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주택 2백만 호와 5대 신도시 건설

주택문제 해결 위해 국가총력전 전개

盧 전 대통령은 재임시 주택 2백72만 호를 지었다. 이처럼 단기간에 국가총력전 형태로 대도시 몇 개를 건설한 사례는 세계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무릇 세상 사는 만인을 고루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택 2백만 호 건설 정책도 無주택자에겐 내 집 마련이라는 희망을 주었으나 有주택자에겐 부동산 가격 하락이라는 상처를 안겼다. 국가 자원이 非생산적인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돼 국제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盧 전 대통령의 육성증언을 들어본다.

<제6공화국이 탄생하는 시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성장만 갖고는 안되고 분배 복지를 배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므로 정부가 주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집 없는 설움도 컸지만 집 자체가 재산으로 여겨져 누구는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만 되면 그 자리에서 몇천만원, 몇억원을 벌고 하는 것이 무슨 폭동이라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사회 분위기였다. 그래서 정치적 결단을 내려 주택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농촌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주택문제가 가장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게다가 핵가족화에 따른 가구수의 급격한 증가로 연간 1천5백만 평의 새로운 宅地(택지) 수요가 발생하고 있었다. 공업용지와 공공시설용 토지를 합치면 매년 2천만 평 이상의 토지를 개발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대도시를 중심으로 토지수급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地價(지가)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초과하는 바람에 부동산 투기 과열은 주택값과 전세값을 단숨에 2~3배씩 올려 놓아 근로의욕과 저축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특히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이 요원해지면서 집 없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자살함으로써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6共 출범 직전인 1987년의 우리나라 전체 주택수는 6백45만 호로 주택보급률은 전국 69%, 서울 56%였다. 당시의 주택건설은 한 해 평균 24만 호로, 1983~87년까지의 5년간 1백25만 호가 지어졌다.

그러던 것이 6共 기간중인 1988~92년까지 5년간 모두 2백72만 호를 지었다. 전국 주택수의 40%를 5년간에 지은 것이다. 연평균 55만 호씩 늘어난 셈인데, 이에 따라 서울의 주택 보급률이 1987년 56%에서 1992년에는 67%로 높아졌다. 그 덕에 1988년 18%, 1990년 38%에 이르렀던 주택가격 상승률도 1991년에 가서는 마이너스 5%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행착오 각오했다

주택 2백만 호 건설은 1988년 3월 경기도 평촌과 산본에서부터 시작했다. 1차사업이 1988년 3월에 시작됐는데, 1988년 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아파트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1989년 2월, 민정당이 주최한 「보통사람들의 밤」 행사에서 주택 2백만 호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주택공급 전환의 시초가 된 영구임대주택 공급안을 내놓았다. 도시 영세민을 위해 25만 채의 영구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주택 2백만 호 건설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언론이나 각종 연구기관, 정당 등도 한국이 경제발전을 하는 과정에서 衣와 食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했지만 住의 문제만큼은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2백만 호 건설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주택 건설 능력은 연간 20만~30만 호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2백만 호 건설은 나의 재임기간 5년 동안에는 다소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택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다 보니 최선을 다하는 쪽으로 밀어붙이게 된 것이다.

나는 주택 2백만 호 건설은 근본적으로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실행 과정상에서 나타난 일부 시행착오가 문제였다고 본다. 게다가 주택경기 活況(활황)에 편승해 연간 70만 호의 주택을 건설하다 보니 5년이 아니라 3년 10개월 만에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자재파동, 임금 상승, 물가 상승, 국제수지 적자 등과 부실시공 우려 등의 비판을 혹독하게 받았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오늘날 주택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본다. 이러한 건설경기 과열은 정부 의도라기보다는 주택 가격이 올라가는 데 따라 내집 갖기에 대한 국민정서가 상당히 작용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1989년과 1990년에 집값이 집중적으로 폭등하자 당시 관계부처인 李鎭卨(이진설) 건설부차관이 연일 텔레비전과 신문에 나가 『집값을 곧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입장을 전달하는 데 애를 먹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朴昇(박승) 건설부장관이 국회에 가서 『집값이 떨어지고, 집을 팔려 해도 팔리지 않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했더니 국회의원들이 『웃기지 말라』는 식의 표정을 지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집값 오름세는 1991년 5월부터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신도시 건설 계획 역시 천정부지의 아파트값을 잡기 위한 극약처방이었음은 물론이다.
신도시 건설은 건설부와 청와대의 합작으로 이루어졌다. 신도시 건설 계획은 각 부처간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데다 정치적 반발까지 겹쳐 있어 건설부 혼자 힘으로는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에 청와대가 나서서 부처간 교통정리를 해 주었다.
당시 여론 조사도 국민들의 80% 이상이 신도시 건설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반대파들이 모함도 하고 협박 비슷한 것도 했지만,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만큼은 초지일관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집은 남고, 부작용은 해소됐다

결국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 것은 주택 2백만 호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 중에 임금 상승이나 자재 파동과 같은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갖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훗날 역사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책이란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종 선택하는 지도자가 나라의 정치·경제·사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당시에도 부동산 투기를 그냥 두느냐, 아니면 부작용을 감안해서라도 주택 2백만 호 건설을 밀어붙이느냐 하는 기로에서, 밀어붙이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집은 영원히 남는 것이고, 이에 따른 부작용은 몇 년 정도 지나면 회복이 가능한 것이다. 즉 「정책의 선택」이 기본적으로 얼마의 비용을 들여서 얼마를 얻느냐 하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일부 희생을 치르더라도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월등히 낫다는 정책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주택 2백만 호 건설을 위한 신도시 부지를 물색하려고 보니까 시내에는 도저히 땅이 없었다. 次善(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서울에서 電鐵(전철)로 30분 가는 거리를 찾다보니까 분당, 평촌, 산본, 중동 등 네 군데가 후보지로 떠올랐다.

당시 일산은 이야기도 안 나왔고 분당과 중동, 평촌, 산본 네 곳은 10여년 전부터 住公(주공)에서 개발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산본은 李載灐(이재형) 국회의장의 반대로 개발하지 못했던 곳이고, 분당의 경우는 그린벨트에 묶여 있지는 않았지만 朴正熙 대통령이 그린벨트에 준해서 관리하라고 특별 지시를 했던 곳이었다. 여기에 건설부에서 분당은 유보해 두자고 해서 제외시켰고, 중동 또한 당장 교통문제 해결이 어려우므로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보하자는 결론이 내려져 산본과 평촌부터 착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차사업이 1988년 3월에 시작됐는데, 그 해 말쯤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분당도 연이어 신도시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남지역만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강북지역에서 부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검토된 곳이 의정부와 일산지역이었다. 의정부 지역의 경우 로열 컨트리 클럽이 있는 곳인데 그 앞의 6백30만 평은 신도시 입지로는 명당 자리였다. 분당이 4백만 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크기였다. 하지만 지대는 좋은데 교통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다. 심지어 도봉산에 터널을 뚫어 8차선 도로를 내는 문제까지 검토해 봤지만, 그것으로도 교통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서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남은 곳이 一山(일산)이었다. 일산지역의 경우 국방부의 협조가 중요한데, 다행히 협의과정에서 양해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내가 사단장을 지낸 적이 있던 곳이라 보고가 올라왔을 때에 소신껏 재가를 내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5大 신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10년 새에 5개 도시 건설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 법이 택지개발지역의 비닐 하우스는 주거지로 인정이 안되지만, 비닐 하우스에다 거적을 씌운 것은 주거지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자고 나면 비닐 하우스가 세워지고, 그 위에 거적이 씌워지는 일이 계속됐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곳이 주거지라며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어떤 곳에서는 사과 궤짝에다 촛불을 켜 놓고 십자가를 달아 교회라고 우겨 대는 일도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자살까지 했고 분당에서는 경운기를 타고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문제가 속출했다.

당시 분당에는 비행장이 있었는데 건설부에서 조사해 보니 비행장 소음이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그래서 소음을 피해 짓다 보니 분당의 입구 지역이 텅 빈, 이상한 모양으로 된 것이다. 게다가 군부대가 있는 지역을 피하다 보니 신도시 모양이 이상하게 되었는데, 일부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갖고 『무슨 로비를 받아서 그렇다』는 등 『누구가 땅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는 등 별별 소리를 다 하기도 했다.

하여튼 10년 내에 5대 신도시를 이렇게 건설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한국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金泳三 정권이 경제 안정 기조 속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우리가 5개 신도시를 財政(재정)에서 돈 한푼 안 들이고 건설했다고 하니까 일본 대장성에서 조사단이 온 일이 있다. 한국은 어떻게 財政에서 돈 한푼 안 들이고 신도시를 건설하고, 연간 40만 호 주택을 건설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참고로 내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마치고 유엔에 가서 연설하면서 「평화의 市(시)를 만들겠다」고 한 것도 사실은 신도시 건설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었다>

「평화의 市」와 관련하여 金鍾仁 전 장관이 다음과 같이 보충설명을 했다.
『신도시 건설계획을 추진하면서 평화의 市 계획안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구체화되고 경제교류도 심화될 때 이질적인 체제에서 살던 사람들이 융화할 수 있도록 황해도 쪽에 「평화의 국제도시」 같은 도시를 만들어 남북 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구상을 해본 것입니다. 미국의 벡텔社가 한국의 평화市 건설 계획안을 수립해서 제안한 적도 있어요』

11. 노사분규와 새로운 대처

기업 스스로 해결하라

민주화를 뿌리내린 盧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그 민주화의 덫에 치였다.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욕구분출이 체제를 뒤흔드는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 긴박했던 노사문제에 대한 盧 전 대통령의 육성증언을 들어본다.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평가하는 지식인이나 언론은 과거 권위주의 통치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경제만을 따로 떼어내 생각하는 습성이 배어 있다. 민주화하는 나라에서 경제 정책이란 정치 사회 등 제반 사항을 경제와 결합시켜 끌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6·29 선언 이후 혼란스러울 정도로 노사분규가 전개됐는데, 朴正熙 대통령 시절이나 全斗煥 대통령 시절에는 근로자의 정당한 요구까지도 정부가 기업의 편에 서서 억누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것들이 일시적으로 폭발하고, 민주화를 한다면서 그것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6共에 들어와 민주화가 되니까 노사분규가 폭발하다시피 일어났다. 그 시점에서는 이것을 早期(조기)에 공권력을 동원해 정면으로 막는 것과, 시간을 두고 폭발력이 어느 정도 수용된 후에 대처하는 것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는데, 나는 後者(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나는 노사분규 현장에는 가급적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때 使(사)측 대표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있느냐 없느냐』 하고 따졌던 것으로 안다. 왜 경찰서에 전화를 해도 경찰들이 나타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노동법 문제를 자주 거론하는데, 사실 세계 어느 나라도 「준법 파업」을 처벌하는 사례는 없다. 대한민국에서만 그것이 기업에 손해를 준다는 이유로 공권력을 투입해 처벌해 왔던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볼 때는 정부가 항상 기업주 편만 들고 자신들을 박해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노사분규와 관련해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1990년에 현대자동차에 노사분규가 크게 일어났다. 金鍾仁 수석이 나의 뜻을 받들어 鄭世永(정세영) 회장에게 『정부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 어떻게 현대자동차만 연례 행사처럼 노사분규가 일어나느냐. 기업주 자체에도 문제가 있고, 근로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으니 당신들 스스로 해결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鄭회장이 『이번만 지켜주면 절대로 내년에는 노사분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해서 공권력으로 해결을 해준 기억이 있는데, 1991년에 또다시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역시 해결방법이 틀렸던 것이다.

金수석은 鄭世永 회장에게 『작년에 약속한대로 이번에는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겠다. 당신들이 알아서 해결하라』 하고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보고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노사문제를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사자간의 자율적인 대화를 강조한 것이다. 아마 대한민국 대통령치고 勞總(노총)에 가서 勞使政(노사정) 회의를 주재한 사례는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경제현실보다 너무 앞서간 노동법

당시에는 임금 특성이 복잡하게 이루어져 기본 임금 외에 상여금, 법정 수당 등 노동 현장에서 통용되는 수당의 종류가 2백30가지나 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노사협상할 때마다 뒤죽박죽이 되어 회사측이나 근로자들 모두 얼마나 급여를 주고 받는지도 모르는 해프닝이 빚어지곤 했다.

그래서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시간급으로, 사무직 근로자의 경우는 年俸制(연봉제)로 가야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총액 임금제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노동자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우루과이 라운드로 대표되는 분위기에서 한국의 노동법 체계와 경직된 노동시장으로는 국제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래서 崔永喆(최영철) 노동부장관 때 노동법 개정을 준비했다.

사실 노동법은 1989년 3월 與小野大(여소야대) 상황에서 통과된 것인데, 이 개정 노동법이 문제였다. 우리나라 경제현실에 비추어 너무 앞서 갔던 것이다. 1990년에는 3당 통합이 이루어지고 관계부처의 노동법 개정 움직임이 구체화됐는데, 이번에도 역시 정치 논리에 밀려 노동법 개정이 좌절되고 말았다. 당에서는 다음 總選(총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강성으로 알려진 후임 崔秉烈(최병렬) 노동부장관이 여러 차례 밀어붙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빈번했던 것이다. 無노동 無임금에 대해 일부에서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가 넌센스다. 全 세계 노동운동사를 보거나 미국 유럽 일본 등 어느 나라를 보아도 파업하고 월급 받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원래 파업을 하려면 반드시 노조가 파업기금을 설정해 놓고, 파업하는 기간 동안 근로자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그것이 되어 있지 않으면 파업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법규정조차 없다. 노사관계는 계약이다. 勞(노)는 使(사)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使는 勞에게 근로의 代價로 임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勞가 使에게 노동을 제공하지 않는데 使가 勞에게 임금을 준다는 것은 노사관계의 기본 철학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임금은 결국 힘이 아닌 경제논리로 결정되더라

노사문제와 관련하여 金鍾仁 전 장관은 다음과 같이 보충증언을 했다.

『사실 노사분규를 통해 임금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결국 임금이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느냐, 아니면 경제 논리에 의해 결정되느냐의 문제지요. 본질을 살펴보면 임금은 경제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겁니다. 기업주들이 지불 능력이 있으니까 임금을 올려 주고 타협하는 것이지, 지불 능력이 없는데도 임금을 올릴 수는 없는 겁니다』

金 전 장관은 『우리나라에서 노사문제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이유는 노사분규로 망한 기업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사분규가 일어나 회사가 망하고, 근로자들도 실직자가 되는 쓰라린 체험을 수차 겪다 보면 勞使 양측이 스스로 자제하여 타협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노사분규가 나면 해결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 여론이 무서우니까 정부가 뛰어들어 중재 역할을 하고, 또 은행 대출이라도 알선해 밀린 임금을 지급해 주니까 노사문제가 파행을 겪게 된 것이죠』

盧 전 대통령은 현대중공업에 공권력을 투입할 때의 秘話(비화)를 한 가지 소개했다.

『재임 시절 현대중공업에서 노사분규가 심해서 수습이 안되니 공권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공권력을 동원하면 불상사가 일어날 우려가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이 칭기즈칸 군대의 전법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강한 칭기즈칸 군대지만 심리적으로 약할 때가 있어요. 새벽 2~3시쯤 되면 병사들이 잡생각도 나고, 부상자들은 심약해져 도망자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칭기즈칸이 고민 끝에 구상한 것이 밤만 되면 횃불을 밝혀놓고, 곤드레가 되도록 술을 먹여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칭기즈칸 요리의 기원인데, 이 방법을 사용한 후에는 도망자가 줄었다고 하더군요.

현대중공업에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내가 내무장관을 불러 이 얘기를 했더니 새벽 3시에 경찰력을 동원해 희생자 없이 질서를 회복했다고 후에 보고를 받았어요』

―그 당시 기업주 입장에서는 이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경찰 월급을 주는데, 불법 쟁의가 발생해도 공권력이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결국 犯法者(범법자)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金鍾仁:『세금은 사용자만 내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도 다 같이 내는 겁니다. 노사분규의 원조를 따지면 우리 노동법이 너무 이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노동법은 한번 좋게 만들어 놓으면 고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1980년 國保委(국보위) 시절에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습니다. 비상시국에 비상한 방법이 아니면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죠. 이때도 복잡한 알력이 생겨 제대로 고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노동법 개정 움직임이 감지되자 全經聯(전경련) 같은 곳에서 손을 써서 산업별 노동조합을 기업별 조합형태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규정을 바꾼 것은 기업주가 노조 사무실을 만들어 주고, 말 잘 듣는 사람을 노조위원장에 앉혀 노조를 원격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때 제가(金鍾仁 전 장관은 1980년 당시 國保委 재무분과위원이었다) 기업인들에게 「노조 문제는 당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기업별 노조로 갈 경우 직장 내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기업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 시절에 기업별 조합형태로 바꾼 규정이 해결이 안된 채 지금까지 온 겁니다』<계속>

<정리·金 容 三 月刊朝鮮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