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
여행 중 만난 사람들(236) - 부당한 건 따져야 한다 <235회에서 계속> .
*말과 글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 .
19. 모로코 라바트에서 - (스페인 남부 알헤이시라스 항에서 배를 탔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약 두 시간 만에 모로코 탕헤르 항에 도착했다. 체크 아웃을 하고 선착장으로 나오자마자 현지인 젊은이 두 명이 내 배낭을 들어 주겠다며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라바트 기차역까지 약 15분간 걷는 동안 계속됐다. 끝내 내 배낭을 안 맡기고 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서너 명이 모여 내 주위를 에워싸며 무조건 팁을 내놓으라고 했다. 카사블랑카행 기차를 타려면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마침 큰 배낭을 짊어 메고 역 앞을 지나가는 대여섯 명의 서구인 젊은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바로 나를 괴롭히던 현지인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녀석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뭐라고 했느냐고 했더니,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내 친구인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단다. 그들도 내가 탈 카사행 기차를 탄다며 함께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다. 나에겐 행운과 같은 기회였다. 그들은 스페인 고등학교 동창생들이었다. *이들 6명 중 영어를 하는 친구는 단 한 명뿐. 참 신기한 것은 어딜 가나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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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 (이곳의 공원에서 두 명의 모로코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일. 그중 한 명이 나에게 그림엽서를 보이며 부산에 있는 한국인 친구에게 보낼 건데 내용을 한국어로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써 주었다. 그들은 감사의 뜻으로 나에게 모로코 전통차를 대접하겠다고 했고, 그 뒤로 맥줏집까지 따라갔다가 결국 거금 100달러를 사기당하고 싸구려 포도주 한 병만 받아들고 숙소를 되돌아와야만 했다. 경찰에 신고해봐야 역효과만 볼 뿐이라며 같은 숙소에 있던 알제리인 친구가 말렸다. 그러나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출국 직전 경찰서 대신 규모가 큰 여행사에 갔다. 내가 사기를 당한 얘기를 했고 그들로부터 대신 사과를 받는 것으로 위안(慰安)으로 삼았다. 이 경우는 그들의 부탁과 제의를 거절하지 못한 내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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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 (우리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갔다. 이곳은 고대(古代)에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도서관이었다. 이곳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건립한 후 로마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까지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곳을 관람 후 우리는 알렉산드리아 해안에 있는 멋진 ‘카이트 베이 성채(Qaitbay Citadel)’에 들어갔다. 이곳은 먼 옛날 파로스 등대(燈臺)가 있던 자리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이곳은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다. 해안선 길이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었다. 중간 지점에서 식당에 들어가 생선구이를 주문했다. 요리가 나왔다. 메뉴 내용과 너무 달랐다. 생선 모양 자체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종업원이 주방에 들어갔다 오더니 메뉴의 생선이 없어서 다른 것으로 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것이 아니므로 취소하고 싶다고 하니 받아들였다. 콜라값만 지불하고 나왔다. 다른 식당에서 생선튀김을 주문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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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 (우리는 숙소 앞에 야시장 비슷한 것이 있어 구경 나왔다. 주로 빵과 생선류였다. 그곳의 생선은 모두 바이칼호수 생선이라고 했다. 이름도 다양했다. 그 중 오믈(Omul)이 가장 인기였다. 호기심은 갔지만 이미 식사를 한 후여서 구경만 했다. <*나중에 바이칼호수에 가서 그 물고기를 먹었음.> 잠시 후, 군복 비슷한 옷을 입은 40대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여권을 보여 달란다. 호텔에 두고 왔다고 하니 이 친군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째려봤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를 가리키며 지금 여권을 가지고 오라면 당장 가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버티고 있길래 그가 알아듣든 말든 우리는 순수한 여행자이며 이틀 후 우리는 다시 열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간다고 주절대니까 이 친군 별말 없이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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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베트남 나트랑에서 - (나트랑 게스트하우스에는 나와 40대 일본인 남자 그리고 30대 이스라엘인 여자 예비역 공군 장교가 있었다. 숙소 구조는 일인용 침대 5개를 일렬로 쭉 놓인 상태로 침대 앞부분에 옷걸이(행어)가 하나씩 있었다. 각자의 세탁물과 수건을 걸어 두는 곳. 그런데 일본인 친구는 자기 옷과 세탁물을 내 행어에도 걸어 놓았다. 첫날은 모른 척했다. 다음날에도 그러기에 내 행어에 그의 옷을 걸어 놓지 말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신 그러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 날 일본인과 이스라엘 여성과의 다툼이었다. 실내 구석에 공동 샤워실이 있었다. 거기서 이스라엘 여성이 샤워 중인데 일본인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계속 노크를 한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무대응. 미안하다는 말도 안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어제 경험한 옷걸이 문제를 얘기하며 일본인이 고의로 한 행동이 아닐 것이니 이해하라고 했고 그녀도 내 말을 받아들였다. 나중에 숙소 주인에게 알아봤더니 그는 장기(長期) 투숙 인인데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나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스라엘 여성이었다. 그녀의 단호한 태도와 목소리가 그랬다. 알고 보니 그녀는 예비역 공군 장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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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중국 쿤밍에서 - (쿤밍의 승마장(乘馬場)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영어가 통하던 어느 중국인 남자와 얘길 나누고 있는데 50대 중반의 중국인 여성이 내게 다가와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내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그녀는 중국은 미국과 싸워 조선을 지켜줬다며 횡설수설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란 말을 계속했다. 미국은 침략자라고 했다. 내가 반박했다. 6.25 전쟁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소련이 합작해 남침(南侵)을 한 악명 높은 전쟁이다. 미국은 유엔군과 우리와 함께 공산 침략군과 싸워 大韓民國의 자유를 지켜 준 우방(友邦)이다. 나는 한마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인 특유의 호기심은 금방 주변에 모여들어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좀 긴장된 분위기. 이런 경험을 자주 한지라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미국 이민 생활 30년을 마치고 역이민(逆移民)한 자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중국 역시 경제가 급성장하자 이런 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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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도 첸나이에서 - (안다만에 가기 위해 비자 발급처에 갔다. 대기실에 여행자들이 제법 많았다. 내 차례가 되어 비자 신청서를 내니 3일 후에 오란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친구들에게 그 말을 했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비자 찾으러 갈 때 그냥 가면 안 주고 또 3일 후에 오라고 할 테니 약간의 팁을 주라는 것. 설마 하고 3일 후에 갔더니 진짜 그랬다. 이날도 대기실엔 여러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담당자 앞에 가서 말했다. 약속한 날에 왔는데 왜 또 3일 후에 오라는 건가. 그 이유가 뭔가. 난 그것을 분명히 알기 전에 그냥 갈 수 없다. 잠시 후 이변(異變)이 생겼다. 그 담당자가 다른 직원에게 뭐라고 얘길 하니 그 직원이 나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철제(鐵製) 캐비넷을 열어 수십 개의 여권이 꽂혀있는 곳에서 내 여권을 찾아 내게 건네주었다. 이는 내가 방글라데시 입국 시 이민국 관리를 말로 설득시켜 비자를 받은 것과 같다.) <계속...글로 쓴 영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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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난 사람들(236) - 부당한 건 따져야 한다 <235회에서 계속> .
*말과 글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 .
19. 모로코 라바트에서 - (스페인 남부 알헤이시라스 항에서 배를 탔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약 두 시간 만에 모로코 탕헤르 항에 도착했다. 체크 아웃을 하고 선착장으로 나오자마자 현지인 젊은이 두 명이 내 배낭을 들어 주겠다며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라바트 기차역까지 약 15분간 걷는 동안 계속됐다. 끝내 내 배낭을 안 맡기고 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서너 명이 모여 내 주위를 에워싸며 무조건 팁을 내놓으라고 했다. 카사블랑카행 기차를 타려면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마침 큰 배낭을 짊어 메고 역 앞을 지나가는 대여섯 명의 서구인 젊은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바로 나를 괴롭히던 현지인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녀석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뭐라고 했느냐고 했더니,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내 친구인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단다. 그들도 내가 탈 카사행 기차를 탄다며 함께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다. 나에겐 행운과 같은 기회였다. 그들은 스페인 고등학교 동창생들이었다. *이들 6명 중 영어를 하는 친구는 단 한 명뿐. 참 신기한 것은 어딜 가나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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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 (이곳의 공원에서 두 명의 모로코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일. 그중 한 명이 나에게 그림엽서를 보이며 부산에 있는 한국인 친구에게 보낼 건데 내용을 한국어로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써 주었다. 그들은 감사의 뜻으로 나에게 모로코 전통차를 대접하겠다고 했고, 그 뒤로 맥줏집까지 따라갔다가 결국 거금 100달러를 사기당하고 싸구려 포도주 한 병만 받아들고 숙소를 되돌아와야만 했다. 경찰에 신고해봐야 역효과만 볼 뿐이라며 같은 숙소에 있던 알제리인 친구가 말렸다. 그러나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출국 직전 경찰서 대신 규모가 큰 여행사에 갔다. 내가 사기를 당한 얘기를 했고 그들로부터 대신 사과를 받는 것으로 위안(慰安)으로 삼았다. 이 경우는 그들의 부탁과 제의를 거절하지 못한 내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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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 (우리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갔다. 이곳은 고대(古代)에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도서관이었다. 이곳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건립한 후 로마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까지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곳을 관람 후 우리는 알렉산드리아 해안에 있는 멋진 ‘카이트 베이 성채(Qaitbay Citadel)’에 들어갔다. 이곳은 먼 옛날 파로스 등대(燈臺)가 있던 자리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이곳은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다. 해안선 길이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었다. 중간 지점에서 식당에 들어가 생선구이를 주문했다. 요리가 나왔다. 메뉴 내용과 너무 달랐다. 생선 모양 자체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종업원이 주방에 들어갔다 오더니 메뉴의 생선이 없어서 다른 것으로 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것이 아니므로 취소하고 싶다고 하니 받아들였다. 콜라값만 지불하고 나왔다. 다른 식당에서 생선튀김을 주문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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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 (우리는 숙소 앞에 야시장 비슷한 것이 있어 구경 나왔다. 주로 빵과 생선류였다. 그곳의 생선은 모두 바이칼호수 생선이라고 했다. 이름도 다양했다. 그 중 오믈(Omul)이 가장 인기였다. 호기심은 갔지만 이미 식사를 한 후여서 구경만 했다. <*나중에 바이칼호수에 가서 그 물고기를 먹었음.> 잠시 후, 군복 비슷한 옷을 입은 40대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여권을 보여 달란다. 호텔에 두고 왔다고 하니 이 친군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째려봤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를 가리키며 지금 여권을 가지고 오라면 당장 가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버티고 있길래 그가 알아듣든 말든 우리는 순수한 여행자이며 이틀 후 우리는 다시 열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간다고 주절대니까 이 친군 별말 없이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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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베트남 나트랑에서 - (나트랑 게스트하우스에는 나와 40대 일본인 남자 그리고 30대 이스라엘인 여자 예비역 공군 장교가 있었다. 숙소 구조는 일인용 침대 5개를 일렬로 쭉 놓인 상태로 침대 앞부분에 옷걸이(행어)가 하나씩 있었다. 각자의 세탁물과 수건을 걸어 두는 곳. 그런데 일본인 친구는 자기 옷과 세탁물을 내 행어에도 걸어 놓았다. 첫날은 모른 척했다. 다음날에도 그러기에 내 행어에 그의 옷을 걸어 놓지 말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신 그러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 날 일본인과 이스라엘 여성과의 다툼이었다. 실내 구석에 공동 샤워실이 있었다. 거기서 이스라엘 여성이 샤워 중인데 일본인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계속 노크를 한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무대응. 미안하다는 말도 안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어제 경험한 옷걸이 문제를 얘기하며 일본인이 고의로 한 행동이 아닐 것이니 이해하라고 했고 그녀도 내 말을 받아들였다. 나중에 숙소 주인에게 알아봤더니 그는 장기(長期) 투숙 인인데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나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스라엘 여성이었다. 그녀의 단호한 태도와 목소리가 그랬다. 알고 보니 그녀는 예비역 공군 장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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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중국 쿤밍에서 - (쿤밍의 승마장(乘馬場)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영어가 통하던 어느 중국인 남자와 얘길 나누고 있는데 50대 중반의 중국인 여성이 내게 다가와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내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그녀는 중국은 미국과 싸워 조선을 지켜줬다며 횡설수설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란 말을 계속했다. 미국은 침략자라고 했다. 내가 반박했다. 6.25 전쟁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소련이 합작해 남침(南侵)을 한 악명 높은 전쟁이다. 미국은 유엔군과 우리와 함께 공산 침략군과 싸워 大韓民國의 자유를 지켜 준 우방(友邦)이다. 나는 한마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인 특유의 호기심은 금방 주변에 모여들어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좀 긴장된 분위기. 이런 경험을 자주 한지라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미국 이민 생활 30년을 마치고 역이민(逆移民)한 자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중국 역시 경제가 급성장하자 이런 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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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도 첸나이에서 - (안다만에 가기 위해 비자 발급처에 갔다. 대기실에 여행자들이 제법 많았다. 내 차례가 되어 비자 신청서를 내니 3일 후에 오란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친구들에게 그 말을 했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비자 찾으러 갈 때 그냥 가면 안 주고 또 3일 후에 오라고 할 테니 약간의 팁을 주라는 것. 설마 하고 3일 후에 갔더니 진짜 그랬다. 이날도 대기실엔 여러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담당자 앞에 가서 말했다. 약속한 날에 왔는데 왜 또 3일 후에 오라는 건가. 그 이유가 뭔가. 난 그것을 분명히 알기 전에 그냥 갈 수 없다. 잠시 후 이변(異變)이 생겼다. 그 담당자가 다른 직원에게 뭐라고 얘길 하니 그 직원이 나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철제(鐵製) 캐비넷을 열어 수십 개의 여권이 꽂혀있는 곳에서 내 여권을 찾아 내게 건네주었다. 이는 내가 방글라데시 입국 시 이민국 관리를 말로 설득시켜 비자를 받은 것과 같다.) <계속...글로 쓴 영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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