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색채안경의 착용을 거부하면 영혼은 백색의 공허 속에 놓이게 된다
이스마엘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진실을 파악해 나아간다. ‘白鯨’의 어두운 迷路(미로)를 따라 가며 사물에 대해서 축적한 지식에서 그는 생명을 빚어내는 자연의 핵심은 사랑이 아니라 파괴라는 비전을 가지게 된다.
이스마엘은 우울증의 발작으로 고통 받는다. 그의 영혼은 “11월의 황량한 가랑비로 젖어있다.” 염세적인 우울증이 그를 압도한다.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가기로 결정한다. 바다는 지금까지 그의 인간에 대한 혐오증을 치료하는 약이었다. 바다가 그의 권총자살(pistol and ball)에 대한 대안이다.
며칠 후에 뉴 베드포드에서 난터켓으로 가는 船上(선상)에서 넓은 바다광경을 접할 때 이스마엘의 영혼은 歡喜(환희)로 작약雀躍(작약)하게 된다:
〈“나는 타타르(Tartar)의 공기 냄새를 마음껏 들이 마셨다. 육지의 길에 있는 흙을 털어 버렸다. 노예의 뒤축과 말발굽으로 자국이 나 있는 육지의 길의 흔적을 몰아 내었다. 그리고는 筆舌(필설)로는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한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난터켓에서 이스마엘은 퀴케그와 함께 화려하고도 이국적인 피쿼드호를 선택한다. 피쿼드호에서 계약을 하면서 아합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스마엘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나는 선장에 대해서 깊은 동정과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몰랐다. 그가 한 쪽 다리를 잃어버렸다는 것 외에는…”
이스마엘은 항해 목적에 대한 아합의 설명을 들을 때 그는 흥분을 누를 수가 없게 된다.
“그 누가 그의 말에는 不可抗力(불가항력)의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겠는가?”
“나, 이스마엘은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나는 선원들과 함께 歡呼聲(환호성)을 터뜨렸고 나의 맹세는 그들의 맹세와 합치게 되었다. 내가 더 강하게 소리를 지를수록 나는 주먹을 더 불끈 쥐고 허공을 치면서 맹세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영혼 속에 있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친 듯이 거칠고 신비스러운 共感(공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합의 억누를 수 없는 敢鬪精神(감투정신)은 바로 나의 것인 것처럼 보였다.”〉
이 장면은 이스마엘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마엘이 처한 위험은 ‘단단히 묶여 있는 물고기와 자유로운 물고기’(Fast-Fish and Loose-Fish)章(장)에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단단히 묶여있는 물고기는 작살로 잡은 고래를 끌어다가 船側(선측)에 단단히 묶어 놓은 고래이고 자유로운 물고기는 아직도 잡히지 않는 상태의 사냥감으로서 누구라도 먼저 잡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고래를 말한다.
아합은 잡힌 고래이다. 우주가 갈고리로 그를 찔러서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았다. 반대로 이스마엘은 해방된 물고기이다. 그는 계속 해방된 물고기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합처럼 사물의 불가사의함에 찔려서 꼼짝 못하게 매달리어 있을 것인가? 그는 하늘과 땅의 神들에게에 굴복하여 천부적 主權(주권)을 상실할 것인가?
이스마엘은 “만약 神들이 우주의 비밀을 지키려고 작정한다며, 그렇게 하도록 놔두어라. 그렇다고 해서 나의 주권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神國(신국)의 屬國(속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주의 불가사의함의 신비에 끌려 들어가는 위험을 피하려고 한다. 아합은 神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다가 자신의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
‘모비 딕의 백색’ 章(장)은 이스마엘의 “모비 딕이 아합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언급이 되었다. 모비 딕이 나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소름끼치게 하는 것은 모비 딕의 흰색이었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어서 그는 說話(설화)나 壯觀(장관)과 儀式(의식)에 나타나는 흰색이 인간의 마음에 떠올리는 모든 聯想(연상)을 추적하면서 흰색의 의미를 생각해 간다. 흰색은 왕과 왕의 탁월함과 지배권과 연관되어 있다. 흰색은 기쁨과 순결과 거룩함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연상에도 불구하고 흰색에는 模糊(모호)함이 있다. 이스마엘은 묻는다:
〈“흰색은 그 모호함에 의해서 우주의 공허와 광대함을 상징하는가? 그래서 흰색은 우리가 銀河(은하)의 심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허무의 생각으로 우리를 찌르는가? 혹은 흰색은 근본적으로 색이라기보다는 색의 不在(부재)이기 때문에 또 동시에 모든 색의 합이기 때문에 광활한 雪景(설경)에는 의미로 가득 차있지만 말이 없는 空虛(공허)가 있는가?…
이 세상의 모든 색채-모든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색채-황혼녘의 하늘과 숲의 매혹적인 색채, 나비의 황금빛 부드러운 색채, 처녀들의 나비같이 하얀 뺨 등 이 모든 색채는 물체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색채에 불과하며 우리의 눈을 속이는 절묘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모든 신성화된 자연은 창녀처럼 화장을 하고 있고 자연의 매력은 납골당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색채를 생산하는 그 신비한 화장품은 빛의 반사에 지나지 않으며 자체로서는 백색이거나 무색이고 빛을 반사해줄 매체가 없으면 모든 사물을 심지어 튤립이나 장미꽃 까지도 무색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주는 힘없이 나병환자처럼 보인다.
색안경 착용을 거부하고 라플란드(Lapland, 스칸디나비아 북부지방)를 여행하는 고집 센 여행자처럼 비참한 무신론자는 모든 세상을 덮고 있는 하얀 壽衣(수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 13
진리는 색채가 없는 흰색이며 無色(무색)이고 공허이다
백색에 대한 공포는 죽음에 대한 영혼의 공포, 그리고 죽음 뒤에 오는 消滅(소멸)에 대한 공포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 이상이다. 그것은 영혼이 영혼자신에 대해 느끼는 공포이다. 意識(의식)이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自我(자아) 속에 파멸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진리와 이상과 완벽성, 정신적인 것, 神적인 것-이것들은 모두 의식이 있는 영혼의 산물들이며 이것들에 집착하고 沒入(몰입)하면 만물은 영원히 흰색이나 색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만물에는 색채가 없으며 우리의 눈에 보이는 색채는 빛의 反射(반사)이기 때문이다.
멀빌은 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神의 추구에 强迫的(강박적)으로 몰두하는 현상을 백색으로 나타낸다. 神과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추구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면 만물은 탈색되어 하얀빛을 내고 하얀빛은 세속적인 만족이나 인간사를 환상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모든 것이 陳腐(진부)하고 無味乾燥(무미건조)하고 무익하게 보이기 때문에 만사가 실체가 없는 환상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땅에서 나온 인간의 속성은 단지 '채색되어 있고 채색을 하고 있는 안경'이다. 이 친절한 색채안경을 착용하는 것을 거부하면 영혼은 백색의 공허 속에 놓이게 된다. 사물의 본질은 색채가 없는 공허이다.
영혼은 만물을 꿰뚫어 본다. 영혼은 자신의 無味(무미)함과 자신의 무색을 본다. 흰 고래의 백색은 영혼의 색깔이고 공허와 허무를 상징한다. 진리는 색채가 없는 흰색이며 무색이며 공허이다. 그래서 허무의 신기루를 궁극적인 진리로 확신하고 쫓아가는 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스마엘은 아합이 빠져있는 허무의 深淵(심연)을 본다. 그는 그 심연의 가장자리에 서서 삶의 모호성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스마엘은 아합에게 강력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만 아합의 영향에 전적으로 지배를 받지는 않는다. 그는 아합의 것과 반대가 되는 영향에도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뉴 베드포드의 여관에서 퀴케그와 침대를 같이 쓰는 것을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곧 키케그의 우정을 받아드린다. 그러자 키케그는 자기 나라의 관습에 따라 소유물의 절반을 이스마엘에게 선물로 준다. 이스마엘은 자신이 부활한 듯한 느낌을 갖는다: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融解(융해)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가슴은 찢어지지 않았고 잔인하고 탐욕스런 세상을 향해 미친 듯이 손을 휘두르지 않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이 야만인이 내 영혼을 구원한 것이다.”〉
아합이 백경 모비 딕에 대해 증오심을 증폭시키며 추격을 가속화할 동안 이스마엘은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아합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동료 인간에게 의지하도록 만드는 인간상호 간의 扶助(부조)’를 저주하지만 이스마엘은 ‘인간 세상은 모든 면에서 인간 상호간에 형성된 공동자산’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손으로 짜내기’(A Squeeze of the Hand )章(장)에서 이스마엘은 고래의 香油[향유(sperm)]를 짜내는 작업을 묘사하고 있다. 작업은 물통 안에서 한다. 각각의 통에는 많은 손이 들어가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실수로 다른 사람의 손을 짜기도 하게 된다.
“짜라! 짜라! 짜라!”
이스마엘은 자신도 녹아들어 가는듯한 환상 속에서 고함을 지른다. “나는 잠시동안 향기로운 초원에 있는 것처럼 살았다. 나는 모든 무서운 저주 따위는 잊어버렸다… 나는 모든 惡意(악의)나 어떤 종류의 분노나 원한도 잊어버렸다. 그저 저 향유를 영원히 짜낼 수 있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많은 오랜 경험에 의해서 모든 인간은 결국에는 어떤 경우라도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행복의 수준을 낮추거나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행복의 목표를 知的(지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에 두지 말고 아내와 마음과 침대와 식탁과 말안장과 난로와 자기가 사는 곳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밀크를 영원히 짜려고 한다.”〉
다음 章(장)에서 이스마엘의 드라마는 정점에 달한다. 시간은 밤이고 이스마엘은 당직으로서 키를 잡고 있다. 다른 승무원들은 모두 고래기름을 끓이는 일에 매달려 있다. 그들은 모두 두 개의 불이 타고 있는 큰 솥 둘레에 모여 있다. 고물 쪽에서 이스마엘은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은 울부짖고 바다는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배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물속으로 잠수했다가 다시 계속해서 어두움 속으로 돌진해 나갔다…”〉
이스마엘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야만인들을 싣고 또 불을 싣고… 암흑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피쿼드호는 편집광자적인 선장의 영혼과 쌍을 이루는 것” 같았다. 그 때 이스마엘의 영혼과 아합의 영혼사이를 용접하고 있던 불길이 꺼지기 시작한다.
이스마엘은 깜빡 졸다가 깨어나서 배가 공중으로 치솟아서 침몰하는 것을 재빨리 막는다. 그는 밤의 부자연스러운 환상에서 벗어나고 강풍으로 인한 침몰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는 환상의 위험에 대해서 독백한다:
〈“오 사람들이여! 불길의 전면을 너무 오래 보지 마라. 불은 특이 체질이다. 불은 변덕스럽고 사물을 歪曲(왜곡)시키는 열기를 가지고 있다. 삶의 보편적인 슬픔을 개인적인 비애로 만들고 그래서 개인적인 분노의 이유로 만드는 것은 개인적 감정의 불빛이다. 그리고 거기에 狂氣(광기)가 있다.”〉
〈“비통함에는 지혜가 있지만 비통함에는 광기도 있다. 그리고 峽谷(협곡)의 가장 깊은 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날라 올라와서 햇빛비치는 하늘공간위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날라 갈 수 있는 캣스킬 독수리(Catskill: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산맥)가 있다.”〉
이스마엘은 아합에게 느끼는 강력한 吸引力(흡인력)에 대항하면서 정신적 균형을 지켜나가고 정신적이고 지적인 자유를 유지해 나간다. 아합은 허무의 심연에 빠져 溺死(익사)하지만 이스마엘은 허무의 협곡에 추락하지 않고 캣스킬 독수리처럼 다시 하늘로 날라 오른다. 그는 아합의 우주관에 공감하지만 그리고 아합의 카리스마에 매혹되지만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지켜낸다.
(계속)
허만 멀빌의 '白鯨'(Moby-Dick) ⑥
- 朴承用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9-01-30, 09: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