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비자금에 대한 최초 보고서

남북頂上회담으로 김정일 붐이 일 때 쓰여진 이 기사는 對北금융제재와 미사일 도발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 전개에 영향 끼쳐.

지난 7월5일 북한 독재자 김정일이 발작적으로 일곱 발의 미사일을 동해를 향해 쏘아올린 것은 미국이 죄어오는 對北금융제제의 포위망에 탈출로를 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김정일 정권은 공개적으로 미국이 금융제재를 풀면 北核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금융제재로 마카오, 싱가포르, 스위스 등지의 은행에 들어 있던 김정일의 비자금 수십억 달러는 동결되었던지 빼내 쓰고 돌리기가 어려운 듯하다. 이 돈은 국제범죄와 무기판매, 그리고 무역으로 만든 김정일의 통치자금인데 이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김정일과 지배층은 곤란해진다.

작년 9월에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상대로 한 미국 은행들의 금융거래를 금지시킨 뒤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月刊朝鮮의 약6년에 걸친 김정일 비자금 추적 기사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月刊朝鮮이 발굴해낸 김정일 비자금 관리부서 39호실 이야기, 마카오의 무역 및 對南공작기관 조광무역의 정체, 金大中 전 대통령이 4억5000만 달러를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로 불법송금한 사실,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 39호실 대성은행 계좌가 있다는 사실들은 미국의 정보 수사기관들이 김정일의 돈줄을 차단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기초적인 정보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김정일 비자금 목조르기에 관여한 미국 정부 요원들은 미국의 해외정보처에서 번역한 월간조선의 김정일 비자금 추적기사를 읽고 이를 길잡이로 삼았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많다.

2000년 11월호 月刊朝鮮에 禹鍾昌 기자가 쓴 '金正日 비자금' 추적 기사는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여 약200장이나 되는 심층취재물이다. 지금 읽어보아도 정확하고 고급정보가 많다. 禹기자는 2003년 3월호, 4월호에서도 金大中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매수하기 위하여 김정일의 마카오 계좌 등으로 보내준 4억5000만 달러의 행방을 추적한 심층 보고서를 실었다. 마카오의 북한무역회사 겸 對南공작기관인 조광무역에 대한 현지취재는
















*아래 기사는 김정일의 비자금에 대한 세계최초의 심층취재였다. 미국의 對北금융제재를 기획한 팀이 쓴 보고서에는 월간조선 기사가 참고자료로 자주 인용되어 있다. 남북頂上회담으로 김정일 붐이 불고 있을 때 쓰여진 이 기사는 對北금융제재와 미사일 도발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 전개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추적] 金正日 비자금(월간조선 2000년 11월호)



●美 CIA:「스위스 은행에 43억 달러 보관」
●脫北한 해외 비자금 관리자 증언:『5년 前 20~30억 달러』
●비자금 조성은 중앙당 39호실·해외 비자금 관리자는 권영록 39호실 부부장·이철 스위스 주재 대사
●申相玉씨가 기억하는 권영록:『최은희에게 장미 꽃 바친 남자』
●금·아편 팔아 비자금 축적, 벤츠 등 사는 데 투입
●오스트리아 금별은행을 주목하자
●金正日의 육성 토로:『해외 계좌를 여러 곳에 두라!』

禹鍾昌 月刊朝鮮 부장대우 편집위원 (woojc@chosun.com)

金正日의 중국 정보원 매수 사건

올해 초, 중국 안전부는 瀋陽(심양)에 위치한 북한 해외조사부 分室(분실)을 급습, 북한 要員(요원)들을 긴급 체포하고 사무실 안의 서류를 전부 압수했다. 중국의 對北(대북) 정책과 방침, 중국의 對美(대미) 정책, 중국 정보기관인 안전부에서 작성한 對北 보고서 등 중국 정부의 對外秘(대외비) 서류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기밀서류 누출 경위를 조사한 중국 안전부는 瀋陽 안전국 소속 「反(반) 간첩 정보처」의 한 간부가 北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對外秘 서류를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형제국과 다름없는 북한이 중국 정보기관 내부에 첩자를 심어두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중국 안전부는 은밀하게 수사를 확대했다.

중국 안전부는 瀋陽 일대는 물론, 연변 하얼빈, 장춘 등 북한과 국경을 접한 東北(동북) 3省(성) 지역에 진출한 북한의 국가정치보위부, 인민무력부, 통전부, 사회문화부 사무실을 을 기습, 서류 일체를 압수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북한이 준 돈에 매수된 중국 안전부 요원들의 신분이 속속 드러났다. 거의 전부가 조선족이었다.

이들은 1990년부터 10년 동안 北을 위해 간첩활동을 하고, 그 대가로 1인당 많게는 월 5000 달러에서 1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모를 갖춘 중국 안전부 여자 要員을 매수, 안전부 고위 간부에게 미인계로 접근하여 고급 정보를 빼오라고 지시한 것, 중국 정보원이 필요로 하는 자금 및 정보수집용 장비 요청에 북한이 최대한 신속하게 응했다는 점, 간첩망 유지에 드는 수백만 달러를 金正日이 내려보냈다는 것 등이 수사 결과 밝혀졌다.

우리 國家情報院(국가정보원)은 이 간첩사건의 진행과정과 이 사건에 대한 金正日의 입장,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중국 안전부 시각을 기록한 자료를 입수,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주민 300만명을 굶겨죽인 金正日이 중국 정보요원 매수에 수백만 달러를 사용하다가 덜미를 잡힌 이 사건은 金正日의 이른바 秘資金(비자금)의 실체를 다시 한번 드러나게 했다. 이런 공작에 사용되는 金正日 비자금을 중앙당 「39호실」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탈북자들의 진술로 확인된 사실이다.


중앙당 39호실에서 관리


북한은 「黨 예산」과 「정무원 예산」 등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黨 예산이 정무원 예산의 1.5배 내지 2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黨 예산은 黨에서 올린 예산案(안)을 金正日이 결재하는 방식으로 통과되고, 정무원 예산은 국가계획경제위원회에서 만든 예산案을 최고인민회의에서 의결한다. 추가 예산이 발생하면 계획경제위원회에 추가 제안서를 내고 金正日의 사인을 받아 집행한다. 따라서 모든 예산 집행권은 金正日이 갖고 있다.

金正日 비자금은 黨의 예산 중 金正日이 독단적으로 사용하는 돈이다. 黨에 들어가는 돈도 일단 金正日 돈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黨 예산과 金正日 비자금은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없지 않다. 그러나 黨 재정경리부를 통해 이뤄지는 돈은 黨의 예산이며, 재정경리부 산하 「39호실」에서 관장하는 돈이 엄밀한 의미의 金正日 비자금이다.


▲ 김낙중씨가 집 장독대 밑에 숨겨놓은, 北에서 보낸 공작금 달러 뭉치.

파탄지경에 이른 북한의 경제는 「외화벌이 사업」이 지탱한다. 外貨(외화), 즉 달러를 벌어서 옥수수, 밀가루, 사탕 등 생필품을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 외화벌이다.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은 「충성 외화벌이」와 「군중 외화벌이」 두 종류로 이뤄지고 있다. 忠誠(충성) 외화벌이는 번 外貨를 金正日에게 바치는 것이고, 군중 외화벌이는 지역 혹은 직장에서 각자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다. 충성 외화벌이 사업이 金正日 비자금의 파이프 라인이다.

북한의 각종 무역상사, 일명 외화벌이 업체들은 운영 주체가 다 다르다. 예컨대 매봉무역총회사는 인민무력부에서 운영하며, 은하무역총회사는 정무원 경공업위원회에서 운영한다. 삼천리총회사는 정무원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은별무역회사는 중앙당 사로총에서, 금릉무역상사는 중앙당 기계공업부가 운영 주체다. 외화벌이 업체들은 매년 예산의 30%를 충성 외화벌이 명목으로 「39호실」에 낸다.

39호실은 자체적인 외화벌이 업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全 지역에서 이뤄지는 충성 외화벌이를 관리하기 위해 지방마다 分室을 두고 있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道黨(도당) 郡黨(군당) 市黨(시당)마다, 도시는 구역 단위로 설치돼 있는데 이름은 「5호 관리소」이다. 이곳 책임자가 관내 충성 외화벌이를 총괄하여 39호실에 바치고 있다.

자체에서 벌어 자체 해결하는 「군중 외화벌이」에 대해서도 북한은 주민들이 달러나 金(금)을 감출까 싶어 감시를 늦추지 않는다. 북한에서 달러와 金은 金正日의 승인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통제품목이다. 인민무력부의 경우에는 8처에서 외화벌이를 검열했다.

이 외화벌이 사업에서 인민무력부도 예외가 아니다. 前 북한군 대위 김성민씨는 『金正日은 1986년 6월20일 인민무력부에 대해 「외화벌이를 통해 예산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인민무력부도 충성 외화벌이와 군중 외화벌이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은행에 金正日 개인 계좌 있다


올해 48세인 조봉일씨는 인민군 964부대 중좌로 있다가 최근 탈북했다. 964부대는 金正日 등 북한 고위급을 호위하는 호위사령부 산하 보급부대로 청진 인근에 주둔했다. 조봉일씨는 964부대 보유 잠수배 4척을 청진 앞바다에 띄워 성게를 잡아 일본에 수출하는 「군중 외화벌이」책임자였다. 조봉일씨의 말이다.

『잠수배 1척에 잠수부 1명씩을 태워 수심 15m 내지 20m까지 내려 보냅니다. 성게는 살아 있어야 상품성이 있기 때문에 잡는 즉시 인근에 정박중인 일본 배에 넘깁니다. t당 5000 달러씩 받아 부대 예산으로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수심이 깊은 데로 내려가야 성게를 많이 잡을 수 있는데, 물밑에서 올라오는 잠수부들이 수압을 못이겨 수십명이 죽었습니다. 온 몸이 마비된 사람도 많았고요. 한국의 기무사령부에 해당하는 보위사령부에서는 대당 1000달러에 일본 中古車를 수입해 정비한 후 대당 5000 달러를 받고 중국에 팔고 있습니다』

39호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외화벌이와 「충성 외화벌이」를 통해 해마다 거둬들이는 金正日 비자금 규모와 관련, 「스위스 은행에 입금된 金正日 비자금이 43억 달러」라는 미국 CIA 정보가 있다. 美 CIA와 연계된 다른 소식통은 『金正日 비자금이 40억 달러 내지 5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액수는 모르겠지만, 스위스 은행에 金正日 개인 계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확인해 주었다.

前 북한 외교관 고영환씨는 『1984년경 북한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金正日 비자금이 10억 달러 이상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중앙당 재정경리부 소속이었던 한 귀순자는 『1995년에 20억 달러 내지 30억 달러쯤 됐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2, 3년 전에 20억 내지 30억 달러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美 CIA의 「스위스 은행 보관 金正日 비자금 43억 달러」라는 정보는 합리적 추정치로 보인다.


해외 비자금 관리자 인터뷰


송이 수출로 年 1억 달러 벌어


기자는 북한 중앙당에서 금융 및 財政 부문 전문가로 일하다가 귀순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김일성 대학 출신으로 북한 대성은행의 해외 지점에 근무하다가 黨 재정경리부에 차출되었다. 그는 해외에 은닉된 金正日 비자금을 관리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완전 공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

―金正日 비자금의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제가 근무할 때(1995년) 20억 달러에서 30억 달러 사이였어요. 인민무력부를 위시한 黨 산하 모든 기관과 모든 외화벌이 회사가 예산의 30%를 매년 「충성의 자금」이란 이름으로 바쳤습니다. 그 당시 대성무역총회사 예산이 1억 달러가 넘었고, 조선통일발전은행은 3000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연간 1200t쯤 생산되는 송이에서 약 1억 달러, 金(금) 판매 수익도 연간 1억 달러쯤 되었습니다. 金正日 생일(2월16일) 때면 평균 1억 달러 이상 걷혔는데, 景氣(경기)가 좋을 때는 3억 달러도 모았죠. 金正日 생일이 가까워지면 외화벌이 업체들이 상납할 돈을 모읍니다. 96% 가량이 달러이고 나머지는 円貨(엔화)죠. 생일 때는 현찰로 바치는데 돈에 병균이 묻어 있을까봐 소독약으로 돈 세탁을 했습니다. 金正日 비자금은 각 기관마다 할당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돈이 모일 때마다 수시로 냅니다. 할당액이 매년 증가하고, 비자금을 투자도 하기 때문에 해마다 늘어났죠』

―비자금을 어디에 투자하는 것입니까.

『사용처는 중앙당 부부장 권영록과 그 밑의 김영남이가 압니다. 권영록은 1980년 초부터 해외 비자금 관리를 맡아 왔습니다. 그는 수시로 오스트리아를 왔다갔다하며 자금을 관리했습니다』

―金正日 비자금은 어떻게 보관됩니까.

『주로 해외 은행에 보관돼 있습니다. 예전에는 서독,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의 은행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스위스 은행에 보관돼 있습니다』

―金正日 비자금은 언제부터 조성되었습니까.

『1970년대 초, 싱가포르에서 처음 조성했습니다. 200만 달러를 만들어서 올려 보내라는 黨의 지시에 싱가포르 무역대표부에서 2000만 달러를 만들었습니다. 그 일을 했던 사람이 39호실 부부장으로 있는 백인수입니다. 2000만 달러를 어떻게 모은지는 모르지만 비정상적 거래인 것이 발각나 싱가포르 정부가 체포령을 내리자 백인수는 배를 타고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일로 백인수는 金正日의 눈에 크게 띄어 대성총국장에 발탁되었습니다. 지금 나이가 일흔쯤 되었을 겁니다』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이란 어떤 뎁니까.

『중앙당 재정경리부 산하에 인민들의 생필품 공급을 담당하는 경공업부가 있었는데, 중앙당 경공업부가 폐지되면서 6課(과)가 생겼습니다. 6課의 임무가 金正日이 사용하는 外貨(외화) 조달이었죠. 그런데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6課는 1개 室(실)로 독립해 39호실이 되었습니다. 39호실은 金正日 外貨전담 부서입니다.

金正日과 그 가족들의 생활용품을 해외에서 구입하는 부서는 「38호실」입니다. 38호실도 본래는 재정경리부 10課였는데 규모가 커져 室이 되었습니다. 39호실은 중앙당 3층에 있습니다. 그래서 39호실의 實勢(실세) 권영록은 「3층 부부장」으로 통했습니다. 중앙당 재정경리부는 한국의 재정경제원과 비슷한 기구라고 보면 됩니다』


『金正日 비자금을 사용하게 해야지요』


―金正日의 생활용품 해외 구매는 누구 담당입니까.

『중앙당 부장급인 명길현입니다. 그는 金正日 직속 지도원이어서 힘이 셌습니다. 나이는 40대 후반인데 평양외국어대학교 출신이지요. 명길현은 본래 39호실 산하 대성총국에서 寶石(보석) 담당 과장을 하다가 발탁되었습니다. 명길현의 부하가 길재경인데 金正日 생필품 구매는 주로 길재경 담당입니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위조 달러 사건은 길재경이가 환전하다 문제가 되었습니다』

―金日成도 비자금이 있었습니까.

『金日成에게는 「주석 본드(bond)」가 있었지요. 예산의 3%를 비축해 놓은 것인데 이는 전쟁에 대비한 비축물자 성격입니다. 주석 본드는 金日成 사후에도 남아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가 파탄지경인데 비자금을 벌 길이 있었습니까.

『국가보위부나 인민무력부 같은 특수기관에서는 아편재배를 합니다. 평양 이북에 대규모 양귀비 재배농장이 있습니다. 물고기도 잡아서 팔고, 농산물도 팔곤 하죠. 조총련에서 金正日 생일 때마다 거액을 보내줍니다』

―위조 달러도 만든다면서요.

『평양에서 위조달러 10만 달러를 가지고 나가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1만 달러로 바꿔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金正日 비자금은 어디에 사용됩니까.

『金正日이가 먹고 쓰고, 필요하다 싶은데 사용하는 개인 돈입니다. 해외에서 구입하는 金正日 생필품이라든지 金正日이 아래 사람에게 내려보내는 선물 사는 데도 들어 갑니다. 한번은 金正日이가 60 노트짜리 요트를 사라고 모 해외 공관에 지시내린 적이 있습니다. 가족 휴가용으로 구입하려 했는지 옵션(주문)이 많았습니다. 이런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비자금을 金正日이 북한 주민을 위해 쓴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화가 납니다. 북한의 식량위기 때 외부에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金正日 비자금이 풀려나와 식량 구입자금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면서 全 세계에서 도와주는 바람에 金正日으로서는 비자금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작년만 해도 한국 언론은 北의 굶주림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北이 잘 산다고 요란법썩입니다. 1년 만에 어떻게 北이 잘 살 수 있습니까. 이제라도 對北 원조를 그만해야 金正日의 비자금이 풀려나올 것입니다. 저는 최근의 남북관계는 金正日의 통일구상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금광 아편 위조달러 통한 외화벌이


「39호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외화벌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게 금광이다. 1인 독재정권인 북한에서는 금광이 金正日 개인 것이다. 해방 전, 북한에서는 연간 10t~15t의 金이 생산됐다. 북한은 노년기 지형으로 金이 노천 가까이 드러나 있거나 砂金化(사금화)된 지역이 많다. 지금도 중국 丹東(단동) 지역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모은 砂金을 손가락만하게 만들어 숨기고 들어와 중국에서 팔고 있다고 한다.

대한광업진흥공사에 따르면 LG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북한에서 수입한 金의 양은 1991년에 1.5t, 1992년 3.2t, 1993년 6.8t, 1994년 5.4t, 1995년 6.4t, 1996년 4.7t이고 1999년에는 0.2t이다.

영국 런던과 미국 시카고 金 시장의 국제 시세는 t당 903만2258 달러이다. 북한의 연간 金 생산량이 10t이므로 金 판매를 통해 1억 달러를 번다는 말은 사실로 보인다.

인민군 964부대 중좌였던 조봉일씨는 함경북도 청진에 39호실에서 운영하는 금광이 있다고 했다. 조봉일씨는 『광산에서 채취한 金은 흥남제련소로 옮겨 제련한 후, 金 함량을 분석한 다음, 함량과 무게를 기록한 금표를 주는데 이 금표를 39호실에 바쳐야 임무가 끝난다』고 말했다. 조씨는 金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金日成의 69세 생일 때였습니다. 청진에 근무하던 현무관이란 사람이 5㎏짜리 金덩어리를 金日成에게 직접 바친 적이 있습니다. 金日成은 金을 현물로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며 그를 청진市黨 책임비서에 앉힌 적이 있습니다. 인민무력부 안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金뿐만 아니라 양귀비 재배와 위조 달러 제작도 金正日 비자금 조성을 위한 주요 수단이다. 국가정보원 관계자의 말이다.

『북한에서는 양귀비를 「백도라지」라고 부릅니다. 이 「백도라지」 농장이 양강도의 백남군과 함북 등지에 밀집해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1992년 10월에는 제대 군인 1만2000명이 백도라지 농장 건설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위조 달러도 비자금 마련의 한 수단인데 평안남도 도청 소재지 평성에 위치한 「상표인쇄공장」에서 만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가짜 양담배 상표를 만든 곳이 거깁니다. 「상표인쇄공장」은 사회안전성 담당 구역으로 경계가 엄합니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으로 金正日은 黨 간부와 사단장, 군단장에게 벤츠 승용차를 선물합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북한의 식량위기가 워낙 심각하니까 金正日이 비자금 일부를 풀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인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은 1970년대 무렵부터 북한 외교관들의 충성 외화벌이로 사용되었다. 이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 당시 黨 중앙위 외교부 담당 과장 장성택이었다. 장성택은 金正日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다. 장성택은 아편 판매로 번 돈으로 평양 보통강 구역에 체육관을 지어 金正日에게 바쳤다.

아편 판매 못지않게 위폐 제작도 북한의 전통적인 외화벌이 업종이다. 북한전문가 李恒九(이항구)씨의 말이다.

『1969년 울진·삼척지구에 남파된 무장간첩들은 우리 돈 100원짜리 위폐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남파간첩들은 우리 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이 위폐를 뿌렸습니다.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북한의 위폐제작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북한인이 가져온 달러는 외국은행에서 안받아


前 북한 외교관 고영환씨는 『100 달러짜리 가운데 일련번호 K자로 시작하는 것이 북한에서 만든 위폐로 알려져 있다』며 『처음엔 상표인쇄공장에서 만들었다가 나중에 「3호 청사」로 장소를 옮겼다는 말을 정무원 총리 주변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北에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申相玉(신상옥) 감독도 위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申감독의 말이다.

『제가 北에 납치돼 있을 때 일입니다. 오스트리아에 영화촬영을 위한 제 사무실이 있었는데, 金正日이 영화제작비에 쓰라며 인편에 270만 달러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BOA(Bank of America) 은행과 거래하던 저는 돈을 전달하러온 북한 사람에게 BOA은행에 입금시켜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BOA 은행에서 북한인이 가져온 온 달러는 위폐가 많다며 입금을 거절해 버렸답니다. 그래서 다른 은행 한 군데를 거쳐, 거기서 BOA은행에 송금하는 식으로 입금했다는 이야기를 북한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무기 판매도 북한 외화벌이 사업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軍 정보기관에 따르면 북한은 리비아에 노동 1호 미사일을 팔았는데 약 200기 가량인 것으로 추정되며, 파키스탄에는 核(핵)무기와 관련된 물질을 수출했다고 한다. 소총, 박격포 같은 재래식 무기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을 통해 이란, 인도, 중동 등 분규지역 게릴라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李恒九씨는 북한의 무기수출 액수와 관련, 이렇게 추정했다.

『북한이 제네바에서 미국과 미사일 회담을 벌일 때 미사일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1년에 10억 달러씩, 3년 동안 30억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북한이 요구한 이 금액이 연간 무기수출액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은 자강도와 양강도 일대에 150개 가량의 군수공장을 갖고 있습니다. 미사일을 비롯한 재래식 무기는 이곳에서 생산됩니다. 북한은 거의 모든 電力을 군수공장 가동에 충당합니다. 북한의 무기 생산 능력으로 미뤄 연간 10억 달러 수출은 무난하다고 봅니다』


申相玉 手記속의 비자금 관리자 권영록


국가정보원은 金正日 비자금의 실질적 관리자 권영록의 행적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한 관계자는 『권영록은 50대 중반이다. 그는 3개의 여권을 소지하고 수시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지로 나와 해외에 은닉된 金正日 비자금을 점검하고 金正日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대한매일이 1998년에 펴낸 「북한 인명사전」에는 권영록이 「노동당 자금 담당 부부장」이라 적혀 있다. 그는 독일어에 능숙하다


▲ 北에 납치됐다가 탈출한 후 기자회견하는 申相玉·崔銀姬씨.

권영록을 만났던 사람중의 한 사람이 申相玉 감독이다. 北에 납치되었다가 1986년 崔銀姬(최은희)씨와 함께 탈출한 申相玉 감독이 권영록과 대면한 것은 1983년 10월 말, 동베를린에서다. 申감독은 崔銀姬씨와 공동으로 쓴 수기 「조국은 저 하늘 저 멀리」에서 권영록과의 만남을 이렇게 적었다.

<오후 6시 동베를린에 도착했다. 권씨 성을 가진 작달만한 중년 남자가 마중나와 은희(崔銀姬)에게 꽃다발을 선사했다. 金正日이 우리를 만났을 때 『독일에 가면 서백림(서독)에 드나들 수 있는 우리 사람이 있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부탁하라』고 한, 바로 그 사람인 것 같았다. 권의 안내로 메도로폴 호텔로 갔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한 권이라는 사람은 알고 보니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아니라 동베를린에 주재하면서 주로 金正日이 주문하는 서방세계 물자를 사들이는 구입 총책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말썽이 난 바 있는 헬리콥터 위장 수입 사건의 장본인이기도 했다>

申相玉 감독은 권영록에 대해 『얼굴이 잘 생기고 서구적 사고를 가졌다. 키가 작다는 점이 특징이다』고 말했다.

권영록은 1970년대 후반부터 독일 등 유럽 지역을 담당한 金正日의 「특파원」이었다. 「특파원」은 金正日의 특별 신임 아래 해외에 파견돼 金正日 개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金正日 비자금 관리와 金正日 및 그 가족이 필요로 하는 물건 구입이 「특파원」의 主임무다. 1970년대 후반, 권영록의 대외 직함은 「동독 駐在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이었고 직급은 중앙당 부부장급이었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외국 승용차는 벤츠이다.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과 軍 사단장급 이상은 모두 벤츠를 타고 다닌다. 金正日이 측근 심복들에게 특별선물로 주는 벤츠는 번호가 「216××」으로 시작한다. 「216」은 金正日의 생일(1942년 2월16일) 숫자다. 「216」으로 시작되는 승용차는 北에서 특권층을 상징한다. 申相玉·崔銀姬씨도 北에 있을 때 「216」 번호판을 단, 은색과 녹두색의 280 벤츠를 선물받았다.

권영록이 독일에서 한 일 중의 하나가 벤츠 구입이다. 그는 한 번에 수백대 혹은 수천대를 구입했다. 따라서 그가 관리한 金正日 비자금은 수천만 달러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金正日의 전처 成蕙琳(성혜림)이 모스크바에서 타고 다녔던 초록색 벤츠 280과 연초록색 벤츠 450은 권영록이 선물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북한 금성은행


권영록은 북한이 오스트리아에 설립한 (주)금성은행(GOLDEN STAR BANK) 감사임이 최근 자료에 의해 확인되었다. 금성은행은 북한 대성은행의 子會社(자회사)로 오스트리아 현지에 세운 법인이다. 1998년과 1999년에 실시한 금성은행 회계조사서에 따르면 금성은행과 북한 대성은행은 서로 채권채무관계를 맺고 있었다.

금성은행 자본금은 1998년 기준으로 4300만 오스트리아 실링(우리 돈 35억원)이다. 대표이사는 오종남, 부대표는 신용만, 이사는 전성, 감사는 권영록, 부감사는 리홍으로 모두 북한 사람이다.

북한 대성은행은 외형적으로는 북한 최고 은행인 중앙은행 산하로 되어 있지만 통제권 밖에 있다. 대성은행의 主업무는 「대성무역총회사」와 그 산하 수산물회사, 선박회사의 수출입 거래와 관련된 送金(송금)과 對外 결재다. 대성무역총회사는 39호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金正日 비자금 핵심 파이프 라인이다.

대성은행은 金을 비롯한 귀금속의 국제 거래도 하며, 일본의 東京은행, 三和은행, 足利은행, 그리고 독일은행과 換(환)거래를 트고 있다.

대성무역총회사는 「39호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무역회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평양시 보통강 구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해외에 支社(지사)를 두고 金塊(금괴), 銀塊(은괴)를 비롯한 각종 기계와 설비 제품, 화학·섬유 제품에서부터 송이버섯, 生(생) 백합, 冷凍(냉동) 복어, 冷凍 문어, 고려인삼 등을 수출입한다. 북한의 주요 항만과 철도역에는 지사 또는 출장소를 두고 있다.

대성무역총회사산하에는 중·경공업 제품과 농수산물을 취급하는 「대성 1무역상사」 「대성 2무역상사」 등 10개 무역회사가 있으며, 은행과 운수회사도 보유하고 있다.

대성은행의 해외 지점은 金正日 비자금이 오가는 핵심 통로에 해당한다. 해외에서 조성된 비자금이 이 은행을 통해 평양으로 송금되기도 하고, 평양에서 해외에 내려 보내는 돈의 이동로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은 金正日 스스로도 밝히고 있다.

기자는 金正日과 申相玉 감독이 영화제작비 송금과 관련해 대화한 기록을 입수했다. 이 기록은 1984년에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북한 탈출의 기회를 노렸던 申감독은 평양에서 오스트리아로 나가기 위해 金正日을 설득하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대화에서 金正日은 여러 은행에 계좌를 둬야 안심이 된다는 것을 申감독에게 가르쳐준다. 다음은 두 사람의 녹취록을 인용한 것인데, 두 사람이 반복해서 한 말은 생략했다.



&金正日이 말한 金正日 해외 비자금: 『이 은행도 송금하고 저 은행도 송금하고』


<申相玉: 요번에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건 오지리(오스트리아) 뿐인데 오지리에 간다고 그래도 몇 시간뿐입니다. 은행에 가서 수표하고 오는 거지 잘 일도 없다 말입니다.

金正日: 그런데 내가 생각 하나 잘못한 게 있습니다. 그게 내가 하나 제 3국 하고 개설한 은행이 하나 있습니다. 금별은행이요. 금별은행이란 건데 이번에 그 금별은행끼구 구좌를 만들었으면 대사관이란 놈들은 쌍말로 이야기하면 개 ×도 모르는 것들인데, 사실 거 그 은행업무는 전혀 모르는 놈들인데.

申相玉: 제 이야기 들으십시오. 금별은행 총재가 있지 않았으면 그것도 요만큼 안됐습니다.

金正日: 금별은행 총재가 일을 할 줄 압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처음에.

申相玉: (…) 인제 예금이 끝나구요, 돈을 요 국내가 아니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돈이래야 구좌가 된 답니다. 그래서 내가 후에 돈을 만불 따로 줄 셈치고 권(권영록) 한테 연락해서 권이 돈을 좀 송금했단 말입니다. (…) 다른 것은 내가 다 사인했는데 마지막 하는 사인을 내가 안했다 말입니다. 아무때고 상관없습니다. 돈은 만불 들어가 있겠다(…)

金正日: 아니 근데 원래 돈 준 건 어디다 예금시켜 놓았어요.

申相玉: 지금 금별에 있는 모양인데요.

金正日: 옮겨 놔야지, 금별이야 그 은행인데 거기다 갖다가 걷어 넣으면 거 뭐, 이쪽 이쪽에 옮겨 놔야지요.(?) 그리고 또 우리가 은행구좌 가지는 것도 역시 말입니다. 윈(오스트리아 빈)에다만 하나만 하지 말고, 내년에는 그러잔 말입니다. 한 300만불 예산 주면 중간 중간 나가서 서독은행에다가도 하나 두고 여기다 두고, 그래서 위장적으로 내 보낼 때는 그 은행에 송금되게 하고, 이 은행도 송금되게 하고 그렇게 해야지 인제 한 일년만 거래해보면 뻔하단 말입니다>

북한이 수출입금융을 위해 오스트리아에 계좌를 연 은행은 CA은행이었다. 그런데 1992년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의 일환으로 미국內 북한 소유 은행계좌를 전면 동결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CA은행 뉴욕지점에 북한 대성은행 계좌가 개설돼 있었는데, 이 계좌에 입금돼 있던 153만 달러가 자동 동결돼 버렸다.

최근 미국이 예금 동결조치를 해제하자 북한은 돈 인출을 시도했다. 7년간의 이자가 붙어 예금액은 208만3000 달러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나 CA은행은 북한에서 결재하지 않은 미수금액이 많다는 점을 이유로 지불을 거절했다.

북한은 이 돈을 인출하기 위해 CA은행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관계기관에서는 153만 달러를 인출하기 위해 북한이 협상 사절단을 오스트리아에 파견하려는 것으로 미뤄 金正日 비자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철 대사가 스위스 계좌 관리


스위스 은행에 예치돼 있는 金正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은 제네바 주재 북한대사 이철로 알려져 있다. 이철은 북한 외교부 의례국장(우리나라 외무부 의전국장과 비슷) 출신이다. 이철은 김정남(金正日의 아들)이 아홉 살이 되던 1980년, 김정남 유학담당 책임자가 되어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1등 서기관이란 직책을 갖고 스위스로 나왔다. 그는 김정남이 제네바 주재 북한 외교관 자녀인양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입학 수속 등을 담당했다.

아들 교육을 맡길 만큼 이철에 대한 金正日의 신임은 두텁다. 이철은 제네바에서 김정남의 뒷바라지만 한 게 아니다. 金正日의 전처 成蕙琳의 조카로 1982년 서울에 온 李韓永(이한영·1997년 북한 공작원에게 피살됨)씨는 1996년 기자에게 『스위스 은행에 넣어놓은 金正日 비자금 관리인이 현재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인 이철』이라며 『이철의 본명은 이수용』이라고 말한 바 있다. 李韓永씨는 『이철은 金正日이 총애하는 측근 부부장 중 한 명으로서 金正日의 집무실에서 300m쯤 떨어진 부부장 전용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李韓永씨는 그가 쓴 「대동강 로얄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에서 이철 대사의 임무와 관련해 이렇게 기록했다.

<1982년 9월28일 아침, 남조선 대사관에 전화하기로 결심했다. 이철이 나가면 전화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철은 평양에 가고 없었다. 이철은 내 학원문제만을 위해 제네바에 온 게 아니었다. 이철은 「지도자 동지의 은행 일을 봐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아마 스위스 은행에 보관하고 있는 김정일의 비자금 관계 일도 처리하러 나온 것 같았다. 이철은 은행관계 일을 보고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


▲ 金正日은 43억 달러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은닉시켜 놓은 반면, 북한 주민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차 여행하는 북한 주민들.

1980년 스위스에 1등 서기관으로 파견된 이철은 대사가 되어 지금도 스위스에 주재한다.

金正日 비자금 관리자들은 거의 장수한다. 백인수가 28년 째, 권영록과 이철은 20년 이상 근무했다. 비밀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교체하기도 어렵지만 金正日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金正日 비자금 가운데 상당한 몫이 일본 조총련의 송금이다. 조총련은 金日成과 金正日의 생일 등 북한의 주요 행사 때마다 만경봉호 편을 이용, 거액을 송금했다. 최근 조총련을 퇴직한 한 간부는 일본 주간현대와 인터뷰에서 『나는 30~40차례에 걸쳐 300억엔을 운반했다』고 폭로했다.


金正日 아들 생일 선물비 100만 달러


39호실에서 관장하는 무역회사 중 일부는 통일원이 1997년에 출판한 「북한 무역상사 등 관련기관 일람」이란 책에 등장한다. 이 책에는 39호실 산하 무역회사의 영문 이름, 텔렉스·팩시밀리·전화번호와 취급품목이 수록돼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앞에 언급한 대성무역총회사이고 그 다음이 「광명무역총상사」이다.

이 회사의 산하에는 「광명성 경제합작회사」, 「광명성 무역회사」, 「광명성 건설회사」등이 있다. 광명성은 북한에서 불리는 金正日의 별 이름이다.

광명성 무역총회사는 깃털 부채와 白雲母(백운모ㆍ전기 절연체 및 耐熱 보온 재료로 쓰이는 운모의 한 종류) 등을 수출하고 남북 임가공업도 한다. 락원무역총상사는 활석 공예품과 식기구를 수출하고 나일론, 피혁, 전기제품, 의료기 등 일용품 및 잡화류를 수입하는 회사다.

39호실과 같은 업무를 하지만 노출되지 않은 金正日 비자금의 또다른 조성처가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이다. 「릉라888 무역상사」가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에서 운영하는 외화벌이 업체다. 이 회사는 가죽이나 인조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장식품, 비철금속 등을 수출하고 각종 기계설비와 그 부속품을 수입한다. 먹는 샘물, 아연塊(괴), 고사리, 인삼, 음양곽, 오미자 등은 남북교역 품목이다.

金正日의 아들 김정남은 올해 설흔으로 인터넷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우리 정보기관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남북회담차 서울에 왔던 북한의 30대 관료들은 「김정남 측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金正日과 成蕙琳(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은 1971년 5월10일생이다. 李韓永씨는 그가 쓴 「대동강 로얄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이란 책에서 김정남의 생일선물에 대해 언급했다. 李韓永씨는 김정남이가 여섯 살 때인 1976년부터 6년간 김정남의 생일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매년 4월 중순쯤이면 정남이의 생일선물을 사러 선물구매단이 출발한다. 金日成(김일성) 父子(부자)의 집무실 및 공관에서 쓰는 모든 물품을 조달하는 호위사령부 2국9부 부부장 강상춘 상좌가 구매 책임자다. 강부부장은 일본을 시발로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독일과 오스트리아까지 들러온다. 선물은 해마다 100만 달러어치를 사온다. 이 금액은 강부부장에게서 직접 들은 액수다.

생일선물에는 정남이의 옷이나 신발류 등은 물론, 새롭게 등장한 모든 놀이기구가 포함된다. 특히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전자오락 기구는 값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 다 구입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선물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가 있고, 도금한 장난감 권총도 있다.각종 놀이기구와 장난감은 나이 먹은 내가 봐도 현란할 정도였다. 정남이 놀이방(오락실)은 규모가 300평쯤 된다. 오락실은 매년 생일을 기준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

선물이 도착하면 5월9일경 진열된다. 이튿날까지 안 보여준다. 정남이는 5월10일 원수복을 입고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뒤 김정일의 손을 잡고 오락실에 들어간다. 오락실에 들어가서 선물을 둘러보는데 金正日은 대충 돌아보지만 정남이는 하나하나 만져보고 움직여본다.

정남이의 생일 5월10일이 되면 관저의 모든 관리원들과 근무자들에게 정남이 이름으로 선물을 하사한다. 조그만 트렁크에 인삼주나 각종 통조림, 양복지 한 벌, 고급 인삼비누 등을 넣어준다. 이 하사품은 생일 선물 비용 100만 달러와는 상관없이 아버지 金正日이 따로 준비하는 것이다>

李韓永씨는 이 책에서 평양에 있는 金正日 私邸(사저)인 「중성동」 금고실에 대해서 언급했다. 金正日의 서재를 통해서 들어가게 돼 있는 금고실에는 대형 金庫(금고) 5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김정남의 금고 속에는 총알이 들어있지 않은 각종 권총과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보석, 돈, 10㎏짜리 금괴가 들어있었다고 했다.

李韓永씨는 김정남의 스위스 유학생활에 대해서도 썼다.

<정남이를 위해서 제네바 교외 레만 호수가의 고급주택가에 있는 빌라를 한 채 샀다. 대지 2500평에 건평이 500평쯤 되는 단독주택이었다. 당시 200만 달러를 주고 샀다고 들었다. 준비가 갖춰지자 우리는 1980년 가을, 입학식을 앞두고 제네바로 갔다.

정남이 수행원으로 책임부관 김규채와 경호원들이 따라 붙었고 요리사 송영봉과 함께 정남이를 보살필 아줌마 두 명이 따라 갔다. 金正日 관저 운전수 박태준도 따라 갔는데 벤츠 450과 도요타 차를 미리 사놓았다. 처음 제네바로 갈 때 金正日이 20만 달러를 주었고, 그후로는 한달에 평균 5만 달러씩 경비를 쓰기로 허락받았다>


對南공작비로 활용


申相玉 감독의 수기에 의하면 申相玉ㆍ崔銀姬씨는 1983년 10월19일 노동당 중앙당사에서 金正日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申相玉 감독이 李儁(이준) 열사 생애를 영화화했으면 한다고 제의하자 金正日은 『내가 1년에 100만 파운드(당시 美貨 200만 달러 상당)를 외국은행 구좌에 넣어줄테니 앞으로 해외활동을 하면서 마음대로 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申相玉 감독은 金正日로부터 영화제작용 차량으로 「식당과 침실을 갖춘 홈카 1대, 회의실이 붙은 버스 1대, 무개차 2대를 포함한 승용차 5대, 대형통근 버스 3대, 미니 버스 15대, 트럭 10대, 지프 3대, 밴트럭 7대 등 40여대의 자동차」를 선물받았다. 申감독은 「홈카와 버스는 독일제 벤츠이고, 승용차는 美製(미제) 포드, 트럭은 日製(일제) 닛산으로 모두 비싼 고급차들이었다」고 했다.

李韓永씨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요양중일 때 成蕙琳은 1주일에 한번씩 모스크바와 평양간 정기 항공기를 통해 평양에서 보내준 필수품을 공급받았고, 成蕙琳은 평양에 갔다올 때마다 金正日로부터 10만~15만 달러를 받아 왔다고 했다.

金正日 비자금의 가장 중요한 사용처는 對南공작이다. 金正日은 측근들에게 『통일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내가 댄다』고 말했다고 한다.

1992년 고정간첩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된 金洛中씨의 마당에선 100만 달러 이상의 현찰이 발굴됐다. 굶어죽는 북한 주민 수천명을 살려낼 수 있는 달러가 「과감히」 투자된 것이다. 43억 달러로 추정되는 金正日 비자금은 북한 GNP와 거의 같다.

비자금을 기준해서도 그는 한반도 최대의 재벌 2세이자 權閥(권벌) 2세이다. 이 비자금을 채워주는 일이 對北교류나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벌어진다면 도덕을 묻지 않는 국민이란 얘기가 된다.

金泳三 前 대통령이 한반도의 巨惡(거악)이라고 표현한 金正日은 한반도의 가장 부패한 인간이기도 하다.●
------------------------------------------------


對北 송금 5억 달러로 본 金正日 비자금 43억 달러의 세계
(월간조선 2003년 3월호)



현대상선 1억 달러를 송금받은 朴紫炳(조광무역商社 총지배인)은 對南 테러부서 마카오 책임자



● 테러ㆍ암살 담당 對外정보 조사부에서「조광무역」운영
● 朴紫炳은 金正日 비자금 세탁ㆍ관리인
● 스위스 은행에 가명으로 入金돼 있으며 凍結 어려워

禹鍾昌 月刊朝鮮 부장대우 편집위원 (woojc@chosun.com)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


2000년 6월1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과 건배하는 金大中 대통령.


한국 시각 오후 6시, 마카오 현지 시각 오후 5시. 우리 정부의 對北 감청기관은 마카오 주재 북한 조광무역商社에서 평양 중앙黨에 긴급 보고하는 국제 전화 내용을 포착했다.

보고자는 조광무역商社 총지배인 朴紫炳(박자병). 그의 보고 내용은 간단했다.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보고가 있기 30분 前, 외환은행 서울 모 지점에서 홍콩의 중국 은행에 개설된 朴紫炳 명의 계좌에 1억 달러가 긴급 송금되었다. 송금자는 현대상선(대표 金忠植)이었다.

金大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하루 앞둔 2000년 6월12일 오후, 서울과 홍콩, 마카오와 평양 간에는 이같은 긴급 상황이 있었다.

1억 달러 송금은 긴급하게 이뤄졌다. 현대상선이 운영자금 4000억원 대출을 산업은행에 요청한 날짜는 이보다 1주일 前인 2000년 6월5일이며, 산업은행이 대출을 승인한 것은 이틀 후인 6월7일이다. 현대상선은 6월10일 산업은행에서 돈을 찾았다.

6월10일은 토요일이다. 이날 밤 북한은 6월12일 개최키로 한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현대상선은 대출금 4000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2235억원(당시 환율로 약 2억 달러)을 北에 송금했다. 감사원은 최종 송금일이 6월12일이었다고 발표했으나, 현대상선이 6월12일 하루 만에 2235억원 전부를 송금했는지, 금액을 쪼개서 중간 중간 송금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감사원 발표대로라면 2억 달러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바로 전날, 긴급 송금된 셈이다. 당시 국가정보원장이었던 林東源씨는 그러나 2억 달러가 6월9일에 송금되었다며 이 돈이 남북정상회담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6월9일이면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돈을 찾기도 전이다.

國家情報院의 한 전직 간부는 『현대상선의 1억 달러가 홍콩의 朴紫炳 계좌로 송금된 게 6월12일 오후5시30분이고, 그 30분 후에 朴紫炳이 평양에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고 전화 보고한 것으로 볼 때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朴紫炳을 통해 北에 제공한 돈은 총 4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남과 북이 동시 발표한 정상회담 날짜를 北측이 하루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난 뒤 1억 달러라는 거액이 北으로 송금되었고, 그 다음날 金大中 대통령은 訪北 길에 올랐다』며 『남북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것은 南에서 주기로 한 돈이 北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광무역商社는 북한 「35호실」에서 운영

현대상선이 北에 송금한 2억 달러 중 1억 달러가 朴紫炳 명의의 계좌에 입금되었다는 점은 조광무역商社의 임무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광무역商社는 북한 중앙당 35호실에서 운영하는 위장 회사이기 때문이다. 35호실은 북한의 해외 정보기관인 「對外정보조사부」의 별칭으로 要人(요인) 암살, 납치, 테러 전문 기관이다.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朴紫炳 등 북한 관리 10여 명이 상주하고 있는 조광무역 商社는 入北(입북)비자를 발급하는 무역대표부 역할도 하고 있다. 마카오에 진출한 6개의 북한 무역업체들은 조광무역商社 통제하에 있다. 조광무역商社는 마카오를 경유하는 북한 工作員들이 거쳐가는 곳이어서 마카오 경찰의 감시 대상이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한 金賢姬(김현희)가 이 사건을 저지르기 전에 머물렀던 明珠臺(명주대) 아파트는 조광무역商社에서 불과 60여m 거리에 있다. 金賢姬는 이 아파트에서 1년간 거주하며 현지 적응 교육을 받았다. KAL기 폭파사고가 발생한 후 마카오 경찰은 金賢姬가 머물렀던 아파트에 대대적인 가택수색을 실시했다. 북한 공작원들이 외교관 여권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행범인 아닌 이상 마카오 경찰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한다.

조광무역商社는 1978년에 발생한 崔銀姬(최은희)ㆍ申相玉(신상옥) 부부 납치사건에도 연관돼 있다. 한국 정보기관은 崔銀姬씨 납치 사건이 金正日의 직접 지시를 받은 북한 對外연락부가 실천에 옮겼고, 기획ㆍ실무 책임자는 李昌善(이창선)이라고 결론지었다. 李昌善은 당시 「조광무역 부부장」이라는 직함으로 마카오에 상주했다.

이 李昌善은 한국에 망명한 李韓永(이한영) 암살사건의 실무 책임자다. 李昌善은 金正日의 아들 金正男의 지시를 받아 이를 실행했다.(月刊朝鮮 2001년 2월호 참조).

金正日의 처조카인 李韓永씨는 한국망명 후 金正日의 은밀한 사생활을 세상에 공개했다. 이 일로 李韓永씨는 1997년 2월15일, 남파된 북한공장원 최순호 組에 의해 살해되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최순호 組가 북한사회문화부 소속 특수 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崔銀姬씨 납치사건 이후 출세가도를 달린 李昌善은 李韓永 사건 때는 사회문화부 부장이었다.

조광무역商社의 또하나 역할은 金正日 비자금의 세탁 및 관리다. 홍콩 서북쪽 40마일 해상에 위치한 두 개의 섬 마카오는 전체 인구의 15% 가량이 카지노 종사자다. 도박장에서의 換錢(환전)은 은행보다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마카오는 밀수 대금이나 위조지폐의 돈 세탁장으로 악용되고 있다.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 비자금 조성책』

조광무역商社 총지배인 朴紫炳은 金正日 비자금의 해외 관리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인적사항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는 오래 전에 홍콩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대표로 나와 수년째 마카오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대표를 맡고 있다. 직급은 차관급으로 알려져 있다.

朴紫炳은 1994년 6월, 9000달러의 위조지폐를 유통시킨 혐의로 마카오 경찰에 적발되었다. 조광무역商社가 일본과 무역하면서 은행을 통해 대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北이 만든 일명 「슈퍼 노트」라는 위조 달러화를 섞어 넣었다가 발각되었다. 이 사건으로 朴紫炳은 마카오 경찰에 의해 출국금지 상태에 놓여 있다.

朴紫炳의 역할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북한의 고려民航이 非정기적으로 마카오에 기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려民航이 마카오 국제공항에 첫 취항한 것은 1996년 9월16일이다. 고려民航은 매주 월요일 오전 평양을 이룩, 마카오를 거쳐 방콕으로 가며, 다음날 방콕을 출발해 낮 12시30분경 마카오에 기착, 두 시간을 머문 후 평양으로 되돌아간다.

취항 후 100일 동안, 고려民航을 이용한 승객은 하루 평균 10여 명으로 좌석 수의 10%에 불과했다. 공안기관의 한 관계자는 『고려민항 승무원들은 거의가 인민무력부 소속 군인』이라며 『시장성이 전혀 없는 마카오에 고려民航이 취항하고 있는 것은 마카오에서 세탁한 돈이나 홍콩을 통해 송금받은 달러를 현금화해 외교행낭 편으로 평양에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金正日 비자금 관리자들

이 관계자는 현대상선에서 송금한 2억 달러가 朴紫炳 명의의 계좌에 입금된 점을 중시, 『북한의 對南 공작 사업비는 결국 우리가 보내 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 비자금 계좌에 2억 달러를 더 채워넣은 조성책 중의 한 명인 셈이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을 거부하며 북한 주민 300만 명을 사실상 굶겨죽인 金正日은 43억 달러(약 5조원ㆍ美 CIA 2000년 추정) 가량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月刊朝鮮 2000년 11월호 참조). 이 비자금의 성격에 대해 前 북한 외교관 고영환씨는 『金正日이 자기 장래를 대비한 돈』이라고 규정했다.

영국 런던에서 金正日 비자금을 관리하다 한국에 귀순한 ○○○씨는 『金正日 개인이 먹고 쓰고, 對南 공작 등 필요하다 싶은 데 사용하는 개인 돈』이라며 『북한의 식량위기 때 全 세계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金正日 비자금이 식량 구입비로 나왔을텐데 북한을 도와주는 바람에 金正日로서는 비자금을 쓸 일이 없어졌다』고 개탄했다.

金正日 비자금은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는 전혀 무관하게 全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金正日 왕국」 유지비에 사용된다는 것이 비자금 관리에 개입했던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이 비자금으로 金正日과 그 가족들의 생활용품은 해외에서 구입되며, 金正日의 측근 심복에 해당하는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과 軍사단장급 이상은 金正日이 선물한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金正日 비자금의 가장 중요한 사용처는 對南 공작이다. 金正日은 측근들에게 『통일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내가 댄다』고 말했다고 한다.

金正日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은 중앙당 39호실이다. 39호실 책임자는 권영록이다. 그는 1980년 초부터 비자금 관리를 맡았다. 對外에 알려진 권영록의 공식 직책은 중앙당 자금담당 부부장. 나이는 50대 중반이며,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지에 수시로 나타난다.

北에 납치된 후 권영록을 만난 적이 있는 申相玉 감독은 『얼굴이 잘 생기고 키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고 말했다.

金正日의 해외 비자금은 스위스와 마카오 등지의 은행에 예치돼 있다. 마카오의 비자금 관리자가 앞서 언급한 朴紫炳이며, 스위스 은행 관리자는 제네바 주재 북한 대사 이철(본명 이수용)로 알려져 있다. 1980년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1등 서기관이란 직책으로 처음 스위스에 나온 이철은 金正日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는데 1987년 스위스 주재 대사가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비밀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비자금 관리자인 권영록과 이철은 20년 이상 한 곳에 주재하고 있다.

金正日의 비자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조성된다. 한국으로 귀순한 前 비자금 관리자 ○○○씨는 『2월16일 金正日 생일 때면 「정성금」 혹은 「충성금」 명목으로 평균 1억 달러 이상 걷혔다』고 말했다.

인민무력부를 위시한 黨 산하 모든 기관과 모든 외화벌이 회사가 매년 예산의 30%를 충성의 자금으로 바쳤고, 연간 1200t쯤 생산되는 송이버섯 수출이 약 1억 달러, 金 판매 수익이 1억 달러쯤 되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양강도의 백남郡과 함경북도 일대의 대규모 아편 농장, 「슈퍼 노트」라는 위조 달러, 북한산 히로뽕, 중동 지역에 대한 미사일 및 무기 수출, 일본 조총련의 송금 등도 비자금 조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국내 일부 방송사가 北에서의 공연이나 활동 대가로 낸 수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돈, 北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의양서나 합의서 체결시 낸 성의 표시의 돈, 그리고 명목이야 어떻든 현대상선이 朴紫炳 계좌에 입금시킨 총 2억 달러도 이 중의 일부다.


북한-히로뽕-일본 폭력조직 연계?

金正日의 아들 金正男(32)이 일본에 들어가다 체포된 사건이 발생한 후, 기자는 金正男의 일본내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일본에 출장갔다. 金正男은 일본을 수시로 들락거렸고, 東京에서 新幹線(신간선)으로 한 시간 거리인 요코하마에서 일본 폭력조직의 경호를 받으며 활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 공안기관의 한 관계자는 金正男의 잦은 일본 방문에 대해 『金正日의 일본내 비자금 관리와 관련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金正男의 경호는 일본 폭력조직인 「S 聯合」에서 담당했습니다. 이 조직은 「야마구치구미」, 「이나가와구미」와 함께 일본 내 3대 폭력조직의 하나입니다. 金正男의 근접 경호원은 S聯合 산하 조직으로 가나가와縣과 신주쿠(新宿) 일대를 관장하는 하야시 구미(組)의 보스입니다. 하야시 구미 조직원은 200여 명인데 170명이 조총련 2, 3세 출신입니다.

폭력조직 S聯合과 金正男을 연결하는 고리가 조총련과 히로뽕이었습니다. S聯合의 主 돈줄이 히로뽕 판매이고, 이 히로뽕 공급처가 북한이며 히로뽕 판매 대금을 金正男이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공안 당국은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지만 S聯合 회장이 일본 여당에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큰 손이라는 점에서 신중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공안 당국은 북한이 달러 위조에 이어 최근에는 일본을 거점으로 유러貨 위조에 착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金正男의 비자 요청을 불허했다는 보도도 유러貨 위조와의 관련성에서 일본 공안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金正男이 일본에서 머물렀던 곳은 야마토市의 마루낑(丸金) 호텔이다. 호텔 소유주는 제주도 출신의 상공인인데 金日成, 金正日과 함께 사진을 찍을 정도로 北과 가깝다고 한다. 金正男이 이 호텔에 머물렀을 때 같이 식사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는 한 한국인을 기자는 만났다.

그는 북한산 히로뽕과 연계된 일본 및 한국의 폭력조직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다.

『히로뽕을 투약하고 약 8시간쯤 지나면 약효가 떨어져 손발이 저리고 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일종의 禁斷현상인데 이 때문에 습관성이 됩니다. 북한산 히로뽕은 투약 후 장애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일본 폭력조직에서 히로뽕 판매로 얻은 대금이 한국 폭력조직을 통해 국내 사채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현대상선의 對北 송금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실체를 드러낸 金正日 비자금은 이제 국제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州 상원의원 존 맥케인은 지난 1월20일자 미국 주간지에 기고한 글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金正日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조치 중의 하나로 「金正日이 해외 계좌에 넣어두고 있는 40억 달러를 동결시키는 국제적 노력을 하자」고 제안했다(月刊朝鮮 2003년 2월호 참조).

미국과 유엔이 주도하여 이 비자금 조성 및 사용을 국제범죄와 연관시켜 凍結(동결)한다면 金正日로서는 거의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보호법

미국 뉴욕州 검찰관 출신인 재미교포 데이빗 유(34·한국 이름·유동환) 변호사는 스위스 은행의 운영 체제에 정통하다. 유 변호사는 1996년 뉴욕 검찰청 근무 당시 마약 밀매 자금의 돈 세탁 수사를 담당했다. 세탁한 마약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여러 차례 스위스 은행에 자료 요청을 했지만 전혀 협조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 유 변호사는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金正日 비자금의 凍結은 스위스 法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스위스 은행의 특수성을 이렇게 말했다.

『스위스는 小國이지만 400여 개의 은행 및 금융회사를 가진 세계 금융 중심지의 하나입니다. 이 중 150여 개는 외국계 은행입니다. 금융사업은 스위스 국가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이익도 많이 납니다. 1999년 美 하원 보고서에 따르면 全 세계의 돈세탁 규모는 50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에 이릅니다.

스위스는 1934년에 제정된 은행비밀보호법(Bank Secrecy Act of 1934)에 의거, 예금주 이름과 예금 종류, 잔액, 최종 거래일 등 특정인의 거래 내력은 공개해서도 안 되며 확인도 해주지 않습니다. 이 법에 따라 예금주는 이름 없이 계좌번호만으로 거래가 가능합니다. 이 법은 히틀러 통치 기간 동안 유태인의 재산을 숨기기 위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스위스 은행가들은 1934년 11월8일에 발효된 연방은행 및 예금법 제47조에 의해 고객 비밀유지 의무가 있습니다. 은행가나 스위스 연방은행위원회 위원 또는 공인된 감사기관의 직원 등 은행 업무와 관련된 사람은 자기에게 위탁된 정보나 업무와 관련해 취득한 정보를 누설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밀유지를 위반하면 최고 6개월의 징역 및 벌금형이 부과될 뿐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계약의무 불이행에 따른 소송을 당할 수 있습니다. 고객 비밀유지 의무는 고객이 거래를 끝내거나 은행원이 은행을 떠나더라도 계속 유지되며, 비밀유지 위반은 사안에 따라서 경제스파이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설령 외국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을 경우, 사소한 정보라도 유출하면 형법 위반이 되는 것입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세스쿠, 필리핀의 마르코스 등 독재자와 마약상, 그리고 국제 테러리스트 등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이 비밀보호법을 악용해 불법 재산을 숨겼던 것입니다』


『유령회사 이름으로 계좌 개설했을 것』

―예외는 없습니까.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단체나 절도, 공갈 사기 등에 관련된 돈세탁이라는 명백한 자료가 있을 경우 비밀의무가 면제됩니다. 금융자산이 범죄의 果實이라는 의무가 나타나면 금융기관은 이 사실을 정부기관에 통지할 권한이 있고, 혐의가 확실히 나타나면 은행은 「돈세탁 보고위원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위스 대법원은 은행거래 자료가 제3자에게 노출 가능성이 있을 경우,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를 남겼습니다. 이 판례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요구하는 자료는 재판을 통해 공개된다는 점에서 자료 이유로 거부가 가능합니다』

―金正日의 비자금은 스위스 은행에서 어떤 식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같습니까.

『프라이비트 뱅킹(PB)의 최소 취급액은 은행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돈으로 2억수천만원 내외입니다. 이 돈을 갖고 가면 스위스 은행은 내부 규정에 따라 예금주에 대한 實査를 하지만 수익을 중시하는 은행 관행상 형식에 그칩니다. 계좌가 개설되면 그 후의 거래, 예를 들어 해외 송금이나 투자, 상속 등은 전화 한 통화로 다 이뤄집니다.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불러주면 은행에서 알아서 처리합니다.

金正日의 경우, 자기 이름보다는 유령 회사 이름으로 계좌를 열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바하마 인근의 섬나라인 케이먼 아일랜드나 영국 인근의 채널 아일랜드, 그리고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비밀보호법이 마련된 나라에서는 유령회사를 얼마든지 설립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라가 全세계에 20개쯤 됩니다』

―金正日 비자금에 대해서 美 CIA는 약 43억 달러로 추정하는데, 이 경우 이자는 얼마쯤 됩니까.

『스위스 은행을 이용하는 돈은 거의가 불법자금으로서 탈세나 원금 관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매우 낮고, 예금액이 클수록 이자는 더욱 적습니다. 40억 달러라면 1%를 넘지 않습니다. 의심스러운 돈이라는 심증이 가면, 오히려 스위스 은행에서 일종의 보관료 형식으로 10내지 15%의 逆이자를 물리기도 합니다』


실무적으로는 凍結 어려워

―金正日은 대한항공 858기 폭파를 지시했고, 일본인 납치를 자기 입으로 시인한 세계적인 범죄자입니다. 미국과 유엔이 스위스 정부의 협조를 얻어 金正日 비자금을 凍結하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만약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국가간의 분쟁을 일으킨 범죄인의 차원에서 金正日을 기소할 경우, 계좌번호를 모르더라도 金正日에 관한 포괄적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스위스 법원에서는 은행에 자료 공개를 명령할 수 있는데, 金正日 이름의 계좌가 없다고 해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1억 달러 이상이면 스위스 은행가에서 큰손 대열에 들어가는데 43억 달러면 큰손 중에서도 큰손입니다. 이 돈을 金正日이 몇몇 유령회사 명의로 개설해 놓았을지라도 관리하는 은행가는 돈 주인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잠겨있는 이 돈을 활용해 수천만 달러를 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자료 제공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은행가가 자발적으로 자료를 제출하게 되면 스위스 은행 체계는 마비될 것입니다. 규모 파악도 힘든 판에 凍結은 더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金正日 생일을 앞둔 2월 초면 일본에서 거둔 「金正日 충성금」을 실어가기 위해 매년 니이가타港에 입항하던 만경봉호가 올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金正日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이후 일본 열도에 불어닥친 金正日 비판 분위기와 연관있다는 것이 일본 공안 당국자의 설명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퇴임 열흘을 앞둔 2월14일, 北에 돈을 준 것과 관련해 對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對北 송금의 실체를 알고 있는 林東源(임동원) 前 國情院長과 朴智元(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 옆에 배석했다.

林東源 前 國情院長은 『현대가 대규모 對北 사업을 독점하기 위한 댓가로 5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는 말로, 北에 준 돈이 모두 5억 달러임을 시사했다.

北에서 사업 독점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金正日이 유일하다. 때문에 北에 준 5억 달러가 누구 호주머니에 들어갔는지, 어떤 용도에 사용될지는 자명한 이치다. 이 5억 달러가 金正日의 비자금이 되었다는 사실을 金大中 대통령과 林東源, 朴智元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997년 月刊朝鮮 마카오 현지취재로 최초 공개된 조광무역商社

조광무역商社의 실체는 1997년 최초로 공개됐다. 당시 月刊朝鮮 李東昱(이동욱ㆍ現 한국갤럽 전문위원) 기자가 북한의 해외 무기밀매 거점으로 알려진 홍콩과 마카오를 현지 취재한 결과 조광무역商社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북한은 홍콩을 무기밀매 중개지로, 마카오에는 무역업체로 간판을 내건 조광무역상사라는 회사를 두어 북한 공작원들의 활동기지로 삼고 있었다. 조광무역商社는 金正日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역업체 직원, 외교관 등을 이용해 금괴를 북한으로부터 밀반입하거나, 위조 화폐를 제작하여 국제적으로 유통시켰다.

마카오의 스테뇨우바이스 大路(대로)에 위치한 조광무역商社는 외형적으로는 무역업체로 위장하고 있다. 조광무역商社의 공작 활동 중 증거가 드러난 것만 해도 金賢姬의 KAL기 폭파사건,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 申相玉ㆍ崔銀姬 부부 납치 사건 등이 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직후 조광무역商社 지하에서 아웅산 테러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폭약과 베터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현지 경찰은 조광무역商社가 저지르는 각종 국제범죄에는 조직폭력배도 동원되고 있다고 파악했다. 이러한 사실은 月刊朝鮮 1997년 3월호에 자세히 보도됐다
------------------------------------------------
禹鍾昌의 특종 제2탄-마카오 잠입 취재
(월간조선 2003년 4월호)

「金大中+現代 조성 對北 비자금」이 입금된 마카오 對南공작기관



조광무역 박자병의 정체와 金正日 애첩의 별장을 찾아 내다!

● 월요일 오전 10시, 사무실 안엔 근무자가 없고 무역과 관련된 비품도 없었다. 감시 카메라만 작동중이었다. 퇴로 없는 복도에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은 아들과 함께 마카오 별장(빌라)에 살고 있다. 山中 빌라를 찾아가 사진을 찍자 경비원이 뛰어나왔다
● 朝光貿易 총매니저 朴紫炳은 예순 아홉의 대머리. 외교관 여권, 官用 여권 두 개 소지. 위조 달러 유통혐의로 기소 상태
● 朝光貿易 총대표는 金正日 秘資金 관리하는 39호실 소속 한명철. 金正日의 애첩 경호 책임자는 북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김승복
● 마카오 경찰『朝光貿易은 국제 범죄집단』
● 마카오 카지노場은 북한 검은 돈의 세탁장. 마카오의 카지노 황제 스탠리 호는 평양 양각도 호텔에 카지노場 연 인물

禹鍾昌 月刊朝鮮 부장대우 편집위원 (woojc@chosun.com)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사무실


위치 노출을 막기 위해 사무실 입구에만 걸어 놓은 조광무역 간판.


아파트 출입문 오른쪽에 암호를 입력하는 박스가 설치돼 있었다. 암호를 모르는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키가 작은 할머니 한 명이 출입문 앞에 다가와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이었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 기자는 할머니 뒤에 바싹 붙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경비실이 있고, 그 속에서 50대의 남자가 등을 돌린 채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경비원과 눈이 마주쳤으나 얼른 외면해 버렸다.

기자의 목적지는 이 아파트 5층이었다. 5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흰색 벽에 영어로 쓴 조광무역(ZOKWANG IMPORT & EXPORT CO)이란 글씨가 붙어 있고, 그 밑에 누런색 銅版(동판)으로 만든 가로 2m, 세로 1m 가량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간판에는 붉은색으로 「新朝光貿易」이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마카오를 거점으로 하는 동남아지역 북한 공작기지에서 위장으로 운영하는 무역회사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이 회사는 朝光貿易과 朝光수출입상사라는 두 개의 이름을 사용하며 마카오내 전화번호부에는 朝光貿易公司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朝光은 「조선 광명성」의 略字(약자)로, 광명성은 북한에서 金正日의 별자리를 의미한다.

간판은 사무실 입구 한 군데만 걸어 놓았다. 朝光貿易이란 이름 앞에 「新」이란 글자를 언제부터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오른쪽은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복도였다. 복도는 서너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朝光貿易 사무실은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왼쪽에 있었다. 다른 사무실은 없고, 朝光貿易이 5층 전부를 사용하고 있었다. 기자가 朝光貿易을 찾아간 것은 지난 3월3일 월요일 오전 10시(한국 시각 오전 11시)쯤이었다.

사무실 출입문은 열려 있었으나 불은 켜있지 않았다. 안은 어두컴컴했고, 근무하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문에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였다. 사무용 책상과 걸상, 응접세트가 놓인 응접실이 있고, 응접실 뒤쪽에 칸막이로 가려진 사무실이 몇 개 보였다. 무역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화기, 팩시밀리, 컴퓨터, 복사기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朝光貿易이 위장 무역회사임은 사무실 분위기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무역업자를 사칭하여 朝光貿易에 접근하려 했던 기자의 의도는 막상 현지에 와보니 순진한 생각이었다. 무역회사 흉내는 조금도 내지 않고, 마치 깡패처럼 거리낌없는 북한 테러집단의 행태를 생각하니 공포감이 엄습했다. 朝光貿易 사무실에는 절대 가지 말라는 마카오 경찰 관계자의 충고가 빈말이 아님을 실감했다. 엘리베이터와 비상구가 막히면 도망칠 데도 없었다.

기자와 동행한 사람도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감시 카메라가 작동중인 것 같다. 이곳에서 얼쩡거리다 북한인들과 마주치면 도망칠 곳이 없다. 위험하다. 사진만 찍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1층에서 눈이 마주친 경비원을 피하기 위해 기자는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비상계단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왔다.

朝光貿易 사무실은 마카오 치안경찰국 교통청 맞은 편에 있었다. 18층짜리 아파트 두 棟(동)이 연이어 있는 住商(주상) 복합 형태의 건물인데, 5개 층을 임대해 朝光貿易을 비롯한 북한 외화벌이 업체들이 사무실 겸 교육장, 숙소로 사용중이다. 교육장으로 사용하는 3층은 외부에서 들여다 볼 수 없게끔 베란다에 벽돌을 쌓고 시멘트로 막아 놓았다.

전화번호부에 등록돼 있는 朝光貿易의 전화번호는 두 개였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朝光貿易에 전화를 걸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사무실인데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난 다음,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북한 남자가 받았다.

찾아갔더니 사무실 문은 열려 있으나 근무하는 사람이 없어서 전화를 건다고 하자, 용무가 무언지를 물어왔다. 북한산 물품을 사고 싶다고 하자, 북한인은 통화하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朝光貿易의 대표는 총매니저로 등록돼 있는 朴紫炳(박자병)이다. 朴紫炳은 金大中 정부 시절 現代의 對北 송금과 관련해 주목받는 인물이다.

朴紫炳은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6월12일, 마카오에서 국제전화로 『네 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았다』고 평양에 긴급 보고했고, 이 보고는 우리 정부의 對北 감청부서에 포착되었다. 이 전화가 있었던 그날,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에서 긴급 대출받아 두었던 4000억원(약 4억 달러) 중 마지막 1억 달러를 홍콩 중국은행(Bank of China)에 개설된 朴紫炳 관련 계좌에 송금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보다 하루 늦게 열리게 되었다(月刊朝鮮 2003년 3월호 기사 참조).




35호실 실장 허명욱은 고상문씨 납치에 관여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국가정보원장이었던 林東源씨는 『現代가 대규모 對北사업을 독점하기 위한 대가로 5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말로, 現代가 금강산 사업 명목의 9억4200만 달러 외에 北에 5억 달러를 더 주었음을 인정한 바 있다. 이 5억 달러 송금에 깊숙이 개입된 북한 창구가 朝光貿易이다.

朝光貿易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35호실」 소속이다. 35호실과 朝光貿易의 관계에 대해 한국 공안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35호실은 對外정보조사부의 별칭입니다. 북한은 해외에서의 對南 공작을 강화하기 위해 1977년 10월 노동당 연락부(對南 간첩 침투 부서)와 별도로 「조사부」를 설립했고, 1983년 1월경 조사부를 다시 「對外정보조사부」와 「작전부」로 분리했습니다. 對外정보조사부는 해외에서의 對南 정보 수집 및 要人 암살·납치·테러 전담 부서이며, 작전부는 對外정보조사부 소속 특수 공작원을 목적지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한 김현희가 조사부 소속 공작원입니다. 이 對外정보조사부가 1997년 무렵 35호실로 개칭되었습니다. 35호실은 책임자인 부장과 5명의 부부장으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초대 책임자는 舊소련 대사를 지낸 權熙京(권희경)입니다. 權熙京은 소련대사 재직시에 있었던 공금횡령 혐의로 1997년 12월에 숙청되고, 그 이후 부장직은 공석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부부장 중 한 명인 허명욱이 2000년 3월에 이어받아 현재 35호실 실장으로 있습니다.

35호실은 5명의 부부장 밑에 해외 담당부서, 對南사업부서, 지원부서 등이 있는데 동남아 지역은 35호실 3과에서 담당합니다. 朝光貿易은 애초 35호실 3과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다 1992년부터 金正日의 해외 秘資金(비자금) 관리 임무가 추가되어 金正日의 해외 秘資金을 관리하는 「39호실」 통제 속에 외화벌이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對南 테러 공작, 金正日 秘資金 관리, 외화벌이가 朝光貿易의 주 임무입니다』

35호실 실장 허명욱은 1932년생으로 함경북도 출신이다. 허명욱은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중 유학생으로 선발돼 중국 北京의 철도대학에서 3년간 공부하고 귀국 후 노동당 사회문화부(남한내 간첩활동 담당 부서)에 배치돼 지도원, 부과장, 과장을 거쳤다. 1978년에 발생한 영화배우 崔銀姬(최은희)씨 납치사건과 1979년 4월의 고상문(당시 수도여고 교사) 납북사건은 허명욱이 사회문화부 과장 시절 직접 지휘한 공작으로 알려져 있다.

허명욱은 1980년대 말 35호실로 자리를 옮겨, 1992년에는 중국 上海 주재 35호실 공작 총책으로 2년간 근무하다 1995년 귀국해 부부장에 임명됐다. 金正日의 신임이 두터운 對南 공작 전문가이며, 노동당 작전부장 오극렬과는 처남 매부간으로 알려져 있다.

崔銀姬씨 납치 사건 당시 허명욱의 상급자는 사회문화부 부장 李昌善(이창선)이다. 李昌善은 1925년 전남 순천 출신이다. 李昌善은 스무 살에 金日成의 호위병이 되었고, 쉰 한 살이던 1976년에 對南 간첩사업의 책임자가 되었다.

李昌善은 1997년에 발생한 李韓永(이한영) 암살사건에서 실무 책임자로 활동했다. 李昌善은 한국에 망명한 金正日의 처조카 李韓永씨가 金正日의 내밀한 사생활을 폭로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金正日의 아들 金正男의 지시에 따라 사회문화부 소속 특수 공작원 최순호組를 남파, 李韓永씨를 살해하도록 했다.


베란다에 커튼 쳐놓은 김현희 아파트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의 자취는 아직도 마카오에 남아 있었다. 폭파사건을 일으키기 전, 김현희가 중국어 적응을 위해 1986년 8월부터 1987년 1월까지 머물렀던 明珠台(명주대) 아파트(1동3층A호)는 조광무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마카오 도착 후 김현희가 1주일 동안 머물렀던 에스토리아 호텔은 朝光貿易과 명주대 아파트 중간 지점에 있었다.

김현희가 머물렀던 아파트는 비어 있었다. 25평 규모인데 문은 잠겨 있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끔 베란다에 커튼을 쳐놓았다. 마카오는 인구 수에 비해 고층 아파트가 많기 때문에 집값이 한국보다 싸며, 비어 있는 아파트가 많다고 한다.

마카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김현희는 마카오 체류중 공민증을 소지하지 않은 혐의로 경찰 불심검문에 체포된 적이 있는데 북한인이 김현희 것이라며 일본 여권을 제시해 석방되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마카오人과 비교할 때 김현희가 워낙 미모여서 기억하는 경찰관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 터진 후 마카오 경찰은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 김현희 아파트를 수색했다. 그러나 깨끗이 정리하고 떠났기 때문에 테러와 관련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김현희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에 보면, 김현희는 대외정보조사부 2과 소속이었다. 조사부 소속 공작원들에게 주거 및 생활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현지에서 적응하게끔 돕는 것은 朝光貿易의 임무 중 하나다. 朝光貿易은 마카오를 경유하는 북한 공작원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다.

영화배우 崔銀姬씨를 납치하기 위해 崔씨를 홍콩으로 유인한 사람은 李像姬(이상희·당시 52세)라는 여자다. 李像姬는 동국대 정치과 출신으로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다 실패하자 1963년 홍콩으로 건너갔다.

사건 발생 후 崔銀姬씨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申相玉씨는 최근 기자에게 『李像姬 본인으로부터 마카오 朝光貿易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崔銀姬 납치사건에는 朝光貿易이 관계돼 있다』고 말했다.


외교관 여권이나 官用여권 소지

북한은 6·25전쟁 종전 후인 1953년부터 마카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다 1957년 납치 및 테러 전초기지로서 朝光貿易을 설립했다. 그 후 고려무역·김곽무역·장록무역·스웰商社·룡흥수출입商社·만덕수출입商社·다엑심商社·대버商社·신합商社·조선민예연합商社·명기公司·고려항공사 등 17개 북한 외화벌이 업체가 마카오에 진출해 있는 것으로 마카오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주재원 신분으로 마카오에 상주하는 북한인은 약 80명인데 30명 가량이 북한의 외교관 여권이나 官用 여권 소지자라고 마카오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명기公司 및 다엑심商社 소속 주재원 김승복과 고려무역 주재원 김용일은 외교관 여권 소지자이고 고려항공사 마카오 지사장 최창도, 룡흥수출입商社 소속 정정덕, 만덕수출입商社의 김창식, 대버商社의 허재원, 신합商社 김석칠은 북한 官用 여권 소지자다.

마카오 경찰은 외교관 여권이나 官用 여권을 소지한 북한인은 공작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외교관 신분이기 때문에 현행범이 아닌 이상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朝光貿易에 대해 『마카오에 진출해 있는 북한 외화벌이 업체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지휘부』라고 말했다. 朝光貿易의 실제 정체에 대해서는 『무역회사로 위장한 북한의 동남아 테러기지로 납치 및 테러를 자행했을 뿐 아니라 북한産 위조 달러화 유통, 필로폰(히로뽕) 판매 등을 통해 홍콩, 마카오 경제는 물론 全 세계의 경제질서를 교란시키는 국제 범죄집단』이라고 단정했다.

그에 따르면 스웰商社가 중국과 홍콩에 개설한 지점들은 공작원들의 거점이며, 마카오 시내에 있는 일식집 「해피하우스」는 북한이 정보 수집 차원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것이다.

요즘 마카오 경찰은 朝光貿易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필로폰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마카오에서 필로폰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95년이며 그후 폭력조직을 통해 급속히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공항과 국경지역 세관에는 마카오 특수경찰대 소속 마약犬이 배치돼 있다.

마카오 경찰은 필로폰 공급책으로 朝光貿易을 지목하고 있다. 마카오에 유통되는 필로폰이 조악한 중국産과 달리 高농도의 결정체여서 북한産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마카오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필로폰은 인간의 정신상태를 황폐하게 만드는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에 마카오 특수경찰대가 수사를 맡고 있다. 밀수 루트를 파악하기 위해 필로폰 판매자에 한해서는 엄하게 신문하지만 워낙 점조직 형태로 이뤄져 있다. 高농도의 필로폰 제조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우리는 북한이 한국인 필로폰 제조 기술자 2명을 중국 北京으로 유인해 평양行 기차에 태워 北으로 끌고 갔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

마카오 당국이 朝光貿易에 대해 동태 파악을 시작한 것은 1982년 2월경으로, 全斗煥 당시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에 朝光貿易이 관련돼 있다는 정보를 캐나다 경찰로부터 통보받으면서였다.

미수에 그친 이 사건의 주범은 캐나다에 거주하던 崔泓熙(최홍희·前 말레이시아 대사로 일가족이 월북함)의 아들 崔重華(최중화·당시 30)였다. 마카오 경찰 조사 결과, 崔重華는 이 시기 마카오에 나타나 암살에 필요한 공작금을 장춘고려인삼商社에서 수령했다. 장춘고려인삼商社는 朝光貿易 통제하의 회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카오 정부는 장춘고려인삼商社에 대해 추방령을 내렸다.

그 1년 반 뒤 아웅산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미얀마 정부는 마카오의 북한 공작 조직이 테러에 연계돼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마카오 경찰에 제공하고 수사 협조를 의뢰했다. 이 무렵 마카오 경찰은 朝光貿易 지하실에서 사소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당시 朝光貿易 사무실은 현재의 아파트에서 100m쯤 떨어진 5층짜리 건물에 있었다.

朝光貿易 지하실에서는 아웅산 테러 때 사용된 것과 동일한 폭약과 배터리가 발견되었다. 마카오 경찰은 朝光貿易이 아웅산 테러에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계를 경악시킨 초정밀 북한산 위조 달러

마카오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朝光貿易은 1993년, 5층짜리 자체 건물을 팔고 외부인의 출입이 어려운 현재의 아파트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북한 비자를 발급하던 영사관 업무도 홍콩에 북한 영사관이 개설되는 것을 계기로 중단했다. 홍콩 주재 북한 영사관은 金正日의 58회 생일이었던 2000년 2월16일에 개설됐다.

사무실 이전 1년 후, 朝光貿易이 마카오 델타은행을 통해 僞幣(위폐) 25만 달러를 환전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마카오 경찰은 1994년 6월28일 밤, 위조 美貨 소지 혐의로 마카오人 2명과 북한인 16명을 긴급 체포하고 朝光貿易을 비롯한 북한 무역업체 사무실과 숙소 12군데를 일제 수색했다.

이 수색에서 상당량의 100달러짜리 僞幣가 朝光貿易 사무실에서 발견되었다. 진짜 달러와 똑같은 종이에 똑같은 잉크와 인쇄기법으로 제조돼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고 전문가나 최신 감별기가 아니면 식별할 수 없는 초정밀 위폐였다. 미국이 재무성 소속의 僞幣 전문수사관을 마카오에 급파하는 등 사건의 파장이 컸다. 이 사건은 북한이 100달러짜리 위폐를 전문적으로 제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全세계에 공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3월에는 일본 적군파 요원 다나카 요시미가 북한 외교관 김일수 여권을 소지하고 캄보디아 태국 등지에서 위폐 300만 달러를 유통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 공관원 2명이 僞幣 11만 달러를 암시장에서 환전하다 적발돼 추방됐다. 이들이 사용한 위폐는 조광무역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마카오 경찰은 위폐를 유통시킨 혐의가 확실한 8명을 기소했다. 朝光貿易 대표 朴紫炳(박자병)도 이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마카오 경찰이 압수한 朴紫炳의 공민증에 의하면 그의 신체적 특징은 대머리였다. 마카오 경찰은 朴紫炳이 모습을 위장하여 마카오를 탈출할 것에 대비, 가발을 씌운 사진도 만들어 놓았다.

마카오 경찰 자료에 따르면 朴紫炳은 1934년생으로 올해 예순 아홉이다. 그는 1976년 8월, 마카오에 처음 입국했다. 그후 1985년까지 약 10년간 朝光貿易에서 근무한 후 자리를 옮겼다가 1990년 8월경 다시 마카오에 나타나 현재까지 머무르고 있다. 朴紫炳은 1995년 10월, 朝光貿易 총매니저로 등록했다.


朝光貿易 총대표 한명철은 39호실 소속

마카오 경찰 관계자는 朴紫炳의 마카오 탈출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朴紫炳은 북한 외교관 여권과 官用 여권 두 개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숙소는 아파트 18층에 있는데 아내와 두 자식이 함께 거주합니다. 가족과 함께 해외에 내보낼 정도라면 북한에서 신임하는 거물입니다.

朴紫炳은 해외 생활을 오래 했고, 나이가 많습니다. 그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마카오에 나와 있기 때문에 北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朴紫炳이 중국 국적과 포르투갈 국적을 획득한 점도 그의 거취와 관련해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朴紫炳은 35호실 소속의 朝光貿易 총매니저로 되어 있지만, 본부 부부장들이 수시로 마카오에 나와 현지에서 공작을 지휘하기 때문에 권한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카오 경찰이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朝光貿易 총대표로 등록돼 있는 한명철이다. 한명철은 1992년 9월 마카오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외교관 여권을 소지하고 아내와 자식(1남1녀)을 대동했다. 아내와 자식들은 官用여권을 소지했다. 마카오 도착 후 한명철은 朝光貿易 총대표로 등록했다. 여권에 따르면 한명철은 1954년생으로 올해 마흔 아홉이다.

마카오 경찰에 따르면 한명철은 金正日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소속이다. 朝光貿易이 근래 들어 金正日 秘資金 관리와 외화벌이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마카오 경찰은 한명철의 지위가 朴紫炳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공안기관의 한 관계자는 한명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한명철은 金正日 경호부대인 호위총국 소속이었는데, 젊고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나 39호실에 발탁되었습니다. 한명철은 39호실에서 朝光貿易에 파견한 사람입니다. 마카오를 거점으로 하는 동남아 일대의 金正日 秘資金 관리가 한명철의 주 임무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朴紫炳은 한국의 對北 정보기관에서 오래 전부터 주시해 온 對南 공작전문가입니다』


인터넷 이용하는 북한의 心理戰

朝光貿易이 외화벌이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의 하나가 金 수출이다. 39호실 산하의 17개 금광에서 생산하는 연 평균 11t 가량의 金을 금괴로 만들어 수출한다. 이 수출은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마카오 경찰은 한국의 S물산이 朝光貿易을 통해 북한産 금괴를 수입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물산의 한 관계자는 『1993년과 1994년경에 통일부 권고에 따라 한번에 300kg씩 총 2t의 북한産 金을 수입한 적이 있으나 그 후 거래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외화벌이를 통해 조성된 자금은 거의 대부분 39호실로 송금돼 金正日 秘資金으로 사용되며, 극히 일부를 朝光貿易에서 공작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마카오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金正日 비자금은 金正日 본인과 그 가족의 생활비, 對南 공작비, 대량 살상무기 개발비 등에 사용되고 있다』며 『한국 사회를 혼란시키는 데 사용되는 對南 공작비가 대량 살상무기 개발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고 말했다.

한국 공안기관 관계자들은 『金正日 비자금이 국내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르는 조짐이 여러 군데서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合參(합참·합동참모본부) 民事心理戰(민사심리전) 참모부가 지난 2월26일 발표한 「최근 對南 심리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 내부의 안보의식을 망각시키기 위해 인터넷 등 각종 심리전 매체를 동원하여 북한에 대한 인식의 혼란 유도, 남북이 같은 동족이라는 의식 확산, 韓美 공조 약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북한이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10대에서 20대의 인터넷 세대라고 한다. 북한은 이들에게 「북한 核은 7000만 민족의 자존심」, 「여중생 사망사고를 추도하는 촛불시위는 계속 되어야 한다」, 「이라크 전쟁 반대」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金正日 秘資金의 사용처와 관련해 눈여겨 볼 것은 金正日의 가족들이다. 외부에 공개된 金正日의 공식적인 여자는 3명이다. 金正日의 첫 여자는 영화배우 출신 成蕙琳(성혜림)이다. 성혜림은 경남 창녕의 만석꾼 집안 成有慶(성유경)의 딸로 6·25 전쟁 전에 부모를 따라 월북, 북한의 유명 영화배우가 되었다. 金正日은 1971년 成蕙琳과 사이에 장남 金正男을 얻었다. 성혜림은 작년 5월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金正日의 두 번째 여자는 김영숙이다. 김영숙은 함경북도 안전국에서 전화 교환수로 일하다 노동당 조직국으로 자리를 옮겼고, 거기서 金正日을 만났다고 黃長燁(황장엽) 前 북한 노동당 비서가 말했다. 金正日과 김영숙 사이에는 아들이 없고 설송이라는 딸이 하나 있다. 김영숙은 金正日과 같은 집에 살고 있어 金正日의 본처로 알려져 있다.

金正日의 세 번째 여자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무용수 고영희다. 1953년생으로 올해 쉰이다. 고영희는 재일교포 北送사업이 시작된 1960년대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 만수대 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활약했다. 金正日은 고영희와 사이에 김정철이라는 아들과 그보다 두 살 어린 성명미상의 아들을 얻었다. 고영희는 金正日의 본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다.

金正日의 소생은 3남 5녀로 알려져 있다. 장남 金正男이 서른 둘, 차남 김정철이 스물 둘이며, 김정철 밑에 두 살 터울인 남자 동생이 있다. 金正日 소생들은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유학중인데, 작년 9월 맏이인 金正男의 연락을 받고 카자흐스탄 공화국에 전부 모인 적이 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북한의 對중동 무기수출 창구이면서 북한에 소련제 미그-29기를 판매한 나라다. 金正男은 작년 11월 경호원 4명을 대동하고 마카오에 나타나 마카오 경찰을 긴장시켰다.


정일선의 빌라와 경호원의 빌라

金正日에게는 애첩이 하나 있다. 정일선이라는 여자로, 현재 마카오에 거주중이다. 정일선은 1975년생으로 올해 스물 여덟이다. 정일선의 존재는 미국 정보기관에서도 알고 있었다.

정일선은 1999년 1월 초, 북한인 3명과 함께 사내아이 손을 잡고 마카오에 입국했다. 사내아이 이름은 「한솔」인데 마카오 경찰은 金正日 소생으로 보고 있다.

한달 후, 마카오 경찰 특수수사대는 중국을 거쳐 마카오로 입국한 북한인 2명을 불심검문 과정에서 체포했다. 이들은 美貨 100만 달러를 소지하고 있었다. 조사 결과 이들이 소지한 美貨가 진짜인 것으로 판명나 마카오 경찰은 이들을 석방하고 돈도 돌려주었으나 북한인이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소지한 사실에 주목했다.

그 얼마 후, 마카오 콜로완 섬에 위치한 별장지대의 빌라 두 채를 북한인이 구입했다. 태평양과 면해 있는 이 별장지대는 중국과 홍콩, 마카오 갑부들이 거주하는 고급 휴양지다. 빌라 한 채 가격이 홍콩 달러로 최하 400만 달러(한국 돈 6억원)였다.

북한인이 구입한 두 채의 빌라 중 한 채에 살고 있는 사람이 金正日의 애첩 정일선이고 그 옆 빌라는 경호원 숙소라고 마카오 경찰의 관계자가 말했다.

정일선이 살고 있는 빌라는 마카오 본토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입구는 산 정상에 있는데, 경비초소와 차량 차단막이 설치돼 있으며, 곤봉과 총(권총인지 가스총인지는 불명)을 찬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입구를 지나 바닷가로 내려가는 내리막 길을 따라가자 수십 채의 빌라로 이뤄진 별장이 나타났다. 습기가 많고 무더운 마카오 시내와 비교할 때 공기부터가 달랐다. 제주도 관광지 중문 지역을 연상케 했다.

정일선이 사는 빌라는 1층은 車庫이고, 2층과 3층이 가정집이었다. 규모는 100평쯤 돼 보였다. 찾아간 날이 일요일(지난 3월2일) 오후 4시쯤인데 한 사람이 차고 문을 열어 놓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 일대의 빌라들은 각각 독립된 형태이나 정일선과 경호원이 거주하는 빌라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두 빌라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연결해 놓았다. 통로를 만든 것은 경호의 일환이라고 마카오 경찰은 추정했다.

빌라를 사러 온 사람처럼 위장하고 들어간 기자가 슬그머니 카메라를 꺼내 정일선이 사는 빌라쪽을 향해 사진을 찍자, 어디서 감시하고 있었는지 금방 경비원이 달려왔다. 그는 기자에게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라고 경고했다. 약간의 옥신각신이 벌어지자, 열려 있던 정일선 거주 빌라의 차고 문이 닫혀 버렸다. 바깥에서 벌어진 수상한 낌새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듯했다.

정일선의 경호 책임자는 김승복이다. 김승복은 북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1946년생이며, 朝光貿易·다엑심商社·명기公司 등 3개 업체의 주재원 신분으로 가족과 함께 마카오에 나와 있다. 다엑심商社는 39호실 직속의 무역회사인 대성총국의 마카오 지사다.

마카오에는 金正日과 그 가족들의 생필품 구입 전담자도 나와 있다고 한다. 이처럼 金正日 본인과 그 가족들의 호화 생활 유지비와 金正日 자녀들의 해외 교육비, 金正日 애첩을 위한 생활비 등에 金正日 비자금은 사용되고 있다.


곰 발바닥 요리

金大中 정권이 정몽헌의 現代와 공모하여 비자금을 조성, 송금한 돈이 이런 호화판 생활에 쓰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金正日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은 그의 처조카 李韓永씨 증언과 재작년에 열차를 이용한 모스크바 방문시 全 세계에 공개된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 때 경제계 인사로 北에 갔던 全經聯 前 부회장 孫炳斗씨는 金正日 주최 만찬장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대략 열 가지 종류의 음식이 나왔는데, 두 가지는 나도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습니다. 하나는 곰 발바닥 요리입니다. 곰 발바닥의 뼈와 뼈 사이에 푹 곤 고기가 붙어 있는데, 소 꼬리곰탕 비슷하게 생긴 요리였어요. 살들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게 맛이 기가 막힙디다. 제 옆자리에는 평양방어사령관(박기서 차수)이 앉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당신도 처음 먹어보는 요리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金正日 주최 연회에서 여러 번 먹었다면서 나보고 많이 먹으라고 권하더군요.

두 번째는 후식으로 나온 과일에 놀랐습니다. 큰 멜론을 반으로 잘라서 속의 과실은 들어 내고 거기에 여러 가지 과일을 채워 놓았는데 일류 호텔에서도 구경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었습니다』

金正日이 즐겨 먹는 곰 발바닥 요리는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밀렵한 남방 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에서의 곰 사냥은 불법이다. 金大中 前 대통령도 야당 총재 시절, 서울 신라호텔에 특별 주문해 곰 발바닥 요리를 시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지노 황제 스탠리 호는 親北 인사

金日成 사망 이후 북한에 餓死者(아사자)가 속출했을 때 金正日은 측근에게 『목숨을 걸고 공화국을 지지할 국민이 300만 명만 있으면 우리 공화국은 건재할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개혁·개방을 거부하며 북한 주민 300만명을 사실상 굶겨죽인 金正日에게 2200만 북한 주민은 안중에도 없는 존재다.

43억 달러로 추정되는 金正日의 해외 비자금은 영국의 런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스위스, 일본 등지에서 조성, 관리되고 있는데 그 한 축이 마카오 朝光貿易이다.

朝光貿易은 카지노 왕국이라는 마카오를 끼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도박장에서의 換錢(환전)은 은행보다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밀수 대금이나 위조지폐의 돈 세탁장으론 최고다.

마카오에는 총 11개의 카지노場이 있다. 이들 카지노의 소유주는 마카오 내 관광·오락기업 그룹의 총수 「스탠리 호(Stanley Ho)」이다. 그는 1962년 이후 마카오 전역의 카지노 운영권을 독점했다. 그가 카지노 수입에 따른 세금으로 마카오 정부에 낸 돈이 1996년 기준으로 美貨 6억4000만 달러(한국 돈 5440억원)였다. 마카오 정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스탠리 호는 「미스터 마카오」 혹은 「카지노 황제」로 불린다. 그는 홍콩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다. 올해 여든이며, 홍콩과 마카오에서 번갈아 거주한다.

스탠리 호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親北 인사다. 기자가 마카오에 출장간 지난 3월2일, 홍콩의 영어 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북한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북한 내 산악지대에 망명처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마카오 카지노 재벌인 스탠리 호를 통해 이라크에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스탠리 호는 『북한 관리들이 전쟁을 막을 기회는 여전히 존재하며 사담 후세인이 美·英 군의 공습 시작 2일 전에 물러나 민주선거를 요구할 수 있다. 민주선거는 미국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지 않은 인물들만이 나와 치르는 선거여야 하며 만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인물이 있을 경우, 그는 저격받아 사망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金正日의 대리 도박

스탠리 호는 1999년 홍콩 달러 2억3300만 달러(한국 돈 370억원)를 투자, 평양 양각도 호텔에 카지노場을 개장했다. 북한이 한 외국인에게 카지노 영업 허가권을 주었다는 것은 그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는 반증이다.

金正日은 도박狂으로 알려져 있다. 10여년 전 안기부는 희한한 감청을 했다. 한 관계자의 증언.

『한번은 안기부에서 감청한 金正日의 국제 전화 내용을 보고받았습니다. 보고서에 보니까 평양의 金正日이 마카오 카지노場에 있는 부하에게 전화로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마카오의 부하가 도박판 상황을 전화로 설명하면 金正日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겁니다. 실질적으로는 金正日 본인이 도박을 하는 셈이지요. 도박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전화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1999년 초, 스탠리 호가 카지노 계약을 하기 위해 평양에 갈 때, 朝光貿易 총매니저 朴紫炳과 朝光貿易 총대표 한명철, 그리고 고려항공사 마카오 지사장 최창도가 동행했다. 이들의 평양行엔 스탠리 호의 전용 비행기가 이용됐다.

평양 카지노場은 1999년 10월1일 개장했다. 개장식에서는 스탠리 호와 마카오 주재 북한 명예영사 黃成華(황성화·마카오人)가 테이프 커팅을 했으며, 마카오 사법경찰청장 등 檢·警 간부와 유지들이 참석했다. 고려항공사 마카오 지사에서는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美貨 5만 달러 이상 소지자에게는 무료 항공권 및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마카오 카지노와 북한 카지노는 자매 결연이 되어 있다. 마카오人이나 홍콩, 중국인은 평양에서 카지노를 할 경우, 마카오 카지노에서 보증해 준다는 계약에 따라 현금을 갖고 가지 않아도 된다. 평양과 마카오간에는 카지노를 통한 돈 세탁과 돈 빼돌리기가 그만큼 자유롭다는 의미다.

북한이 1997년 마카오 주재 북한 명예영사로 위촉한 黃成華 역시 카지노 巨富다. 그는 마카오 내 일부 카지노의 운영권을 갖고 있다. 朝光貿易이 「검은 돈」을 세탁하거나 평양으로 운반할 때 黃成華를 이용하는 것은 마카오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현대상선은 朝光貿易에 마지막 1억 달러를 송금할 때 외환은행을 이용했다. 외환은행 홍콩지점은 이 1억 달러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송금이 이뤄진 2000년 6월 무렵 홍콩 지점에 근무했던 직원들은 수사를 의식해서인지 거의가 전출되고 남아 있지 않았다.

현대상선이 홍콩의 중국은행에 개설된 朴紫炳 관련 계좌에 송금한 1억 달러의 처리에 대해 마카오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억 달러를 현금으로 찾으면 부피가 엄청납니다. 북한은 이 1억 달러를 홍콩에서 수표로 찾은 다음, 마카오로 갖고 와 마카오 카지노장에서 현금화했을 것입니다. 마카오에도 중국은행이 나와 있지만, 마카오에서 1억 달러란 거액을 인출할 경우 경찰에서 주시하기 때문에 全세계 자금의 약 3분의 1이 몰려 있는 국제 금융 중심지 홍콩을 이용한 것입니다.

마카오 카지노에서 움직이는 돈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못지 않습니다. 워낙 큰 돈이 움직이기 때문에 1억 달러를 마카오 카지노에서 현금화하는 데는 넉넉잡고 1주일이면 족합니다. 카지노場에 가면 현금과 다름없는 칩을 사고파는 중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수표로 이 칩을 구입한 후 카지노 내의 환전소에서 현금으로 바꾸면 자금 추적도 힘듭니다. 이렇게 해서 현금화한 달러는 마카오 국제공항에 부정기적으로 기항하는 고려민항을 통해 金正日 秘資金 관리부서인 39호실에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카오 카지노場에 들어가다

지난 3월2일(일요일) 밤 10시경, 마카오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리스보아 호텔 카지노場에 가보았다. 지하 1층에서 4층까지 카지노場이 설치돼 있는데, 사람들이 엄청나 걷는 게 아니라 밀려 다녔다. 각 층마다 설치된 슬롯머신 기계 앞에는 빈 곳이 없었다. 층마다 수십 개의 환전소가 설치돼 있었고, 신용카드 대출도 이뤄졌다.

바카라, 블랙 잭, 룰렛은 기본이고 주사위 3개를 던져 그 합계로 大小를 가리는 중국식 게임도 있었다. 마카오 카지노場을 처음 방문한 기자 눈에는 사람 수가 많은 것만 보일 뿐 움직이는 돈의 액수는 가늠할 수 없었다.


기본 베팅이 7500만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담배를 꺼내는데 옆에 있던 점퍼 차림의 남자가 한국말로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기자가 한국産 담배를 꺼내기에 한국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가끔 머리를 식히려고 마카오 카지노場을 찾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오가는 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보자 그는 기자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는 2층의 한 바카라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기자를 데리고 갔다. 10명 가량이 칩을 쌓아 놓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칩 하나의 최소 금액이 홍콩 달러로 1만 달러(한국 돈으로 157만원)였다. 6만 달러짜리 칩도 있었다. 바카라는 쉽게 설명해, 받은 카드의 합계가 9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넥타이도 매지 않고, 복장도 허수룩한 사람들인데 1만 달러짜리 칩 50개를 베팅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한국 돈으로 7500만원이다. 게임 한 번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 되지 않았다. 만약 10명이 게임에 임한다면 5분 만에 7억5000만원이 움직이는 셈이다.

베팅 액수에 기자가 놀라워하자 그는 『여기서는 1억원이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다시 한번 카지노場을 둘러보았더니 그런 판이 수십 군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보다 더 큰 액수의 도박이 벌어지는 곳은 밖에서 벨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VIP 룸」도 있었다.

기자는 카지노의 본토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인디언 보호구역 페창가 지역에 설치된 카지노場에는 가 본 적이 있는데 바카라 게임에서 이토록 큰 금액이 움직이는 것은 보지 못했다. 1억 달러를 흔적 없이 1주일 안에 세탁할 수 있다는 마카오 경찰의 말이 실감났다.


짐 검색하지 않는 마카오 공항

홍콩 서북쪽 40마일 해상에 위치한 두 개의 섬으로 이뤄진 마카오는 출입국이 자유로운 나라다. 포르투갈領이었다가 1999년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중국의 통치를 받지 않으며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 마카오의 크기는 서울 여의도의 4배 반, 제주도의 10분의 1이다.

홍콩과 마카오 간에는 고속 페리가 24시간 운항하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홍콩에서 마카오에 가려면 홍콩 출국심사대를 통과해야 하고, 마카오에 내리면 마카오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야 하지만 몸 수색이나 짐 검색은 일체 없었다. 엑스레이 투시기도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출입국 신고서만 작성하면 된다. 수백만 달러를 현금으로 갖고 가든, 수표로 갖고 가든 체크하는 곳이 없다.

마카오 공항은 동남아 지역의 국제선이 취항하는 국제공항이지만 한국 김해공항보다도 협소했다. 공항 건물은 2층이며 활주로는 하나였다. 청사 2층에는 항공사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으며, 출국과 입국 수속은 1층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있지만 짐을 검색하는 엑스레이 투시기는 보이지 않았고, 공항 직원들은 승객들의 짐을 검색하지도 않았다. 짐 속에 무엇을 넣더라도 들킬 염려가 없었다.

북한의 고려민항은 1996년 9월16일부터 마카오 취항을 시작했다. 고려민항은 평양~마카오~방콕을 운항한다. 고려항공사 사무실은 2층에 있으나 기자가 찾아간 3월2일에는 사무실 문이 잠겨 있었다. 고려민항이 비정기적으로 운항하는 탓이었다.

고려항공사 직원은 북한인 3명과 마카오 현지인 1명 등 모두 4명이다. 지사장 최창도(1952년生), 공항소장 신현택(1950년生), 영업담당 김심철(1961년生은) 모두 북한 官用 여권 소지자다. 마카오 경찰은 이들이 인민무력부 소속 군인이라고 했다.


북한 동포를 위해 한 푼이라도 썼더라면…

현대상선의 돈이 건너간 마카오에 現代그룹의 깃발은 휘날리고 있었다. 현대건설이 2년 전인 2001년 3월 마카오에 진출, 화력발전소와 마카오의 명물 마카오 타워를 지었다. 마카오 타워 공사는 작년 12월에 끝났고, 화력발전소는 올해 3월 말이면 끝난다.

마카오 현지에서 만난 현대건설의 한 간부는 『화력발전소는 9500만 달러에 수주했고, 마카오 타워는 중국과 합자해서 건설했는데 1년 예정의 공사에 2년이 걸렸기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마카오 진출과 현대상선의 朝光貿易 송금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요일 오전 10시인데도 근무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고, 무역업무와 관련된 비품이 하나도 없는, 어두컴컴한 對南 테러기지 앞에서 공포감을 체험하고 새벽 0시에 홍콩발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 기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기자는 취재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金大中 정부가 직접이든 아니면 現代를 통해 간접적으로 건넸든, 북한에 보낸 달러가 북한 주민들을 위해 한 푼도 사용되지 않았음은 마카오 현지에서 확인했다. 金正日 개인의 호주머니만 더 불룩하게 만들고 對南 공작 사업비만 보태준 꼴이 되고 말았다. 金大中 前 대통령의 지난 5년간 행위는 민족 반역이다.

이 민족 반역행위로 인해 다 죽어가던 金正日은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게 되었고, 한국에 진출한 외국 투자자들을 동요시켜 한국 경제에 최악의 불황을 가져 왔다. 한국 경제를 살리는 길은 국내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며, 북한을 무력화시키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적인 협조 아래 金正日의 해외 秘資金을 동결하고 무기, 마약 등의 밀무역 루트를 봉쇄할 때 북한은 무너질 것이다. 맨먼저 할 것은 金正日 비자금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다. 북한에 준 5억 달러의 사용처를 밝히라는 국민적 요구는 이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호화 방탕한 金正日의 실체가 밝혀질 때, 金正日이 북한 주민을 비롯한 全세계의 지탄을 받을 때 북한의 미래가 새롭게 열릴 것이다>●

--------------------------------------------

추적:39호실을 죽이면 김정일도 죽는다
(월간조선 2006년 1월호)

조갑제

미국의 북한 39호실(김정일 비자금 조성 관리본부) 파괴 공작 내막. 오랜만에 미국은 김정일의 급소를 누르기 시작했다



마카오의 예금인출사태


미국의 재무부, CIA, FBI, 출입국관리소, 대통령 경호실 등 10여개 정보수사기관이 지난 3년간 영국 일본 정보기관과 협력하여 주로 마카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북한정권의 범죄자금 흐름을 조사한 결과 그중 약4600만 달러규모의 계좌를 확인했다고 한다.
지난 9월15일 미국 재무부가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에 대한 외환거래 금지 조치를 내리자 이틀간 약3750만 달러의 예금 인출사태가 일어났다. 이 인출액은 총예금고의 약10%였다. 자산규모가 크지 않은 방코 델타 은행은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마카오 특별행정청장까지 나서서 예금주들을 안심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행정장관 에드먼드 호는 “방코 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마카오 금융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고 했다. 마카오 행정정관 에드먼드 호는 카지노왕인 스탠리 호 및 방코은행의 母회사 오너인 스탠리 아우와 함께 마카오를 사실상 지배해왔던 부호였다.
방코 은행은 처음엔 미국의 조치를 비웃다가 예금인출사태를 만나자 自救策으로 미국측에 의해 위조지폐 유통, 대량살상무기 개발, 마약거래에 관련되었다고 지적된 15개 북한측 계좌의 입출금을 동결해버렸다. 북한측은 20여명의 중앙당 39호실 요원들을 이 은행으로 급파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북한 계좌의 실제 예금주라면서 돈을 인출하려고 했다. 15개 계좌중 11개는 借名(차명)계좌이고 4개는 실명이었다. 방코 은행측은 11개 차명계좌에 대해서 까다로운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평양에서 급히 날아온 요원들은 “돈을 다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라는 특명을 받고 왔다는 것이다.
미국은 원래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은행(Bank of China)과 두 마카오 은행을 북한의 범죄자금 관리대상으로 보고 조사를 했으나 방코 은행만 골라내 규제를 가했다. 중국은행을 치지 않은 것은 중국정부의 내밀한 협조를 약속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강하다. 중국은행은 미국에서 新株를 모집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때 미국 재무부가 방코 은행처럼 중국은행을 거래금지 은행으로 지정해버리면 新株 모집은 고사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미국측은, 중국은행이 북한의 범죄자금 계좌를 폐쇄하는 등 성의를 보이겠다고 약속하자 덮어주기로 했을 것이란 해석이 강하다. 앞으로 중국은행의 엄호 없이는 김정일의 비자금을 해외에서 관리하는 대성은행이나 금별은행의 외환거래가 어렵게 될 것이다.


12월19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마카오내 북한의 사실상 대표부인 조광무역이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마카오 치안경찰국 교통청 맞은 편 주상복합 건물에 위치해 있던 조광무역은 최근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며 이에 따라 북한 직원들의 왕래도 중단되고 조광무역 간판도 철거된 사실이 19일 확인됐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마카오의 한 소식통이 “마카오 은행이 북한의 불법 자금운용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미국 당국의 발표를 전후해 조광무역이 마카오에서 인접한 중국 주하이(珠海)로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조광무역 뿐 아니라 상당수 북한 기업들이 마카오에서 기업활동이 어렵게 되자 사무실 본부를 중국 등으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그동안 마카오에 10여개의 기업을 두고 활동을 벌여왔으나 주요 거래은행인 방코 델타 아시아(匯業銀行)가 대북 거래를 중단한 이후 현재 3∼4개의 기업만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盧 대통령이 부시에게 선처 부탁?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장하는 북한노동당의 39호실 직할 은행으로서는 대성은행과 비엔나에 있는 금별은행이 알려져 있다. 이 두 은행은 국제금융계에서는 신용이 낮아 자체적인 외환거래가 어렵다. 따라서 중국 국책은행인 뱅크 오브 차이나, 즉 중국은행의 보증과 지원하에서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행이 그런 엄호를 포기하면 북한은 비자금 조성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무역과 외환거래에도 큰 타격을 받는다.
한국정부측은 미국정부에 대해서 “왜 對北금융제재를 할 때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미국 수사정보기관은 한국에 금융제제 계획을 통보해주면 이 정보가 북한측에 넘어가 계좌가 폐쇄되기 전에 돈을 찾아가버릴 가능성을 염려했다고 한다. 북한정권의 마약밀매, 외조달러유통 등에 대한 수사에서도 미국은 한국 국정원과 거의 협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이런 우려는 근거가 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1월에 경주에서 열린 韓美정상회담 때 마카오 은행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제건은 당초 議題로 잡히지 않았었다고 한다. 외무부와 청와대 실무자들도 부시 대통령에게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답이 뻔할 뿐 아니라 두 나라 관계를 오히려 서먹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하여 의제에서 빼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김정일 비자금 조사와 거래은행에 대한 제재조치가 부시 대통령의 특명으로 이뤄진 사안이란 점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정상회담에서 盧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의 조치가 북경 6자회담에 장애가 된다면서 선처를 요청했다고 전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것은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므로 6자회담과는 관계가 없다”고 잘랐다는 것이다.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부시 대통령은 盧 대통령을 향하여 “만약 북한이 한국의 지폐를 위조해서 유통시킨다면 한국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정색을 하고 물었다고 한다.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 전한다. 盧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鄭東泳 통일부장관을 불러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북한측에 통보해주도록 지시했다는 미확인 첩보도 나돌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대통령이 反국가단체의 국제범죄에 대해서 동맹국의 대통령을 설득하는 변호사역을 자임한 꼴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對北금융제재 건을 놓고서는 북한측과 일절 협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측이 6자회담 대표 김계관을 워싱턴으로 보내겠다고 했을 때도 미국정부는 “와도 협상은 없다. 다만 설명은 해줄 수 있다. 6자회담과 연계된 토의는 할 수 없다”는 요지의 통보를 했고 북한은 김계관 파견을 포기했다.

“우리 목표는 북한이 세계금융기관을 이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

지난 12월6일 미 국무부의 테러와 금융범죄 담당 재무차관 스투어트 레비는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은 위조달러를 유통시키고 비자금을 세탁하는 일에 북한과 자진해서 동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부서의 목표는 북한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하여 미국과 세계의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부시 대통령의 특별명령에 따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하여 8개 북한회사와 미국시민의 거래를 금지시키고 이 회사들이 미국 주권이 미치는 지역내에 가지고 있을지 모를 자산을 압류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관계했다는 북한의 8개 회사는 해성무역, 도성기술무역, 조선복합장치수입회사, 조선국제화학합작회사, 광성무역, 조선부강무역, 조선용왕무역, 조선용하기계합작회사이다.
미국의 고관이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국제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한 것은, “우리는 너희들의 돈줄을 끊어 말라죽이겠다”는 뜻으로 평양에 전해졌을 것이다. 이 세계화 시대에서 아무리 북한이 폐쇄되어 있다고 해도 국제금융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그런 체제가 움직일 수 있겠는가.
미 국무부의 동아시아 태평양 문제 자문관인 데이비드 에셔씨는 이번 북한조사에 참여했던 이로 보이는데 지난 11월15일 발표한 심층 보고서(全文은 http://www.nautilus.org/fora/security/0592Asher.html에 수록)에서 북한정권이 전체 수출액의 약40%를 국제범죄로 벌고 있다고 추산했다. 그는 범죄로 인한 수익률은 약500%나 되기 때문에 실제 외화가득률은 40%를 훨씬 웃돌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김정일이 10억 달러 이상을 마약밀매, 위조달러 등으로 번다는 이야기이다. 본질적으로 국제 마피아 조직이란 뜻이다.
애셔씨는 범죄로 벌어들인 39호실의 김정일 비자금이 先軍정치로 불리는 사실상의 계엄령통치를 뒷받침하고, 핵무기 개발을 가능하게 하며, 개혁개방 없이도 생존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일의 ‘범죄무역’ 통로를 틀어막아야 개방으로 갈 동기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북한내 시장에서 외국제 상품이 넘쳐나고 있고 지배층 인사들의 생활이 향상된 것은 국제범죄로 벌어들인 돈 덕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2003년 4월 호주당국이 나포한 북한 헤로인 밀수선 봉수호에서 1억5000만 달러에 상당하는 헤로인을 압수한 것은 우연한 것도, 단편적인 것도 아닌 범죄국가 북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선박은 북한노동당 소유이고 당비서가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40센트 들여 100달러짜리 위조

그는 북한은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마약을 만든 다음 주로 중국계 범죄조직을 통해서 5대양6대륙에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1998-2002년에 일본에서 압수한 北韓産 필로폰은 약1500킬로그램이었다. 이는 전체 압수량의 약35%였으며 거리의 밀매가격으로는 약3억 달러어치였다. 북한산 필로폰은 순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북한은 이 필로폰을 중국과 일본에 내다 팔기 때문에 적어도 이 부분에선 中日이 공동피해자가 되고 있다.
애셔씨는 “북한은 이 지구상에서 범죄를 경제 및 외교전략의 하나로 구사하는 유일한 국가이다”고 규정했다. 그는 북한정권이 지휘하는 위조달러 제조 및 유통은 ‘경제적 선전포고’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대통령 경호실은 재무부 소속인데 이번 북한범죄수사에 참여했다. 경호실 전문가들은 북한의 100달러짜리 위폐 한 장을 만드는 原價가 40센트밖에 되지 않는 데 놀랐다고 한다. 미국 수사관들이 ‘슈퍼노트’ 또는 ‘슈퍼달러’라고 부르는 北韓産 100달러짜리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게 인쇄되어 있다. 아일랜드의 테러단체 IRA의 당수도 북한측과 공모하여 위조달러를 유통시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애셔씨는 “국가가 위조달러를 제조한 것은 히틀러 이후 처음이다”고 말했는데 미국 공무원들은 이 구절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아마도 애셔씨의 보고서가 미국 공무원 사회에서 필독서가 된 듯하다.
북한정권이 최근 나진과 남포항을 통해서 컨테이너에 실어 내보내고 있는 가짜 양담배는 40피트짜리 컨테이너 한 개에 약400만 달러어치가 들어가는데 그 원가는 7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애셔씨는 폭로했다.
1995년에 대만 당국은 20개 컨테이너에 꽉 찬 양담배 포장지를 압수했는데 北韓行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포장지로써 가짜 담배를 만든다면 판매가격 기준으로 10억 달러를 벌 수 있다고 계산했다. 애셔씨는 또 북한 외교관들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의 상아와 코뿔소의 뿔을 밀매하다가 체포된 사례도 소개했다. 1980년대부터 북한 외교관들은 이 짓을 해왔는데, 상아가 압수된 사건만 봐도 1999년 케냐에서 690킬로그램, 1999년 모스크바에서 537킬로그램, 1998년 프랑스에서 576킬로그램이다.
미국 재무부가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을 금융거래 금지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발표한 문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방코은행과 10년 이상 거래했던 한 북한위장회사는 위조지폐를 유통시켰고, 국제마약거래에 관련되어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방코은행은 또 다른 북한위장회사를 위해서 범죄자금을 電送해주었다>
여기서 지적한 북한의 위장회사는 마카오에 있는 조광무역상사와 대성은행이다. 2000년 6월 金大中 정권은 鄭夢憲의 현대그룹과 공모하여 정상회담의 代價로서 4억5000만 달러를 이 두 회사 등의 비밀계좌로 송금했다. 김정일 정권의 국제범죄에 간접적으로 공모한 셈이니 역적질을 한 것이다.
애셔씨는 북한의 동해안 항구 나진과 서해안 항구 남포에서 실려나오는 컨테이너가 중국과 한국항구를 거쳐 세계로 나가는데 이 두 나라에서는 충분한 검사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항구에서의 검사도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산 대량살상무기가 이런 허술한 점검체계를 틈타 미국에 상륙할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다. 그는 북한 항구로부터 나오는 모든 선박과 컨테이너는 첫 기항지에서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도록 하는 국제협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스위스 은행의 김정일 비자금도 동결될까?

김대중 정권과 정몽헌의 현대그룹이 불법송금한 4억5000만 달러를 국정원이 입금한 곳은 중국은행의 마카오 지점에 있는 북한 대성은행 계좌와 홍콩 및 싱가포르의 김정일 비자금 계좌였다. 대성은행은 북한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총국이 관리하는 은행이다.
39호실 직할 은행으로서는 대성은행과 비엔나에 있는 금별은행이 유명하다. 이 두 은행은 국제금융계에서는 신용이 낮아 자체적인 외환거래가 어렵다. 따라서 중국 국책은행인 뱅크 오브 차이나, 즉 중국은행의 보증과 지원하에서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미국이 대성은행 등 북한 39호실 계열 은행과 거래하는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과 미국 금융기관 사이의 외환거래를 애국법에 따라 금지시켰기 때문에 그 파장이 국제금융계에 미치고 결국은 북한정권의 국제범죄를 매개로 한 비자금 조성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무역 외환거래에도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특히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한 추정 약50억 달러의 비자금이 앞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김정일의 돈줄은 더욱 경색될 것이다. 검은 돈의 안식처라는 악명을 샀던 스위스 은행은 수년 전 국제범죄에 의해 조성된 돈임이 확인되면 예금을 동결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었다. 미국측의 수사가 깊게 들어가면 스위스 은행 돈과 북한의 국제범죄 행위 사이의 관련성이 입증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여론의 악화와 맞물리면 스위스 은행 예치 김정일 비자금 동결이란 사태도 예상된다. 이것은 김정일 정권의 통치자금을 말리는 것으로서 정권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의 비자금, 즉 국제범죄자금이 3대 거점으로 삼았던 스위스, 비엔나, 마카오 가운데 마카오가 무너졌다. 이 영향이 나머지 두 곳으로 파급될 것이다.
북한정권은 1995년에서 2004년 사이 2400만 달러어치의 스위스製 시계를 수입했다고 스위스 시계공업협회가 밝혔다. 그 돈으로 식량을 사야 할 시기에 김정일은 노동당 간부와 군대 지휘관들에 대한 선물용으로 이런 짓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는 2002년 가을에 프랑스 보르도의 코냑지방을 여행하면서 양주 공장을 구경했다. 한 병에 2000 달러 하는 ‘타임레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자가 김정일이었다.

39호실의 내막

3년 전 北 중앙당 39호실 공작원 출신 김동훈은 시사잡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39호실의 돈줄을 끊으면 김정일을 죽일 수 있다. 39호실 없이는 김정일이 북한의 지도자로 기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출신으로서 39호실을 오래 연구해온 이명산(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39호실은 형식적으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재정경리부 산하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김정일이 직접 조직을 장악하고 운영한다. 당이나 내각이나 국가 어느 기관에서도 손을 못 대는 성역으로 아무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김일성 생존시 일부에서, 특히 국가계획위원회와 경제관계부처에서 "나라살림이 이렇게 힘든데 국내자금이 39호실에 너무 쏠리고 있다"고 불평을 했으나, 김일성은 "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해선 인민이 이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면서 일축한 일이 있다.
북한에서 가장 큰 지출은 전쟁준비와 군비력 유지를 위한 지출이고, 다음은 제2경제위원회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쓰는 돈이고, 세번째는 남한을 파괴하기 위한 對南공작비이며, 네번째가 인민경제를 위한 국가운영비라고 하는데, 39호실이 제2경제위원회와 對南공작활동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39호실은 우선 대성은행에 비밀구좌를 갖고 있고, 스위스 은행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금별은행과 금별은행을 통하여 마카오, 홍콩, 독일, 일본, 영국 등 세계 유력은행에 자금을 분산 보유하고 있다. 1997년 현재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에 약 46억 달러를 갖고 있다고 어느 고위급 탈북자가 진술을 했으며 그것은 김정일이 운영하는 39호실 비자금의 일부라고 했다.
39호실은 대성총국을 운영하며 산하 120여개의 무역회사를 통하여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대성총국이 너무 설치는 바람에 내각 산하 무역성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한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 내 17개 금광이 39호실에 속해있고 年間 약12톤의 순도가 높은 순금을 생산하여 해외에 밀수한다. 금 수출은 주로 마카오에 있는 조광무역상사가 처리하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국제 밀수군 들의 손에 넘겨준다.
북한의 모든 재외공관과 국내기관이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충성금, 정성품, 외화벌이" 등의 명목으로 김정일에게 바치는 뇌물이 39호실에 들어가며, 이를 위해서 외교관들은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추잡한 밀수를 하고 국내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민들이 추가노동으로 버섯재배 山菜채취 등으로 "위대한 장군님께" 바치는 충성금을 마련한다. 재외공관에 나가 있는 대사나 외교관들의 근무 功過는 39호실에 바치는 외화벌이 액수로 판정하는 경우가 많다.
비밀유지 때문에 인민군 보위사령부 소속 몇 개 연대 병력이 양강도 자강도 산간오지에서 생산하는 아편 (검은 금)과 코케인(백도라지)과 필로폰 등으로 버는 돈이 39호실에 들어간다. 1만7000 에이커에 달하는 농경지를 양귀비 재배지로 전환했고 연간 평균 약 50톤의 아편을 생산한다.
미국의회 조사국 (CRS)의 보고에 의하면 지난 30여 년간 북한의 외교관들은 면책특권이 부여된 외교행랑을 이용해 헤로인, 코케인, 필로폰, 아편 등을 밀수했고 15개국에서 최소한 35회 이상 마약밀매에 연루됐으며 1996년부터 드러난 북한의 "메타암페타민(필로폰)" 수출은 주로 일본 태국 필리핀을 종심으로 하는 아세아권을 겨냥한 것이다. 북한은 지금도 연간 10-15톤의 고품질 "메타암페타민"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상기 미국 의회조사국에 의하면 북한이 마약밀수로 버는 돈은 연간 약 1-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은 가장 정교한 위폐 기술을 갖고 있으며 미국의 조폐공사가 사용하고 있는 인쇄기와 비슷한 1,000만 달러 짜리 요판 인쇄기로 가짜 달러를 찍어낸다.
북한의 위조달러 유포가 최초로 적발된 곳은 1974년 칠레에서다. 그 후로 적어도 몽고, 독일, 러시아, 마카오, 홍콩 등 9개국에서 적발되었고, 한국정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연간 유포 액수는 약 1,5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39호실 비자금의 용도

이러한 범죄행위를 통하여 조성되는 39호실의 비자금은 과연 어떠한 목적에 사용될까. 중앙에서는 김정일 직속 비서실내에 두개의 전담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나는 권영록을 중심으로 하는 자금관리반이고 또 하나는 박용무를 중심으로 하는 물자조달반이다. 권영록은 주로 해외에 나돌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금별은행 주변에서 맴돈다.
그는 내각 총리에 호통을 칠 만큼 김정일의 막강한 측근이며 39호실 자금의 유통, 환전, 송금, 배정, 지출 등 자금운영의 총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자유분방한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고 김일성과 김정일 가족이 스위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러시아, 유고 등 해외에 체류할 때 사용하는 호화주택이나 비밀 아지트의 구입과 운영을 담당한다.
스위스 은행에 있는 39호실 비자금의 관리는 베른주재 북한대사가 책임을 지고 있다. 이와 같은 숨은 이해관계 때문에 스위스 정부는 눈에 띄게 스위스내에 체류하고 있는 김정일의 애첩이나 측근들을 보호하여 서방세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박용무를 중심으로 하는 물자조달반은 다엑심(Daexim)이란 회사를 운영하며 국내에 아미산 상사, 2월 은빛 달 상사 등 여러 개의 방계회사를 두고 있다. 이 회사는 로마, 파리, 코펜하겐, 프라하, 부다페스트, 브라티슬라바, 마카오 등 해외에 10여개의 지사와 상주요원들을 두고 김정일과 그의 가족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역할을 한다. 박용무는 북한의 외교여권 외에 브라질과 포르투갈 여권을 갖고 있다. 그는 일본과 미국은 물론 세계각지를 누비고 다니며 소위 ‘1호 물자’(김정일을 위한 물자)를 조달한다.
39호실의 비자금은 최우선 순위로 김일성 기념물 유지와 김일성과 김정일 가족의 호화생활 유지에 쓰이며 김정일의 숨겨둔 애첩에 대한 생활비도 물론 39호실 비자금에서 나간다. 그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은 거의 외제이며 심지어 그들의 애완동물까지도 프랑스 샴푸를 사용한다.
7, 8월 삼복중에도 김정일은 유럽각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는다. 그것을 녹지 않게 평양까지 보내는데 담당일꾼들은 목숨을 걸고, 북경에 있는 고려민항총국은 아이스크림 한통을 위해 특별 비행기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김정일의 소위 기쁨조 파티나 모든 유흥비도 물론 39호실 비자금에서 지출된다.
김정일의 체제유지비에 39호실 비자금이 사용된다. 주체사상과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작업에 관련된 모든 사업에, 중요한 국책 사업에, 선심용 사업에,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를 따르는 측근 관리에 쓰는 돈이 그 돈이다. 당의 정치국원급 이상 간부와 국방위원회 위원들과 기타 측근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하며 호화주택과 벤cm 두 대씩이 배정된다.
더 중요한 것은 대량살상무기개발과 對南공작활동의 자금원천이 39호실 비자금이란 사실이다. 남한정부와 현대가 제공하는 모든 돈은 39호실에 흡수된다. 금강산사업이나 개성공단사업에서 버는 돈이 39호실에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해외동포들이 북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고 생활보조비로 주고 온 돈이 그리고 남한의 기독교나 기타 종교단체들이 선교목적으로 제공하는 돈이 철저하게 39호실에 흡수된다.
미국은 이미 對北정책에서 북한 민주화와 인권문제를 가장 중요한 전략의 하나로 제기하고 있고 김정일의 범죄행위를 차단하기 위하여 39호실 파괴를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39호실과 관련된 북한의 해외자산 색출과 동결이 바로 그것이다>

김대중 정권과 관련된 정보 입수說

미국측이 이번에 마카오와 홍콩의 김정일 비자금 계좌를 뒤지는 과정에서 김대중 정권과 관련된 정보를 많이 확보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月刊朝鮮 2003년 12월호가 입수하여 보도한 對北불법송금사건 특검수사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현대그룹이 만든 4억5000만 달러를 국가정보원을 통해서 중국은행의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대성은행 계좌와 홍콩 싱가포르의 김정일 비밀계좌로 송금하도록 지휘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비자금 관리부서인 39호실 산하 대성은행의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내 계좌는 조광무역 대표 박자병이 운영책임자이다. 문제는 이들 은행과 북한측의 거래 내역이 미국의 수사대상이 되었고 미 재무부와 경호실 등이 상당한 금융거래 정보를 입수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대중 정권과 현대그룹이 과연 4억5000만 달러만 김정일 비자금으로 보냈는가, 이 돈이 어디에 쓰였는가, 對南공작비로 다시 내려왔는가, 남한 정권과 나눠먹은 부분은 없는가 등등의 의문에 대한 확증을 미국측이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리이다.
對北불법송금 特檢의 수사자료를 보면, 송금용 외화의 환전과 송금업무는 국정원이 全擔(전담)했다. 간첩을 잡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국정원이 간첩을 내려보내는 김정일의 對南공작기관 비밀계좌로 불법자금을 보냈다는 이 반역적 행위로 해서 국정원은 넋(魂)이 나간 조직이 되었다. 외경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국정원이 지금처럼 경멸의 대상이 된 것도 이 사건에 기인한다. 수사기록을 읽어본다.
<(金保鉉 국정원 3차장) 김윤규가 액수까지 부탁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다만 頂上회담 전에 보내야 한다고 다급하게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문(특검 박광빈 특검보) 임동원 원장은 당시 제5국장이었던 진술인으로부터 『현대 측으로부터 2억 불을 북한으로 보내려고 하는 과정에서 환전편의 제공요청이 왔었다』면서 자신에게 『실무부서에 가능여부를 하문해 달라』는 건의가 있었으며, 최규백 실장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보고와 함께 실무자의 연락처를 받아서 진술에게 건네준 기억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답(金保鉉) 임원장에게 2억 불이라고 보고를 했는지 기억이 없으나 위와 같이 보고를 하여 임원장으로부터 실무자인 김○○, 김△△의 전화번호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윤규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은 송금방법에 대하여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2000년 6월7일 (4000억원을) 대출받은 이후 6월8일 김윤규 사장을 따라 나가서 국정원 직원을 만났으나 별다른 이야기도 없어 얼굴 정도만 확인한 채 돌아갔고,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김윤규로부터 북한 측 돈자리(계좌번호)를 건네서, 국정원 직원을 만나서 자기앞 수표 2240억원을 건네주니까 국정원 직원이 송금을 마치고서 영수증을 건네주기에 가져온 것이 전부라고 한다> (특검 검사의 심문)
돈을 보낼 북한측 「돈자리(계좌번호)」는 2000년 5월23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 부두 기공식에 참석한 鄭夢憲 회장에게 직접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2000년 6월9일 북한 對南공작기구 대성은행의 계좌(중국은행 마카오 지점)로 송금되고,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조성한 2억5000만 달러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金正日의 비밀계좌로 송금됐다는 기술을 발견했다.
현대상선이 조성한 2억 달러 가운데 국정원 직원 김○○의 명의로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 계좌주 「DAESUNG BANK」로 송금한 4500만 달러가 실제 계좌주인 「DAESUNG BANK-2」와 일치하지 않아 송금처리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의 미국 및 현지 법인은 현대건설 런던지사가 팩스를 통해 알려준 영국 홍콩상하이 은행의 현대건설 명의 계좌로 2000년 6월9일 1억 달러를 송금했다. 현대건설은 같은 날 2000만 달러, 6월12일 8000만 달러 등 모두 1억 달러를 북한측 계좌로 송금했다.
현대건설이 조성한 1억500만 달러는 이승렬 현대건설 금융재경본부 금융재정담당 상무이사, 임종익 당시 현대건설 재무기획부장이 실무를 담당하여, 2000년 5월 말경 외환은행 홍콩 지점 등 10개 계좌를 이용하여 홍콩 및 싱가포르에 있는 金正日 비밀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특검조사에서 확인됐다.
金保鉉 당시 국정원 5국장은 북한에 넘어간 5억 달러의 금품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특검에서 밝혔다. 金大中 대통령은 林東源 국정원장으로부터 『頂上회담 합의의 대가로 정부가 지불하기로 한 1억 달러를 현대에 부담시키기로 했다』는 보고와 함께 對北송금의 실정법상의 문제점을 보고받고,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對北 송금을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직접 주는 것은 국민적 비판여론을 감내하기 어렵고 둘째 혹시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억불 정도를 주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서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金保鉉 진술>
<2000년 5월 초순경 현대가 부담하기로 하는 박지원 특사와 임동원 원장의 제안에 대해서 저도 동의를 하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렸는데 보고시 임동원 국정원장은 대통령께 정부가 부담해야 할 1억 불을 현대가 맡기로 했다고 보고를 드렸고, 보고를 받은 대통령께서는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고 하셨고, 그러면서 『정부가 떳떳하게 해야 하는데』라고 하시며, 서운해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李起浩 진술)
<문(특검 이병석 검사) 임동원 국정원장의 진술에 의하면, 진술인(박지원)과 이기호 수석이 현대의 북측에 5억 불 대가 지급에 대한 보고를 드리면서 5억 불 송금에 대한 실정법상의 문제점과 그에 반해서 현대 측이 취할 수 있는 이익 등에 대한 논의결과를 보고드리자, 보고를 받으신 대통령께서는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현대의 사업을 장기적으로 볼 때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사실상 묵인하는 쪽으로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사업의 대가로 5억 불을 지급키로 했다는 내용의 잠정 합의서가 작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셨지만 5억 불 지급에 대하여 승인하시는 그런 말씀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朴智元 진술)

盧 정권의 大選 전략, 차질 빚을지도


위의 기록은 역사가 김대중씨를 단죄하는 자료로 인용될 것이다. 이제 미국은 실로 오랜만에 김정일의 급소를 발견하고 압박을 시작했으며 반응은 예상외로 빨리 오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측까지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김정일의 국제범죄자금 문제로는 절대로 북한측과 타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일 공언한다. 이걸로 북한이 6자회담을 깨기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미국은 北核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회부하여 본격적인 對北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된다.
난처하게 된 것은 노무현 정권이다. 내년중에 김정일과 정상회담이란 것을 열어서 '연합제-연방제 통일단계의 시작'을 선언하여 불리해진 국내의 여론구조를 뒤엎으면서 제3기 좌파정권의 등장을 노려보려는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과 한국의 자유진영은 김정일의 비자금과 북한인권 문제라는 두 개의 압박수단을 갖게 되었다. 이 두 수단을 잘 배합하면 김정일 정권뿐 아니라 남한내 從金세력을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역시 돈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