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웅 아버지와 사라진 중앙청, 청와대 이전을 보며 보수주의를 생각한다

황영웅과 청와대기 핍박 받을 때 왜 보수인사들은 침묵했나?
십여 년쯤 전인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씨름선수 출신 이만기와 강호동의 재대결이 있었다. 씨름 부흥을 위한 이벤트 성격의 친선 오락경기였다. 시합 전 방송 제작진이 먼저 이만기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당시 제작진이 이만기에게 안부를 묻다가 무심코 ‘강호동 씨는 막 심장이 떨리고 그렇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만기는 다른 말을 하려다가 순간 멈추고는 ‘아, 이게 이기려고 하는가 보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이만기의 혼잣말은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관적으로 느끼고 예지하는 보통 생각의 전형일 것이다.

그런 것처럼 보통시민들도 일상에서, 정부 정책에서, 정치인들의 말에서 저 이만기처럼 느끼고 눈치채고 깨닫곤 한다. 단지 구구하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그렇게 생겼을 것이다. 이렇듯 보통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느끼고 미루어 짐작하고 기뻐하고 또 아파하는 것들, 그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가장 함축하여 담은 것 중 하나는 대중가요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 트로트가 그런 역할을 많이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트로트는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네 정서에 맞는 멜로디이기도 하고. 세상의 쓴맛 단맛을 좀 본 사람들, 경험 많은 한국인들이 비로소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된 것이야말로 우리 ‘보수(保守)’의 본질일 수 있다. ‘트로트’를 꺼낸 것은 보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황영웅도 꺼냈다.


언론이 황영웅을 죽이려 한 이유


나는 황영웅 사례를 보며 솔직히 우리 자칭 보수들이 무지하거나 둔하거나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왜 보수는 총화단결 하여 황영웅을 보호하지 못했는가? 이 시점에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어떤 이들은 일전에 일부 보수 원로들이 황영웅을 감싸는 것을 보며 ‘자기 좋아하는 가수 편들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뭐 다소 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이 ‘황영웅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황영웅 사태의 본질은 진보(進步)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좌파(左派) 카르텔의 ‘보수 씨 말리기’의 하나였던 것이다.

작년 초순인가 가수 황영웅은 한 종편방송의 트로트 경연대회에서 1등을 눈앞에 두고 하차했다. 학창시절 있었던 일들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학창시절 있었던 일들로 하차했다기보다는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이 그의 학창시절 있었던 일들을 구실삼아 끌어내린 것이었다. 황영웅에게 언론이 제기한 문제들은 상당 부분 부풀려진 것이었다. 심각한 방송 결격 사유는 없어 보였다. 대개는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런 그 정도 수준이었다. 다른 연예인 사례와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이수근, 김구라, 정우성은?

우리가 아는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은 많다. 개그맨 이수근의 경우 한창 인기 있던 시기에 한 여성으로부터 성폭행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혐의는 특수강간(2인 이상 합동하여 강간)과 야간·공동상해였다. 이 사건은 성폭행은 무혐의로, 공동상해는 기소유예로 끝이 났다. 공동 폭행은 인정되었는데 기소만 유예된 것이다. 성폭행당했다고 고소한 그 여인이 무고죄로 처벌받지도 않고 끝났다. 이수근은 그 후에도 불법도박 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 그러고도 지금 공중파에 출연하는 데에 아무 이상이 없다.

개그맨 김구라의 경우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저질욕설을 수도 없이 내뱉었다. 정치 편향적 발언은 예사였다. 그러고도 아무 지장 없이 방송에서 건재하고 있다. 썰전이라는 정치 오락프로그램 진행까지 맡았다. 말고도 다른 사례는 많다. 우리에게 ‘추성훈’으로 널려 알려진 유도선수 출신 예능인의 경우 사실은 일본에 귀화한 일본 국적의 아키야마 요시히로이다. 태어났을 때가 일제시대였던 사람들의 창씨 개명 문제만 가지고도 난리를 치는 이른바 진보언론들이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일본 국적을 택한 아키야마에게는 꼬박꼬박 ‘추성훈’이라 불러주며 띄워 준다. 신동빈은 한국 국적인데, 롯데그룹이 일본 기업이니 어쩌니 신동빈이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어쩌니 비난하던 그 언론들이.

또 요즘 좀 시끄러운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보자. 이 사람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사랑을 받으며, 깨어 있는 시민인 양 난민(難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기저기 외치고 다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우리 북한 주민들을 살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정유라 이화여대 입학 문제 등을 놓고 ‘박근혜 나와’라고 했던 정우성은 그 많은 혐의를 받은 문재인, 조국에게는 나오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글쎄 혼외자는 덜컥 나아놓고 본인이 키우지도 않을 모양이다. 이런 사람을 엊그제 조선일보사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제에서는 시상자로 모셔놓고 마이크를 주었다. 혼외자 문제에 변명할 기회라도 주는 듯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수근, 김구라, 아키야마, 정우성을 몰아내자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프로 연예인이 된 후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지만 20대의 황영웅에게 제기된 의혹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일들이고 그마저도 언론의 억지와 과장이 많았다. 이들의 사례에 비추어보더라도 황영웅의 경우는 너무나도 언론이 불공평하게 대했다는 말이다. 죽이기였다는 점이다. 반면 좌파매체들은 좌파 친화적 발언을 한 연예인은 보상이라도 하는 듯 철저히 띄워 주었다.

좌파 패권주의 완성과 황영웅 탄핵

그러면 언론은 왜 유독 황영웅을 죽이려 하였는가. 건국 이후 낭인(浪人) 생활 처지였던 좌파(左派)는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전복하고 장악할지를 오랜 기간 심층 연구했다. 이들은 DJ, 노무현 정권 시절 기회가 오자 우리 사회 장악의 토대를 상당 부분 형성했다. 그것은 이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좌익화(左翼化)였고 그 핵심은 교육, 언론, 문화 장악이었다.

DJ, 노무현 정권은 우선 사면권(赦免權)을 남발했다. 국가보안법 전과자가 공직에 진출할 길을 열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전교조를 합법화하였고 전국공무원노조가 자리 잡도록 하였다. 기업에서도 노조가 기승을 부리도록 정권이 방관했다. 좌파가 각 대학을 장악하다시피 하여 교직 외에 행정직까지 차지했다. 그런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문화계로 언론계로 학계로 뻗어 나가 PD, 기자, 선생, 배우, 포털사이트 경영자가 되었다.

좌파는 언론, 출판, 문화계를 장악한 다음 좌파의 주장만이 진실이며 보수우파(保守右派)의 주장은 낡은 것, 거짓말, 권위주의, 친일(親日), 위선(僞善)이라 매도했다. 보수진영의 소리를 들으래야 들을 수 없도록 좌파정보로 온 세상을 뒤덮어 놓았다. 방송에서도 보수 지지자는 발을 못 붙이도록 하였다.

저들은 얼마남지 않은 보수성향 언론매체를 장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좌파 정권 때 이른바 ‘조중동’의 사주(社主)들이 세무조사를 받거나 구속되었다. 이후 ‘조중동’은 점차 좌경적으로 변하였다. 저들은 그 기조와 동력을 유지한 채 박근혜 정권을 맞이하였고 좌파 입장에서의 탄핵의 여건은 완벽히 조성했다.

지난 탄핵 당시 언론의 집요한 박근혜 죽이기는 흡사 황영웅 죽이기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박근혜는 저변의 보수 시민들이 범국민적으로 성원하는 마지막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치밀하게 각 연령대 시청자층을 상대로 맞춤형 공격을 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여성이나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박 대통령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로 시비했다. 육영수 향수를 노린 사치성 머리치장이라고 하거나 옷이 너무 많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노년층을 향해서는 “박근혜가 채동욱을 시켜 전두환 비자금 수사를 지시했다”고 하였다. 젊은층에게는 “박근혜는 세금으로 먹고 산 자다, 박근혜는 전두환에게 받은 돈으로 강남에 비싼 집을 샀다”고 하였다. 반일감정을 가진 계층을 향해선 “박 대통령이 위안부 협상을 졸속으로 했다”고 하였다. 이런 식의 여론조성을 집요하게 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탄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문재인이 집권했다.

그쯤이면 좌파들은 보수세력과 그를 추종하는 시민들의 보수수호(保守守護) 의지를 거의 꺾어놓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좌파들이 싫어하는 종편은 주로 보수성향 노년층이 보는 편인데, 그 종편마저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세였기에 좌파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TV조선에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으로 노년층을 끌어모았고 그 연출을 맡았던 PD가 MBN으로 가서 또 다른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으로 종편 인기 상승의 여지를 만들고 보수적 노년층에게 기쁨을 준 것이다.

좌파는 이러한 보수세력의 기쁨 그리고 보수 노년층의 일종의 결집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황영웅 죽이기였다. 황영웅 죽이기는 문화계에서의 탄핵인데, 이것은 트로트 죽이기의 일환이고 결국 종편 기반을 흔드는 것이다. MBC는 보수 노년층이 성원하였던 가수 황영웅을 무슨 저주의 굿판이라도 하듯 ‘전과자’ ‘갱생실패’ ‘성공해선 안될 연예인’이라고 매도부터 하였다. 가장 하일라이트는 황영웅을 가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두고 ‘무지한 노인의 아둔한 팬심’이라고 한 것이다. 정말 이것은 언론이 해서는 안 되는, 아니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하기 힘든 아주 사악한 표현이다. 더 말하기도 싫다. 노인을 공경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가 어떻게 이 따위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는가.

중앙청 폭파가 가져온 것들

보수주의(保守主義)란 무엇인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보수는 실상 진보로부터 시작되어 고착된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 문약(文弱)한 조선조(朝鮮朝)의 악습(惡習)을 멀리하고 서구 자유민주주의를 모범 삼아 당대 최고의 진보적 가치로서 출발한 제도, 이념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중앙청 얘기를 한다. 광화문 광장 위에 있던 중앙청은 다들 알다시피 YS가 폭파해버렸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에서였다. 일제 잔재를 따지자면 중앙청만 있는 것도 아닌데 YS는 유독 중앙청부터 없애버렸을까. 대통령이 된 YS는 ‘역사바로세우기’를 내걸었다. ‘신한국 창조’도 내세웠다. 정권을 ‘문민정부’라 하였다. YS가 말하는 역사바로세우기, 신한국 창조, 문민시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중앙청 폭파와 무관하지 않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누구보다 일제와 싸운 인물이다. 진정한 독립투사이다. 그 이승만 대통령도 중앙청을 없애지 않았다. 일제가 사용하던 청사를 빼앗았다고 여긴 것인지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를 중앙청에서 하였다. 중앙청은 우리 건국 이래 5.16은 물론 수많은 현대사와 함께 했다. 다수시민에겐 추억의 건물이기도 하다. 이를 독단의 결정으로 폭파해버리고 역사바로세우기와 신한국 창조를 내세웠다는 것은 결국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가 부흥시킨 대한민국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집권하자마자 청와대 구(舊)관저를 허물고 중앙청을 폭파시킨 것은 YS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이는 그 정권의 로드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후 YS는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고 결과에 있어 DJ가 대통령이 되도록 만들었다. 재임 시 YS는 문화적 측면에서도 좌파 대부 백낙청 등에게 날개를 달아주어 이는 나중에 DJ, 노무현 정권이 우리 언론, 교육, 문화계를 보다 빨리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된다. 중앙청 폭파는 DJ, 노무현 정권 등장의 서막이기도 했다.


저변 시민들 눈에는 보이는 암운(暗雲)

앞서 이만기와 강호동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만기가 혼잣말로 ‘이게 이기려는가 보네’라고 했던 것은 보통의 사람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짐작이다. 정식 프로 시합도 아닌 오락프로그램인데 강호동이 긴장한다는 건 누가 듣더라도 이만기와의 승부에 신경 쓰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소위 먹물들은 서민, 운동선수들을 다소 무지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투기종목 선수들에게 보다 그런 관념을 지닌 것 같다. 그러나 이만기나 강호동이 살아온 것을 보면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지혜롭게 처세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안희정, 박원순, 김민석, 오거돈보다 사생활도 깨끗해 보인다.

보통시민들도 일상에서, 정부 정책에서, 정치인들의 말에서 저 이만기처럼 느끼고 눈치채고 깨닫는다. 이만기가 저렇게 생각한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지 않은 것을 놓고 보통 사람들은 윤석열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YS의 중앙청 폭파 사례 후의 일들을 겪은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경험에서 깨우치는 것이 지혜이고 그것이 보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거부하였다는 것은 이전 정권과 우리 대통령제가 독재적, 제왕적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YS가 이승만, 박정희를 부정하고 DJ 집권의 길을 터준 것과 유사한 전철을 윤석열이 밟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보수정권으로서의 윤 정권의 파멸은 청와대로 가지 않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닌 것이다. 이미 의료대란으로 예고편을 보여준 터다. YS의 신한국 창조와 개혁은 백낙청 같은 이들을 등장시켜 기존 문화 질서를 뒤집는 것에 그쳤지만 윤석열의 이른바 ‘의료개혁’은 많은 사람 목숨을 현실적으로 뒤집어 놓을 것이라는 점에서 폐해가 훨씬 우려된다. 그나마 YS는 라이벌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던 DJ와 서로 울타리가 되어 주었지만 윤석열에겐 그런 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윤석열 개인의 불행 또한 더욱 뚜렷이 암시하는 것 같다.


애처로운 황영웅의 아버지

다시 황영웅 이야기로 돌아온다. 황영웅은 순수한 보수 노인들의 아들이었다. 저들은 이것마저 앗아가려 했다. 이른바 진보언론들의 황영웅 죽이기는 실상 좌파 패권주의의 일환으로서 보수세력을 문화계로부터도 씨를 말리려는 것이었다. 나는 황영웅을 잘 모른다. 트로트도 잘 모른다. 다만 아버지가 아들 목소리 좀 듣겠다는데, 그도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은 사탄이 할 짓이라는 생각이다. 만일 보수우파 세력이 정우성이나 이수근을 연예계에서 퇴출시키려 했다면 좌파세력은 일치단결하여 이들을 보호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조갑제 기자의 황영웅 구하기를 안타깝게 지켜보았던 것은 그가 보수의 자존심을 걸고 좌파 언론연합의 ‘보수 아들 죽이기’에 고군분투해서이다. 보수가 일치단결하여 조갑제 기자를 돕지 않는 걸 보고서이다. 청와대 이전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모두 장래 보수세력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이전과 좌파언론 카르텔의 황영웅 죽이기는 진성 보수우파에게는 묵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그러나 조갑제 기자마저 기력이 떨어진다면 이제 누가 저 쓸쓸한 보수 노인들을 위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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