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연설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하고, 남북한 분단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일체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역사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
삼국시대 百濟 멸망 이후 의자왕을 비롯한 1만2천8백7명의 百濟人들이 唐나라의 포로가 되어 낙양으로 끌려갔다. 高句麗 멸망 이후 보장왕과 그의 가족, 백성 3만8천3백호(약 20만 명)의 주민들이 唐나라로 끌려갔다. 이들은 대부분 노예 등 사회 하층민으로 흡수되어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高麗 때는 몽골의 침입으로 20만6천8백여 명의 포로가 잡혀갔다.
朝鮮時代에는 병자호란으로 1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끌려갔다. 이들 가운데 젊은 여자들의 경우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 다만 돈을 주고 돌아온 여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화냥녀’라며 치욕을 감수해야했다.
당시 靑은 납치양민을 전리품으로 보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종실, 양반의 부녀들을 많이 잡아갔다. 속가(贖價)도 처음에는 1인당 25~30냥이었으나 대개 150~250냥이었고 신분에 따라 1,500냥 까지 했다. 이 때문에 딸과 며느리를 찾아오기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웠고 개인, 국가의 재정도 파탄을 가져왔다.
과거사가 문제라면 한국은 일본에게 위안부(慰安婦) 문제를 제기하는 것 만큼이나 중국에 대해서도 역대 한반도 침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일본에 대해서만 유독 과거사를 문제 삼는가?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라 주장하지만 입으로만 떠든다. 중국처럼 직접적으로 동서해 어장을 침범하지 않는다. 중국에 대해 역사문제를 제기하면 겁이 나나? 혹시 일본이 만만해서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닌가?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시절 남북한의 ‘反美-민족공조’가 문제였다면 우파정권이라는 이명박 정부 말기-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反日-민족공조’가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정치는 물리학과 똑같다. 힘(power)의 역학관계이다.
일본은 미국과 군사 동맹관계이고, 미국은 한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도를 넘는 反日은 反美운동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가 외국과 맺고 있는 관계는 크게 6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아래와 같다.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미국이 유일하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정치, 안보, 외교, 경제, 문화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군사동맹 다음으로 공고한 협력과 파트너십(partnership)을 유지하는 국가(중국, 베트남 등) ▲전략적 동반자 관계: 양국 간 평화모색, 역내 문제는 물론 국제현안과 대외적 전략까지 함께 논의하며 협력하는 나라로 인도, 멕시코, 러시아, EU 등 10개국)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 ▲포괄적 동반자 관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한국과 동일한 국가 시스템을 가진 이웃나라 일본은 위의 어떤 단계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단지 ‘미래 지향적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애매하게 표현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금 ‘미운나라’(일본)와 ‘적’(敵=북한, 중국)도 구분 못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의 제1동맹국인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敵(북한, 중국)의 敵(미국, 일본)'은 친구이기 때문에 일본은 선린우호(善隣友好)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이웃나라다(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재수없게 여길지라도...).
[2] 소설가이자 경제평론가인 복거일(卜鉅一) 씨가 쓴《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라는 책을 읽고 있다. 대한민국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의 영향력에서 떨어져 나와 中共의 속국(Finlandization)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총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記者의 눈을 끈 부분은 제6장(한반도의 지정학)이었다. 놀랍게도 1950년 북한이 남침했을 당시 中共軍 출신의 조선인 병사들이 북한군의 3분의 1을 차지했었다는 것이다. 이들 조선인 출신 중공군들은 ‘國共내전’에서 얻은 전투경험을 지녔고, 북한군의 놀랄 만한 전투력의 원천이었다. 이들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북한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북한군에 편입됐다. 실제로 북한군 5,6,7사단이 모두 중국에서 편성되어 뒤에 이름만 북한군 편제를 따랐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북한군 5사단의 전신인 中共軍 164사단과 6사단의 전신인 中共軍 166사단이 1949년 7월에 편성되어 북한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中共이 국가 수립을 선포한 날이 1949년 10월1일이었는데, 국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기도 전에 中共은 한반도를 병탄하기 위해 북한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복거일 씨의 분석에 따르면 모택동을 비롯한 中共 지도부는 이미 1949년 말에 대만, 베트남, 한반도에서 미국과 대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휴전 직전, 전선에 배치된 공산군은 中共軍 7개 군과 북한군 2개 군단이었다. 예비 병력은 중공군 11개 군과 북한군 1개 군단이었다. 중공군의 침입 뒤 공산군의 주력은 내내 中共軍 이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한 휴전회담을 실질적으로 미국과 中共 사이의 협상으로 만들었다. 리지웨이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석대표는 북한 인민군의 참모장인 남일 중장이었다. 그러나 공산군 측의 실세는 분명히 中共 ‘지원군’의 참모장 해방(解方)장군이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북한의 김정은이 정전협정을 백지화한다는 성명을 냈다. 정전협정 당사국은 미국, 中共, 그리고 북한이다. 즉 정전협정의 백지화에는 中共의 의지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對南 사이버 공격 패턴을 보면 中共에 의한 對美 사이버 공격이 발생 한 후 한국에서 해킹이 발생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이 반대의 경우도 발생).
中共의 경우 미국과 재래식 전력으로는 전쟁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이버 테러(비대칭 전력)를 자행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美中 패권전쟁이 사이버 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점점 거세지는 中共의 자장(磁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대한민국을 포함한 자유진영은 中共에 맞서는 세력을 키워야 한다. 과거 핀란드가 그나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이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력이 러시아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미국 및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진영은 ‘철의 장막’(Iron Curtain) 소련을 제거한 경험이 있다. 이제는 ‘죽(竹)의 장막’을 제거할 차례이다. ‘제2의 냉전’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 다시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려면 '中國 공산당'을 향해 제기해야!
- 김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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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15, 2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