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는 1944년 6월6일의 상륙작전으로 세계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066년 노르망디公 윌리엄의 영국 상륙 및 정복도 영국과 프랑스뿐 아니라 유렵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다. 윌리엄이 이끄는 노르만 군대(약1만 명)는 노르망디를 출발, 영국을 정복했고, 연합군은 영국을 출발, 노르망디에 상륙, 나치 독일을 무너뜨린다. 세계사를 바꾼 두 상륙작전의 무대인 노르망디는 면적이 3만672평방킬로미터, 인구는 약345만 명이다. 野山조차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다. 英佛해협으로 들어가는 세느 강 流域이라 농토와 목장이 많다.
 
노르망디는 문화와 예술과 영화를 통하여도 많이 알려져 있다. 몽셍미셀 요새, ‘셀부르의 우산’이란 영화의 무대가 된 셀부르 항구,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오마하 비치,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한 '더 롱기스트 데이',  ‘남과 여’란 영화의 무대인 도빌, 그리고 소설가 모파상과 프로벨, 인상파의 원조 클라우드 모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스 드 토크빌 등이 이곳 출신이다.
 
나의 노르망디 기행은 파리의 마르모땅 모네 미술관에서 시작되었다. 이 미술관은 1932년에 폴 마르모땅이란 역사연구가가 자신의 저택과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품을 기증하여 설립되었다. 1971년에는 모네의 아들이 아버지의 작품 65점을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1950년엔 Donop de Monchy 부인이 아버지의 수집품을 기증하였는데 모네의 ‘해뜨는 印象’(Impression-Sunrise)이 포함되었다.
 
나는 63x48cm의 캔버스에 그려진 ‘해뜨는 印象’ 앞의 의자에 앉아 한참 바라보았다. 모네가 느꼈던 그 인상을 느끼기 위하여. ‘해뜨는 印象’은 세계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그림이다. 모네는 이 그림을 르아브르 항구(세느 강이 노르망디 평원을 거쳐서 도버 해협으로 들어가는 하구)에서 창문을 통하여 그렸다. 1872년이었다.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모네가 받은 日出 항구의 풍경 인상을 그렸다. 햇볕과 이미지를 重視하니 자세한 묘사는 생략되었다. 모네는 이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할 때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제목을 요구하여 ‘‘해뜨는 印象’이라고 作名하였다. 제1회 인상파 전시회가 1874년에 열렸다. 이 전시회를 본 Louis Leroy라는 평론가는 혹평을 하면서 모네의 그림 제목을 따서 ‘인상파들의 전시회’라고 썼다. 이때부터 ‘인상파’라는 말이 통용된다.
 
모네는 畵幅에 담는 경치는 ‘내가 받는 인상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였다. 객관적 實體로서의 경치가 아니라 화가가 느끼는 주관적 인상으로서의 경치인 것이다. 이게 인상파 화가들이 제기한 미술의 새로운 觀點(관점)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햇볕, 움직임, 시간의 변화를 그림에 담으려 했다. 인상파의 등장은 사진의 발명과 관련이 있다. 사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점에서 그림은 사진을 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실대로 그린다는 게 의미가 약해진다. 사진이 따라올 수 없는 그림은 무엇인가? 화가의 주관적 視覺, 즉 인상이다.
인상파의 그림을 평론가들은 스케치 수준의 미완성 작품, '벽보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였지만, 그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곧 야수파, 입체파 등 20세기의 새로운 畵風으로 발전해갔다.
 
모네의 '해뜨는 인상'은 1985년에 이곳 마르모땅 미술관에서 도난당하였다가 5년 뒤에 회수되었고 이듬해부터 다시 전시되고 있다. 모네는 노르망디의 지베르니에서 살면서 노르망디 풍경을 많이 그렸다. 르아브르 항구나 해안 풍경뿐 아니라 노르망디 公國의 수도였던 르왕의 대성당을 여러 시각에서, 여러 시점에서 그린 것, 지베르니의 저택 정원에 있는 睡蓮(수련)을 그린 것 등이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도 옹플뢰르 등 노르망디의 작은 항구와 마을로 몰려갔다. 이렇게 하여 노르망디의 풍경은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세계인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그림을 보고 노르망디를 찾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생산자이다.
 
프랑스는 큰 나라이다. 본토는 54만7000평방킬로미터이고 남태평양 등에 있는 영토까지 포함하면 67만4843평방킬로미터이다. 서유럽에가 가장 큰 나라이다. 농토가 비옥하여 해외로 나가는 이민자가 많지 않다. 영토가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프랑스는 배타적 經濟水域 면적이 1102만5000평방킬로미터로서 근소한 차이로 미국에 이어 2등이다. 인구는 6535만 명인데 최근 늘고 있다.
 
프랑스는 GDP가 세계 5위이고 家口의 총자산으로 치면 유럽에서 1등(세계4등)이다. 국방예산은 세계에서 5위이고 병력규모는 유럽연합에서 1등이다. 핵폭탄을 300개 보유한 핵강국이다. 외교관 숫자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保健 서비스의 질은 세계1등으로 평가된다(WHO).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은 프랑스 샤모니에서 올라가는 몽블랑이다. 4810m.
 
노르망디를 비옥하게 만드는 원천은 세느 강이다. 한국인들은 파리에 가서 그 유명한 세느 강을 보고는 강폭이 좁은 데 놀란다. 한강보다 작다고 誤解한다. 세느 강은 부르고뉴 지방의 야산에서 發源(발원), 르아브르-옹페르 항구 사이 하구를 통하여 바다(도버 해협)로 들어간다. 길이는 776km이고 流域면적은 7만8650평방킬로미터이다. 漢江(한강)은 길이가 514km이고 流域(유역)면적은 3만4402평방킬로미터.  세느 강은 年中(연중) 流量(유량)의 차이가 거의 없다. 좁지만 깊다. 하류의 유량은 秒(초)당 500입방미터이다. 한강의 팔당댐 아래 평균 流量은 초당 290입방미터. 河口에서 120km 떨어진 르왕까지 해양선이 올라온다. 하구에서 560km 지점까지 배가 다닌다. 파리를 관통하는 세느 강엔 37개의 다리가 걸려 있다. 옹플뢰르와 르아바르 사이를 지나는 세느의 河口엔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斜張橋(사장교)인 노르망디 大橋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