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黃晳暎)씨는 1989년~1991년 기간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밀입북하고, 일곱 차례에 걸쳐 김일성을 親見한 뒤, 북한으로부터 25만 달러를 받았던 인물이다.
1993년 귀국 후 수감됐지만, 1998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노무현 정권 들어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대표 중 한 명으로서 송두율 석방운동(2003년 10월23일 성명 참여) 등을 벌이기도 했다.
 
黃씨는 북한 체류 당시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격찬을 받고, ‘언 감자국수’를 함께 먹었다. ‘언 감자국수’는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 당시 땅 속에 묻어둔 언 감자를 꺼내 국수를 해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고 해서 김일성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黃씨는 또 방북 이후 《노둣돌》이라는 잡지의 1992년 창간호 인터뷰에서 “김일성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이라며 이렇게 평가했다. 이글은 그의《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인터넷 매체 ‘프리존’ 2007년 5월10일자 보도 인용)
“그(김일성)는 어쨌든 사상의 차이는 도외시하더라도 두 번이나 세계 최강의 외세와 맞서 싸웠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대국인 중국혁명의 지도자 모택동보다도 훌륭한 점이 있으며 베트남의 호지명에 절대로 뒤지는 인물이 아닌 제3세계적 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중략) 이제 그는 올해로 만 80세를 넘겼습니다. 94년이 동학 백 년이 되는 셈인데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현대사 속에서 그는 어쨌든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셈입니다. 필자는 그가 우리 민족의 유일무이한 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중이 소박하게 떠올렸던 여러 위인들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이율곡, 정약용, 전봉준, 김구 등등처럼 위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나는 링컨이나 워싱턴은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는 록펠러 카네기까지 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黃씨는 같은 인터뷰에서 “연방제가 가장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라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현 단계에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 즉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제도의 두정부가 있다는 점도 인정하되, 그 상위개념으로서 민족도 하나요, 국가도 하나인 것이 바로 통일이라는 점을 무엇보다도 먼저 인정하자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사회평론》1991년 9월호 인터뷰에서도 “北에서 제시하고 南의 재야에서도 이구동성으로 제시하였으며 제도권 야당까지도 동의하고 있는 통일방안은 연방제통일이 아니냐?”며 “최종적으로 영세중립국가를 지향하면서 통일국가의 제도와 체제는 민중이 선택하고 형성해 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黃씨는 從北세력이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대체해 부르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12월 작곡된 민중가요로 광주사태 주동자인 윤상원을 기린 노래이다. 백기완 씨의 詩(제목: 묏비나리)에서 가사를 따와 黃씨가 작사를 하고, 김종률(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자)이 작곡을 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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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소설가 황석영의 문제 발언록
'조갑제닷컴' 2010년 10월13일자 보도
▲“(이명박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서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보수 세력이 오히려 화끈하게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더 도와 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북한영토를 거친 러시아 가스 도입 관련) 李대통령은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더라”(2009년 5월13일 서울신문 인터뷰)
 
※ 소위 ‘북한영토를 거친 러시아 가스 도입’은 2008년 9월 한국가스공사가 러시아 기업 가즈프롬과의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합의한 내용이다. 이 사업은 2015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연간 750만t의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최대의 자원외교 성과’라는 평가도 있지만 문제는 북한이었다. 2009년 5월13일 서울신문은 북한이 이를 통해 얻어갈 돈이 1억 5000만 달러(약 1900억 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보도했다. 황석영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 엄청난 액수를 북한에 지원할 것이라 장담했었다.
 
▲“(몽골과 남북한, 중앙아시아의 문화 공동체인 알타이 문화연합을 언급하며) 오는 6월과 8월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몽골을 방문한 뒤 8~9월쯤 알타이 문화연합을 발족시켜 제주도에서 첫 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다”(2009년 5월13일 서울신문 인터뷰)
  
※ 당시 서울신문은 또 “(黃씨가) 그러면서 앞으로 동북중앙아시아 연대→공동체→연합→연방 형태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와 오르한 파묵, 북한의 소설가 황석준이 공동 참여하는 유라시아 문화인 평화열차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저는 정치가도 아니고 무슨 뚜렷한 이념을 따르고 있는 사람도 아닌, 분단된 우리 한반도의 작가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네 조국 강산은 봄입니다. 봄꽃은 우리나라 남쪽 끝의 한라산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여 아무런 장애도 없이 휴전선 철조망을 넘어서 북의 백두산 기슭에 피어납니다. 저와 저의 동료들과 민중들은 우리나라의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여린 풀꽃들을 눈물이 나도록 사랑합니다. 바로 저들의 재생력이야말로 이 무렵이면 우리 국토를 뒤덮는 외국군의 탱크와 미사일을 이겨낼 위대한 힘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989년 4월 밀입북 직전 성명 ‘북을 방문하는 나의 입장에 대하여’)
  
※ 황석영은 89년~91년간 다섯 차례 密入北(밀입북)하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親見(친견)한 뒤, 북한으로부터 25만 달러를 받았다. 密入北 이후 4년간 해외 망명생활을 하며 북한기행문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국내에서 출간했다. 黃씨는 1993년 4월27일 귀국 후 구속, 1998년 3월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