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슬픔뿐인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스터브와 아합과 이스마엘 각각은 ‘白鯨’에 나타나는 세 가지 인생관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멀빌은 이 세 인물의 인생관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다와 육지의 隱喩(은유)를 통해 제시한다:
〈태양은 바다를 숨기지 않는다. 바다는 지구의 어두운 면이고 지구의 3분지 2이다. 그래서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사람은, 그런 사람은 진실할 수가 없다-진실하지 않거나 성숙이 덜된 사람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진실 된 사람은 슬픔의 사람이고 책 중에서 가장 진실 된 책은 솔로몬의 책이다… 비애에 지혜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는 비애가 있다. 어떤 사람들의 영혼에는 협곡의 가장 깊은 데까지 降下(강하)했다가 다시 상승하여 햇빛 찬란한 창공 속으로 사라지는 캣스킬 독수리가 있다.〉
여기에 하나의 기준이 있다. 인생은 3분의 2가 어둡고 3분의 1이 밝다. 그래서 인생은 기쁨 보다 슬픔이 더 많다. 그리고 여기에 세 인물의 인생관을 측정하는 準據(준거)가 있다. 첫째로 스터브처럼 진실하지 않거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슬픔보다는 기쁨이 많은 사람이다.
다음으로는 아합처럼 슬픔뿐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마엘처럼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혀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캣스킬의 독수리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白鯨’의 인물들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본질을 가장 적절하게 상징하는 것은 흰 고래이다. 즉 모비 딕은 불가해한 악의와 강렬한 분노, 악마의 속성, 無情(무정)한 공허와 우주의 무한성, 그리고 태초로부터 존재해온 이유 없는 敵意(적의)를 표상하고 있다.
스터브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데에서 피난처를 찾고 의도적인 輕妄(경망)의 언행을 통해서 존재의 비극성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고 한다. 아합의 운명은 삶의 비극적인 사실에 정면으로 맞서서 싸우는 것이다. 이스마엘은 사실을 이해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실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어 나간다.
멀빌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태평스럽게 살아가는 스터브를 특유의 상징적 技法(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허리가 땅에까지 휘도록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음울한 행상인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스터브로 하여금 삶의 봇짐을 즐겁게 지고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리고 不敬(불경)에 가까울 만큼 저렇게 쾌활한 기질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의 파이프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코처럼 그의 짧고 검은 파이프는 그의 얼굴의 한 부분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나는 말한다 그가 계속해서 피워대는 담배는 적어도 그의 특이한 기질의 원인임에 틀림없다 라고.
왜냐하면 육지이든 바다이든 이 세상의 공기는 공기를 내 뿜으며 죽은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의 무수히도 많은 비참한 것들로 심하게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콜레라가 猖獗(창궐)할 때에 사람들이 樟腦(장뇌)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터브의 담배연기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들의 고난에 대항해서 일종의 소독제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스터브가 삶의 괴로움과 악의 감각에 이렇게 무심한 것은 그가 말하는 아합에 대한 評(평)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육지의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 그래. 난 양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나님, 내가 양심이라는 것에 붙들리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생각하지 마라. 이것이 나의 열한 번째 誡命(계명)이야.”
아합이 피쿼드號(호)의 항해목적은 고래잡이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인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복수라고 밝혀도 스터브는 상황의 可恐(가공)한 심각성을 코미디처럼 가볍게 받아들인다:
“하! 하! 하! 하! …난 이 문제를 줄 곳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하하하고 웃는 것이야. 왜냐고? 웃음이 모든 괴상하고 기분 나쁜 것들에 대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쉬운 해답이란 말이다… 무슨 일이 닥쳐올지 난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난 웃음으로 그것을 맞이하겠어. 소름끼치는 공포 속에 숨어 있는 너희들의 그 우스꽝스러운 눈길이라니!”
스터브가 공포의 현실과 맞서기를 회피하고 현실을 戱畵化(화)하는 것은 그의 정신이 不毛(불모)의 상태에 있음을 말해 준다.
스터브의 희극적 성향에 정반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은 아합이다. 모비 딕 추격전에서 모비 딕이 大破(대파)한 보트에 대해 스터브가 時宜(시의)에 적절하지 않는 농담을 던지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아합은 “난파선 앞에서 웃고 있는 이런 놈은 영혼도 없는 인간인가? 자네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용감하다는 것을 몰랐다면 자네를 비겁한 놈이라고 욕설이라도 하겠지만”라고 쏘아 부친다.
영혼이 없고 기계처럼 생각이 없고 진실하지 못하며 정신이 발달하지 못한 인간-이런 인간이 바로 스터브이다. 그는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도 농담을 하는 것이다.
아합도 물론 神들을 향해 웃고 야유를 한다. 그러나 스터브의 웃음은 삶을 회피하는 장난의 웃음이지만 아합의 웃음은 삶의 이빨 안에 던지는 불경스러운 도전이다. 아합의 무서운 ‘조롱의 웃음’은 神의 권위를 嘲笑(조소)하기 위한 웃음이다. 이것은 비애에 압도당한 者(자)의 광기이다. (끝)
<지금까지 朴承用의 영문학 산책을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허만 멀빌의 '白鯨'(Moby-Dick) ⑧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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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03, 1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