 착각 속에 살아간다


인간의 불완전성(human infirmity)도 테스의 삶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하디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크게 실망한 작가이다. 그의 厭世主義(염세주의)는 神에 대한 신앙의 상실보다는 오히려 전쟁이나 일삼으며 대량학살을 恣行(자행)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의 상실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간의 缺陷(결함) 중에서 하디에게 가장 큰 실망을 주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은 가치판단의 주관성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理性的(이성적) 존재이지만 주관적인 편견이나 몰이성적인 욕망 또는 時空(시공)에 따라

상대적이고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관습 등의 영향으로 이성의 빛이 屈折(굴절)되고 게다가 이성자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서 사물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나 진리의 완전한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의 思考(사고)와 가치판단에서 오류는 필연적이다.

하디의 인물들이 범하는 오류 중에서 전형적인 것은 外見(외견, seemings or appearance or what it looks)과 實在(실재, reality or what it is)의 혼동이다.

하디는 외견을 실재로 착각하고 실재와는 관계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 인간존재의 喜劇性(희극성)과 비극성에 깊은 비애를 느낀 작가이며 자신의 작품은 외견을 꿰뚫어 보고 실재에 도달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그는 1885년 12월 21일자 일기에서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모든 사물은 위선이다. 자연은 大위선자(arch-dissembler)이다. 아이는 완전히 속는다. 어른들은 사물을 꿰뚫어보는 정도에 따라 속는다. 어떤 것도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거의 아무도 깨닫지 못한다.〉

하디의 인물들이 환상의 誤謬(오류)를 가장 심하게 범하게 되는 경우는 그들이 사랑의 격정에 휘말려 들 때이다. 하디의 인물들은 일단 사랑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면 사람이 거의 완전히 변하게 되는 “사랑의 변형작용”을 경험하며 그 변형의 정도가 클수록 더 큰 파멸적 고통을 당한다.

이러한 사랑의 변형작용의 원인은 결국 외견과 실재를 혼동하기 쉬운 인간이성의 불완전성에 있으며 변형의 양상은 대개 사랑의 이상화현상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實在(실재)는 종족보존욕망인데 하디의 인물들은 사랑을 至高至善(지고지선)의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며 따라서 사랑의 대상도 생물학적인 존재에서 천상의 神적인 존재로 우상화된다. 사랑의 열정에서 에인젤은 테스를 여신에 비유하고 테스도 에인젤을 神처럼 숭배한다.

외견과 실재의 혼동으로 인해 하디의 인물들은 사물에 대한 시각이 일정하지가 않고 極(극)에서 극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테스의 고백을 들은 에인젤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테스를 바라본다.

〈“에인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어떤 변화가 닥쳐와도 당신이 어떠한 수치스런 일을 하여도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거예요. 그 이상은 원치도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남편인 당신이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거예요?”
“다시 반복해서 말하는 데 내가 사랑한 사람은 당신이 아니오.”
“그러면 누구란 말입니까?”
“당신의 모습을 한 다른 여인이오.”〉

우리 인간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착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에인젤과 테스도 서로를 착각 속에서 바라보았다. 에인젤이 순결을 상실한 테스를 至純(지순)한 여인으로 착각하고 사랑했듯이 테스도 에인젤을 神(신)처럼 숭배하고 사랑하지만 그 神은 순수하지도 않았고 당대의 도덕적 편견에서 벗어나지도 않았으며 테스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화시킬 수 있는 의지도 능력도 없는 神이다.(끝)


(다음 편부터는 허만 멀빌의 ‘백경’(白鯨, Moby-Dick) 해설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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