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은행원, "對北송금 중 2억 달러는 핵개발 등에 배정"

김광진씨, '611 자금으로 이름지어 관리.'
*월간조선 2008년 3월호엔 필자가 쓴 金光進씨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탈북자 김광진씨는 북한대학원에서 쓴 석사논문과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본인은 북한 금융 분야에 종사하면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현장에서 체험하고 부딪힌 자료들을 토대로 논문을 작성하였다. 여러 은행들(동북아시아은행, 조선무역은행)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며, 외국은행들(ING, Singapore Branch., UOB, Ltd., Singapore)에서 수 차례의 연수도 받았다.

2000년부터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책임지고 북한 당국이 핵심적으로 추진한 닭공장 현대화, 대동강맥주공장 건설, 평양시 개보수공사 등 인민생활 개선, 경제복구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여 많은 혁명자금을 관리하고 집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1997년경부터 당 자금을 「혁명자금」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金光進씨의 석사 논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1997년경부터 당 자금을 혁명자금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김일성 생존시의 당 자금, 충성자금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것과 김정일의 권력승계 후 혁명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당시의 어려운 환경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동당 조직지도부(부부장·장성택)에 1억 달러의 현금이 할당되었으며 이는 김정일의 6월11일 「말씀」에 따라 당조직지도부 행정부문 소속 은행인 동북아시아은행에서 혁명자금으로 관리되었다. 혁명자금 이용에 대한 보고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김정일에게 이루어졌으며 자금관리는 「611계좌」를 통하여 본인이 단독으로 맡아 하였다>

―쓰신 논문을 읽다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을 봤는데 2000년에 金大中-金正日 회담을 할 당시 金正日의 妹弟(매제)인 장성택이 당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죠.

『당조직지도부 행정부분 담당 제1부부장이었습니다』

―그때 金正日이 장성택한테 1억 달러를 줬다는 것이죠. 이것을 동북아시아 은행에서 관리를 했고, 그 자금을 金선생이 집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예, 맞습니다』

―그럼 이 1억 달러는 소스가 어딥니까.

『제가 거기에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DJ가 송금했다는 것도, 남한에서 왔다는 것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소스는 「Bank of China(중국은행)」입니다. 2000년 6월11일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서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받은 金正日 서기실에서 우리 은행에 송금해 줬습니다. 돈이 들어오는지를 굉장히 조바심을 내면서 자주 체크했습니다』

―체크는 누가 했습니까.

『장성택이 직접 했어요. 부서는 「602과」라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체크를 했습니다』

對北불법송금 사건 수사로 밝혀진 사실이 있다. 金大中 정부가 2000년 6월9~12일 사이 현대그룹을 통해서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으로 보낼 때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DAESUNG BANK-2」 명의의 계좌로 송금되었다.

金正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당39호실 산하 대성총국의 마카오 지점인 조광무역상사 총지배인 박자병은 입금상황을 평양의 중앙당 서기실로 보고했고, 그 전화를 한국의 정보기관에서 감청했다. 金正日은 남한에서 들어온 4억5000만 달러 중 1억 달러를 동북아은행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1억 달러를 金선생이 집행했다는데, 자금의 성격이 이른바 혁명자금입니까.

『혁명자금으로 들어왔습니다. 즉 金正日 자금으로 분류해 입금시켰어요. 쓰는 용도는 여러 가지죠. 당 쪽으로 책임을 지고 맡아본 것은 장성택이었어요. 당조직지도부까지 경제부분에 대한 개입·지도·관여를 많이 했습니다. 黨的으로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경제정책적 과제를 장성택에게 일임했습니다. 그때 진행된 대표적인 사업을 보면 대동강 맥주공장 건설, 평양시내 닭공장 현대화가 있죠』


닭공장


인민군이 건설한 1125닭공장을 시찰하는 金正日.
―닭공장이 뭡니까.

『닭을 키워서 닭고기와 달걀을 생산하는 그런 牧場(목장)을 공장화한 것입니다. 규모가 굉장히 큽니다』

―지금도 가동하고 있습니까.

『예, 현대화를 해서 많이 살려 놓았습니다. 다음으로 시리카트 벽돌공장이라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독일에서 집짓는 벽돌공장을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자금이 부족했고, 특히 외화가 부족하니까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국내에서 해결하라」고 해서 절름발이 공장을 들여오게 된 거죠. 그 생산을 정상화하려니까 외화가 필요한 거죠. 그 일 역시 조직부에서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자금이 할당된 거죠』


『나머지는 무기 도입 등에 쓰였을 것』


―軍관계 사업이나 무기 도입에는 사용하지 않았나요.

『나머지는 다 그쪽으로 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남한에서 올라온 돈 가운데) 1억 달러 정도는 김경희(金正日의 여동생)한테 주었을 겁니다. 조선통일발전은행에』

―어디 소속입니까.

『김경희가 책임지던 당경제정책 검열부에서 맡아 보는 은행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어느 방향으로 돈을 사용합니까.

『거기는 인민생활 쪽에 씁니다. 대동강 맥주공장 건설은 우리가 했고 거기에 들어가는 호프, 원자재 수입을 호주에서 많이 했습니다. (金大中 쪽에서 보낸 4억5000만 달러 중) 일부는 비자금 쪽으로도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기서 비자금이란 무슨 뜻이죠.

『金正日이 사적인 데 쓰는 돈이죠』

―물론 해외계좌겠죠.

『해외계좌가 기본이겠죠』

―우리는 이렇게 추정해요. 金大中 정권이 평양회담을 위해서 4억5000만 달러를 보냈으니까 북한에선 이 돈을 무기구입과 핵개발 쪽으로 썼을 것이라고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우리 총재를 통해서 「큰 거 두 개는 창광 쪽으로 갔다, 한 개 정도는 軍 쪽에 갔다」는 정도로 들었습니다. 당시는 그 돈이 한국에서 보낸 것인 줄 몰랐습니다』

―창광은행은 軍이 아니고 어디 소속입니까.

『2경제, 즉 군수산업 쪽입니다』

―軍에 들어가는 것과 창광으로 가는 것이 용도가 다릅니까.

『다릅니다. 창광은행은 군수산업을 지원하지요.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생산입니다. 軍은 군인들을 먹여살리거나, 무기를 현대화하거나 유지하는 쪽을 가리킵니다』

―그럼 軍은 인(人)적인 게 많겠네요. 사단장한테 선물을 한다든지.

『그런 건 아닙니다. 선물자금은 38호실이나 39호실 같은 당에서 지출됩니다. 조직지도부 쪽에서 조성되는 원천을 가지고 선물자금 등 통치자금으로 쓰겠지요. 「혁명자금」이란 명칭으로 군대로 들어간다면 軍 장비 현대화, 무기 수입이나 개발을 의미하는 겁니다』

―金선생이 북한을 탈출하기 전에는 金大中씨가 현대그룹을 앞세워서 평양회담 직전에 金正日한테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시점에 큰돈이 들어왔고, 그때 이야기가 되었던 상황들을 돌이켜 보고 지금 판단하는 거죠』


혁명자금이란?


金正日이 측근들에게 선사한 벤츠 승용차. 번호판이 金正日의 생일을 의미하는「216」으로 시작된다.
―무역 같은 것으로는 갑자기 1억 달러 정도의 돈이 들어오기가 어렵습니까.

『그런 일은 잘 없죠. 더구나 그게 혁명자금으로 들어왔으니까.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그 자금에 대해 이자까지 계산해서 金正日에게 보고했습니다』

―「혁명자금」의 정확한 定義(정의)는 무엇입니까.

『제가 논문에 썼을 겁니다. 옛날에는 당 자금이나 충성자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996년경인가 1997년경부터 혁명자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정의는 북한에서도 딱히 없거든요. 金正日 시대의 통치자금을 金日成 시대와 차별화해서 혁명자금이라고 부르고 있죠. 외화벌이를 할 때 「혁명자금을 마련해서 바쳐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金正日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할당을 해서 내려 보내 주는 자금이지요』

―그건 다른 돈보다 더 신경 써서 관리를 해야겠네요.

『혁명자금은 한 푼도 빼돌리지 못합니다. 실무자들이 업무과정에 떼어먹는 게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혁명자금은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가 됩니다』

金光進씨는 『동북아시아 은행은 원래 네덜란드의 ING 은행과 대외보험총국의 합작으로 설립되었는데, 1999년에 ING가 철수한 이후 2000년 6월11일 金正日의 지시에 의해서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행정부문의 자금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때 내려 보낸 돈이 1억 달러였다는 것이다. 金大中 측이 불법송금한 돈을 근거로 하여 기능하기 시작한 은행인 셈이다.

―동북아은행의 잔고가 가장 많았을 때 얼마나 되었을 것 같습니까.

『혁명자금이 1억 달러 정도고, 보험회사의 자금이 3000만 달러 정도, 다른 거래자 자금이 2000만 달러 정도 해서 1억5000만 달러 가까이 됩니다』

―이 은행은 대출은 안 하죠.

『외화 대부는 떼일 가능성, 즉 위험도가 높아 간부들이 압력을 가하거나 정말 불가피한 사정 외에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개인한테 빌려 주지는 않죠.

『그건 절대로 없습니다. 기관에 빌려주는 겁니다』

다른 북한 은행이 모두 그런 것처럼 은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현금보관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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