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박사의 건국혁명 白眉(백미)는 ‘농지개혁’이다. 농지개혁으로 전통적 지배계급인 地主(지주)가 몰락했고 이어진 6·25사변을 거치며 封建的(봉건적) 지주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는 다른 후진국과 결정적 차이다. 남미와 동남아 국가들 상당수는 지배계급인 지주에 발목 잡혀 아직도 질곡에 갇혀 있고, 북한정권은 국가가 농지를 독점해 기근과 아사를 자초했다.
농지개혁법은 6·25 직전 나왔다. 정부가 법을 공포한 것은 1950년 3월10일이었고 세부규정이 나온 것은 6월23일이었다. 이로 인해 커밍스(B.Cumings)는 6월25일 전쟁 이전 실제 농지분배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李박사의 강한 독려와 소관부처 행정 판단 덕에 1950년 3월~5월 사이 최소 70~80% 토지가 분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기록에 따르면, 1951년 2월16일 국회답변에서 농림부는 “농지개혁이 1950년 4월15일 완료됐다”고 답했던 것으로 나온다.
故김일영 교수는 한국은 농지개혁과 6·25를 거치며 국가가 지배계급 특권에 반하여 정책을 펼 수 있는 自律性(자율성)이 확보됐다고 평가한다. “한국이 발전국가로 본격적인 형성·발전이 된 것은 1960년대 이후지만 그 사회적 토대는 1950년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주도 성장 전략은 지주라는 봉건시대 지배계층이 사라져서 가능했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농지개혁인 것이다.
李박사는 근대화를 가능케 한 인프라를 만들었다. 이 인프라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과 함께 농지개혁이 들어갈 것이다. 이승만은 농지개혁으로 소작농을 해방시켜 공산주의를 막았고 산업화를 앞당기는 것은 물론 地主寡頭制(지주과두제) 등장을 막아낸 1石4鳥의 효과를 거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변혁을 이뤄낸 인물은 종종 역사의 호평을 받지 못하곤 한다. 너무 거대한 탓에 愚衆(우중)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건국혁명 白眉 ‘농지개혁’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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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20, 22: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