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紀行 ④ 프랑코 등장

스페인 紀行 ④ 프랑코 등장

1936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앞장선 좌파연합 인민전선이 근소한 차이로 민족전선(우파연대)을 꺾고 승리했다. 폭력 사태는 계속됐다. 무정부주의 회원이 100만 명을 넘었다. 농민들도 반란을 준비했다.
1936년 7월 17일 봉기한 것은 군대였다. 북아프리카 주둔 스페인 군대가 좌파 정권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본토 군대도 동조했다. 다섯 장군이 주동한 군사반란의 지도자는 키가 작은 프랑코였다.
프랑코 세력은 스스로를 ‘국민(민족)세력(Nationalist)’이라고 불렀다. 스페인의 국가적 통합과 존립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 아래서 붙인 이름이었다. 반대편 좌파는 ‘공화파(Republican)’라고 불렸다.
미국과 서구의 지식인들, 사회주의자들은 의용군을 보내 공화파를 지원했다. 소련도 공화파에 군대와 장비를 보냈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프랑코 군대를 지원했다. 좌파 편을 민 국제의용군은 약 2만 명, 이탈리아는 약 7만 5000명, 독일은 약 1만 5000명의 병력을 보냈다. 스페인 내전은 국제전쟁으로 변질됐다.
세계의 좌파 지식인(헤밍웨이 등)이 공화파를 편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프랑코는 惡, 공화파는 善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여기 스페인에서 듣는 여론과 사실은 다르다. 공화파는 약 7000명의 성직자(수녀, 신부 등)를 학살했다.
공화파 내의 암살, 처형은 더욱 참혹했다. 1937년 5월에 공화파의 거점 바르셀로나에서는 소련의 앞잡이들이 좌파 內 무정부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숙청하기 위한 시가전을 벌여 수많은 동료를 학살했다. 공화파 편에서 참전했던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좌파의 실상을 목격한 뒤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스트보다 더 악질이라고 판단하여 스탈린주의를 고발한 ‘동물농장’과 ‘1984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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