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체재 관찰記/왜 미국여자들을 특히 존경하게 되었나?

1997년 하버드 대학 니만 팰로우 연수를 다녀와서 쓴 글.

한국 여성들의 짙은 화장

미국에 연수를 다녀온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미국을 비판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미국 물 좀 마시더니 親美派(친미파)가 되었군" 하는 빈정거림을 당하기가 싫어서입니다. 저는 그런 비난을 각오하고 오늘은 미국사람들, 특히 미국 여성들의 장점을 주로 말하고 싶어집니다. 미국에서 1년쯤 생활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점보기 안에서 제가 간직한 소감은 "1류국가는 1류국민으로 구성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일류국가라는 것은 미국사람들이 시민윤리나 애국심 그리고 직업적 능력의 면에서 세계일류라는 뜻입니다.

저는 하버드 대학이 있는 매사추세츠 주의 캠브리지市에서 150년 된 3층 목조주택의 1층을 月 1045달러에 빌어 자취를 했습니다. 목조건물은 환기가 잘 되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습니다. 부엌, 욕실, 붙박이 같은 가구와 시설이 아주 간편하고 쓸모있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가진 능력 중에서 저는 특히 그들의 디자인 감각과 색채 감각을 높게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능력이 있으면 돈을 많이 들일 필요 없이도 편하고 고상하게 보일 수가 있습니다. 모처럼 정장을 하고 나서는 모임에 가보면 보통 때는 노동자 같던 그들이 참으로 옷을 잘 입는 사람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비싸지도 않는 옷인데도 色感(색감)을 잘 조화시켜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는 안목이 놀라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제가 새삼 놀란 것은 한국 여성들의 립스틱 짙게 바른 화장이었습니다. 단언하건대 세계에서 한국 여성들처럼 화장을 짙게 하는 여자들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피부가 좋기로 유명한 한국 여자들이 왜 그렇게 짙고 때로는 천박한 화장을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장법과 루즈 색깔도 꼭 같아 외국 사람들은 사람 구별을 잘 못한다고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일본의 가부키 연극배우가 아닌가 할 정도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잃어버린 화장을 한 한국 여자들을 보면서 간단한 화장으로 개성과 건강미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있는 미국 여성들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미국 여자들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생활력과 여자다움에서 미국 여자들은 저를 여러 번 감동시켰습니다. 미국의 경쟁력, 그 비결중의 하나가 여자들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자이니까…"하는 변명과 사양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짐 나르고 집 고치고 하는 육체노동력에서 미국 여자들은 한국 남자들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보스턴의 로간공항에서 목격한 일인데, 갸냘프게 생긴 30代 여자가 혼자서 비행기로 부칠 큰 가방 다섯 개, 두 아기, 아기용 특수의자 두 개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지고 끌고 이빨로 물고 발로 차면서 아무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그 물건들을 운반하고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부두에 연락선이 닿자 여자 직원이 나타나더니 그 무거운 쇠사다리를 끙끙대면서 끌고 와서 뱃전에 갖다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야구팀과 남자 야구팀이 경기중에 패싸움을 벌이는가 하면(여자들이 얻어터졌음) 요사이는 여자권투가 인기입니다. 헤비급 권투선수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뜯어먹은 그날 밤 이 本시합보다 더 재미 있었던 것이 앞서 벌어졌던 여자 권투시합이었습니다. 남자들처럼 붙잡고 늘어지기 없이 깨끗하게 치고받는데 流血(유혈)이 낭자해도 비명 한 번 없었습니다.
미국 여자들의 당당함, 그리고 자립심은 개척시대 여성 교육의 産物(산물)입니다. "남편, 아버지가 여자들을 보호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딸과 아내는 스스로를 지켜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서부시대 여성교육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우직한 미국인, 그래서 무섭다

1997년 5월 말 콜로라도의 애스펜이라는 山中도시에 갔다가 덴버를 거쳐서 보스턴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애스펜에서 덴버로 가는 비행편이 예고 없이 취소되었습니다. 항공사 직원은 취소의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다음 편에 어떻게 해 볼 테니 기다려달라는 말만 했습니다. 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승객들은 한 번도 불평이 없었습니다. 다음 편에는 꼭 탈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탑승구 앞 바닥에 드러누워서 잠을 자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도 빈 자리가 부족하여 다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항공사에서는 일방적으로 오늘 중으로 최종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승객들을 우선적으로 태우겠다고 선언한 뒤 호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알파벳 순서도 아니고 무슨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불평, 또는 사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비행기편에서도 밀려 다음 편을 기다리느라고 3시간을 더 보내야 했습니다. 신경질이 났지만 미국인들이 묵묵히 순응하니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묵묵한 기다림은 초인적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권리주장에 도통한 것 같은 미국인들은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나면 일이 풀릴 때까지 마냥 기다립니다. 우리는 사고가 나면 시끄러워지는데 미국에서는 조용해지고 사고 처리담당자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비켜서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80여년 전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에서 流氷(유빙)에 받쳐서 침몰해갈 때 구명기구가 부족했습니다. 선원들은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우선적으로 태웠습니다. 약간의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生死가 갈라지는 순간인데도 船上(선상)의 질서는 대충 유지가 되었습니다. 미국인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우직함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국 닮은 점이 더 많다

미국에서 처음 거처를 정해서 미국인 속에서 살기 시작할 때는 차이점이 주로 보이다가 귀국할 때쯤이 되면 공통점이 더 많이 눈에 뜨이면서 인간은 결국 같은 존재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친해지면 같아 보입니다. 그 사람이 없는 데서 험담을 하다가 나타나면 표변해서 미소를 짓습니다. 자주 만나고 情을 주고 받으면 친해지고 부탁도 통하는 점에 있어서도 우리와 같습니다. 다른 것은 똑 같은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억제하는 문화인 것입니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점은 인간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과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예컨대 미국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겁이 없는 그들이 노래 앞에선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 저는 한국 사람들의 노래실력을 강조하여 기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音痴(음치)를 노래방에서 고친 사람인데 이 미국 사람들로부터는 '싱잉 조'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습니다. 미국인들은 노래는 아무나 듣고 즐길 수 있지만 부르는 것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한 미국 여성은 "우리 아버지가 음치였는데 우리가 집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금지시켜서 나도 음치가 되어버렸다"고 억울해 하기도 했습니다. 음치를 영어로는 톤 데프(Tone Deaf)라고 합니다. 음정 귀머거리라는 뜻입니다. 한편 한국에선 음치를 '귀명창'이라고 합니다. 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귀로 듣는 데는 명창이란 의미이니 아주 여유가 있는 표현입니다.

미국에서는 왼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왼손잡이로 태어나면 주위에서 참견을 하여, 던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오른손잡이가 되어버리는데 개성을 존중하는 미국에선 왼손잡이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재채기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씁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재채기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틀어막느라고 숨막히는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재채기를 하고는 반드시 "엑스큐즈 미"라고 해야 하고 두 번째 하고 나선 "엑스큐즈 미 어게인"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미국 사람들이 코를 풀 때는 당당하게 꼭 나팔 불듯이 합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재채기를 하면 병원균 같은 게 배출되는데 코를 풀면 그런 일이 없으니 조심을 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비를 잘 맞습니다. 비가 쏟아질 때도 뛰지 않습니다. 여학생들이 비를 주룩주룩 맞으면서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을 보노라면 감동이 생기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어서 그런지 머리칼이 비를 맞아도 변형 변질되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말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즉흥적으로 하는데 글은 정말 정확하게 씁니다. 미국 사람들은 남의 말꼬리를 잡지 않기 때문에 말을 할 때는 신경을 덜 쓰는가 봅니다. 그러나 글만은 정확하게 씁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는 일본어와 한국어이고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언어는 영어라고 합니다. 語順(어순)이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한글 專用은 非세계화의 개념

이것은 동양 사람과 앵글로 색슨 계통의 사람들이 사고방식에서 가장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언어라는 것은 사고방식을 담는 그릇이자 민족의 혼을 보존해가는 정신의 불씨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포 2세 가운데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 보면 아무래도 동족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 말과 구조가 비슷한 우랄 알타이語를 쓰는 나라에 가면 유달리 친근감이 드는 것이 이 언어의 마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영어를 통해서 지금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소련의 붕괴는 러시아어권의 축소를 결과했고 인터넷의 보급은 영어를 세계어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여 이런 대세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大勢(대세)순응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한국인의 혼을 간직하는가일 것입니다.

저는 영어교육과 함께 漢字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단어의 약 70%는 한자로 써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漢字語源의 낱말들입니다. 우리의 역사서 중 최근 백년을 빼면 전부가 공용어인 한자로 쓰여져 있습니다. 한자는 新造語신조어)를 만들고 함축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한글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자를 공부하면 동양의 역사와 철학을 같이 배우게 됩니다. 요즘처럼 줄임 한자어까지 한글전용으로 표기하면 어떤 단어는 암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컨대 급간제, 삼협, 임협이라고 한글로 써놓으면 어떻게 알겠습니까. 대북외교라고 한글로 쓰면 한 50년 뒤에 읽는 사람은 이것이 대만에 대한 외교인지 북한에 대한 외교인지 혼돈을 일으킬 것입니다.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는 더불어 살기이고 專用이란 용어 자체가 더불어 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개념인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表音(표음)문자로서 한글, 위대한 表意(표의)문자로서 한자를 다 활용할 수 있는 기가 막히게 좋은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한글과 한자라는 두 날개를 갖고 나를 때 대한민국은 문화적으로 크게 한번 飛上(비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좋은 두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왜 하필 한 날개를 잘라버리고 한 날개만으로써 뒤뚱거리면서 달리려고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의 반 이상이 일본 대만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서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한글전용으로만 되어 있는 간판과 표지판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영어와 한자만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랍문자만으로 간판이 쓰여진 중동지역을 여행할 때 느끼는 충격과 비슷한 당혹감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한국사람들이 한자를 혼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왔기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 다시는 한국에 안오겠다고 말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글전용으로 나가면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 고립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조선 왕조실록 등 엄청난 유산들과도 멀어져 문화적 미아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그런 前兆(전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폐에다가 "In God We Trust"를 넣은 까닭

경주를 찾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한자로 쓰여진 금석문이나 현판을 읽지 못하는데 일본의 소학교 학생들은 이해한다고 하니 이 무슨 수치입니까. 저는 미국 사람들을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곤 합니다. 미국의 국가적인 구호는 "인 갓 위 트러스트"(In God We Trust)란 말입니다. 번역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이 구호가 만들어진 사연이 있습니다.

1861년 남북전쟁 때 북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왓킨슨이란 목사가 재무장관 체이스에게 편지를 써 실의에 빠진 북부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문구를 동전과 지폐에 인쇄해 넣자는 제안을 하여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1955년 미국의회는 이 문구를 모든 지폐와 동전에 반드시 넣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가장 세속적인 물질인 돈에다가 가장 정신적인 하느님이란 말을 새겨넣었다는 것, 여기에 미국의 위대한 실용정신과 이상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물질의 뒷받침이 없는 정신은 허깨비이고 정신의 뒷받침이 없는 물질은 俗物(속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돈과 하느님, 이 두 상반되는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켜가면서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할 것인가 하는 화두(話頭)를 던져주는 것이 미국의 지폐이고 동전인 것입니다. 미국사람들도 구호를 좋아하는 편인데 '미국인의 신조'라는 글도 있습니다. 이것은 1918년 미국하원에서 채택한 것인데 이런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나는 조국을 사랑하는 것을 나의 의무로 받아들인다. 헌법을 지지하고 법률을 준수하며 국기를 존경하고 조국의 모든 적들로부터 미국을 수호하는 것을 또한 나의 의무라고 믿는다.>
개인주의와 애국심,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개념을 조화시키고 하나의 질서 있는 논리 체계로 통합하도록 하는 울타리는 바로 국가인 것입니다. 개인의 幸, 不幸과 국가의 幸, 不幸을 일체화시킬 수 있는 시민과 그런 시민을 가진 국가가 바로 일류국가인 것입니다. 일류국가는 일류국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2류국가라는 것은 바로 우리가 二流국민이란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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