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소헤이를 유니콘이라 부르는데 사실은 유니콘보다 더 위대하다. 유니콘은 상상이지만 오타니는 실존하기 때문이다.>(메이저 리그 뉴스)
메이저 리그에서 50개 이상 홈런을 친 타자가 세운 最多도루 기록은 윌리 메이즈와 알렉스 로드리게스 두 선수인데 24개였다. 오타니는 오늘도 홈런과 도루를 추가가여 52-52이다. 오타니의 키는 194cm, 몸무게는 95kg인데 이렇게 큰 선수가 42개 도루 이상을 훔친 적도 없다. 어제 오타니는 마이애미 말린스를 상대로 6 타석 6 안타, 3 홈런, 10 안타, 4 득점, 2 도루를 기록했다. 약 150년 메이저 리그 역사상 처음 보는 가장 위대한 타격이었다. 다저스 팀 아나운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입니다. 현실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라고 소리쳤다.
*어느 선수도 한 경기에서 6 안타, 3 홈런, 2 도루를 기록한 적이 없다.
*어느 선수도 3 홈런, 2 도루를 한 적이 없다.
*도루를 하고 10 타점을 기록한 선수도 없다.
그는 오늘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콜로라도 록키즈와의 경기에서도 4 타석, 3 안타, 2 타점을 기록하면서 홈런과 도루를 하나씩 보태어 52 홈런-52 도루가 되었다. 아무리 강타자라도 열 번 이상 타석에 들어서서 하나 칠 정도인데 그는 어제 오늘 합쳐서 10타석 9 안타 4 홈런이다.
오타니는 차분하다. 크게 환성을 올린 것은 어제 50개째 홈런을 쳤을 때이다. 부끄럼을 타는 그도 어제는 상대편 球場에선 잘 볼 수 없는 커튼 콜에 답례하고 말린스 팀을 향해서 감사 손짓을 보냈다. 오늘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오타니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관중들이 기립했다. 어제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기대감이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느냐고 하니 "격려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名言도 남겼다.
"오늘 타석에 들어갈 때는 앞 타석 일은 잊어버리고 그 순간에 집중했습니다. 결과적으론 그렇게 하는 게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홈런만 노리면 홈런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좋은 타격을 하나씩 쌓아올리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작은 데 최선을 다하니 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기자들에게 고참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1단 기사를 많이 쓰다 보면 특종한다. 특종만 노리다간 1단도 못쓴다."
그런데 오타니의 스윙을 보면 사무라이의 칼 쓰는 모습, 또는 劍道가 연상된다. 집중력의 미학이랄까. 헛스윙을 해도 보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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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6일 기사
오늘 메이저 리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애틀란타 브레이브즈 시합에서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지명타자로 나와 4타석, 4안타(홈런 2개), 타점 3을 기록하는 걸 보면서 사무라이를 연상했다. 그는 사무라이가 칼을 휘두르듯 방망이를 휘두른다. 엄청난 속도로 절도 있게 공을 맞추는데 미학이 느껴진다. 그는 오직 야구만 생각하니 잡념도 없다고 한다. 영어를 배울 만도 한데 아직도 통역을 쓴다. 영어 배우는 시간에 스윙을 더하겠다는 자세이다. 자신의 직무에 몰입하여 하나의 道를 발견하려는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오늘 현재 그는 타율, OPS(출루율과 장타율 합산), 홈런, 2루타. 장타율에서 메이저 전체 1위이다. 5관왕. 타점은 11위, 득점은 4위. 나이 29세에 키 193cm, 몸무게 103kg인데, 발이 빨라 盜壘도 7개로 17위다. 물론 10년 간 계약액수가 7억 달러로 全세계 모든 스포츠 스타 중 1위이다.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들이 양궁과 사격에 능하듯이 사무라이의 피가 흐르는 일본인들은 칼질을 닮은 방망이질이 유전적으로 잘 먹히는지 모르겠다. 이치로, 마쓰이 등 메이저 리그를 주름 잡던 일본인 타자의 전통을 오타니가 잇고 있다. 그는 어깨 부상으로 올해는 투수 역을 포기했다. 홀가분하게 타격에만 집중하니 경이적인 기록이 나올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벌써 두 차례 만장일치의 MVP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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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를 넘긴 한 在日同胞에게 물었다.
“일본에서 오래 사셨는데 보통의 일본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사무라이 정신이 남아 있습니까?”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남아 있습니다”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일본인들은 보통사람부터 公을 私보다 앞세웁니다.”
“公이라면···”
“나라, 회사, 이웃, 사회, 뭐 이런 것들이죠. 한국에 와 보니 公的인 일에 私를 끼워 넣는 등 私益을 公益보다 앞세우는 이들이 많더군요. 특히 출세한 사람들이 더해요. 公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높은 분들이 일본의 낮은 이들보다 못한 것 같아요.”
내가 예를 들어달라고 하니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규슈에 사는데 4층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햇빛을 가린다고 항의하러 왔습니다. 이른바 日照權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웃 대표 되시는 분이 저를 불러 주민 회의에 갔습니다. 한국 같으면 高聲부터 오고 갈 터인데 주민들이 저에게 조용조용 이야기하더군요. ‘김 선생, 어떻게 좀 안 될까요?’라는 식으로 말하니 저도 성의껏 설명하였습니다. 결국 건물 방향을 가로에서 세로로 바꾸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대표 되시는 분이 “김 선생이 이렇게 해주니 우리도 양보합시다”면서 주민들을 설득하니 다 듣더군요. 요사이는 친한 이웃이 되어 잘 지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가로 활약하는 한 조선족 출신 학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직업정신으로 살아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엄격하고 철저합니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도 일단 일을 시작하면 완전히 달라져요. 무섭게 보입니다. 자신의 실수부터 용서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시코쿠로 여행을 갔다. 일본인이 모는 관광버스를 대절하였다. 늘 느끼지만 여행의 成敗엔 운전기사의 자질이 한 몫을 하는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니 정확성과 성실성에서 일본인 운전기사가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운전기사는 40대로 보였는데 아침에 출발할 때는 잠시 묵상을 하더니 “요시!"라고 기합을 넣곤 하였다. 검도 선수가 시합 시작 전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자세였다. 저런 대결 자세로 임하니 실수가 없구나!
일본인 社會人 검도 시합을 구경한 적이 있다. 같은 체급이면 여자 남자 구분이 없다. 여자와 남자가 대결하는데 여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들은 체구가 우리보다 작지만 당차다. 러일전쟁 때 백병전에서 키가 평균 10cm나 작은 일본군이 러시아군에 이겼다. 그들은 평소에 무술을 많이 배운다. 유도, 검도, 당수 등. 태평양 전쟁 후 일본을 점령 통치한 맥아더 사령부는 한동안 학교에서 검도를 금지시킨 적도 있다. 군사문화를 없애려는 뜻에서.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1%가 안 된다. 약 100만 명. 일본인들은 거의 전부가 神道(신도)를 믿는데 이를 종교로 볼 수 있을지는 쟁점이다. 샤머니즘과 불교가 혼합된 인상을 수는 神道는 수많은 神社(신사)를 통해서 일본인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武士道(무사도)는 종교는 아니나 종교적 心性(심성)을 깔고 있다. 일본인이 물건을 만들거나 직장에 다닐 때 보여주는 집중력과 성실함, 여기서 나오는 완벽함의 추구엔 종교적 心性이 보인다. 종교적이라는 것은 궁극적인 것, 초인적인 것, 절대적인 것, 완벽한 것을 갈구하면서 거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求道(구도)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이 경제에 투입되면 名品(명품)을 만든다. 일본엔 求道者的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수년 전 히스토리 채널에서 일본의 사무라이(武士)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칼을 만드는 匠人(장인)이 소개되었다. 마사무네(正宗) 집안이 700년째 代를 이어 名劍(명검)을 만들고 있었다. 그 匠人은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칼을 만들고 나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 칼에 내 이름이 새겨지고 내 정성이 들어갑니다. 1000년 뒤에도 저는 이 칼을 통해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칼에 영혼을 불어넣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기능공이 철학자처럼 말했다. 匠人이기에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일본인들은 상품을 만들 때도 영혼을 쏟아붓듯이 정성을 다한다고 한다. 그러니 불량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한 주제를 붙들고 거기에 魂(혼)을 쏟아붓는 정신,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의 본질이다. 이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무식한 싸움꾼이 아니라 글을 아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武士道를 "죽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뒤집어보면 "사는 것"이다. 항상 명예로운 죽음을 생각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의 모든 분야에 파고들어 있다.
미국의 건국정신, 서양의 기독교 정신(또는 신사도나 기사도), 조선조의 선비정신, 신라의 화랑도 정신 같은 것들이 살아 있어야 그런 사회는 타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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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北海道의 노보리베츠 온천마을 근방엔 에토 시대의 취락을 再現(재현)한 민속촌이 있다. 登別伊達時代村(노보리베츠다데지다이무라)이라고 한다. 그 안에 사무라이館이 있고 유키 료이치라는 사람이 썼다는 "武士道"(Spirit of Samurai)라는 글이 걸려 있다.
<인간의 투쟁본능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이 거친 투쟁본능에 제어장치를 붙여, 통제하려고 했다. 이를 武士道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통제하고 또한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투쟁본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神聖(신성)한 것의 존재를 일본인에게 깨우쳤다. 봉건제도는 무너져도 그것을 지탱해준 武士道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를 體現(체현)한 이를 사무라이라고 한다.
武士道를 일본인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독특한 출생의 비밀에 있다. 무사도의 아버지는 禪(선)이고 어머니는 유교이다. 禪은 불교에 있어서 명상이며, 深思默考(심사묵고)에 의해 知의 영역을 넘어서서 절대의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며, 유교는 祖先(조선) 숭배신앙을 기초로 민족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상호모순 된 개념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긴 武士道를 體現한 인간, 즉 사무라이는 이 둘의 조합의 비율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람의 人生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며, 서두르지 말고 참는 것이 無事長久(무사장구)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도쿠가와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이고, 강함을 추구하면서 결투에 생애를 걸고 상대를 죽여간 미야모토 무사시도 사무라이이다.
이 두 사람 간에는 공통된 삶의 방식이 없어 對局(대국)에 위치하는 듯하다. 단 하나 있다고 한다면 艱難辛苦(간난신고)의 한가운데서 각각 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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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割腹
미드포드(Midford)란 사람이 쓴 「옛날 일본 이야기」(Tales of Old Japan)라는 책에는 그가 목격한 일본 무사의 할복(切腹)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인용한다.
<우리들(7인의 외국 대표자)은 일본 檢使役(검사역)의 안내를 받아 儀式이 집행되는 절의 본당에 들어갔다. 그것은 정말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본당은 지붕이 높고 검은 기둥으로 떠받쳐지고 있었다. 천장에는 불교사원 특유의 찬란하게 빛나는 금색의 燈籠(등롱: 불을 켠 초나 호롱을 담아 내어다 걸 수 있도록 한 기구)과 장식물들이 매달려 있었다.
높은 佛壇(불단) 앞에는, 아름답고 흰 다다미가 깔린 마루가 놓여져 있었는데 땅바닥으로부터 3~4인치 높았고, 여기에 붉은 융단이 덮여져 있었다. 불안과 긴장감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키 겐자부로가 삼베로 만든 예복을 입고서 당당하게 본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이는 32세, 기품 있는 대장부였다. 한 사람의 가이샤쿠(介錯人)와 세 명의 공무원이 같이 들어왔다.
가이샤쿠는 영어의 사형집행인(Executioner)과는 같은 의미가 아님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이샤쿠는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의 역할로서 많은 경우 사형을 선고당한 사람의 일족이거나 친구로서 兩者(양자) 관계는 사형수와 집행인이라기보다는 주연과 조역의 관계이다.
이 경우, 가이샤쿠는 다키 겐자부로의 門第(문제)이며 검도의 達人(달인)이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뽑혀나온 것이었다. 다키 게자부로는 가이샤쿠를 왼쪽으로 데리고 조용히 일본의 검사역이 앉은 데로 나아가 인사를 한 다음 외국인 검사역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더욱 깊은 경의를 표하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곧 다키는 할복할 자리에 올라 조용히 威儀(위의)를 갖추고 본당의 佛壇 앞에 두 번 경례하고나서 佛壇을 등 뒤로 하여 융단 위에 단정하게 앉고 가이샤쿠는 그의 왼쪽에 쪼그리고 앉았다. 곧 세 공무원 중 한 사람이 흰 종이로 싼 短刀(단도:약 25cm)를 사형수에게 내밀었다. 그는 공손히 그 칼을 받아 머리 위로 올리더니 자기 앞에 놓았다.
다키는 거듭 공손하게 절을 한 다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감정이 들어 있었으나 얼굴이나 태도에서는 잘 감지되지 않았다.
"저는 혼자서 무분별하게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고베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발포명령을 내렸는데 그가 도망가려는 것을 보고 재차 발포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죄를 지고서 할복합니다. 검사역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번 또 인사를 한 그는 웃옷을 허리띠까지 벗어 상반신을 드러낸 뒤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윗옷의 소매를 무릎 밑에 괴었다. 신분이 높은 일본 무사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죽어야 명예롭다는 관습이 있다.
그는 천천히 자기 앞에 놓인 단도를 움켜쥐었다. 그는 생각을 집중시켜서 그 칼을 바라보았는데 애정 어린 눈초리였다. 그 순간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추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 단도를 왼쪽 배에 깊이 찔러 넣고 손잡이를 천천히 오른쪽 복부로 당기더니 그 칼을 약간 위로 꺾었다.
이 끔찍하고도 고통스러운 동작을 계속하는 동안 그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단도를 뺐을 때, 그리하여 앞으로 몸을 뻗으면서 목을 내밀더니 비로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때까지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할복장면을 냉철하게 지켜보고 있던 가이샤쿠가 벌떡 일어나더니 하늘을 향해서 칼을 치켜드는가 하는데 어느 새 섬광이 번득이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꽝! 그 소리와 동시에 떨어지는 물건이 있었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그의 머리였다.
죽음과 같은 침묵이 흘렀다. 움직임이 없는 고깃덩어리로부터 쿨렁쿨렁 솟구치는 소름끼치는 피소리가 침묵을 깨고 있었다. 가이샤쿠는 깊게 절하더니 미리 준비한 흰 종이로 자신의 피 묻은 칼을 닦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피 묻은 단도는 집행의 증거물로서 엄숙하게 바깥으로 실려 나갔다.
그 후 일본측 공무원 두 사람이 외국인들 앞에 오더니 사형집행이 끝났으니 확인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儀式은 이것으로 끝나고 우리는 그 절을 나왔다.>
이 글은 명치유신 직후 고베에 주재했던 외국인이 쓴 것으로서 할복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세밀히 묘사한 것이다. 이 글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통 인사)가 영어로 쓴 "武士道"란 책에 실려 있다.
일본의 무사들은 자신의 과오를 책임질 때 이런 할복으로 대신했다. 죽을 때까지도 위엄과 예절을 지키려고 했던 일본 무사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무사도의 핵심은 "어떻게 죽는가"란 주제에 대한 탐구였다고 한다.
죽음의 美學(미학)이란 시각으로 할복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한 사회의 지도층이 어떤 자세로써 공무를 수행해야 하느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면도 있다. 지금의 일본인들 중 특히 지도층 인사들은 이런 할복을 감행한 사람들의 정신적 후예란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명예, 철저함,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할복의 전통을 가진 지도층, 그런 윤리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오늘의 일본을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약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오타니, 오늘도 홈런과 도루 추가, 52-52!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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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1, 18:55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오타니가 한국인이었다면 한국 언론에서는 어떻게 기사를 썼을까…하는. 그 세계에서는 별 특출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선수들을 코리안 몬스터, 나고야의 태양, 바람의 아들(손자) …같은 만화같은 말을 지어내며 흥분하던 애국심 충만한 기자들이 과연 무슨 말을 또 지어내며 연일 특보를 할까 하는, 그런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