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6월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조지 마셜 국무장관은 유명한 '마셜 플랜' 연설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유럽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미국이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당시 유럽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독일에선 얼어죽는 이들까지 생겼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공산당이 선거를 통하여 집권하는 일도 생기고, 소련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선 소련의 영향권에 든 공산당이 선거를 통하여 급성장하고 있었다.
조지 마셜 장관은 그해 3~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독일 점령 4大國 외무장관 회담을 통하여 소련이 이런 유럽에 대한 야욕을 품고서 혼란과 가난을 이용할 것이란 점을 간파하였다. 마셜 장관의 보고를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유럽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 정책을 승인하였다. 이에 따라 마셜 장관은 유명한 전략가 조지 케난에게 보고서를 쓰도록 시켰다. 마셜 플랜 연설문은 케난의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찰스 볼렌이 썼다.
마셜은 연설에서 소련을 포함한 모든 유럽국가들에 대하여 문을 열어놓겠다고 약속하였다. 단, 유럽 국가가 먼저 경제부흥 계획을 세우고 이의 실천을 주도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마셜은 "우리의 정책은 특정 나라나 이념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굶주림과 가난과 절망과 혼란을 없애려는 것이다. 이 정책의 목적은 세계 경제가 動力을 회복함으로써 자유로운 제도들이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고 요약하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 제안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마셜 플랜이 작동하게 되었다. 소련과 東歐 공산국들은 불참을 선언하였다. 1951년까지 미국은 127억 달러의 경제원조를 하였다. 영국이 33억 달러, 프랑스가 23억 달러, 독일이 14억 달러를 받았다. 원래 미국과 영국 등은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산업생산력을 박탈하고, 군대를 약화시키는 戰略을 세웠으나 마셜 플랜을 계기로 독일을 부흥시키는 방향으로 돌아선다. 독일의 경제부흥 없이는 유럽의 부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셜 플랜이 지속된 1948~1952년 사이 유럽의 産業생산력은 35%가 증가하고, 農業생산력은 戰前 수준을 회복하였으며 그 뒤 20년간 유럽은 역사상 最高의 경제성장을 기록하였다. 이것이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는 근본 조건이 되었다.
마셜 플랜은 무역장벽을 낮추는 데도 기여하였다. 오늘의 유럽연합(EU)은 마셜 플랜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發想된 면이 있다. 마셜 플랜에 의한 유럽의 협력과 부흥은 IMF 체제와 함께 세계의 자유무역화를 촉진하였다.
유럽의 경제부흥과 함께 유럽 집단 안보 체제의 구상도 영국과 프랑스 중심으로 진전되어 드디어 1949년 4월4일 북대서양 조약기구, 즉 NATO가 창설된다. 6.25 남침 이후엔 독일의 재무장이 허용되었다. 戰後 영국, 프랑스는 "미국은 끌어들이고, 소련은 밀어내고, 독일은 끌어내려야 한다"는 기본전략을 갖고 있었으나 독일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퇴임한 후 고향인 미조리주 인디펜던스로 돌아가 살았는데 자신을 찾아온 키신저 박사(당시 하버드 대학 교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독일 및 일본과 싸웠지만 이긴 후엔 두 나라를 민주화하고 경제부흥 시킨 뒤 우리 편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거대한 産業생산력을 가진 독일과 일본이 자유진영 편에 선 것이 東西 냉전에서 서방측이 이긴 큰 요인이었다. 그런 틀을 짠 이가 트루먼이었고 마셜 플랜이었다. 그렇다면 '트루먼 플랜'으로 불리어야 하는데 왜 '마셜 플랜'인가?
트루먼이 그렇게 불리도록 허용하였기에 부하가 상사의 功을 차지한 셈이다. 트루먼은 "公職者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先公後私의 모범을 대통령이 보인 셈이다.
부하의 功을 상사가 가로채지 않으면 부하들은 충성을 바친다. 트루먼 대통령은 대학교도 나오지 않은 이였지만 미국 역사상 최고의 엘리트들을 부하로 부렸다. 트루먼을 위해 일한 고위 공직자 중에서 퇴임 후 트루먼을 비판하는 글을 쓴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西洋에서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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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남침전쟁 때 맥아더는 功보다 過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功이 크긴 하지만 중공군 개입 움직임을 알고도 덮어버린 점, 1950년 10월말의 첫번째 중공군 기습을 '정찰활동' 정도로 과소평가하고 한 달 뒤 다시 진격하다가 대반격을 부른 점, 중공군 南進 개시 후 "중국 폭격, 원폭 사용 등 대규모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한국포기론을 건의한 점 등이다. 유엔군이 압도적 병력으로 개입하였으므로 인천상륙작전이 아니라도 北進은 기정사실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의 原爆 사용 건의를 거절하여 한반도의 통일을 막았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아래 글을 권한다.
<1950년 11월30일 워싱턴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중공군은 북한지역에서 총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유엔군은 남쪽으로 총퇴각중이었다. 트루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그러했던 것처럼 군사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무슨 조치라도 취할 것이다."
한 기자가 물었다. "원자폭탄의 사용까지 포함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무기를 다 포함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戰線 사령관이 무기의 사용권을 갖고 있습니다. 관례에 따라서."
이틀 뒤, 트루먼 대통령이 위임한대로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美 공군에 명령하여 다섯 개의 원자폭탄을 南進하는 중공군을 향해서 투하하도록 했다. 15만 명의 중공군과 공산군에 포로로 잡힌 수 미상의 미군과 한국군 병사가 죽었다. 중공군의 南進은 저지되었다.
유럽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가 자신들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데 대해서 분노했다. 직후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여야 했다. 6개월 전에 있었던 한국방어 유엔결의를 취소시키자는 제안에 동맹국들도 동조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소련은 모택동의 中共으로부터 원자폭탄을 사용하여 보복해달라는 압력을 받았다. 소련이 모택동의 요구를 거절하면 국제공산주의 사회에서 소련의 리더십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소련은 미국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48시간내에 한반도에서 모든 군사적 행동을 중지하든지 '가장 심각한 결과를 각오하라'는 것이었다. 12월4일 時限이 지났다. 두 대의 소련 폭격기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륙했다. 원시적이지만 작동가능한 원자폭탄을 싣고 있었다.
목표는 미군의 보급기지인 인천과 부산항이었다. 원폭이 투하되었다. 약30만 명이 죽었다. 보급기지의 기능은 사라졌다. 맥아더는 즉각 일본에 있던 미군 폭격편대에 대해서 블라디보스톡과 심양, 그리고 하르빈에 原爆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폭투하가 이뤄지자말자 일본에선 反美데모가 일어났다. 일본은 소련 폭격기의 행동반경 안에 들어 있었다. 영국, 베네룩스 3국, 프랑스는 NATO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소련은 西獨의 프랑크푸르트와 함부르크에 原爆을 투하했다.
물론 위의 글은 사실이 아니다. 트루먼 대통령의 기자회견만이 사실이다. 트루먼은 영국 정부 등의 항의를 받고 위의 기자회견 내용도 취소해야 했다. 그는 "한국에서 원자폭탄을 사용할 계획이 없다"고 공언했다.>
위의 글은 동서冷戰史를 다룬 미국 예일대학의 존 루이스 가디스 교수의 '冷戰-새로운 역사'에 실려 있다. 이 책은 냉전을 가장 권위 있게 정리한 名著로 꼽힌다. 미국이 한국전쟁 때 중공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하여 원자폭탄을 썼어야 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假想(가상)이다.
트루먼은 맥아더가 하자는 대로 하면 제3차 전쟁이 터진다고 생각하여 한반도에서 무승부 전략을 세웠다. 그 뒤 휴전선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어느 체제가 민족을 행복하게 만드느냐"라는 명제를 내건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전쟁에서 남한은 이기고 있으나 내부의 敵이 문제이다.
마셜 플랜 秘話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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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18, 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