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紀行 ⑤ 프랑코의 功過

스페인 紀行 ⑤ 프랑코의 功過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가 끝까지 버틴 곳은 2大 도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였다. 1938년 독일-이탈리아의 지원 하에 프랑코 군대는 10만의 병력, 1000대의 전투기, 150대의 탱크로써 대공세를 폈다. 소련은 1938년 9월에 철수했고 이듬해 1월 바르셀로나가, 3월 28일에 마드리드가 함락되었다. 수십만의 공화파는 프랑스로 달아났다.
스페인 내전에서 약 35만 명이 죽었다. 프랑코는 승리한 뒤 공화파 사람들을 처형, 투옥하여 약 10만 명을 더 죽였다.
프랑코의 승리 직후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히틀러의 군대는 6주 만에 프랑스를 정복했다. 프랑코는 자신의 승리를 있게 한 히틀러 편을 들어 참전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히틀러는 프랑코와 만나 참전을 요청했다. 프랑코는 도와주겠다는 말만 하고 날짜를 못 박지 않았다. 2차 대전 동안 프랑코는 끝내 스페인의 중립을 지켰다. 이 역사적 결단이 그와 스페인을 구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스페인은 NATO와 UN에 가입하지 못하고 미국이 주도한 경제봉쇄를 당했다. 1940년대 말부터 東西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스페인內에 4개 군사기지를 두고자 했다. 프랑코는 이에 동의했고 미국 원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955년 스페인은 UN에 가입했다. 프랑코 治下에서 스페인은 경제발전을 성공시켰다. 미국의 원조와 관광 붐이 자금源이 되었다. 朴正熙 시대처럼 스페인도 ‘先경제발전 後민주화’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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