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死海의 연안 길을 따라 남쪽으로 약 30분간 달리면 불끈 솟은 산이 나온다. 마사다(MASADA)이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2분의 1로 줄여놓은 것 같은 절벽과 계곡 풍경 속에서 마사다는 제주도의 일출봉처럼 솟아 있었다. 地上에서 높이가 약 300m 되는 천연의 요새. 신약 성경에도 나오는 헤롯王이 그 북쪽 절벽을 깎아 별장용 궁전을 지었다. 서기 66년 신앙의 자유를 위협당한 유태인들이 봉기를 일으켜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던 마사다를 탈취했다. 반란은 이스라엘 全域으로 번져나갔다.
서기 70년 로마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聖殿을 파괴함으로써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마사다 요새에서는 967명의 유태인들이 끝까지 버티었다. 서기 72년에 로마군은 실바 장군의 지휘하에 예루살렘에 주둔하던 제10군단 1만5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 마사다를 포위했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 기보니씨와 함께 케이블 카를 타고 마사다 요새로 올라갔다. 실바의 攻城軍이 흙으로 댐을 쌓아올려 서쪽으로 기어올라갔다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사다 요새는 500×300m모양의 타원형이다. 1960년代 초에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 출신인 야딘 장군(그는 死海文書 발굴도 지휘했다)의 지휘하에 발굴작업이 벌어졌다. 성벽, 수영장, 창고, 교회당, 저수조 같은 시설이 드러났다.
마사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반란군 960명(7명은 생존)이 집단자살로써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곳이기 때문이다. 유태인 반란군의 한 지휘자였던 조세푸스 플라비우스는 로마軍에 투항, '유태인의 전쟁'이라는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이 책에서 그는 마사다의 최후를 극적으로 묘사했다. 반란군 지휘자 엘라자르는 로마軍의 공격을 막을 수 없게 되자 반란군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연설했다는 것이다.
'이제 새벽이 오면 우리의 저항은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금 갖고 있다…우리의 손이 자유롭고 아직도 칼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우리의 적에 의해 노예가 되기 전에, 우리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유인으로서 이 세상을 떠나자'
이들의 자살을 입증할 수 있는 물증, 즉 960명의 유골은 1960年代의 발굴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나 유태인들은 마사다를 예루살렘의 대학살 박물관과 함께 聖地로 여긴다. 기갑부대 新兵훈련생은 수료식을 여기에서 하는데, 절벽길을 걸어서 올라와 구호를 외친다.
『마사다는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마사다에서 내려온 나는 기보니氏를 따라 死海연안의 한 호텔로 갔다. 기보니씨는 『내 장인이 휴가차 이 호텔에 투숙하고 계신다』면서 객실로 전화를 걸었다. 장인은 큰 버스회사의 경리책임자로 일한다는 것이었다.
기보니씨의 장인이 다가오더니 인사를 청하는데 두 팔이 모두 잘려나간 老人이었다. 그는 쇠손을 내밀었고 나는 차가운 금속을 잡고 악수를 했다. 1967년 6일전쟁 때 예비군이던 기보니씨의 장인은 소집돼 소령으로 복귀, 대대를 지휘했는데 요르단 전선에서 포격을 당해 부상했다고 한다. 그는 『전쟁에서는 모든 게 운이지. 내 직속 부하는 한 방에 날아가 버렸으니 그래도 나는 행운이었소』라고 쾌활하게 말했다. 기보니씨의 장모는 이스라엘 독립전쟁 때는 여성 戰士였다. 할머니가 된 그는 한때 총을 잡았던 손으로 커피를 타서 주는데 남편은 두 쇠손으로 그 커피 잔을 부둥켜 안듯이 받았다. 폭격기 조종사 출신 사위, 상이용사가 된 장인, 독립군이었던 장모 그 세 사람의 정답고 밝은 모습에서 기자는 이스라엘의 전쟁은 한국의 전쟁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전쟁은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것이었던 데 비해 한국의 전쟁은 강요된 것, 그래서 비극으로만 기억된다.
이스라엘 여행을 한 그해 한국 국방부에서 만든 6·25전쟁 포스터의 문구는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아픈 기억」이었다. 중학생 수준의 작문을 연상시키는 이 글에는 최소한의 국가관·역사관은커녕 투지도 의욕도 없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공산세력의 확장을 최초로 저지시킨 6·25의 의미를, 영광과 승리의 전쟁으로 해석하지는 못할망정 전쟁기피 풍조나 부채질하는 표현을 쓰고 앉아 있으니 우리 국군은 과연 내일이 있는 군대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스라엘 聖地 마사다 紀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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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11, 2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