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는 대통령의 선택10월26일 저녁 궁정동 식당의 마지막 만찬은 순전히 朴正熙대통령의 선택이었다. 朴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행사를 마치고 오후 2시30분쯤 청와대로 돌아왔다. 본관1층 집무실까지 따라왔던 것은 金桂元비서실장, 車智澈경호실장, 千炳得수행과장이었다.朴대통령은 집무실로 들어가면서 대단히 만족한 표정으로 이들에게 『수고했으니 쉬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오전에 지방출장 행사가 있던 날은 오후에는 청와대 내에 머무는 것이 상례이기도 했었다. 車실장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서 부하들에게 『수고했어. 쉬어!』라고 했다.
오후 4시, 李在田 경호실차장은 車智澈실장실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때 인터폰이 울렸다. 車실장은 통화가 끝나자 부관에게 『정보부장 대라!』고 했다. 金載圭부장한테 車실장은 『오후6시에 각하와 만찬이 있다』고 말했다. 그 무렵 金桂元실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유정회 최영신(崔榮喜)총무를 맞아 잡담하고 있었다. 군 선배인 崔총무는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다. 金실장은 『조금 더 기다려 보시죠. 각하께서 찾으실 지 모르니까요』라고 했다. 오후 4시30분쯤 車실장한테서 인터폰이 걸려 왔다. 통화가 끝나자 金실장은 웃으면서 『이래서 제가 약속을 못합니다』고 했다.
車실장은 천병득(千炳得)과장 등을 불러 경호준비를 시키면서 『오늘은 쉬시지…』라고 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날 朴대통령은 모처럼 평온하고 풍요해 보이는 추수기의 농촌나들이를 하고 와서 최상의 기분이었다. 그는 그 좋은 기분을 연장할 방법을 청와대 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오후 6시에 2층의 내실로 퇴근하면 거기에는 적막한 홀아비의 침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후 4∼6시 사이 朴대통령은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특별한 외부손님을 맞지 않았고, 집무실 안에만 있었다. 오후5시를 조금 넘어 朴대통령은 임방현(林芳鉉)청와대 대변인에게 인터폰을 걸었다.
『연두기자 회견은 어떻게 돼 가나?』
『이미 착수했습니다』
『참 잘 했어, 아주 잘 했어』
朴대통령은 기분이 좋아 있었다. 오후 6시 조금 전에 車실장은 朴대통령을 모시러 가려고 대통령 부속실로 올라 왔다. 부속실직원 이광형(李光炯)씨는 그때 비로소 만찬 약속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朴대통령은 집무실을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군, 나 경호실장하고 저녁 먹고 올 테니 서재 문 잠그고 퇴근해. 근혜를 찾았는데 어디서 손님을 만나고 있는지 연락이 닿지 않아. 늦을 테니 먼저 식사하라고 전해주게』 본관 앞에는 비공식행사 때 쓰는 크라운 슈퍼 살롱이 시동을 건 채 대기하고 있었다. 본관 당직책임자 성수룡(咸壽龍) 경호과장이 승용차의 문을 열고 있다가 朴대통령을 배웅하였다. 車실장은 朴대통령 옆자리에 탔다. 그 열시간 뒤 咸과장은 시체가 돼 돌아오는 대통령을 마중하게 된다.
보안사는 車실장 의심
밤9시를 조금 넘어서 全소장이 육본에서 보안사령부에 도착했다. 全소장은 孫杉秀중위에게 경호병들을 대기시키도록 지시하고 2층 집무실로 올라갔다. 당직사령을 맡고 있던 이상연(李相淵)감찰실장(현재 보훈처장)과 禹國一참모장이 따라 들어왔다. 부마사태 이후 보안사는 비상근무 중이었으므로 처장급 이상의 다른 간부들도 신속하게 소집되었다. 禹준장은 『코드 원이 서거하신 것 같다』고 보고했다. 그는 金秉洙병원장과 통화한 내용을 설명했다. 全敬煥계장이 보안사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全斗煥보안사령관을 경호실로 오시도록 하라』고 여러 번 전화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禹준장은 『경호실로 가시지 말고 육군본부로 가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禹준장도 당시의 여러 고위층 인사들과 같이 車실장이 백색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全사령관이 車실장과 통화라도 하게 되면 인간관계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 우려돼 전화도 걸지 않도록 했습니다. 全사령관도 그 시점에서는 車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全소장은 사령관실에서 군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다시 육본벙커로 출발했다. 크라운 승용차가 경복궁 앞 동십자각 부근을 지날 때 全소장은 거울을 보더니 『야, 경호병이 안 탔잖아』라고 했다. 孫중위는 全소장의 지시를 받고 유도와 사격에 능한 경호병 4명을 소집, 대기시켰었다. 경호차 운전병에게 『사령관 차를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다짐을 해두었었다. 사령관 차가 출발하자 경호차 운전병은 서둘다가 경호병들을 태우지도 않고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孫중위는 사령관 차에서 내려 뛰어가 경호차 운전사에게 『빨리 경호병들을 태워서 오라』고 신경질을 냈다. 육본에 거의 다 왔을 때 경호병을 태운 경호차가 따라 붙었다.
마비된 경호실 지휘부
대통령경호실의 李在田차장은 연락을 받고 곧바로 청와대로 들어왔다. 아마도 밤8시30분 전후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 바로 옆에 붙은 실장 부속실의 부관이 車실장의 권총을 넣어 다니는 작은 가죽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빨리 실장을 찾으라』고 했다. 부관은 어디로 전화를 걸어보더니 『장소를 옮겼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경호실 당직사령 강태춘(姜泰春)정보처장을 불러 물어도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런 혼돈 상태에서 金桂元 비서실장은 李차장에게 『지금 車실장이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당신이 경호실을 장악하고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咸과장은 李차장으로부터 『지시 있을 때까지 정상근무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답답하여 경호과 병력 중 쉬고 있던 다른 1계(係)병력 15명까지 무장시켜 30여 명을 본관주위에 배치시켰다. 張世東대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라고 경호실 상황실에 보고했지만 상황실 근무자들은 궁정동 안가의 성격과 대통령이 거기에 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청와대 직원들 중 대통령이 궁정동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는 車실장 부관들과 千炳得수행과장 뿐이었을 것이다. 밤9시를 조금 넘어서 육군본부 지하벙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鄭昇和총장이었다. 그 통화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고 鄭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썼다.
『당신 지금 어디서 전화를 받고 있소?』
『집무실입니다』
『청와대 안에 아무 이상이 없소?』
『이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무슨 일입니까?』
『이 장군, 청와대 내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부득이 수경사로 하여금 청와대를 포위하도록 명령했소. 이 장군과 전성각 수경사령관은 동기생이니까 직접 연락해서 충돌이 없도록 하시오. 내 명령 이외에 움직이지 말고 특히 외부와 접촉하지 말도록…』
鄭총장은 朴대통령의 죽음이 車실장에 의한 쿠데타 기도가 아닌가 의심했었는데 李차장과 통화해 본 느낌으로는 경호실의 조직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李차장은 곧 전성각(全成珏)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수경사의 병력 배치 상황을 물었다. 李차장은 이날 군의 선배인 비서실장과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똑같이 『경호실 병력을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두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날 李차장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날도 車智澈경호실장의 부관 이석우(李錫雨)씨는 車실장이 朴대통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무실을 떠날 때 권총을 건네주었었다. 그러나 車실장은 『갖고 있으라』면서 되돌려 주었다. 李부관은 그 권총을 도시락상자 같은 가죽가방에 집어넣었다. 李부관은 그전에도 車실장이 궁정동 식당으로 갈 때는 늘 권총을 건넸으나 車실장은 되돌려 주기만 했다. 李부관은 그래도 『대통령을 모시는 데 권총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계속해서 권총을 건했었다. 지금은 경기도 미금시 부시장인 李씨는 『그전에는 車실장이 권총을 차고 갔었는데 79년 중반부터 차고 가지 않게 되었다. 대통령한테서 말을 들은 것 같았다』고 했다. 다른 경호실 관계자는 『설사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경호실장은 권총을 숨겨서라도 갖고 다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李錫雨씨는, 車실장이 권총을 차고 갔었더라도 그날의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다. 『술자리에서는 웃옷을 벗었을 것이고, 그때는 車실장이 권총을 차고 있음이 알려졌을 것이며, 金載圭는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것입니다』
『궁정동을 장악합시다』
그날밤 車智澈실장 집무실을 지키고 있던 李錫雨부관은 궁정동의 총성을 듣지는 못했었다. 『효자동 근방에서 총성이 난 것 같다』는 보고는 곧 들어왔다. 그날 경호실 당직사령인 강태춘 처장이 李부관에게 『실장의 거취가 확인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李부관은 궁정동 식당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의 복무수칙은 車실장이 궁정동으로 갔을 때는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李부관은 車실장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직감을 갖게 되었다. 경호실장, 경호처장, 경호부처장 등 경호실의 핵심간부 3명이 한꺼번에 무력화되었기 때문에 대통령 경호실의 지휘부는 일순간 마비되었다. 李在田차장이 실장을 대행하여야 했지만 그는 궁정동 식당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을 만큼 경호실의 고유업무에는 어두웠다. 다른 처장들도 자신의 업무 이외에는 관심도 지식도 권한도 없어 비상시에 마비된 지휘부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이런 경우를 예상한 계획도 훈련도 돼 있지 않았다.
朴대통령의 근접경호는 경호처 수행과 소관 임무였다. 천병득(千炳得)수행과장은 車실장이 대통령을 모시고 궁정동으로 떠난 뒤 퇴근했다. 시내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다가 저녁 10시쯤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그의 아내가 『총성이 들렸고 경호실에서 찾는 전화가 오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千과장은 청와대근방의 경호원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千과장은 車실장이 간 곳을 알기 때문에 궁정동 식당으로 갔다. 불이 꺼져 있었다. 『(정인형)처장님이 여기 계십니까?』 안에서 경비원이 당황한 말투로 『이동하셨습니다』고 했다. 千과장도 직감적으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청와대로 들어가 경호실장실에 들렀다. 부관들도 車실장의 행방을 모른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차장실에 갔더니 李在田중장이 있었다. 千과장은 『우리 병력을 보내 궁정동을 장악합시다!』고 했다고 한다. 『뭘 머뭇거리십니까』하고 재촉을 했더니 李차장은 『당신은 나가서 정위치 하고 있으시오!』라고 소리쳤다.
정보부족의 청와대
金桂元 비서실장의 보좌관은 대한일보 정치부기자 출신인 권숙정(權肅正. 지금 천안공전 학장)였다. 그는 저녁6시에 퇴근하여 친구들과 함께 남산헬스 클럽에 나가 운동을 한 뒤 저녁식사를 하고 밤10시35분쯤 성북동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아내가 뛰쳐나와 『청와대에서 5분 간격으로 당신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權보좌관은 金실장이 찾는 줄 알고 『어차피 늦었으니 숨 좀 돌리고 보자』면서 침실에 들어와 옷을 벗는데 청와대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의전비서실 행정관이 『빨리 나오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실장은 어디 계십니까?』
『국방부로 가셨습니다』
權보좌관은 순간적으로 휴전선에서 비상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權보좌관이 청와대에 도착한 것은 10시48분쯤이었다. 비서실장실에 들어갔더니 서석준(徐錫埈)경제수석, 高建행정수석, 崔侊洙의전수석 등 수석비서관들이 모여 있는데 분위기가 납덩이처럼 침통하였다. 權보좌관은 늦게 도착한 데다가 분위기마저 무거워 입도 못 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 10분쯤 지나니 감이 잡히는 것이었다. 수석비서관들도 확실한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추측들을 하고 있었다. 권부의 핵심인물인 유혁인(柳赫仁)정무수석은 金실장과 함께 국방부로 갔으므로 실장실에 모인 수석들도 1차적인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대통령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쪽으로 추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車실장과 金載圭부장이 언쟁을 벌이다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닌가란 데까지 발전하였다.
車실장이 성격이 훨씬 난폭하니까 車실장이 金부장을 쏜다는 것이 대통령을 다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밤11시30분쯤 되자 대통령이 다치셨다면 어디서 치료를 받고 있을 것이니 상황을 점검해 보자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徐경제수석은 『金실장이 대통령 각하 곁에 있지 않고 국방부로 갔다면 다 끝난 것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그때부터 최악의 상황이 거론되고 車실장을 욕하는 말들이 자주 튀어나왔다. 총무비서관 전석영(全錫濚)씨도 權보좌관에게 오더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밤12시에도 청와대 안에서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朴대통령이 숨을 거둔지 다섯 시간도 지나지 않아 권력의 중심부는 이미 국방부 쪽으로 이동해 있었던 것이다. 밤12시20분쯤 金桂元실장이 국방부에서 청와대로 돌아와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비로소 金실장은 대통령의 죽음을 알렸다. 李在田 당시 차장은 『나는 이때 처음으로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에는 대통령이 토사곽란으로 입원한 줄 알았다』고 했다.
지리멸렬한 행정부의 대응
朴대통령 부속실 부관 李光炯씨는 朴대통령이 궁정동으로 떠난 직후(오후 6시쯤) 집무실 출입문을 잠그고 부속실의 당직실로 물러났다. 복도에서 朴槿惠양을 만나 『대통령께서 만찬 나가시면서 오늘은 늦겠으니 먼저 식사하시라고 합디다』고 말을 전했다. 李씨도 7시40분의 총성을 듣지 못했다. 본관 경호 데스크로부터 『총소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단순오발사고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었다. 金桂元실장이 와이셔츠 바람으로 들어왔다가 崔圭夏총리와 함께 황급히 나갔다는 얘기가 들리더니 정인형(鄭仁炯)경호처장의 차가 경부고속도로 양재톨게이트 근방을 달리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들어오기도 했다.
李씨는 본관 2층의 비서실장실로 갔더니 수석비서관들이 모여 있었다. 崔侊洙의전수석이 『큰 영애한테는 보고 안 드렸지. 만약 부르시면 각하께서 늦으신다고 먼저 주무시라고 말씀드려』라고 하는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는 부속실 직원으로서 李씨는 자정 무렵까지도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고, 다만 대통령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감만 잡고는 별의별 상상을 다하고 있었다. 鄭昇和총장·全斗煥보안사령관으로 대표되는 군 조직의 신속한 대응과는 대조적으로 崔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행정조직과 정보부·경호실에 대응은 지리멸렬이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崔총리가 밤 9시쯤 金桂元실장으로부터 접수한 「金부장 총에 朴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정보가 다른 장관이나 기관에 전혀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치열(金致烈)법무, 노재현(盧載鉉)국방장관 등 몇 사람은 「朴대통령의 서거」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밤늦게 급히 연락을 받고 국방부로 온 다른 장관들은 사망사실도 몰랐다. 사망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그 사실을 전파하지 않고 독점하고 있었다. 상황이 너무 유동적이라서 입 조심을 해 가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혼란 상황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가져야 자신 있게 행동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데 우리의 문민행정조직은 그 최상층부에서 이미 기능이 마비돼 있었다. 군 조직의 신속한 대응과 문민조직의 지리멸렬상은 5·16때 이어 10·26때도 되풀이되었고 이것은 그 뒤의 사태발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고 밤9시 조금전 비서실장실로 달려 온 崔圭夏 총리에게 金桂元실장은 『車실장과 金부장이 싸우다가 金부장 총에 맞아 각하가 돌아가셨습니다』고 보고했다. 『崔총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상체가 축 늘어지더니 막 흐느끼더라』는 것이 金씨의 증언이다. 밤9시쯤 육본벙커에 가 있던 金載圭는 金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崔총리를 모시고 육본으로 오라』고 했다. 崔총리는 잠시 주저하다가 『갑시다』면서 일어섰다. 崔총리와 金실장은 金載圭가 군을 장악했다는 판단을 했고, 바로 그 군의 지휘부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문민관료출신인 崔총리는 이런 비상사태 하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해서 준비도 훈련도 돼 있지 않았다. 崔총리의 위축된 심리상태를 金桂元씨는 「판단력의 부재와 공포감」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었다. 10·26사건의 초장에 벌써 崔총리는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심리상태는 이날 밤과 그 뒤의 전환기에도 지속된다.
장관들의 눈치보기
金실장은 그 순간 국가원수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崔총리에게 경호팀을 붙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 경호실의 한 간부는 『대통령 경호실은 인간 朴正熙의 생명을 보호하는 임무 외에도 국가통치권의 보호라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朴대통령의 유고가 확인된 즉시 경호실은 崔총리경호로 전환했어야 했다. 崔총리가 아무런 보호 없이 육본으로 간 것은 우리 경호실의 수치였다』고 지적했다. 崔총리 일행은 밤9시30분쯤 육군본부벙커에 도착하여 金載圭와 함께 사후대책을 논의하다가 비상국무회의를 소집, 계엄령을 펴기로 하고 국방부장관실로 옮겨갔다.
총무처 차관으로 그때 비상국무회의 소집의 연락책임자였던 최택원(崔澤元)씨는 이렇게 말했다. 『국무회의가 열린 것은 26일 밤 11시50분께였다. 국방부 장관실에 있던 최총리는 상황실에 나타나 정좌하자, 「국무위원이 아닌 분은 나가 달라」고 했다. 나는 총무처장관 심의환 씨가 그 며칠 전 별세하여 그를 대신해 참석, 시종일관 그 국무회의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 비상국무회의에 관해서 지금까지 씌여진 거의 모든 기사는 국무회의 벽두에 최총리가 「대통령께서 유고이십니다」고 했고, 노국방이 비상계엄령 선포 안건을 상정했으며, 다른 국무위원들이 「유고의 이유를 밝혀라!」고 들고 일어났다고 되어 있다.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최총리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지금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한 사태가 발생하였으므로 국무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습니다」고 했다. 서거, 유고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뒤이어 노국방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를 제안했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 유고」란 표현을 쓰지 않았고 「중대 사태」라고만 했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나는 대통령이 시해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국무위원들이 유고의 사유를 밝히라고 대들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그때 국무위원들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나 여기에 밝힐 뜻은 없다. 다만, 내가 비애를 느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인간의 약점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김성진 문공부장관이 정회를 건의했다. 10분간의 정회가 30분, 40분간 길어졌다. 새벽 1시가 넘어 최총리, 신부총리 등 일행이 다시 들어와 국무회의가 속개되었다. 박대통령의 유해가 안치된 국군 서울지구병원에 갔다 온 것을 알았다. 최총리는 「대통령께서 서거하셨고, 우리가 가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부 기록에는 「대통령께서 피격 당해 서거하셨다」고 최총리가 말한 것으로 적혀 잇는데 피격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사태를 잘 모르는 국무위원들 중에는 그때까지도 대통령이 병사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김재규가 범인이란 사실도, 그가 이미 체포당한 사실도 국무회의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가의 위기 때 나는 비애를 느꼈다』
金載圭를 정보부 정동분실로
盧국방과 鄭총장은 밤11시쯤 국방장관보좌관실에서 金桂元비서실장으로부터 대통령 시해범은 金載圭라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된다. 그 이후의 조치에 대해서 鄭총장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헌병감으로 하여금 체포토록 한 뒤 보안사령부로 인계시킬 계획이었다. 범인을 보안사로 인계시키는 것은 보안사령관이 헌병감보다 계급이 위고, 보안사는 육해공군에 병력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계엄이 선포되면 보안사령부를 합동수사본부로 삼으려 했기에 거기로 김재규를 인계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김실장의 귀띔을 듣고 곧 조약래 보좌관 책상 앞에서 전화로 김진기 헌병감을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헌병감을 육본벙커로 오도록 전하라고 한 뒤 먼저 벙커로 내려갔다. 곧 벙커로 온 김진기 준장에게 나는 체포방법과 신병처리 지침을 시달했다. 헌병감이 명령을 받고 준비하러 나가자 곧이어 전두환 소장이 총장실에 도착했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이희성 참모차장과 이야기를 하다가 중단하고 전소장에게 김계원 실장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제보를 받은 사실과 헌병감을 시켜 체포토록 한 뒤 범인을 보안사령관에게 인계시킬 계획을 설명하고 보안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겠음을 미리 알려주었다. 곧 헌병감과 협조하여 범인을 인수한 뒤 보안사가 가진 시내의 안가에 수용한 뒤 유능한 수사관을 붙여서 수사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그러나 흥분하여 범인을 마구 다루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당부했다. 헌병과 보안사 수사관이 합동작전으로 붙든 金載圭를 보안사 수사팀이 호송하는 과정에서 해프닝이 있었다. 金載圭가 탄 차보다 경호 차가 너무 빨리 달린 것이 원인이었다. 뒷 차 운전병은 보안사 정동분실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는 金載圭를 태운 차를 보안사 정동분실 바로 옆에 있는 정보부 정동분실 앞에 세웠다. 조선일보 뒷 편 보안사 정동분실에 먼저 도착한 경호차 속에서 이 장면을 보고 기겁을 한 보안사 요원들이 사태를 수습했다.
鄭昇和씨는 이렇게 적고 있다. 「새벽 2시쯤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이 국방부에 있는 나를 찾아와 쪽지에 적은 것을 보여주었다.
『김재규가 안가로 호송 중 차안에서 수사관에게 횡설수설한 걸 보아 범인이 틀림없습니다』
종이 쪽지엔 김재규가 했다는 말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상은 바뀌었다.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박대통령이 너무 심했어』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김재규가 대통령 저격범인이라는 데 크게 놀라고 있었다.
『세상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범인이라니…』
전두환소장은 좀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그는 김재규의 수용상태와 앞으로의 수사계획을 보고했다」











