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진보연대(진보연대)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결성된 운동권의 ‘단일연대체’로 통합진보당,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등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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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박석운 트위터 |
나아가 토지와 농지 공개념, 공공영역의 시장화-개방화 및 국가 기간산업의 사유화에 반대하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확대 등 ‘사회화’를 꾀하면서, 6·15선언을 이행해 상대방의 제도와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통일을 실현해 나간다고 하여 6·15선언 2항의 ‘연방제 통일’을 지향한다.
진보연대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한 단체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촛불집회를 주도한 것은 표면상으론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광우병대책회의)’라는 단체였다. 같은 해 5월6일 출범한 광우병대책회의는 “16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집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주도한 단체는 진보연대였다.
당시 광우병대책회의 대표급으로 활동을 벌였던 강기갑, 천영세, 오종렬, 이석행, 한상렬 등은 모두 진보연대 관련자들이었다. 오종렬·한상렬은 진보연대 공동대표였고, 강기갑·천영세는 진보연대 참가단체인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 이석행 역시 진보연대 참관단체 민노총 대표였다(인용: <팩트파인딩넷> 홈페이지 '한국진보연대' 부분).
진보연대는 줄곧 吳宗烈(오종렬)씨가 이끌어왔다. 전남대 출신의 吳씨는 軍복무를 마친 뒤 교사가 된 인물이다. 1987년 전교조의 前身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출범에 가담, 이후 전교조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교조 광주광역시지부 초대 지부장 등을 지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에는 ‘여중생범대위’를 주도했으며, 2004년 노무현 前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保守진영에 대항해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 吳씨는 2004년 ‘민중연대’ 상임대표, 2005년 ‘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거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6년 말 노무현 정권이 韓美FTA를 추진하려 들자 ‘韓美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및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등 노무현-이명박 정권 시기의 크고 작은 시위에는 늘 吳씨가 존재했다.  
<동아닷컴>이 2013년 8월 사정당국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2년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11년 동안 발생한 주요 촛불집회 9건은 진보연대 등 左派 단체가 주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연대와 민노총은 2005년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범국민대책위, 2006년 韓美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2010년 천안함 사건 진실 규명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행동, 국정원 시국회의까지 모두 참가해 총 9건의 주요 촛불시위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後身인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각각 2009년 용산철거민참사범국민대책위,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만 제외한 8건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2010년 利敵단체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 後身인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와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 등 12개 단체도 총 8건의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과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주요 촛불집회 중에서 각각 7회, 6회, 5회 참여했다. 최근 국정원 시국회의에 참여한 289개 단체 중 절반이 넘는 150개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도 참여해 反정부 시위를 벌인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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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진보연대 연대 및 참관단체/한국진보연대 홈페이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